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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70화 (70/415)

70화. 제안 그리고 역제안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심으로는 추궁당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추궁은커녕 학부 변경을 제안해 올 줄은 몰랐다.

“물론 갑작스러운 제안이라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아카데미의 입장에서는 아드리아스 학생과 같은 인재를 조금 더 신경 써 주고 싶어서 말이죠.”

“말씀은 감사하지만…….”

물론 지금의 나는 마법보다 검이 주력인 건 확실하다.

굳이 따지자면 네크로맨서로서의 능력이 가장 강하겠지만 이건 함부로 쓸 수 없으니 논외.

그러나 데슈른에게 배운 무아검을 익히는 중이라 딱히 학부 변경을 해 가면서까지 검 실력을 늘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직 포션 제조를 위한 연구실도 필요하고 다른 마법들도 차차 익힐 예정이라 기사학부는 전혀 생각 없었다.

“저는 마법학부에 남고 싶습니다.”

“이유를 들어 봐도 될까요?”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포션도 남아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저를 마법사로 만들기 위해 들였던 노력을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아드리아스 학생.”

데오스가 나직하게, 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드리아스 학생은 검에 대한 재능이 있지요. 그런 재능을 포기하고 마법사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건 교육자로서 그냥 보고만 있기 힘들군요.”

굳이 이렇게까지 나를 기사학부에 편입시키려는 이유가 뭐지.

나는 데오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내가 기사학부로 편입이 되면 그에게 이득이 될 만한 일을 떠올려 보자.

‘은퇴를 앞둔 노인이라 그런지 뭔가 기릴 만한 업적을 세우고 싶어 하지. 근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

내가 말없이 시선만 맞추고 있자 데오스가 결국 뒤로 물러나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아드리아스 학생. 이건 어떻습니까? 기사학부로 변경하시면 교장 특권으로 전액 장학금은 물론 졸업을 위한 추가 가산점도 드리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나오니 더욱 뒤가 구리다.

내가 기사학부로 가면 데오스에게 이점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나한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지금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데오스가 결코 좋게 보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래도 기사학부로 갈 생각은 없지만.’

전액 장학금, 추가 가산점.

둘 다 좋다.

하지만 학부를 옮길 정도의 보상이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무엇보다도 데오스가 진짜 목적을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제안을 수락하기 힘들었다.

“전 제 마법적인 재능도 믿고 있습니다.”

“허어…….”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쉰 데오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알겠습니다. 저는 그저 교육자로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인데 욕심이 너무 앞섰던 것 같군요.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일어나서 허리를 숙이는 데오스를 보며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질 뻔했다.

이 뻔뻔한 능구렁이 같은 영감은 지금 작전을 바꿔 내게 죄책감을 심으려고 하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미안함을 느낀 순간 무언가를 보상해 줘야 한다는 심리를 가지기에.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나는 애써 표정을 풀고 그와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저었다.

그렇게 서로 자리에서 일어나 불편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앉았다.

“아드리아스 학생이 이번 토너먼트에서 보인 활약은 너무나 뛰어났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관중들이 그리 생각했겠죠. 사실 이번 토너먼트의 관람자 중 한 분이 미르코 아카데미의 교장이셨습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혓바닥을 놀리나 싶었는데 미르코 아카데미라는 말에 두 귀가 트였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준결승부터 관전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우승자인 디에네 알븐 학생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다는 아드리아스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관심을 표하셨죠. 이번 토너먼트는 12년 만에 마법학부에서 우승자가 나오는 등 그야말로 이변의 연속들이었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확인한 미르코 아카데미의 교장께서는 빠른 시일 내에 양측 아카데미가 교류회를 개최해 친분을 나눴으면 했습니다.”

교류회?

게임에서는 일어난 적 없던 스토리다.

게다가 미르코 아카데미에는 또 다른 플레이어블이 있었다.

‘토너먼트 내용이 바뀐 미래가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내가 조용히 듣고만 있자 데오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교류회를 승낙했습니다. 이번에 초청되는 미르코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총 10명. 모두 상위권의 학생들이죠. 그리고 이들을 안내하며 함께 생활할 학생들을 선별해야 하는데 마침 아드리아스 학생에게 그 기회를 나눠 주고 싶군요.”

학부 변경 이야기가 왜 이렇게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물론 학부 변경에 비하면 사소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학부 변경으로 무리한 이야기를 꺼내고 조금 더 작은 부탁인 교류회를 맡기는 건가?’

큰 걸 부탁했다가 상대적으로 작은 부탁을 하면 들어줄 확률이 높긴 하지.

게다가 그는 아까 전의 사과로 내게 죄책감을 심으려고까지 했다.

의도를 몰랐다면 미안한 마음에라도 승낙했을 제안.

‘고민되네.’

의도가 괘씸하기도 하고 데오스의 책략에 놀아나는 기분이라 거절하고 싶었지만 미르코 아카데미의 플레이어블과 인연을 쌓을 수도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에 망설여졌다.

그깟 감정 소모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저버릴 수도 없지.

하지만 그냥 승낙하기에는 조금 열 받으니 뭐라도 뜯어내야지.

“데오스 교장님.”

“예. 결정하셨습니까?”

“기회를 주신 건 감사한데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부탁이라면……?”

“졸업반에게만 배정되는 개인 연구실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뜬금없는 말이었을까.

데오스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아드리아스 학생. 미르코 아카데미와의 교류회는 저희 아카데미 측에서 아드리아스 학생에게 건네는 ‘기회’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를 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이건 거래가 아닌 말 그대로 저희가 ‘베푸는’ 거죠.”

“데오스 님.”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깍지를 끼고 턱을 괬다.

“전 바보가 아닙니다.”

단 한 마디만으로 끝을 맺었다.

내가 한껏 분위기를 잡자 데오스의 포커페이스가 일순간 무너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보였다.

“험, 험. 그니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알아들으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생께서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니…….”

“알겠습니다. 그럼 이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죠.”

나는 식은 차를 들어 한 입에 마시고 다시 한 잔을 따랐다.

그리고 여유롭게 향을 음미하며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교류회.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거절이었는지 데오스의 입이 벌어진 채 닫히지를 않았다.

물론 나도 진짜로 거절할 의사는 아니었다.

그저 데오스가 정말로 내가 교류회에 참가하기를 원한다면 말을 돌려 내 제안을 수락할 걸 알기에 배짱 장사를 하는 거였다.

‘개인 연구실이 그리 큰 제안도 아니지. 실제로 디에네는 이미 작년부터 개인 연구실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물론 디에네는 동기 중에 수석이라는 지위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로들렌 마탑의 입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어쨌든 선례가 있는 만큼 그리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그, 크흠, 그러니까 아드리아스 학생은 미르코 아카데미와의 교류회를 참가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타 아카데미의 상위권 학생들과 실력을 나누고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바보가 아닙니다.”

데오스의 포커페이스가 희미하게 떨리는 걸 바라본 나는 쐐기를 박았다.

“이쯤이면 제가 한 말의 의미를 아실 거라 보는데요.”

난 당신이 처음 제안했을 때부터 지금의 제안까지 전부 꿰뚫고 있다.

당신의 이득을 위해 나를 이용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라.

드디어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건지 데오스의 두 눈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침착? 아니다. 침착이라는 표현보다는 차갑다는 게 맞겠군.

“그렇군요. 그런 거였군요.”

혼잣말을 두어 번 뱉어 낸 데오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무용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작성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토너먼트에서 그 실력을 보여 줬을 때부터 짐작했어야 하는 건데 제가 멍청했습니다.”

그는 이내 작성이 끝난 종이를 들고 내게 건넸다.

“이제 숨기지 않기로 한 거군요. 아니, 그동안 속은 우리가 멍청했군요.”

종이는 개인 연구실 등록증과 그에 따른 허가증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아무 반응 없이 그저 고개만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미르코 아카데미와의 교류회는 다음 주부터이니 미리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예.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를 마치고 그대로 헤어졌다.

개인 연구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호재다.

개인 연구실은 그 방범과 보안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만약 내가 흑마법사인 게 들키게 되어 조사를 받는 것만 아니면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인 것이다.

이는 학부장이나 교장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오직 나만을 위한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공용 연구실과 달리 시간제한 없이 쓸 수 있지.’

물론 졸업반이 되면 당연히 얻게 되는 장소이긴 하지만 1년이나 일찍 받은 건 그만큼의 시간을 아꼈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내게 있어서 그 1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 * *

데오스는 아드리아스가 나가고 남은 자리를 보았다.

‘우연인가. 아니면 알고 그런 건가.’

세간에는 그저 인자한 학자로 명성이 높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었다.

휘이잉.

그가 손을 젓자 바람이 따라왔다.

마법사도 아니고 마나도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데오스는 가볍게 바람을 갈무리했다.

데오스 캐니언.

그는 정령을 부리는 정령 소환사였다.

소환사는 그 분류가 마법사와 달랐다.

마법사와 달리 소환사의 경우 본신의 마나량과 상관없이 소환수에 대한 친화력과 소환수에 성장에 따른 강함만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소환사는 보유 마나량으로 인해 일반인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알 수가 없군. 알 수가 없어.’

조금 전 데오스는 아드리아스가 떠나갈 때 바람의 정령을 딸려 보내려 했었다.

그러나 문을 나서기 직전, 아드리아스는 돌연 마나를 외부로 발산해 정령을 튕겨 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들어맞았다.’

정령은 정령 친화력이 있지 않은 이상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감지하기도 어렵다.

특히나 정령 중에서도 바람의 정령은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그 기척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 팔에 소름이 돋은 데오스가 자신의 몸을 쓸어내렸다.

‘설마, 정령 친화력까지 가지고 있는 건가?’

아니다. 그건 너무 갔다.

마나 저장소가 두 개나 있는 특이체질인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거기다 정령 친화력이라니.

그런 인간이 존재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창밖을 보자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는 아드리아스가 보였다.

시선을 느낀 건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데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시야 밖으로 숨었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하!”

자신의 행동에 한참을 웃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의 대화부터 행동, 자신의 의도를 꿰뚫은 통찰력까지.

‘아드리아스 크롬웰.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지금의 아드리아스는 이전의 아드리아스가 아니라는 것.

‘기대가 되는군.’

손에서 바람을 가지고 놀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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