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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55화 (55/415)

55화. 하산 그리고 뜻밖의 만남

슬슬 하산을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덕분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조금이라도 잠을 줄이고 수련에 힘쓰려 하고 있었다.

‘밤마다 뭘 저렇게 하고 있는 거지.’

데슈른은 밤이 되면 내 수련을 지켜보며 조언해 주는 걸 멈추고 먼저 오두막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밤새 무언가를 하는 게 느껴졌지만 개인적인 일일 수도 있으니 그냥 무시했다.

“흡!”

팍! 팍!

연속으로 두 번의 검풍을 사용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물론 여전히 실전에서 쓰기에는 불안했다.

‘그러고 보니까 니켈도 싸울 때 검풍을 사용하던 것 같은데.’

전투가 일어나면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에 그가 싸우는 모습을 자세히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잔상으로는 검풍뿐만 아니라 기괴한 움직임도 보였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유체화를 사용한 줄 알았는데 데슈른에게 배워 보자 유체화와는 다른 니켈만의 움직임이 따로 있었던 것 같다.

‘괘씸하네.’

검을 가르쳐 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알맹이는 쏙 빠트리고 기본 검술만 수련하게 하다니.

물론 말을 제대로 안 한 내 잘못도 있지만 니켈에게 그런 세세한 걸 알려 달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이제 잠을 자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느끼고 갈락슈르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개울로 들어가 대충 땀을 닦아 내고 오두막에 들어왔다.

“끝냈느냐.”

“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푹 쉬거라.”

뭘 적고 있는 거지?

작은 다용도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는 듯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제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하산을 해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너무 딱 맞춰 들어가려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만큼 데슈른의 가르침이 간절했다.

특히나 마나의 운용에 관해서는 아직도 배울 게 많았기에 아예 아카데미를 때려 칠까 싶은 유혹마저 생길 정도였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이제 곧 루이스를 비롯한 중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입학을 하게 된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방향성을 은근슬쩍 잡아 줘야 했다.

게임을 할 때는 플레이를 하던 내게 퀘스트가 있었으니 큰 줄기를 따라갈 수 있었지만 지금의 그들에게는 아무런 고삐가 없었다.

‘물론 내 마음대로 녀석들을 조종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특히나 루이스의 경우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2년의 게임 플레이 중 절반에 해당되는 1년을 루이스로만 플레이 했었으니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곧 그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자 잠이 들지 않는 밤이었다.

* * *

새벽 공기가 스산하게 느껴지는 시간대에 잠에서 깨어 방에서 나오자 텅 빈 오두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슈른이 잠깐 나갔나 보다 생각하며 간단한 산악 구보라도 할까 생각한 순간 방문 앞에 떨어져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굳이 여기 두었다는 건…….’

나한테 주는 건가?

책을 들어 보자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제목이 보였다.

[무아검(無我劍)]

아이템 표시라니 설마…….

“검법서?”

나는 잠시 책을 들고 복잡해지는 머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러나 냉정해지기가 힘들었다.

아니, 검법서라니.

그것도 천하의 데슈른 폴론이 직접 작성한 검성의 검법서.

데슈른의 경우 나이도 나이이고 워낙 은거 기인 같은 느낌의 인물이라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루이스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얻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루이스조차 데슈른이 검법을 사사한 적은 없었다.

‘진짜 데슈른이 남긴 검법서인가?’

나는 책을 들고 오두막을 돌아다니며 데슈른을 찾아보았지만 그는 오두막에 없었다.

결국 집 밖으로 나와서까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오두막에 돌아와 천천히 책자를 펴 보았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갑작스레 이리 선물을 남기고 떠나 미안하구나. 나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런 남사스러운 행동은 부끄러워서 말이다. 이렇게 글로 심경을 남기는 나를 용서하거라.’

어쩐지 데슈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사실 시간과 여건만 충분하다면 너를 계속 내 밑에서 수학하게 하고 싶었다. 하나 나의 사정도 있고, 너의 사정도 있을 테니 그건 무리한 욕심이겠지. 그러니 이렇게라도 나의 가르침을 책자에 옮겨 적어 보았다. 아마 네 녀석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알아서 해낼 수 있을 터. 다음에 만났을 때는 부디 이 책에 적혀 있는 것보다 뛰어난 실력이길 바라마. 추신, 되도록 전부 외운 뒤 불태우거라. 괜히 엄한 일에 엮이지 말고.’

데슈른의 편지는 그게 전부였다.

그 뒤로는 이미 배웠던 기초부터 그의 검법이 쓰여 있는 심화 과정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책자를 덮은 뒤 가만히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호의를 받는다는 것은 내게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세상으로 넘어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멸망을 오직 나만 알고 있다는 압박감이 때때로 나를 덮쳐 오고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를 믿어 주는 가족의 존재와 이러한 인간관계들이 내게 삶의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 데슈른은 지금 크라테스 산맥을 벗어난 건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하산하려고 타이밍을 잡고 있었는데 데슈른이 먼저 선수를 쳐 주네.

떠나기 전에 데슈른이 사용하던 책상을 둘러보다 대충 감사의 인사가 담긴 편지를 남겼다.

나도 이런 남사스러운 일에는 젬병이라 주저리주저리 쓰지는 못하고 짧게만 남겼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스승님.

* * *

한 소년이 밤에 젖은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왜소한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다란 물건이 보랏빛 천에 감긴 채 안겨 있었다.

꼬르륵.

며칠을 굶은 것일까.

너무나 비루해 보이는 소년은 그저 정처 없이 걷고만 있을 뿐이었다.

‘배고파.’

며칠 만에 뒤바뀐 현실은 공복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품에 안은 물건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소년은 이대로 굶어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지켜야, 하는데…….”

점차 의식이 거뭇거뭇해진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소년은 그대로 길가에 있는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앉은 채 정신을 잃어 갔다.

‘지켜야 하는데. 이제 나밖에 없는데.’

죽음을 의식한 소년은 이내 땅을 파서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이라도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힘이 다 떨어져 땅을 팔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대로 죽을 바에는 물건이라도 숨겨야 했다.

그가 가진 물건은 ‘마검 루벤스’

이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의 부족이 대대로 목숨을 걸며 봉인을 지켜 온 검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에 일어난 괴인들의 습격으로 간신히 소년만 살아남아 검을 가지고 도망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보기로 한 소년은 이런 길가보다는 숲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며 숲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의 코끝으로 고기를 굽는 냄새가 났다.

꼬르륵.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품에 마검을 안은 채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 사내가 토끼 고기를 통으로 굽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타닥타닥.

“아.”

소년은 뒤돌아 자신을 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이내 다급히 뒤로 물러나려다 넘어져 버렸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에게 다가갔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애써 소리쳐 보았지만 그 모습은 꼭 새끼 고양이가 겁에 질려 하악질을 하는 모양새라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모닥불을 피워 놓은 남자는 소년의 말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그저 다시 자리로 돌아간 뒤 고기를 자르더니 손짓했다.

“먹을래?”

그의 말에 소년의 목울대가 크게 넘어갔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가, 감사하지만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남자는 그런 소년을 보며 자른 고기에 향신료를 치더니 한입에 집어넣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소년의 배가 아우성을 쳤다.

“으으.”

왠지 모를 설움이 복받친 소년이 눈물을 글썽였다.

죽기 싫다. 이런 곳에서 이깟 검을 지키다가 허무하게 죽기 싫었다.

하지만 숭고한 사명을 위해 죽어 나간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이 검을 숨겨야만 했다.

그때 고기를 굽던 사내가 토끼의 다리를 한 짝 뜯더니 후후 불고는 향신료를 발랐다.

그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에게 다가갔다.

“가, 가까이…….”

“여기 물도 있으니까 같이 먹어라.”

남자는 소년의 앞에 물통과 토끼 다리를 내려놓고는 물러났다.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본 소년은 이내 떨리는 손으로 고기와 물통을 집었다.

꿀꺽.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으적.

고기를 뜯었다.

“흐흑.”

눈물이 새어 나왔다.

이처럼 맛있는 고기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것 같다.

소년은 단숨에 고기를 먹어 치우고 물을 마셨다.

그 사이 남자가 소년의 앞에 남은 고기도 잘라 주었다.

“천천히 먹어라. 탈 난다.”

“흑. 감사, 감사합니다.”

소년은 인사를 하는 건지, 눈물을 흘리는 건지도 알 수 없게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고기를 먹었다.

* * *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냐.’

나는 갑자기 나타난 인물로 인해 복잡한 심경을 애써 감추었다.

‘벤자민 아니키우스.’

내 앞에 나타난 소년은 다름 아닌 루이스의 뒤를 잇는 두 번째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

아직 게임 시작 시간 전인 만큼 세상과는 격리된 마을인 루진 마을에 있어야 할 시기였다.

상태를 보니 꽤 고생을 한 듯 보였다.

다행이게도 마검 루벤스는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검의 주인이면서 검의 천재였지.’

루이스가 이것저것 다 잘하는 팔방미인 느낌의 천재라면 벤자민의 경우 그에게만 있는 특수 특성인 ‘검의 주인’으로 검과 관련해서는 엄청난 보정을 받는 천재였다.

애초에 그 특성으로 마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는 설정이기도 하고.

‘근데 어쩌다가 이런 꼴로 마검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거야.’

예정대로라면 그는 마을에서 마검의 주인으로서 인정받고 마검의 진정한 봉인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로 진행됐어야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다른 캐릭터들이 아카데미에서 수련을 하듯 마을에서 수련을 하는 게 그의 메인 스토리였는데 어째서 이런 몰골로 여기 있는 건가.

고생이 심했는지 고기를 먹자마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성보 생각이 나네.’

특수 부대 막내였던 박성보가 빡센 훈련이나 임무를 마치고 나면 딱 저랬었는데.

별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살며시 담요를 덮어 주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담요를 덮어 주는 데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골골댄다.

‘자,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좋게 생각해 보자.

그는 두 번째 플레이어블이 될 정도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아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 녀석을 아예 내 편으로 만들면?

‘완전 개이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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