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의외의 사건
크라테스 산맥 초입까지는 무난하게 갈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보면 된다.
나는 말을 풀어 마지막으로 지나쳤던 마을 쪽으로 보내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솟은 산맥을 올려다보았다.
‘더럽게 높네.’
정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런 산이 존재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 크기가 얼마나 컸냐면 이틀 거리인 메르테옹에서도 거대하게 보일 정도였다.
‘게임에서는 손쉽게 찾아갔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잡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초입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산길은 금세 험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원래 이 정도로 조용한 곳인가 싶었다.
사실 산맥까지 오는 도중에도 몬스터 하나 발견하지 못해 의아하던 참이었다.
크라테스 산맥은 마경이라 불리는 만큼 인간의 발길이 뜸하기에 온갖 몬스터와 마수, 희귀 짐승들의 둥지가 모여 있었는데 이틀간 무언가를 마주쳐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하군.’
크라테스 산맥은 조금만 돌아다녀도 몬스터와 마주치게 되어 더러워서 피하는 마경 중 하나였다.
현실은 게임과 다른 건가?
그때 내 감각에 묘한 게 걸렸다.
‘함정.’
단순한 함정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치도 못 채고 걸렸을 법한 함정.
가느다란 실처럼 보이는 게 발목 언저리에서 눈에 띄었다.
솔직히 말하면 크라테스 산맥이라 경계를 늦추지 않았기에 발견했지 동네 뒷산 같은 곳에 있었던 함정이었으면 나조차도 꼼짝없이 건드렸을 뻔했다.
근데 누가 설치한 걸까.
이런 곳에 사람이 드나들 리는 없으니 사람을 노린 것 같지는 않고 몬스터나 짐승을 노린 모양인데…….
‘사냥꾼?’
크라테스 산맥에 사냥꾼이라도 있는 건가.
딱히 생각나는 인물은 없었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사는 인물은 괴짜인 데슈른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데슈른이 설치한 건가?
알 수 없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조심히 실을 건넌 나는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 * *
한 인영이 가파른 산속을 헤치며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그 인영의 모습은 마치 사람과 짐승이 섞인 듯한 모습이었는데 마치 표범을 닮은 외형이었다.
표인족인 마타하르는 요즘 들어 자꾸만 발생하는 실종 사건의 원인을 찾기 위해 크라테스 산맥을 탐색하던 중이었다.
벌써 5명이나 실종되었기에 심각성을 눈치챈 마을의 촌장은 젊은이들 몇몇을 선발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그였다.
그러나 촌장에게 임무를 받고 탐색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상황이 꼬였다.
‘도대체 저 몬스터들의 정체가 뭐야! 이 주변에 저런 것들이 있었다고?’
갑자기 나타난 곤충의 외형을 한 몬스터들은 그 발생 원인도 몰랐지만 다짜고짜 마타하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표인족인 만큼 전투에는 이골이 났기에 두려움 없이 맞섰지만 이내 계속해서 불어나는 숫자에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취리릭─.
콰직!
하늘을 날아다니는 곤충들이 산성액을 뱉어 냈고 여섯 개의 다리로 달려오는 녀석들은 끔찍한 외형으로 마타하르의 뒤를 쫓아왔다.
그리고 그가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원인인 이족 보행을 하는 갑충 형태의 몬스터가 날개를 펼쳐 유유히 날아서 쫓아오고 있었다.
“크릉!”
아무리 따돌리려 노력해도 쫓아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녀석들은 마치 몰이 사냥을 하듯 마타하르를 몰아갔으며 그도 반쯤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도망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급하게 방향을 튼 마타하르는 자신을 뒤쫓아 오는 벌레의 머리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박살 냈다.
콰각!
이내 차례대로 붙어 오는 곤충들과 혈투를 벌인 마타하르는 자신의 죽음보다 마을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이 녀석들이 실종된 마을 사람들의 원인인가?’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 것이 비통할 뿐이었다.
그렇게 몸을 불사르며 몬스터들을 처리한 결과, 수많은 적들을 박살 낼 수 있었지만 정작 가장 강한 적인 갑충 형태의 몬스터는 저공비행을 하며 마타하르가 하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덤벼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너는 저승길 동지로 삼아 주마!”
마타하르는 용기를 돋우기 위해 크게 포효를 내지르며 갑충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갑충은 갑충답지 않은 날렵한 외형으로 고속 비행을 하며 마타하르를 가지고 놀았다.
쾅!
“크헉!”
갑충의 속력은 단순하게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동반했다.
단단한 몸을 지닌 갑충이 그 속도를 이용해 몸통으로 들이박자 엄청난 굉음이 났다.
마타하르는 본인의 각오와는 달리 너무도 허무하게 피를 흩뿌리며 허공을 날다 바닥에 처박혔다.
‘압도적이야.’
무엇보다도 저 날개의 존재가 마타하르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빌어먹을…….”
쓰러진 마타하르의 주위로 아직까지 남아 있던 자잘한 곤충들이 모여들었다.
하나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마타하르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눈을 감던 마타하르의 귀에 전혀 의외의 소음이 들려왔다.
콰득! 콰직!
천천히 눈을 떠 보자 그곳에는 가면을 쓴 사내가 주변에 존재하는 곤충들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이 녀석은 또 뭐야?’
* * *
사흘간 크라테스 산맥을 뒤져 본 결과, 나는 내가 목표로 했던 거인이 잠든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왜 이렇게 주변에 짐승이나 몬스터가 없나 했더니.’
거인이 잠든 곳을 포함한 땅에 이종족의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멀리서 지켜본 결과 그들의 정체는 표인족.
아마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씨를 말린 듯했다.
‘게임에서는 이곳에 마을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게임에서 크라테스 산맥을 올 정도로 스토리가 진행되려면 최소한 1, 2년 정도가 걸리니 그사이에 마을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지.’
제국 내에서 이종족들의 취급은 좋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현 황제의 이종족에 대한 탄압 정책 때문인데 그로 인해 제국 내에 존재하는 이종족들은 인간들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러니 굳이 인간과 마주치지 않으려 이런 험지에서 사는 거겠지.’
이제 어떻게 저 마을을 뚫고 히든 피스가 숨겨진 곳으로 가느냐인데…….
도저히 들키지 않고 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종족, 특히나 수인들은 오감이 발달했기에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데슈른에게 가야 하나 고민을 할 때쯤 마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확인했다.
마치 무슨 일이 생긴 것처럼 심각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쯤에서 물러나야겠다.
굳이 마을 전체와 싸워 가며 얻을 만큼 급한 문제도 아니고 내가 알기로 몇 년 뒤에는 없어질 마을이니 그때 찾아와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히든 피스를 포기하고 데슈른이 머무는 곳으로 가려던 중.
콰광!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
몬스터들끼리 영역 다툼을 하는 건가.
피해서 돌아가야겠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이내 무언가의 흔적을 발견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부서진 곤충의 잔해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크라테스 산맥에 별별 몬스터가 다 있지만 이런 외형의 몬스터는 크라테스 산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었다.
‘벌레술사 라녹스.’
집회 소속의 흑마법사였다.
따지고 보면 소환사라고 불려도 되는 라녹스는 자신이 직접 키운 벌레들을 부리는 걸로 유명했다.
특히나 그가 특별하게 키운 몇몇 개체는 그 힘을 합치면 오러 마스터 하나와 맞먹을 괴물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마경까지 온 거냐.’
집회에서 왔다면 죄악과 관련된 일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두고 볼 수 없지.
나는 곧바로 니켈과 티무르를 소환했다.
그리고 니켈에게서 가면을 건네받고 외형을 변형시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습은 숨겨야지.
그 후 티무르의 후각으로 금세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한 표인족이 곤충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이족 보행을 하는 갑충 형태의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벌써 저 녀석을 만든 모양이군.’
갑충 형태의 몬스터가 특별히 강한 개체들이었다.
몇 마리나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벌써부터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걸 보면 조금 위험했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저 표인족부터 구하고 봐야겠다.
아무리 인간에게 적대적이라고 해도 생명의 은인에게까지 그럴 수는 없겠지.
우선은 오해를 사지 않게 니켈과 티무르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표인족을 덮쳐드는 ‘잡몹’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콰직!
‘이런 느낌인가.’
심장과 단전의 경계가 없어지자 마나가 하나로 통합이 되었는데 검은 검기가 음침한 기운을 뿌리며 검에서 튀어나왔다.
그 출력이 이전과 다르게 강력하게 느껴져 검을 휘둘러 보자 내 검에 닿은 곤충들이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조금 더 파괴적인 느낌.’
나쁠 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 기회에 좀 더 몸을 풀어 봐야겠다.
곤충들은 내 뜬금없는 난입으로 명령에 혼선이 왔는지 자신들을 때려 부수는 나를 놔두고 꾸역꾸역 표인족에게만 다가가려 했다.
나는 열심히 녀석들을 막는 동시에 흑마법사를 찾기 위해 마나 디텍트를 사용했다.
‘명령만 내려 놓고 다른 곳에 있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저 갑충이 지휘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군.
이내 ‘잡졸’들을 대부분 쓰러트리고 멀리서 간만 보는 갑충을 쳐다보자 무슨 이유에선지 그대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쫓아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쓰러져 있는 표인족을 기껏 구한 게 아쉬워 추격을 포기했다.
어차피 녀석은 언제든 추격할 자신이 있다.
일단 이 녀석을 살리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게 손을 써 봐야지.
“넌 누구지?”
내가 다가오자 잔뜩 경계하는 모습으로 표인족이 물었다.
나는 품에서 포션을 꺼내며 그에게 건넸다.
“회복 포션이다. 살고 싶으면 마셔라.”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저 몬스터들과 한패냐?”
성가시네. 굳이 설득하기도 귀찮았다.
결국 나는 상대의 턱을 검집으로 후려쳐 기절시켜 버렸다.
그런 다음 억지로 포션을 먹였다.
말을 안 듣는 녀석에게는 매가 약이지.
이게 이럴 때 쓰는 말이 맞나.
아무튼 포션 3종 세트를 먹인 후 그를 대충 어깨에 짊어지고 표인족의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표인족의 마을에 다다를 때쯤 잔뜩 경계하는 표인족의 무리가 나를 에워쌌다.
“인간 놈! 여기는 어떻게?”
“마타하르잖아! 당장 마타하르를 내려놓아라!”
쫑알쫑알대는 표인족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조심스레 마타하르라 불리는 표인족을 내려놓았다.
슬슬 일어날 때가 됐을 텐데.
마침 내 예상대로 마타하르가 깨어났다.
“으으. 카므루? 조코함?”
깨어난 마타하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앞에 선 표인족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내 뒤에 서 있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려다 고꾸라졌다.
“인간 놈! 마타하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카므루인지 조코함인지 둘 중 하나인 녀석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표인족이라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를 냈는데 듣기 거북했다.
그 사이 마타하르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살피더니 이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살린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타하르가 나를 둘러싼 표인족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이 인간은 나를 구해 준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지금 촌장에게 급하게 전할 말이 있다.”
마타하르의 말에 표인족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 어지간히 인간들에게 당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일단 촌장을 데려오지.”
누군가가 마을 방향으로 뛰어갔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물론 긴장은 저들만의 것이고 나는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귀찮을 뿐이고 굳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을 뿐이지 막상 싸우게 된다면 이들 정도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혼자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내게는 니켈과 티무르가 있었다.
곧이어 마을로 뛰어갔던 표인족이 늙은 표인 하나를 데리고 왔다.
“당신이 마타하르를 구했다는 인간이요?”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촌장은 마타하르를 향해 상황 설명을 부탁했다.
마타하르는 자신이 본 상황을 간략하게 촌장에게 전했다.
“곤충형 몬스터라……. 거기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까지.”
아무래도 나를 의심하는 모양인데 난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난 어느 장소를 찾고 있었을 뿐, 녀석들과 관련이 없다.”
“어느 장소? 이런 마경에서 어디를 말하는 거요?”
“그대들이 살고 있는 마을 구석 절벽에 내가 원하는 장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절벽?”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타하르를 가리켰다.
“보다시피 이 녀석은 내가 구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아. 그 절벽까지 가게만 해 주면 조용히 사라지지.”
“미안하지만 지금 마을에 외부인을 들이기는 힘들 듯하오. 그대도 보았다시피 몬스터들이 갑자기 생겨난 데다 우리 마을에서는 벌써 5명의 실종자가 생겼소. 이런 상황에서 외부인을 들이는 위험을 부담할 수 없소. 마타하르를 구해 준 건 정말 감사하지만 촌장으로서의 입장도 헤아려 주길 바라오.”
“그럼 이렇게 하지.”
나는 촌장에게 제안을 했다.
“내가 그 몬스터들의 주인을 잡겠다. 아마 실종도 그 몬스터들을 부리는 흑마법사의 짓인 거 같은데 내가 해결해 주지.”
어차피 잡으려고 한 라녹스였다.
이런 데서 생색내도 상관없겠지.
“정말이오? 그렇다면 마을로 들이는 것뿐 아니라 마을의 은인으로 대해 주겠소. 대신 우리 마을의 전사들을 함께 데리고 가 주시오.”
“그럼 지금부터 바로 수색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