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원죄 그리고 나태
[마법 위력 666%]
[마나 감응력 666%]
[마법 캐스팅 속도 666%]
[마나 회복률 666%]
[일시적 재능 ‘마법(천재)’가 적용]
[일시적으로 모든 정신 마법에 면역]
[초월적 감정 ‘나태’ 상태에 돌입]
[66초간 지속]
기술을 사용한 순간 수많은 메시지창과 함께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허무감이 덮쳐왔다.
이 세상의 감정이 아닌 초월자의 감정이 이러할까.
‘생각하기도 귀찮다.’
움직이기도 귀찮다. 눈을 뜨고 있기도 귀찮다. 숨을 쉬기도 귀찮다. 심장이 뛰는 것도 귀찮다.
다 귀찮다.
그냥 죽어 버리자.
그렇게 호흡이 멈추고, 맥박이 멈추고, 심장이 멈춰 가기 시작했다.
[“어딜 마음대로 죽으려고?”]
[‘순수한 원죄’가 숙주를 잠식합니다.]
“크허업.”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호흡이 돌아왔다.
급하게 차오른 산소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눈앞에 보이는 파야트를 향해 마법부터 사용했다.
‘어스 실드.’
이전과는 다른, 압축되고 압축되어 금강석과 같은 강도를 지닌 어스 실드가 종이처럼 얇게 땅에서부터 치솟아 올라왔다.
순식간에 아래에서 올라온 얇은 어스 실드는 비비안을 들고 있던 파야트의 왼팔을 잘라 버렸다.
“응?”
파야트는 본인의 잘린 팔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태연하게 지혈시켰다.
“이 마법은 대체 뭘까?”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비틀비틀 일어난 나는 수백, 수천 개의 락 스피어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락 스피어들은 조금 전 파야트의 팔을 자른 어스 실드와 같이 최대한 압축이 되어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것들뿐이었다.
“오호호.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응?”
땅이 울렁거렸다.
바닥에 마나를 흘러 넣어 이 공동 자체를 흔들었다.
무리한 마력의 운용으로 심장이 아파 왔다.
그로 인한 충격으로 코피가 흘러나왔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는 것도, 몸이 망가지는 것도,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대도.
‘다 귀찮다.’
빨리 처죽이자.
곧 단전에 있는 마나까지 심장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살렘에게 배웠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마나 파동을 응용해 손가락만 크기로 압축된 락 스피어들을 쏘아 냈다.
마치 공이가 뇌관을 치듯 마력 폭발이 일어나며 돌탄환들이 날아갔다.
한쪽 팔만 남은 파야트가 검을 휘둘러 보았지만 흔들리는 땅으로 인해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돌탄환을 전부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퍼버버버벅!
“호호호. 넌 도대체 정체가 뭐니?”
상대는 오러를 몸에 둘러서 막았지만 살렘의 파동을 응용해 날린 돌탄환은 그를 뚫을 정도로 강했다.
덕분에 파야트는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 웃고 있었다.
귀찮은데 그냥 빨리 뒤져 줬으면.
팡!
눈 깜짝할 새에 파야트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미 수를 읽고 있던 나는 그의 몸속에 박혀 있는 락 스피어를 이용해 그의 움직임을 멈췄다.
엄청난 마나 감응력이 이미 사출되어 상대에게 박힌 락 스피어를 조종할 수 있게 했다.
내 코앞에서 멈춘 파야트의 검이 내 이마에 생채기를 만들어 피를 흘리게 했지만 그것도 끝이다.
‘좀 죽어라.’
파야트의 근육이 내 락 스피어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이미 락 스피어로 인해 허공에 떠오른 그의 몸은 내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갈 때쯤.
[특수 기술 ‘나태’의 지속시간이 끝납니다.]
[반동이 닥칩니다.]
나태가 끝났다.
그와 함께 눈과 입, 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씨바알…….”
반동 한 번 더럽게 크게 오네.
비록 감정은 돌아왔지만 그와 별개로 몸은 한계를 맞이했다.
덕분에 허공에 떠 있던 파야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락 스피어들이 온몸을 헤집어 놓아 상대도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는 오러 마스터 근처에 다다른 강자.
지금으로서는 명백한 나의 패배였다.
‘마나도 깔끔하게 다 썼네. 이렇게 텅 빌 정도로 사용한 건 처음인데.’
니켈을 소환할 정도의 마나만 있었어도 죽는 건 상대였을 텐데.
푸욱!
내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비틀거리며 일어나던 파야트의 가슴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검은 되돌아가더니 그대로 파야트의 수급을 잘랐다.
서걱.
거구의 파야트가 쓰러지자 그 뒤로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비비안이 보였다.
“아드리아스!”
그녀는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와 쓰러져 있는 나를 안아 들었다.
비비안에게 안긴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졌다.
‘깨졌네.’
만약을 위해 준비해 둔 포션이 충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몸이 나른해진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이 코앞에 들이닥쳤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웃기지도 않네. 설마 특수 기술의 반동으로 죽을 줄이야.
‘어쩔 수 없었어. 어차피 니켈과 티무르만으로는 무리였을 거니까.’
니켈과 티무르가 앞으로 몇 번의 진화를 더 거친다면 생전의 실력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오러 마스터에 근접했던 파야트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어차피 사용했어야 할 특수 기술이었다.
물론 반동 따위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사용한 거지만.
그래도 내 한 몸 희생해 비비안이라도 살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머리를 스쳤다.
“아드리아스. 정신 차려. 내가 반드시 살릴 거니까.”
그녀는 자신도 성치 않음에도 나를 등에 업고 공동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는 그녀가 나태의 결계에서 보았던 어린 비비안과 겹쳐 보였다.
“미안해요. 비비안.”
“절대로 죽게 두지 않아! 그런 소리 하지 마!”
미안하다.
눈이 감겨서 더 이상은…….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진화가 가능한 개체가 탐색되었습니다.]
뭐냐. 저승길 선물이냐?
[아드리아스 크롬웰의 진화 가능성 33%]
[진화를 할 경우 한 가지의 분기가 존재합니다.]
[진화를 하시겠습니까?]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메시지를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 * *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각 학부장들과 함께 공동을 둘러보던 바하트가 분노에 못 이겨 마력을 발산했다.
그의 분노를 지켜보던 마법학부장 베리얼 카스테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실이었네요. 그나저나 여기 죽은 자들, 전부 학생입니까?”
그의 물음에 제보를 받고 함께 온 기사학부장 수라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적어도 여기 세 놈은 기사학부 학생이 맞군.”
“어. 얘는 마법학부 학생이네요. 이야. 어떻게 감쪽같이 숨어 있었냐.”
베리얼의 태평한 말은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 바하트를 건드렸다.
“베리얼. 할 말은 그게 다인가?”
“예? 뭐, 그야…… 할 말이 없기는 하네요. 다음부터는 조금 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소 지으며 말을 하는 베리얼은 자신의 주위로 마나를 둘러 바하트의 마력 폭풍을 막아 냈다.
안타깝게도 최연소 워록의 칭호를 가진 베리얼은 그 뛰어난 재능과 반대로 주변 상황에 공감을 못 하는 사이코패스였다.
“이 폭탄들이 터졌으면 소경기장에 있던 사람들 수백 명이 죽었을 거다. 거기다 적들이 폭탄만 터트렸을까? 아마 터진 뒤에도 학살을 벌였을 테지.”
수라한의 말에 베리얼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사를 토해 냈다.
“확실히 그랬겠군요. 그랬다면 다 죽었겠는데요?”
“베리얼. 분명 보안과 방범은 네 책임이었을 텐데 어찌 그리 태연하지?”
“예.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막았으면 된 거죠.”
베리얼의 말에 수라한은 고개를 흔들었고 바하트의 얼굴은 익은 대추처럼 변했다.
화를 참지 못한 바하트가 호통을 터트렸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너 때문에 학생 둘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게 아무 일도 아니야?”
“물론 그건 제 책임입니다만, 전 탑주님께서 왜 그리 열을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베리얼은 은근한 미소를 띠며 말을 더했다.
“혹시 아드님과 따님께서 사고를 당했을까 봐 그러십니까? 제가 듣기로 두 분 모두 오늘 소경기장에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베리얼. 네가 정말 죽을 때가 된 모양이구나.”
“하하하! 맞나 보네요? 이야. 천하의 탑주님께서 이렇게 감정이 격해지실 줄이야.”
대놓고 도발을 하는 베리얼을 노려보던 바하트는 이내 호흡을 크게 내쉬며 감정을 조절했다.
베리얼의 저런 도발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로들렌 아카데미의 학부장을 넘어 마탑주까지 노리는 그는 언제든 바하트와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투견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바하트로서는 괜한 빌미를 제공하기 싫었다.
‘버릇없는 놈. 언젠가 한 번 서열 정리를 해야겠어.’
전투에 있어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식적인 대결이 아닌 우발적인 전투는 정치적으로 자신에게만 손해였다.
결국 바하트는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며 베리얼을 무시했다.
“에이. 재미없게.”
베리얼도 그런 바하트의 기색을 눈치채고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둘의 알력을 지켜보던 수라한은 고개를 저으며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확인했다.
목이 없는 시체는 그야말로 전투를 위한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탄탄하고 우악스러운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근처에 떨어진 수급을 확인한 수라한의 눈빛이 빛났다.
“파야트 코본.”
수라한의 말에 데면데면한 상황을 유지하던 바하트와 베리얼이 다가왔다.
“파야트라고? 뮤리엘 환락가의 주인이 아닌가?”
“맞습니다. 만나 본 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군요.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강자였습니다.”
파야트의 몸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는데 바하트와 베리얼은 그 상처가 마법으로 인한 상처라는 걸 한눈에 꿰뚫었다.
“재미있군요.”
베리얼이 두 눈을 빛내며 파야트의 상처를 헤집어 작은 돌덩이를 꺼냈다.
돌덩이는 압축되어 불투명했고, 날아갈 때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덜 받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놀랍습니다. 이 마나 배열, 극한의 압축으로 이루어 낸 초고강도의 돌덩이. 그리고 모양까지.”
바하트도 다가와서 파야트의 시체를 살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마나 디텍트를 사용했다.
그러자 사방에 박힌 돌조각들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적어도 수천 개의 돌조각…….’
게다가 이 마나 배열은 범인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웃긴 건 천재적인 마나 배열과 별개로 사용된 마법은 초급 수준의 락 스피어라는 것.
‘둔재인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이런 미친 짓을 해냈다고?’
곧이어 바하트의 뇌리로 원죄의 존재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드리아스가 원죄를 가진 건가?
하지만 원죄의 효과는 그리 대단치 않을 터.
게다가 나무의 형태인 원죄를 아드리아스가 무슨 수로 숨기고 있나.
하지만…….
‘의심할 만한 가치는 있군.’
그런 바하트의 생각과는 다르게 베리얼은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야. 이건 아무리 봐도 학생의 실력이 아니군요. 혹시 제3의 조력자가 있었던 건가?”
“확실히 그럴 확률이 높군. 고작 학생 둘이서 파야트를 이겼다니 말도 안 된다.”
베리얼과 수라한의 추측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본인도 그럴 확률을 더 높게 보고 있었으니.
“지금은 둘 다 혼수상태라 물어볼 수도 없겠군.”
“그러게요. 그래도 이 장소라도 알리고 혼절해서 다행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터지는 폭탄이었으니 그 학생이 아니었으면…….”
거기까지 말한 베리얼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바하트를 보았다.
“아마 소경기장에 있던 이들이 모두 죽었을 수도 있겠네요. 하하.”
“흥. 안 넘어간다. 이 빌어먹을 녀석아.”
바하트는 베리얼을 한 차례 노려보고 속으로 되뇌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빚을 졌군.’
아드리아스 크롬웰.
넌 언제까지 내게 죄책감을 심을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