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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4화 (24/415)

24화. 집회로 가는 길 그리고 대륙 최강자

잠깐의 침묵.

곧이어 벌떡 일어난 카론이 책장을 건드리며 연구실로 향하는 결계를 열었다.

“따라와라.”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고민을 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혹시 모를 카론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니켈을 소환할 준비를 하는 동시에 허리춤에 찬 검을 의식했다.

현세에 존재하는 아티팩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물건이다.

갑자기 욕심이 생겨 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

아마 냉철한 카론이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는 경우의 수가 있으니 안심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렇게 카론의 반응을 살피던 나는 그의 호흡과 근육의 움직임이 점차 이완되는 것을 확인하며 한시름 덜었다.

“네가 코덱스 아포칼립스를 어떻게 알지?”

“그 흑마법사에게 들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자신이 가진 게 ‘나태’라고…….”

“물건은 지금 어디 있나.”

“그날 전투 도중에 얻은 스켈레톤과 함께 아공간에 넣어 놨습니다.”

“용케 정체를 들키지 않고 잘 숨겨왔군. 너답지 않게.”

살짝 뜨끔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론은 다시 고민에 빠진 듯 연구실 내부를 서성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모양을 설명해 봐라.”

“정육면체의 큐브였습니다. 검은색으로 되어 있고 마치 루빅스 큐브처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후우, 꺼내 보라고 할 수도 없겠군.”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카론은 연구대에 팔을 짚어 기대고는 계속해서 한숨을 토해 냈다.

“아쉽다. 하지만 배가 터지겠지.”

나랑 같은 고민을 하나 보네.

그래. 교수 신분인 네가 어떻게 이런 흉물을 가지고 있으려고. 그냥 깔끔하게 포기해라.

“집회에 보고하실 겁니까?”

나는 기다리던 질문을 드디어 물어보았다.

애초에 이걸 위해 카론에게 미끼를 던진 거였다.

내가 써먹지 못하면 집회에 적당한 값으로 팔아 버리는 게 백배 이득이지.

문제라면 내가 집회에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는 것인데 그건 카론으로 해결이다.

맨날 이용당하기만 했는데 드디어 나도 너를 써먹는구나.

내 말을 들은 카론은 갈등이 끝나지 않는 듯 대답 없이 한숨만 내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최선이겠군. 대신 집회에서 받아 낼 수 있는 건 전부 받아 내겠다.”

말하는 꼬라지를 보면 꼭 자기가 코덱스 아포칼립스를 찾은 것처럼 말하네.

“집회에 연락을 넣어 놓겠다. 혹시 모르니 언제든 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시간을 비워 두어라.”

“알겠습니다.”

결국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다른 흑마법사라면 몰라도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인 카론이 코덱스에 눈이 멀어 이상한 짓은 안 할 거라 예상한 게 들어맞았다.

“이제 물러가 봐라. 생각이 필요하군.”

“예.”

“근데 아드리아스.”

“예?”

“그 검은 뭐지?”

카론이 내 허리춤에 달린 검을 보고 물었다.

나는 어색하게 긁적이며 말했다.

“이번에 죽을 뻔하다 보니 호신용으로 하나 구했습니다.”

“네 녀석의 멍청한 짓은 여전하군. 알았으니 이제 나가라.”

디에네도 그렇고 카론도 그렇고 도대체 왜 비웃는지 모르겠다.

아니 우리 쪽 동네에서 유명한 마법사인 간달X라는 양반도 검이랑 지팡이를 동시에 썼다니까?

내가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래도 덕분에 예전과 같이 여전히 멍청하다는 인상을 심어 준 것 같아 다행이었다.

* * *

연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왔다.

다음 날이 되자마자 카론의 호출이 이어졌고 우리는 곧바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했다.

아무래도 물건이 물건인지라 집회 쪽에서도 급하게 부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준비는 끝났나.”

“예. 교수님.”

그가 말하기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 한다.

적어도 주말 동안에는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

‘과연.’

늦어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코덱스가 걸린 일인데 강의 출석보다는 중요한 일이지.

문득 생각해 보니 나태의 페이지가 집회에 넘어가면 위기가 더 빨리 닥치는 건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지금 시점의 집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과거는 아니니 대충 얼마나 많은 코덱스를 모았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아마 코덱스 아포칼립스의 본체와 한두 개 정도의 페이지를 더 가지고 있을 터.

여기서 하나가 더 늘어난다고 당장 세상이 멸망하지는 않을 거다.

나태의 페이지를 넘기는 게 옳은 일인가는 둘째 치고 당장 나부터 살고 봐야지.

후에 일어날 일은 미래의 내가 해결할 일이다.

‘어쩌면 내가 해결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르지.’

이곳은 게임이 아니다.

그런 만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게임과는 달리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 가지 문제라면 그들의 방향성인데 그 정도는 나중에 내가 잘 조율해서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캐리어에 카론의 짐들과 내 짐 일부를 챙기며 앞서가는 카론의 뒤를 쫓았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내가 그의 조수인 것만 같았다.

‘이대로 졸업을 하면 조수가 될 수도 있겠네.’

안타깝게도 아드리아스의 최장 생존 기간은 아카데미 5학년이었다.

대부분 그 전에 죽었고 게임 첫 플레이 때만 졸업 직전에 죽었다.

그때는 아드리아스가 악당인 줄도 몰랐으니 꽤 오래 살려 둔 셈이다.

“아드리아스.”

“예. 교수님.”

“이번에 집회에 다녀오면 마법을 점검하자.”

“예?”

내가 당황하여 반문하자 카론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언제까지 소환 마법 하나만 가지고 만족할 거냐. 어쨌든 그리 알고 있어라.”

연구실이 아닌 외부인 만큼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저 말은 곧 새로운 흑마법을 알려 준다는 소리였다.

안 그래도 저번 전투 때 내가 마법사인지 전사인지 헷갈리는 전투를 벌였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차피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 들어 열심히 마법 공부를 해서 그런지 이해력도 늘어 새로운 마법을 배우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게임으로 따지면 점차 잡캐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자나 깨나 생존이 우선.

‘카론하고만 연을 끊으면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는 건데. 막상 흑마법을 배우려면 이 녀석이 필요하니…….’

카론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고 있는 현실이 한숨 나왔지만 뭐 어쩌겠나.

당장 카론에게 죽기 싫으면 따라야지.

* * *

열차를 타고 꽤 긴 시간을 달려왔다.

거의 10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주말 안에 복귀할 수 있다는 카론의 말은 반쯤 거짓으로 판명됐다.

‘이 개새끼.’

하지만 차마 뭐라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열차에서 내리고도 한동안 구멍이 날 출석률에 대해 생각했지만 이내 지워 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카론은 열차에서 내린 도시에서 대뜸 마차와 말을 사더니 내게 손짓했다.

“몰아라.”

“……예.”

이젠 하다 하다 마부로까지 쓰네.

문제는 내가 마차를 몰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 교수님.”

“왜 그러지.”

“사실 제가 마차를 몰아 본 적이 없습니다.”

“……쓸모없는 놈.”

그니까 왜 대뜸 마차를 사.

돈이 아주 썩어 넘쳐 나지?

그러나 다시 되팔 거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그는 자신이 직접 마부석에 올라탔다.

“내 옆에 앉아라.”

나는 그의 말대로 마부석 옆자리에 앉았는데 굳이 마차를 구한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혹시 마차를 산 이유가 따로…….”

“조용. 여기서부터는 웬만해선 말없이 간다.”

이제 보니까 카론의 신경이 한껏 예민해져 있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나도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공격받을 수도 있는 건가?’

저렇게 긴장을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이유가 없었다.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긴장한다고 치기에는 묘하게 기세가 올라와 있거든.

과연 누구에게, 왜 공격을 받는지 확실한 정보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짐작은 가능했다.

‘코덱스를 노리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네.’

아무리 은밀하게 집회와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집회 내부에서도 변절자가 있기 마련.

게다가 흑마법사들이 돈독해 봤자 얼마나 돈독하겠는가.

결국 전부 자기들 이권을 챙기려 들겠지.

집회 소속의 흑마법사가 사주를 넣은 용병들이나, 아니면 본인들이 직접 뺏으려 나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마차는 근데 왜…….’

이 점은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뭔가 뜻이 있겠거니 넘어갔다.

그렇게 도시에서부터 출발을 한 우리는 동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안 그래도 동쪽 끝 부근의 도시였는데 더욱 동쪽으로 가니 나는 한 장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붙잡히는 숲, 마녀 모르셰.’

금지로 여겨지는 숲이었다.

마나 이상 현상으로 온갖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숲으로 대표적으로는 두 발로 걸어 다니면 주변에 있는 식물들이 발을 휘감아 돌기에 무조건 말이나 탈 것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마차를 샀군.’

이상 현상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숲 안에서는 말을 할 때마다 마나가 빠져나가고 마나가 고갈되면 숲에서만 발동되는 정신 조작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말을 못 할 정도로 많이 소모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아마 1시간 정도 말을 하면 마나가 고갈될 거다.

별 그지 같은 이상 현상이다.

굳이 그런 곳에 찾아가는 이유는 흑마법 집회의 권위자 중 하나인 모르셰가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겠지.

집회는 항상 개최 장소와 시기를 무작위로 선정하는데 이번에는 모르셰의 둥지가 당첨된 모양이다.

잠시 모르셰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려는 순간 수풀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더니 마차 앞을 막았다.

히히히힝―!

“워워워.”

카론이 다급하게 말을 다독였다.

“제때 도착했군.”

마차를 막아선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남자의 모습에서 어떤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게임 속 그래픽과 조금 달랐기에 특징만 짚어 보았는데 아무래도 맞는 듯해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타도 되지?”

자연스럽게 말을 건 남자는 다듬지 않은 수염과는 반대로 백발을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긴 미중년이었다.

등에는 지팡이처럼 보이는 긴 물건을 헝겊에 감싼 상태였는데 그 안의 물건을 나는 알고 있었다.

카론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집회에……참가하시는 겁니까?”

“어. 왜? 안 되나?”

“아닙니다.”

“그럼 탄다?”

카론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라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상대가 태평하게 마차에 올라타는 걸 따지지도 못하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상대는 다름 아닌 대륙 최강자 중 하나였으니까.

게임이었으면 후반부의 전투나 유적 따위에서 만났을 텐데 아직도 안 믿기네.

얼마나 믿기지 않았으면 두 번, 세 번 확인했겠는가.

“마차를 너무 싸구려로 샀군.”

마부석과 이어지는 창을 연 남자가 투덜댔다.

그러더니 이내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꼬마야. 이름이 뭐니?”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크롬웰? 호오?”

뭐지? 우리 가문을 아는 건가?

“어이, 카론.”

“예. 부르셨습니까.”

“벌써부터 크롬웰에 손을 댄 거야?”

“…….”

잠깐?

잠깐만,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마치 내가 모르는 가문의 이야기가 있었던 듯 말하자 내 머리가 모터를 단 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흠, 그니까…….”

“아니야. 됐어. 말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너로는 무리다. 어이, 아드리아스 크롬웰.”

“예?”

“부디 열심히 발버둥 치거라. 하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남자, 살렘 예디디아는 호탕하게 웃더니 이내 어디선가 안대를 꺼내 쓰고는 잠들어 버렸다.

너무나 뜬금없는 상황과 정보들이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슬쩍 카론을 보자 그는 조용히 말했다.

“살렘 예디디아 님이시다. 너도 알고 있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마.”

“…….”

그게 궁금해서 쳐다본 게 아닌데.

카론에게 가문에 대해 말을 꺼내 볼까 고민해 보았지만 결국 참았다.

전혀 짐작 가는 것도 없고 묻는다고 알려 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크롬웰가에 내가 모르는 비사가 있을 것 같다는 것.

그렇게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 있자 카론이 나를 불렀다.

“아드리아스.”

“예.”

“곧 숲이 나올 거다. 숲의 이름은 ‘붙잡히는 숲’, 너도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거다.”

“예. 말을 하면 마나가 빠져나가고 두 발로 걸으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알면 됐다.”

그러나 우리는 차마 숲에 도착하기도 전에 불청객들부터 만나게 되었다.

전조는 말들부터 시작되었다.

히힝.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말들이 점차 속도가 줄기 시작했다.

‘그래도 양반이네.’

“그래도 양반이군.”

내 생각과 카론의 생각이 겹쳤다.

예상보다 부드럽게 시작된 공격에 꽤 점잖은 공격이구나 싶었는데 카론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결국 말들은 천천히 멈춰 서더니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그리고 주변으로 음습한 기운이 몰려들더니 축축한 습기가 공기 중을 가득 메웠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흑마법사는 한 명밖에 없었다.

‘심해의 드라간.’

예상보다 강력한 상대가 나왔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점잖은 공격 방법이나 이 습기를 보면 아마 맞을 듯했다.

카론이 초반 챕터의 중간 보스라면 심해의 드라간은 중후반 챕터의 중간 보스다.

당연히 그 강함은 차원이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카론 디플렌. 오랜만이군요.”

어느새 바닥에서 꾸물꾸물 올라온 상대는 예상대로 드라간이었다.

중절모를 쓰고 턱시도를 입은 그는 외알 안경을 쓴 채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론은 인상을 찌푸렸다.

“드라간. 설마 당신이 습격할 줄은 몰랐군요.”

“습격이라니요. 전 그저 제안을 드리러 온 겁니다.”

말이 좋아 제안이지 결국은 나태의 페이지를 노리고 온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뭐야. 왜 멈췄어?”

나와 카론은 흠칫 떨며 드라간이 앞에 있든 말든 긴장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살렘 예디디아. 양지와 음지,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악마적인 존재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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