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쇼핑 그리고 계획의 시작
금요일 오후, 슐름 교수의 아티팩트와 마법진의 상관관계라는 이름의 강의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는 내게 학생 하나가 찾아왔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어. 맞는데?”
“카론 디플렌 교수님이 9시쯤에 집무실에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 고마워.”
안 그래도 내 쪽에서 먼저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불러 준다.
나는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9시까지 뭘 할까 고민했다.
마침 전날에 포상금을 받았기에 쇼핑이나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0만 윌. 한국으로 치면 1,000만 원 정도인가.’
얼추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중세이다 보니 물가나 시세가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귀족들의 사치품이나 향신료는 그 값어치가 어마어마했지만 서민들의 생활용품이나 일반적인 먹거리의 시세는 비교적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살 물건은 이미 정해 둔 상태였다.
물론 돈이 충분하다면 당장이라도 묘지기 파이먼에게서 인장 반지를 돌려받겠지만 1,000만 윌로는 턱도 없었다.
‘벌써 얻다가 팔아먹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마나 열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아카데미 부지 내에 있는 번화가 겸 상점가였다.
사실 돈을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은 필요하겠다 싶어서 서둘러 가는 중이었다.
저번 전투로 깨달은 것이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들이 아직 많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변수들이 언제 나를 덮칠지 알 수 없으니 항상 준비를 해 둬야 했다.
“이번 역은 알븐 스트리트 역입니다. 5분간 정차 후 다음 역, 모드반 홀로 출발합니다.”
열차에 앉아 15분 정도 책을 읽고 있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카데미의 지분 중 꽤 큰 부분을 알븐가가 차지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돈 먹는 하마지만 성공만 한다면 그 누구보다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가문이지.
금요일 오후, 그것도 강의가 끝난 시간이라 그런지 알븐 스트리트에는 많은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외에도 조교로 보이는 이들과 아카데미 관계자들, 아카데미 내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점차 노을이 지고 있는 석양 사이로 서로 웃고 떠드는 모습들이 꽤 보기 좋았다.
비록 저 사이에 끼지는 않았지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아저씨 다 됐네. 별걸 가지고 다 흐뭇해하고.’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발을 옮겼다.
아카데미 내에는 온갖 모임과 동아리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맥은 그런 곳에서 형성되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끼리는 서로가 경쟁 대상이지만, 동아리나 모임 같은 경우에는 서로가 같은 취미나 관심사로 뭉치는 만큼 친해지기 쉬울 수밖에 없었다.
나도 만약 당장 급한 게 아니었으면 저들과 같이 모임에도 참석하며 좀 더 사람답게 살았을 수도 있겠다.
거리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햇빛이 덜 들어와서 그런지 어두워져만 갔다.
하지만 어두움과는 반대로 분위기는 활발하고 강렬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심장 박동에 맞춰서 두근두근 뛰었다.
‘여기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게임 속에서 수백 번도 더 들렀었던 대장간 거리.
그중에서도 가장 애용했던 대장간.
‘내 망치질은 세계 제일.’
이름이 조금 특이하지만 이름값을 하는 대장간이었다.
대장간 거리에도 꽤나 많은 대장간이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여기가 제일이었다.
간판을 확인하고 조금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안을 들어가자 뜻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아.”
“어?”
디에네 알븐?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마주친 탓에 잠시 굳어 있었지만, 이내 목례를 하며 아는 척을 했다.
디에네도 당황한 표정으로 있다가 목례를 하는 날 보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네가 여긴 왜?”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대화를 해 보는 건 처음인가 싶었다.
그동안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불필요할 정도로 경계를 했었지.
지금은 어느 정도 이쪽 세상에 적응을 했기에 오히려 그런 모습이 부자연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적당히 상대해 줘야지.
‘물론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건 조심해야겠지만.’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고 있었는데 나도 덩달아 그녀를 살피다가 슬쩍 옆을 보았다.
카운터에는 대장장이의 조수가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있었는데 형태나 크기로 보아 검인 듯싶었다.
‘검. 산 사람은 디에네 알븐. 그 주인은?’
유추해 내는 건 쉬웠다.
오빠인 카를로스 알븐을 위한 선물인가.
그렇다면 카를로스 알븐이 곧 아카데미를 방문한다는 뜻이었고 그건 테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같았다.
내 눈길을 알아챈 디에네가 황급히 몸을 틀어 검을 가렸다.
선물을 산 걸 부끄러워하는 건가?
“마법사인 네가 무슨 용무가 있어서 대장간에 왔는데.”
굳이 설명을 해야 하나.
하지만 되도록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검을 사러 왔습니다.”
“검?”
“예.”
디에네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네가 웬 검?”
“최근에 흉흉한 일을 겪어서요. 호신용 검을 사러 왔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디에네는 곧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려고 애쓰는 듯싶었지만 참아 내지 못한 웃음이 구멍 난 풍선처럼 새어 나왔다.
“아니, 무슨 마법사가 호신용으로 검을 사. 너 일부러 나 웃기려고 그러는 거야?”
“영애께서 여기 계신지 어떻게 알고 일부러 그러겠습니까.”
“……뭐야. 너 나 스토킹 한 거야?”
“그니까 아니라고요.”
때마침 카운터에 있던 남자가 디에네를 불렀다.
“여기 다 됐습니다.”
디에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째려보더니 이내 남자가 챙겨 준 검을 로브 품에 숨기고 지나쳤다.
하아, 디에네 알븐. 머리 아프다, 머리 아파.
“아드리아스 크롬웰.”
뭐야. 아직도 안 갔냐.
“나 여기서 못 본 걸로 해.”
“예. 알겠습니다.”
굳이 숨길 이유가 있나.
뭐, 본인이 원한다면. 애초에 말할 상대도 없고.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내 용건을 말할 수 있었다.
검을 찾는다는 내 말에 조수가 물었다.
“검을 찾으신다고요? 혹시 주문 제작이신가요?”
“아니요. 그냥 만들어진 것들 중에 사겠습니다.”
물론 마음이야 주문 제작을 원하지만 주문 제작의 경우 그 값이 몇 배로 뛴다.
안 그래도 검 같은 경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내 수중의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대장간 조수의 안내를 받으며 진열된 검들을 보았다.
하나씩 들어 보며 무게 중심이나 그립감을 확인하는데 확실히 이거다 싶은 것들은 가격이 셌다.
그래도 이왕 사게 될 검을 너무 싸구려로 구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적당한 가격의 물건으로 골랐다.
“340만 윌입니다.”
카드로 금액을 계산하려는데 손이 떨려 왔다.
340만이면 대체 얼마야. 내가 아껴 쓰면 1년은 버틸 수 있는 돈인데.
“손님?”
카드를 건네 놓고는 힘을 풀지 않아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카드를 당기고 있었다.
“계산을 하려면 놓으셔야죠?”
미소 짓는 조수의 얼굴이 분명 웃고 있음에도 험악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결국 튕겨 내듯 내 손을 떨친 조수는 재빨리 금액을 계산하고는 카드를 돌려주었다.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또 방문해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원망 어린 눈빛을 보내자 조수는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저, 혹시 말입니다.”
“예. 손님. 아직도 안 가셨나요?”
“사은품은 없습니까?”
“…….”
* * *
기어코 숫돌을 사은품으로 뜯어낸 나는 번화가에 나온 김에 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돈 낭비 같았지만 그동안은 학식만 먹었기에 포상금을 얻은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다.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어떻게 사람이 매일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사냐.’
그렇다고 비싼 가게를 방문한 건 아니고 평범한 서민 식당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라 그런지 밖을 돌아다니던 학생들 중 꽤 많은 인원이 식당에 있었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지라 귀족으로 보이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고 전부 평민 학생들로 보였는데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종업원에게 가게에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부탁한다고 말하고 조용히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뭔가 평화롭네.’
며칠 전에 있었던 수라장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은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 그 감각이 무뎌진다던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무뎌지는 것과 잊혀지는 건 다르다.
나는 아직도 에델을 죽였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죽음의 순간을 나는 일일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유별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내가 결코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직 괴물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 같으니까.’
같잖은 자기 위로일 수도 있고 자기 기만일 수도 있다.
이미 괴물인 주제에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
아무렴 어떠냐.
나는 내게 다가오는 음식을 보았다.
“마마의 특제 양념을 곁들인 스페셜 십색조 통구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가게의 이름이 마마의 지상 낙원이었나.
주방장이 마마인 모양이네.
나는 닭 모양의 통구이의 다리를 뜯어 손으로 집어먹었다.
그리고 곧이어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그리운 맛에 순간 눈물을 흘릴 뻔했다.
‘양념 치킨?’
물론 튀긴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념 때문인지 그 맛이 흡사 한국의 치킨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한 뒤 종업원을 불러 추가 주문을 했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고 내 옆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이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너무 허겁지겁 먹었나?
추가 주문으로 시킨 음식은 조금 천천히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시 음식이 나온 순간 어느새 양손으로 먹고 있는 나를 깨달았다.
‘이건……어쩔 수 없어. 불가항력이야.’
나는 세 번째 추가 주문을 했지만 종업원이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가게의 특제 소스가 다 떨어져서 오늘은 품절이에요.”
“아아.”
이럴 수가.
나는 한숨을 내쉬고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십색조. 맛있었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계산을 하려 계산대에 가자 종업원이 손사래를 쳤다.
“옆 테이블에 계셨던 손님분들이 계산해 주시고 나가셨어요.”
“예?”
나는 가게 문 쪽을 바라봤지만 이미 그들은 없었다.
덕분에 공짜로 외식을 하게 된 나는 아직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괴감도 들었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불쌍하게 처먹었길래?
* * *
다시 마법학부에 돌아온 나는 시간이 남은 김에 미리 카론의 집무실로 향했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집무실 앞에서 책이나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착하자 의외로 카론의 집무실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혹시나 싶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교수님.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언제나 같은 침묵이 흐르고 속으로 30 정도를 셌을 때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라.”
안으로 들어가자 카론이 집무실 책상에 앉아 태블릿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미리 와서 기다리려 했는데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두드렸습니다.”
“그럼 기다려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집무실 책상 앞에 있는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드리아스.”
10분 정도 흘렀을 쯤 카론이 날 불렀다.
“이번에 흑마법사를 잡았다고 들었다.”
“예. 맞습니다. 안 그래도 그와 관련해서 교수님을 찾아뵈려고 했는데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터라…….”
“그래. 잠깐 말하지 말고 기다려라.”
카론은 마나를 배열하더니 집무실 전체에 알 수 없는 마법을 사용했다.
“이제 말해라.”
“막 말해도 됩니까?”
“소음을 차단하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니 말해라.”
카론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말하기를 원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기 전에 선수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스승님. 제가 코덱스 아포칼립스를 얻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