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복귀, 일상 그리고 이용
루시아 에버라스트는 위에는 교복, 아래는 잠옷을 입은 채 두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해 댔다.
그런 그녀의 한쪽 옆구리에는 베개가 끼워져 있었다.
“야, 이번에 들었냐?”
“뭐? 설마 또 흑마법사 얘기냐?”
“어. 알고 있네.”
“요즘 매일 그 얘기로 시끄러운데 어떻게 모르냐. 당장 태블릿만 열어도 온통 그 말뿐인데.”
“야, 근데 대단하지 않냐? 솔직히 흑마법사가 나타난 것만 해도 이슈 거리인데 그걸 아카데미 학생들이 잡아내다니. 아무리 조교가 도와줬다고는 하지만 신기하네.”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던 루시아는 문득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며 대화하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들이 누군지도 모름에도 불쑥 끼어들었다.
“그거. 우리 선배가 한 거예요.”
“예, 예?”
“루시아 에버라스트?”
루시아의 갑작스런 등장에 마법학부 학생 둘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멈춰 섰다.
그러나 루시아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걸었다.
가면서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법학부 3학년, 아드리아스 크롬웰 선배가 흑마법사를 잡았어요.”
보기 드문 루시아의 미소가 벚꽃처럼 흩날렸다.
학생들은 그런 루시아를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 * *
아카데미에 복귀한 지 5일 정도가 지났다.
그간 나는 주말에도 수사관에게 불려 나가며 조사에 협조했다.
흑마법사가 관련된 사건이기에 이번 일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꽤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다행히 평가 점수는 만점.’
조원이 두 명이나 실종되었음에도 평가는 만점이었다.
이 또한, 결국에는 흑마법사를 잡은 덕분이었다.
덜컥.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등장을 알아챈 학생들이 수다를 멈추고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웅성대는 것이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뭐. 할 말 있으면 직접 해.”
기어코 내가 한마디를 하고 나자 다들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선배.”
그러나 단 한 명, 루시아만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베개에 엎드린 채로.
그녀가 마치 옆자리에 앉으라는 듯 자신의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저걸 무시할 수도 없고…….
결국 그녀의 옆에 다가가 자리에 앉자 졸린 눈을 한 루시아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선배. 이번에도 한 건 하셨네요?”
“하기는 뭘 해. 죽다 살아났지.”
“그래도 결국 살았잖아요. 흑마법사도 잡고. 제국 수사대에서 표창도 준다면서요?”
“그렇긴 하지.”
“포상금도 준다고 들었는데? 선배, 저 밥 사 주세요.”
허, 뻔뻔하기는.
아주 뜯어먹을 게 없어서 벼룩의 간을 뜯어 먹어라.
“나 거지야.”
“에이. 제가 듣기로 포상금이 3,000만 윌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런 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어. 어쨌든 그거 다 내 거 아니야. 3등분해서 나눠 가지는 거야.”
“그렇게 따져도 1,000만인데요? 우리 저번에 포션 만들고 성공 기념 회식도 안 했잖아요.”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돈도 많은 양갓집 규수께서 굳이 내 돈을 털어먹으려고?
그래도 그녀의 말대로 포상금이 두둑하니 넘어가기로 했다.
밥 한 끼 정도야, 뭐.
“그래. 내가 졌다. 대신 예전에 너랑 갔었던 데는 안 갈 거야.”
“히히. 알았어요. 언제 갈래요? 오늘 갈까요?”
“아직 포상금이…….”
내가 말을 다 잇기 전에 버반 교수가 들어왔다.
나는 일단 수업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한 뒤 강의에 집중했다.
* * *
수업 시간이 끝나고 얘기하자고 했던 것과 달리 루시아는 수업 내내 사건이 있었던 날의 썰을 풀게 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자 그녀는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지금처럼 강의가 끝나고까지 달라붙던 적은 없었기에 그녀에게 물었다.
“넌 따로 할 일 없냐?”
“왜요?”
“왜긴, 네가 따라오니까 하는 소리지.”
“음~ 오늘은 없어요.”
루시아가 쫓아오니 오늘은 포션 만들기 글렀다.
아직까지는 새로운 포션을 만들어 낸 걸 숨겨야 하기에 결국 학식이나 먹으러 식당에 갔다.
“어디 가요?”
“밥 먹으러.”
“같이 가요!”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빨리 먹고 소화 시킨 다음 운동이나 할 생각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재능을 얻고 몸을 다루는 데 더 익숙해진 느낌이라 운동이 즐거운 하루하루였다.
그렇게 학생 식당에 들어서자 강의실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시선들이 쏟아졌다.
“오오. 선배, 인기남이네요?”
“그러게. 나 인기 엄청 많네. 좋다, 좋아.”
영혼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뭐가 그리 웃긴지 루시아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더 이상 태클을 걸기도 귀찮아진 상황에서 치즈 퐁듀 멧돼지 갈비를 시켰다.
“그거 맛있어요?”
“어. 난 좋아해.”
“그럼 나도 그거 먹어야지.”
음식을 받고 대충 아무 자리나 잡고 앉았다.
부담스러운 시선들 가운데에서 나는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선배. 이건 어떻게 먹는 거예요?”
앞에 음식이 놓여 있음에도 가만히 있던 루시아가 대뜸 내게 물어왔다.
무남독녀로 귀하게 자라서 그런가. 그냥 돼지갈비에 치즈를 찍어 먹는 건데 그것조차 모를 줄이야.
“이렇게 고기를 찍어 먹어.”
“아~ 이런 음식도 있구나.”
“처음 먹어 봐?”
“학식이 처음이에요.”
“평소에는 뭘 먹는데?”
“그냥 룸서비스로 오늘의 메뉴 시켜요. 귀찮아서.”
그래. 네가 학식을 먹을 일이 어디 있겠냐.
그래도 오랜만에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 거라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이렇게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로웠나?’
생각해 보면 전생도 그렇지만 이번 생에도 너무 앞만 보고 달린 기분이었다.
가끔씩은, 그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친해진 이들과 식사도 하고 수다도 떠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봤자 루시아 빼고는 없지만.’
날 죽일지도 모르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친해질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치즈를 둘둘 만 돼지갈비를 손에 들고 먹는 루시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항상 졸린 눈으로 반쯤 감겨 있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웃겼다.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라.”
“엄청 살찔 거 같은 맛이에요. 그래서 선배가 운동하는구나.”
“그렇지.”
루시아의 헛소리를 대충 받아넘기며 식사를 마저 했다.
스윽.
“음?”
정신없이 갈비를 뜯고 있는데 내 옆에 누군가가 앉는 게 느껴졌다.
루시아도 내 옆에 앉는 인물을 보고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운 채 바라보았다.
“누구……?”
루시아가 물어보고 내가 간신히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말했다.
“비비안?”
태연하게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초록 머리카락의 여인은 다름 아닌 비비안이었다.
그녀는 그저 내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기사학부에서 여기까지는 웬일로……?”
혹시 볼로릭 사건과 관련된 일로 찾아온 건가 싶어서 물어보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보고만 있으니까 무섭잖아.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그 대답을 끝으로 다시 앞을 보며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이렇게 옆모습만 보면 또 멀쩡해 보인단 말이야.
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초록 머리카락과 어우러진 단아한 이목구비로 예쁘게만 봤을 테지.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청초한 외모의 아름다운 여인이기는 했다.
미쳐서 문제지.
“누구예요?”
“평가 때 조원이고 기사학부 3학년, 비비안 벨로칸이라고 하는데…….”
진짜 왜 왔을까.
비비안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특이한 선배네요. 꼭 아드리아스 선배처럼.”
“내가 뭘 특이해.”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은근히 비비안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결계에서 있던 일 때문인가?
설마 요정이 나인 걸 알아차리고?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먼저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요정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요정이었던 걸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불편한 식사 자리가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가려는데 루시아와 비비안이 따라붙었다.
“저기, 레이디들? 이제 슬슬 기숙사에 돌아가 보려 하는데, 둘도 각자 갈 길 가면 안 될까?”
“선배 배웅해 줄게요.”
“나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골이 아프구만.
“흐흐. 녀석! 하필 그런 포션을 만든 이유가 있었구나.”
갑자기 들려온 제3자의 목소리에 우리 셋은 전부 놀라 주변을 살폈다.
“여기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가로수 나무 위였다.
백색의 정장을 차려입은 바하트가 나무 꼭대기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탑주님? 거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바하트는 혀를 차며 훌쩍 내려왔다.
“아주 팔자가 좋구나. 아드리아스 크롬웰. 여자를 둘이나 끼고 놀고 있다니.”
“하하. 예, 뭐. 근데 입은 왜 그렇게……?”
바하트의 입은 마치 실로 꿰맨 듯 보였다.
그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왜 저러고 다니나 싶었다.
“수련 중이다.”
“예. 그러시군요.”
굳이 깊게 관여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대충 넘겼다.
하지만 바하트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나 보다.
“궁금하지 않느냐?”
“저번에 눈을 가린 것과 비슷한 훈련 아닙니까?”
결국 그의 장단에 맞춰 주자 그가 손뼉을 쳤다.
“정답이다! 마법사란 무릇 입을 조심해야 하지. 그래서 묵언 수행 중이었다.”
영감님. 지금 멀쩡히 잘만 말하고 계십니다만?
일이 귀찮아질 것 같아서 굳이 태클은 걸지 않겠다.
“이번에 흑마법사를 잡았다지?”
“예. 여기 있는 학우와 같이 잡았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그는 내가 가리킨 비비안을 한 번 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나를 보았다.
“녀석이 아티팩트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사적으로 침착해졌다.
혹시 알아차린 건가.
솔직히 나태의 흔적이 현장에 남아 있지 않다고 확언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가면을 쓰기는 했었는데 그 외에는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래?”
그의 예리한 눈초리가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피식거리는 웃음을 뱉어 낸 바하트가 내 머리를 건드렸다.
“네 녀석이 그렇게 간 큰 놈일 리 없지. 됐다. 못 들은 걸로 하거라. 그것보다 내기는 잘 준비하고 있느냐?”
“예. 매일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네 녀석이 흑마법사를 잡았다고 봐주거나 할 생각은 없다. 올해가 가기 전까지 준비해 놓아야 할 거다.”
바하트는 그 말을 끝으로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나태의 페이지였는데 바하트 덕분에 경각심이 늘었다.
“저도 대마법사가 되면 탑주님처럼 이상해질까요?”
“지금도 충분히 이상하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내 말에 귀엽게 볼을 부풀린 루시아를 보며 실제로 볼을 부풀리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뻘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머무는 물푸레 기숙사에 도착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비비안은 헤어질 때까지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이따금씩 바라보기만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괜히 찔리게 만들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쫓아내기에는 결계에서 보았던 어린 비비안이 생각나 마음이 약해졌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슬슬 나태의 페이지를 처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위험해.’
만약 내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신분과 실력을 갖췄으면…….
내가 아이템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았으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죄악 관련 아이템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계륵이네.’
하필 니켈이 들고 있었기에 니켈을 소환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5일간 검술 교습도 못 받았다.
녀석을 소환하는 순간 나태의 페이지도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럴 경우 아카데미에 있는 흑마법사들이 전부 눈치챌 게 분명했다.
‘어쩌면 바하트도 눈치챌 수 있겠지.’
그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흑마법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나는 한 가지 활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일이 잘만 풀린다면 아마 흑마법 실력도 늘릴 수 있겠는데.
‘잘만 풀리면, 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계획을 위해서 이왕이면 주말 전날인 금요일쯤이면 좋겠다.
‘변수가 너무 많지만 어쩔 수 없지.’
맨날 이용당하기만 했는데 이제 나도 이용할 때쯤 되지 않았나?
그 잘나신 스승님의 낯짝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