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포션 조합법 그리고 첫 번째 소환
니켈 라이프힐을 챙겨 곧바로 아카데미에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방에 두고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달렸다.
못하겠다고 비명을 질러 대는 몸뚱이를 정신력으로 잡아끌자 간신히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턱!
“음?”
“늦어서 죄송합니다. 헉, 헉.”
제시간……이라고 하기에는 10분 정도 늦었지만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교수는 신경 쓰지 않고 수업을 재개했다.
거칠게 문을 열어젖힌 탓에 시선이 조금 쏠렸지만 무시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에게 쏟아진 시선은 5초도 안 되어 사그라들었다.
‘아싸라서 이런 건 좋네.’
잠깐 눈에 먼지가 들어갈 뻔했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알다시피 모하임 잎사귀는 뛰어난 자양강장의 효과가 있지만 섭취량이 어느 기준점을 넘으면 만성적인 독이 되지. 이 독은 환각 작용과 함께 두통을 유발하는데 오히려 이를 이용해…….”
버반 교수의 중급 약초학.
마법사와 약초들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수많은 시약과 마도구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약초는 기본적인 실험 재료이자 매개체가 된다.
물론 약초뿐만이 아니라 온갖 재료들을, 예를 들어 몬스터의 부산물을 다루지만 다른 재료들의 비해 가격대가 싼 맛이 있었다.
물론 희귀한 약초들의 가격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비싸지만 그건 논외로 치자.
게임에서는 마법사가 아니어도 도핑용 물약과 회복 물약 등을 위해 약초의 이름들과 조합법들을 달달 외우고 다녔었다.
“대표적으로 이 모하임 잎사귀와 세 가지의 추가 재료를 섞으면 뛰어난 체력 상승 포션이 완성되지.”
가만히 교수의 말을 듣던 중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세 가지 재료? 6개 아니었나?’
분명 게임에서는 모하임 잎사귀까지 더해 일곱 가지의 재료를 섞어야 체력 상승 물약이 합성되었다.
세 가지만 추가되는 건 그보다 열화판인 일시적 자양강장제였다.
그것도 버프가 끝나면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는 질 떨어지는 물건이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 같지 않아 결국 내가 나섰다.
궁금한 건 못 참지.
“저, 교수님!”
“음? 뭐지?”
“혹시 그 세 가지라는 게 자하스 열매, 토돌나무 진액, 멜 열매가 맞습니까?”
“그래. 맞네.”
“혹시 혼피시의 진액이나 마타라타 뿌리껍질 같은 건 안 들어갑니까?”
“허. 그런 게 왜 들어가나? 정 해 보고 싶으면 자네가 직접 해 보게.”
교수가 어이없다는 듯 비꼬자 학생들의 비웃음 소리가 퍼져 나갔다.
잠깐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겉으로 티 내지 않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왜 게임과 다르지?’
다른 게 아니라면…….
설마 아직 조합법이 발견되지 않은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일단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부터 가야겠다.’
당장 물약과, 시약 들의 종류가 적힌 책을 확인하고 싶었다.
전공 서적이 있었다면 이를 확인해도 되었으나 비렁뱅이였던 아드리아스는 책 한 권 사 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고 곧장 도서관으로 향하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선배님.”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으나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선배님.”
성까지 부르며 또박또박 발음하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묘령의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 한 조각이 불어와 분홍빛이 감도는 백색의 단발을 벚꽃처럼 흩날렸다.
소녀의 정체를 아는 난 굳을 뻔한 얼굴을 가까스로 풀었다.
‘루시아 에버라스트.’
신비로운 분위기를 흘리는 졸린 눈의 소녀가 이내 뚜벅뚜벅 내 곁으로 다가왔다.
“잠깐 물어볼 게 있어요.”
“뭔데.”
그녀가 왜 나를 불러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어색했는지 루시아는 살짝 의아한 듯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고 질문을 했다.
“조금 전에는 왜 그런 질문을 한 거예요?”
설마 같은 수업을 듣고 있을 줄이야.
아직 학기 초인 데다 아드리아스가 된 지 얼마 안 지난 탓에 주변 상황을 자세히 몰랐다.
생각해 보니 그녀라면 충분히 약초학을 들을 이유가 있었다.
아마 1학년만 아니었으면 상급 약초학을 듣고 있었겠지.
“아니, 그냥.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혼피시가요? 솔직히 마타라타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는데 혼피시는 뜬금없이 왜 나온 거죠?”
그 조합법은 내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 불친절한 게임은 기초적인 조합법 외에는 알려 주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날을 잡고 일주일 동안 온갖 잡템들을 섞어 보았다.
다행히 게임 내의 보정이 있어서 아이템들을 섞으면 실패를 하더라도 힌트가 나왔다.
그 힌트를 토대로 완성해 낸 게 지금의 내 머릿속에 든 조합법들이었다.
“그건 모하임 열매 때문에 생각해 낸 거였어.”
“갑자기 모하임 열매가 왜 나와요?”
“알다시피 모하임 열매는 그 잎사귀보다 훨씬 효능이 강한 대신 부작용은 더 많아. 그리고 그 부작용 중 하나가 중독성 짙은 마약 성분과 같고.”
“근데요?”
“이걸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방금 말한 마타라타 뿌리껍질이 필요해. 하지만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니 제대로 된 중화 작용을 하려면 혼피시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선배님은 그럼 열매로도 체력 상승 포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글쎄.”
더 이상은 말 못 하지.
어쩌면 내 돈줄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긴데.
물론 조합법은 이거 말고도 수십, 수백 가지가 있다.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단 생각나는 것만이라도 어딘가에 적어 둬야지.
“혼피시라…….”
갑자기 생각에 빠진 그녀를 보자 괜히 말해 줬나 싶었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시궁창 같은 그래픽으로 보던 캐릭터를 실사로 보니 기가 막혔다.
게임에서는 그렇게 뭉개졌었는데 실제로는 연예인 뺨을 칠 정도다.
그런 뻘 생각과 더불어 아련하게 회상이 떠올랐다.
‘하아. 너도 엄청 힘들었었지.’
그녀는 내가 세 번째, 그러니까 마법사 중에서는 마지막으로 키웠던 캐릭터였다.
전체로 따지면 아홉 번째 캐릭터.
난이도는 암, 그 자체였다.
재능은 미쳤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뛰어났다.
조금만 수련해도 팍팍 올라가는 마나와 스킬 숙련도를 보고 있으면 막혔던 속도 시원하게 뚫렸다.
아마 재능으로만 따지면 전날에 마주친 디에네보다 위일 거다.
근데 왜 난이도가 암덩어리였냐면…….
“음? 아직도 계셨어요? 이제 가셔도 돼요. 볼일 끝났어요.”
“그래. 수고해라.”
천재들은 전부 저렇게 싸가지가 없는 건가?
그래도 밉보이기는 싫으니 미소를 지으며 떠나 줬다.
어차피 몇 년 안에 죽을 녀석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다.
그녀의 난이도가 높은 이유. 그건 다름 아닌 불치병 때문이었으니.
‘내가 리트를 가장 많이 한 캐릭터였지. 아니, 따지고 보면 리트도 아니지. 얘는 세이브, 로드가 아니라 아예 새로 게임을 시작했어야 하니까.’
새로 시작하기를 스무 번째까지는 셌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세는 것도 포기했다.
그만큼 그녀의 치료 난이도는 높았는데 지금의 나로서도…….
‘잠깐…….’
조금 생각을 해 보자 가능성이 보였다.
‘살릴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왜냐하면 이미 클리어한 경험이 있으니까.
바로 그녀가 내가 날을 잡고 수백 가지의 조합법을 만들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녀의 치료제는 조합법을 찾는 게 어려운 거였지 재료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재료도 만만치 않은 것들이지만.’
조합법만 알면 살릴 수 있는 건 사실이지.
문제는 그녀를 살리게 되면 벌어질 일들이었다.
‘내가 플레이 했을 때는 분명 아드리아스를 죽였었어.’
병을 치료하지 못하면 아드리아스를 해치우기도 전에 죽는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면 얼마 안 가 아드리아스의 멱을 따는 게 그녀였다.
고민에 빠져 있던 사이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했다.
“물약이나 시약 종류가 등록된 서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죠?”
“아, 그거라면 마침 방금 반납이 되었습니다. 여기요.”
누군가가 약초학 수업에 들고 갔던 모양이다.
강의가 끝나고 바로 반납한 건가?
당장이라도 책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자칭 스승을 보러 가야지.’
빨리 가서 시체를 넘겨주고 내 할 일 해야지.
* * *
내가 찾아갔을 땐 카론의 강의가 아직 진행 중이었다.
덕분에 시간이 조금 남은 나는 미리 결제해 둔 쿠폰으로 학식을 먹고 올 수 있었다.
“아드리아스.”
“예. 교수님.”
“냄새난다.”
“예?”
“음식 냄새가 난다. 역겹군.”
“……죄송합니다.”
이 미친놈이 왜 보자마자 시비야?
저는 뭐, 이슬만 먹고 사나.
카론은 자기 할 말만 뱉고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가 내가 가져온 캐리어를 슬쩍 곁눈질했다.
“이틀을 준다고 말한 것 같은데, 벌써 가져왔나?”
“예.”
나는 이틀이라기에 어제와 오늘까지 이틀인 줄 알았는데 뉘앙스를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긴 시간상 너무 여유가 없기는 했다.
카론은 별말 없이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라.”
전날과 같이 결계를 걷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카론은 곧장 시신을 꺼낼 것을 명했다.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캐리어의 내부는 캄캄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만져지는 두 구의 시신 중에 조금 더 몸집이 큰 쪽을 꺼냈다.
“끙차.”
확실히 젊은 기사의 시신이라 그런지 몸집도 다부지고 무거웠다.
내가 힘겹게 시신을 꺼내자 카론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긴 듯 말없이 서 있었다.
그가 말없이 있는 동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젤라를 보았다.
―쿠울…….
아주 팔자 좋구만.
그래도 잘못되지는 않아 다행이다.
그녀가 잘못되었으면 아마 내가 한 일이라는 증거가 없어도 카론의 분노로 인해 곧바로 실험체가 되었을 거다.
“내 생각보다 상태가 좋군. 이건 키메라 언데드로 만들겠다.”
키메라라는 말에 내 몸이 자동반사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물론 비위가 상하거나 하는 이유가 아닌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로 하는 건 아니라 가지고 온 기사의 시신에 양념을 바르듯 온갖 시약을 바르고 숙성시키는 기간이 필요했다.
물론 이 작업도 대부분 내가 해야 했지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
한참 작업을 하던 도중, 옆에서 시약을 만지던 카론이 말했다.
그러더니 별말도 없이 그대로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다 하면 내가 만든 마법진 위에 올려놓고 진을 가동시켜라.”
연구실과 연결된 집무실에서 말하는 듯 아련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연구실이 닫혔다.
“하아. 이 개새끼.”
이게 돈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시켜 먹기는 더럽게 시켜 먹네.
“아, 돈!”
생각해 보니까 열차표값을 깜빡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말하고 뜯어내야지.
꼼꼼하게 작업을 마무리하고 마법진을 가동하자 전과 같이 불길한 기운을 뿜는 모습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요 이틀 조금 무리했다고 피곤해지는 육체를 정신력으로 버텨 냈다.
“아.”
이제 흑마법 서적이나 읽어 볼까 하던 찰나에 캐리어에 남은 우리 니켈이 생각났다.
‘지금 만들어 버릴까?’
만들게 되면 보관 방법이 문제긴 했다.
내가 네크로맨서를 키워 본 적은 없기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상대했던 녀석들을 보면 아공간에 보관했다가 소환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는데…….
‘나도 아공간이 있으려나?’
애초에 공간 마법이라는 게 높은 수준의 마법사들만이 쓸 수 있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안 되면 그냥 캐리어에 보관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체인 상태로도 어차피 캐리어에 보관할 생각인데 상관없겠지.
카론이 확인할 일도 없고.
니켈의 시신을 꺼내자 예의 늙은이가 나왔다.
몸을 보니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
‘진짜 오러 마스터 맞아?’
혹시 내가 착각한 건가 싶었다.
만약 착각이라면 난 엄청난 덤터기를 쓴 거다.
‘아니야. 이스터에그가 가짜일 리 없어.’
나를 믿고 게임을 믿자.
……이렇게 생각하니까 어느 쪽도 믿음직스럽지 못해 조금 힘이 빠진다.
막상 사령술을 사용하려니 조금 아쉬움이 느껴졌다.
만약 내 사령술의 수준이 높다면 평범한 스켈레톤이 아닌, 듀라한이나 다크워리어, 하다못해 구울로 소환할 텐데.
그래서 웬만한 네크로맨서들은 뛰어난 시체를 사용하지 않고 보관해 둔다.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게다가 애초에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특성을 고른 거다.
진화라면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니.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겠다는 심정으로 카론의 시약들과 몇몇 재료들을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더했다.
[기초 사령술: 스켈레톤 소환을 시전합니다.]
[시체 한 구가 감지됩니다.]
[사령술에 도움이 되는 재료들을 감지합니다. 추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으헉.’
마나가 쭉쭉 빠져나간다.
아니, 겨우 한 구 일으키는 데 몇이나 빠지는 거야.
마나가 들어갈수록 누워 있는 니켈의 살점이 부식되어 갔다.
이내 새하얀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으로 니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초 사령술: 스켈레톤 소환 성공]
[스켈레톤(전설) 한 구를 소환했습니다.]
[기초 사령술: 스켈레톤 소환 레벨 1→3으로 상승합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뛰어납니다. 스탯 보너스가 붙습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월등하게 뛰어납니다. 티어(tier)가 오릅니다. 스켈레톤 솔저가 됩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초월에 근접합니다. 생전의 자아를 약간 되돌려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