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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4화 (4/415)

4화. 빈 하르츠 국립묘지 그리고 오러 마스터의 시체

“끄윽, 끄아아악!”

갑자기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내지른 안젤라가 소리쳤다.

“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 말을 끝으로 안젤라는 두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뭔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어이, 괜찮냐?”

혹시나 해서 말도 걸어 보았지만 기절이라도 한 듯 조용했다.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내가 선택했던 특성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진화(進化)]

―유니크

―충분한 경험을 쌓은 대상을 하등에서 고등으로 발전시킨다

―적대적이지 않은 모든 대상에게 사용 가능

네크로맨서의 특징과 약점을 강화 및 보완하고 전체적인 범용성도 뛰어난 특성.

유니크 특성들은 범용적인 게 대부분이라 뭘 골라도 손해는 없었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이보다 좋은 특성은 없었다.

물론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정확한 사용법이나 진화를 하면 얼마나 좋아지는가 등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안젤라가 내뱉은 가문을 건 맹세가 두 번째 조건에 부합한 모양이다.

의도치 않게 내 특성의 첫 희생양이 된 안젤라를 바라보자 또 다른 문구가 떴다.

[안젤라 루시펠]

[진화 중…….]

[남은 시간: 167시간 41분 03초]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입력되어 있었다.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 싶었지만 일단은 시간을 벌었음에 감사했다.

안 그래도 카론이 맡긴 일 때문에 하루 정도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사이에 이 녀석이 카론에게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니.

차라리 이렇게 기절한 상태로 있으면 그런 걱정이 없어진다.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새 늦은 밤이었다.

나는 서둘러 정리를 한 뒤 마지막으로 안젤라를 한 번 더 확인한 다음 기숙사 방에 돌아왔다.

방에 돌아온 나는 곧장 스케줄부터 확인했다.

‘하필이면…….’

카론이 준 시간에 맞춰서 빈 하르츠 국립묘지까지 다녀오려면 지금 당장 출발해야만 했다.

문제는, 내일 오후에 있을 수업들에 무단결석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지금 죽냐 사냐가 문젠데 그까짓 강의가 중요하냐.’

사실 중요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알다시피 아드리아스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빚까지 지고 있는 상황.

이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 선대 백작인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학금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그 덕분에 학비는 간신히 충당할 만한 장학금 혜택을 받는 처지였다.

만약 무단결석을 하게 된다면 이마저도 사라지겠지.

머리는 복잡했지만 내 몸은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혹시 몰라 여분으로 준비한 위장복마저 캐리어에 챙기고 질질 끌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자. 운이 좋으면 내일 오후까지 돌아올 수 있을지도.’

머릿속으로 동선을 짠 후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밖은 늦은 밤인지라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하지만 24시간 운영하는 아카데미 근처의 마나 철도역은 환한 빛을 밝히고 있었다.

“아.”

티켓 값을 계산하려 지갑을 꺼내 보니 간신히 왕복 티켓을 살 정도의 금액밖에 없었다.

‘카론 이 개 같은 새끼. 적어도 심부름값은 줘야 할 거 아니야.’

속으로 실컷 욕을 퍼붓고 결국에는 티켓 값을 지불한 뒤, 마나 부상열차에 올라탔다.

생각해 보면 카론은 내게 사비로 일을 시키고 한 번도 돈을 준 적이 없었다.

그동안의 아드리아스는 흑마법을 공짜로 배우니 그 정도 돈은 자신이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다르다.

‘이번에 갔다 오면 일단 말이라도 꺼내 봐야지. 이거 밥 먹을 돈도 없잖아.’

나는 열차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맛만 다셨다.

* * *

열차의 이동 시간 동안 짧은 휴식을 취하며,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물론 책이라고는 전날 도서관에서 빌린 것뿐이었다.

‘뭔 뜬구름 잡는 소린지 도통 이해가 안 가네.’

하지만 억지로 읽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머리를 깨워 놔야 했다.

단어나 용어라도 익숙해져야지.

6시간 정도가 지나자 국립묘지가 위치한 하트벨역에 도착했다.

나는 내리자마자 곧장 묘지를 향해 걸었다.

사실 역 근처에 있는 마차를 타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돈. 우선 돈부터 해결해야지.’

게임에서는 돈 걱정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저 캐릭터의 특색에 맞게 재능을 살려 돈을 벌었으나 지금의 나는 특색도, 재능도 없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다행히 나는 온갖 것들을 메모하며 게임을 플레이 했었고 아무 특색이 없는 아드리아스 같은 녀석으로도 충분히 방법은 있었다.

‘문제는 초기 자금조차 없다는 거지.’

곱씹을수록 비루한 캐릭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이게 나인데.

돌아갈 길이 급했기에 묘지까지는 캐리어를 끌며 힘껏 달렸다.

그리고 5분도 안 되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운동도 꾸준히 해야겠어.’

살아남으려면 체력도 필수.

근데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체력도 저질이었다.

아니, 이럴 거면 마법 재능이라도 있든가.

거의 한 시간의 사투 끝에 간신히 묘지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늘은 어느새 여명을 드리우고 있었다.

“제니스 댁에서 왔습니다. 3번째 손자요.”

“꽃은 들고 왔고?”

“푸른 하늘 나비 꽃을 13송이 들고 왔어요.”

“그래. 들어가라.”

문지기와 정해진 문답을 말하고 입장했다.

흑마법사의 사회는 비록 음지에 숨어 있었지만 그 힘 자체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곳, 빈 하르츠 국립묘지도 이미 흑마법사들에게 매수된 곳 중 하나였다.

대문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자 탁 트인 실외에 수백 개가 넘는 비석들과 묘지기 한 명이 보였다.

나는 일을 하고 있던 묘지기에게 곧장 다가갔다.

“파이먼 씨.”

“카론의 심부름인가. 일찍 왔네.”

“예. 베이던의 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이미 준비해 놨다. 저쪽에 가면 있을 거야.”

미리 전달받은 듯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아직 안치되지 않은 관이 보였다.

아니면 안치되었던 걸 꺼내 놓은 거거나.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마침 묘지기가 안치 중이던 묘를 보았다.

‘라이프힐의 비석? 라이프힐, 라이프힐…….’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 싶어서 나는 베이던의 관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관을 열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기사의 시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시체를 들어서 옮겼다.

‘더럽게 무겁네.’

운동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진 사건 두 번째였다.

나는 가지고 온 캐리어에 그대로 시체를 넣었다.

캐리어는 카론이 넘겨준 시신 운반용이라 자그마한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기에 한 구쯤은 넉넉하게 들어갔다.

그렇게 시체를 담고 허리를 펴자 문득 묘지기가 작업 중이던 시체의 정체를 깨달았다.

‘라이프힐! 니켈 라이프힐!’

사실 별것 아닌 게임 속 이스터에그 중 하나였다.

내용은 이렇다.

오러 마스터를 동경한 한 사내가 어느 순간부터 수십 년 동안 그저 검을 수련한다.

세속과 연을 끊고 하루도 빠짐없이 검만 수련하던 사내는 끝내 오러 마스터가 되었지만 오러 마스터가 된 순간 노환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

검에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내가 노력이라는 재능으로 끝내 오러 마스터에 등극하고 죽어 버리는 희한한 이야기였다.

이 세상에 오러 마스터들은 그야말로 인 외의 괴물들.

그런 괴물이 된 순간에 죽어 버리다니 말도 안 되지.

그러니 이스터에그라는 거다.

그리고 이 이스터에그도 결국 카더라식의 이야기가 떠도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굳이 이런 이스터에그를 만들었다는 건?

‘진짜 오러 마스터였다는 소리지. 그게 아니면 굳이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이스터에그를 만들었겠어?’

하지만 쓰잘데기없는 이스터에그이기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었다.

그렇기에 게임을 꼼꼼하게 플레이 했던 나조차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었던 거고.

‘근데 그 니켈 라이프힐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니켈 라이프힐이 오러 마스터가 되었다는 건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그저 그가 살던 마을에서 풍문으로만 전해질 뿐.

솔직히 오러 마스터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지금 저 시체의 가치는 아마 아무도 모르고 있을 터.

‘사령술로 되살려 낸 소환물의 능력은 생전의 능력과 비례한다. 만약 저걸로 데스나이트 같은 걸 만들면…….’

물론 데스나이트와 같은 최상급 소환물은 지금의 카론조차 못 만든다.

하지만 저걸로 스켈레톤 같은 거라도 만들면 그 수준은 보통의 스켈레톤을 아득히 뛰어넘을 게 자명했다.

마침 라이프힐의 관을 구덩이에 집어넣은 묘지기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를 보았다.

“다 했나?”

“예, 챙겼습니다.”

“그래. 카론한테는 안부 전해 주고.”

“예, 파이먼 씨.”

그렇게 자연스레 지나치려다 넌지시 던져 보았다.

“아, 혹시 말입니다.”

“응? 뭔데?”

“저도 슬슬 한 구쯤 제 소환물을 만들고 싶은데 시신을 배정받거나 할 수는 없나요?”

“흠. 네가 몇 년 됐지?”

“이제 햇수로 3년 차입니다.”

“하! 아직 햇병아리 주제에 욕심이 많군.”

“그런가요? 하하.”

내가 멋쩍게 웃는 척을 하자 그가 다시 한 번 이마의 땀을 훔치고 말했다.

“네 심정은 알겠지만 우선은 카론에게 허락부터 받고 와라. 그게 제일 빠른 길이다.”

“역시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라고 할 줄 알았냐?

이미 내 눈으로 오러 마스터의 시신, 그것도 그 누구도 오러 마스터라고 의심조차 않는 시신을 발견했는데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결국 결정을 내렸다.

난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내며 파이먼에게 말했다.

“파이먼 씨.”

“왜 또. 안 가고 뭐 해.”

“혹시 이 반지로 여기 있는 시체를 제가 가져가면 안 될까요?”

내가 내민 반지를 본 파이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순식간에 감정을 숨기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카론의 허락이 없으면 안 돼. 내가 만약 너에게 시신을 준 걸 녀석에게 걸리면 내 입장도 난처해져.”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대 들키지 않게 관리할 자신이 있거든요.”

“흐흠. 그래? 그래도 조금 곤란한데…….”

“제발 부탁드립니다. 파이먼 씨. 저한테는 이제 이 반지밖에 없어요. 하지만 흑마법사로서의 성취가 우선이기에 큰 결심을 한 겁니다. 부디 받아 주세요.”

“어허, 이러면 안 되는데…….”

그는 결국 못 이기는 척 내 반지를 받아 들었다.

아마 속으로는 완전히 호구 잡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도 그럴 게, 저 반지는 크롬웰 백작가의 인장 반지였으니.

‘그까짓 반지, 나중에 돈을 벌어서 돌려받으면 된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굴릴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하는 게 우선.

어차피 저 반지는 돈으로 바꿔서 굴리려고 했었다.

그 돈으로 오러 마스터의 시체를 구했다고 생각하면 훨씬 이득이지.

“그래. 이 시체를 원한다고 했지? 가져가거라.”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 속내를 숨기고 각자의 이득을 취했다.

아마 파이먼은 젊은 기사도 아닌 한낱 노인의 시체를 비싼 값에 판 걸 기뻐하고 있을 테지.

비록 크롬웰 백작가가 세가 기운 가문이라고는 해도 무려 고위 귀족의 인장 반지이니 큰 값이 나갈 거다.

그래도 오러 마스터의 시체에 비하면 조족지혈.

이런 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가 없으니까.

아마 오러 마스터의 시신이라는 걸 알면 목덜미를 잡고 쓰러질 거다.

구덩이에 들어가 관을 열자 죽은 지 얼마 안 된 듯 보이는 노인이 눈을 감고 있었다.

‘잘 부탁한다. 내 첫 번째 부하.’

나는 마치 아기를 다루듯 세심한 손길로 시신을 꺼내 옮겼다.

힘이 들었지만 나에겐 그 어떤 보물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미소만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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