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드리아스 크롬웰 (1)
[퀘스트: 바알의 종말 클리어!]
[지금부터 자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새로운 캐릭터가 해금되었습니다!]
벌써 10번이 넘게 본 문구를 뒤로하며 마우스에서 손을 떼었다.
우드득.
기지개를 힘껏 켜자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1시.
밤을 새웠음에도 멀쩡하다.
뚜르르. 뚜르르.
탁.
“여보세요?”
―김진환이! 어때, 잘 지내나?
“어. 지금 점심시간이야?”
―그래. 틈나서 연락했다. 넌 뭐 하고 있었냐?
“게임.”
―아직도 하고 있었냐?
나는 시선을 돌려 컴퓨터 화면을 메우고 있는 게임을 확인했다.
“어.”
―난 어려워서 진작에 때려치웠는데. 그렇게 재밌냐?
“어, 재밌네.”
―이 쉐키, 말하는 것 좀 봐라. 왜 이리 덤덤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용호 형의 목소리에 결국 마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게임 고마워, 형.”
―으. 닭살. 내가 잘못했다. 다신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러고는 한동안 꿍얼대던 용호 형이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이제 사회에 나온 지 4년 차인가?
“…….”
―힘들었던 것도 다 끝났다. 이제 밖에도 나가고 여자도 좀 만나고 해라.
“노력해 볼게.”
―쯧. 나도 그게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래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라던 게 우리 모토였지 않나.
그게 벌써 4년인가.
뜻밖의 사건으로 내가 몸담고 있던 군 조직이 해체되었다.
물론 좋은 일이었다.
기뻐해야 할 일이었고.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던 탓에 나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이랑 통일이 되는 건 소설에서나 일어날 줄 알았는데.’
물론 내가 속한 부대만 해체되고 다른 부대들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내가 속해 있던 곳은 알려지면 딱히 좋을 일이 없어서 급하게 없어졌지.
잠깐 생각을 다듬고 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그럼 언제 한번 얼굴이나 보자.”
―오, 좋지! 이번 주말에 함 보자. 내가 글로 갈게.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침대에 가볍게 던졌다.
지금 전화 통화를 한 용호 형도 같은 부대에서 지냈던 동기다.
사고로 나보다 일찍 전역했지만 지금은 멀쩡히 회사를 다닌다.
나는 한참 냉동고를 노려보다 결국 냉동식품 하나를 꺼냈다.
군에 있을 때는 식단조차 관리받았는데 이런 걸 다시 먹을 수 있게 될 줄이야.
철저하게 통제되고 관리받았던 부대이기에 갑작스러운 전역은 강한 후유증을 일으켰다.
때문에 사회로 내던져진 나는 적응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동안 모아 놓은 월급과 강제 전역으로 인한 보상금으로 돈은 넉넉했다.
그렇게 돈 많은 부적응자가 된 나는 이리저리 치이고 다녔지만 용호 형의 도움으로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띵!
금세 데워진 냉동 만두가 김을 냈다.
나는 만두를 책상에 옮기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죄악(peccata).
지금 화면에 틀어진 게임의 이름이다.
전역 직후의 나는 정말로 상태가 심각해 용호 형조차 어찌 못 해 볼 수준이었다.
그렇게 군대 물을 뺀다며 2년 동안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언제나 문제가 생겼다.
‘용호 형에게 신세를 많이 졌지.’
그러던 중 용호 형이 우연히 게임 CD를 하나 가져왔다.
일단은 여유를 가지고 머리부터 비우자며 게임을 권하는 형의 말대로 한번 플레이를 해 봤다.
그래픽은 구렸지만 높은 자유도와 수많은 분기점 그리고 다양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인해 나는 순식간에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이라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에 센스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게임을 공략했고 결국 1년 만에 첫 클리어를 해냈다.
이게 끝인가 하는 허무감은 금방 사라졌다.
플레이 할 수 있는 캐릭터는 계속해서 늘어났으니까.
클리어를 해낼수록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해금되어 나갔다.
그리고 해금된 캐릭터는 전보다 훨씬 안 좋은 조건 속에서 시작했다.
[타르만 (권법가)]
방금 막 클리어한 녀석도 역대급 난이도였다.
도대체 몇 번을 죽기 살기를 반복한 건지 10번이 넘는 클리어 경험을 가진 나조차도 빡셌었다.
가끔은 클리어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면 조금 더 가지고 놀았지만, 이 녀석은 패스.
나는 만두를 한입 먹으며 새로 해금된 캐릭터를 확인하려 했다.
뚜르르. 뚜르르.
‘누구지?’
오늘따라 전화가 계속 온다.
나한테 전화를 걸 사람은 딱히 없는데.
번호를 확인해 보자 발신자 제한 표시가 뜬다.
등 뒤로 알 수 없는 긴장이 흐르고 나는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비록 지금은 해체되었다지만 내가 소속되었던 부대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극비 부대.
솔직히 정부에서 우리를 그냥 놓아준 게 신기할 정도다.
죽여서 입막음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보니 이런 발신자 제한 표시를 보면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뚝.
끊겼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뚜르르. 뚜르르.
그리고 그런 내 한숨을 비웃듯 다시 한 번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결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아. 들리십니까?
“누구시죠?”
―들리십니까아.
“들립니다. 누구세요.”
장난스러운 목소리지만 성별은 알기 힘들었다.
마치 변조된 음성 같았다.
―아! 저는 peccata의 개발자입니다.
펙까타?
뭔 소리인가 했지만 이내 개발자라는 말에 내가 하던 게임이 생각났다.
“죄악?”
―예! 맞습니다.
그는 키득거리며 장난스럽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확인해 보니 김진환 씨께서는 무려 12번의 클리어 경험이 기록되어 있네요. 저희 게임을 이렇게 즐겨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면서도 축하드립니다.
내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온 순간 호흡이 멈췄다.
게임이야 그렇다 쳐도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게임 CD를 가지고 온 건 용호 형이다.
설마 용호 형이 말해 줬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알고 계시죠?”
―에에. 그런 사소한 문제는 일단 넘어가고 지금부터 특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내 이름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있잖아. 대답해.”
―자, 우선 김진환 씨에게는 좀 더 리얼한 게임 플레이 기회를 드리고요. 또 추가적으로 다음 회차는 두 개의 특성을 드립니다. 하나는 언제나와 같이 랜덤이고 두 번째는 무려 선택할 수 있는 기회죠. 어때요, 짱이죠?
거기까지 들은 순간 나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용호 형에게 통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조금 전에 분명 통화를 했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강박적으로 옷장을 열고 짐을 챙겼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꿰뚫었다.
‘우선은 장소를 바꿔야 해. 위치 추적이 됐을 수도…… 아니, 애초에 내가 있는 장소를 파악한 상태일 수도 있지.’
대충 짐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켜져 있는 컴퓨터 화면이 보였다.
‘혹시 모르니 컴퓨터도 포맷 시켜야지.’
책상 앞에 잠시 앉아 게임을 일단 끄려고 화면을 바라본 순간.
[Playable Character: 김진환(아드리아스 크롬웰)]
뭐지?
왜 내 이름이 게임 화면에?
그런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화면이 점차 검게 물들더니 끈적한 액체처럼 변해 갔다.
그 초자연적인 현상에 몸을 피하려 하기도 전에 내 정신은 그 화면과 같이 검게 변했다.
* * *
“아드리아스!”
날카로운 호통 소리와 함께 빈 플라스크가 날아왔다.
나는 내게 날아오는 병을 가뿐히 잡아채고는 멀뚱히 서서 실베크를 바라봤다.
“내가 분명 오늘까지 〈자연과 마나의 상충된 이해〉를 정리해서 책상 위에 올려 두랬지!”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예에? 근데 왜 내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렇게 말을 해도 말이야.
‘마법은커녕 마나의 마 자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정리하나.’
물론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서 있기만 하자 얼굴이 벌게진 실베크는 소리 질렀다.
“당장 나가서 지금이라도 정리해 와! 어서!”
그의 역정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복도를 지나는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뭘 봐. 구경났냐?”
이런. 생각만 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와 버렸네.
아무래도 이 몸뚱어리가 내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다행히 내 말을 들은 이들은 별다른 반박 없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각자 갈 길을 갔다.
나도 그런 시선들보다 우선시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넓게 펼쳐진 부지와 중세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건축 양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하늘을 꿰뚫을 듯 치솟아 오른 탑과 하늘을 메운 거대한 3개의 달이 눈에 띄었다.
―띵!
[선택하지 않은 특성이 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내 시야를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한글이 가렸다.
“나중에. 나중에 고른다고.”
이곳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한국어도 지껄여 보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온 지 이제 일주일째.
분명 컴퓨터를 포맷 시키려다 정신을 잃었었는데 눈을 떠 보니 내가 내 자신이 아니었다.
나는 김진환이 아닌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되어 있었다.
혼란스러웠지만 감정을 숨겼다.
위기가 닥칠수록 감정을 숨기는 연습은 되어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게는 아드리아스였던 기억도 일부분 있었다.
물론 일부분이라 전체적인 그의 삶을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곳이 어딘지는 파악이 가능했다.
떠올려 본바, 이곳은 ‘죄악(peccata)’의 세계였다.
아드리아스의 기억은 게임이었던 죄악의 세계관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주일간 아드리아스의 기억을 되짚으며 행동하자 더욱 확실해졌다.
나는 지금 게임 속 세상에 들어와 있다고.
“책을 한 권 찾고 싶은데요.”
“어떤 종류의 책이죠?”
“‘자연과 마나의 상충된 이해’입니다.”
“마법 관련 서적은 5번째 칸 9열부터 32번째 칸 438열까지입니다.”
찾아 주는 게 아니군.
급료는 날로 먹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들어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생각들이 불쑥불쑥 머릿속을 휘저었다.
아무래도 아드리아스의 영향이 꽤 큰 모양이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캐릭터 중에 이 녀석이라니.
애초에 키워 본 적도 없는 녀석이다.
마지막으로 키웠던 권법가 타르만 다음이 이 녀석이었나 보다.
‘그렇다 쳐도 난이도가 너무 급격히 높아진 거 아닌가?’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두말할 나위 없는 악역이었다.
근데 뭐라 할까.
굳이 따지자면 플레이어를 위한 경험치라고 봐도 될 정도로 보잘것없는 캐릭터였다.
오히려 문제는 이 녀석의 스승.
아니, 그놈을 스승이라고 해야 하나?
“찾았다.”
딴생각을 하면서도 끝내 찾던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문자 나열순이라 금방 찾았네.
나는 책을 찾은 김에 곧바로 펼쳐 보았다.
‘……무리군.’
게임과는 달랐다.
게임에서 내가 키운 마법사 캐릭터만 3개나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은 하늘에 뜬구름 잡기였다.
현실은 게임처럼 그냥 스킬을 배운다고 막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여기 적힌 책의 내용처럼 마나가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으로 운용이 되어야 마법이 발동했다.
‘물론 이건 단순한 이론 서적이지만.’
속으로 한번 더 한숨을 내쉬고 책을 챙겼다.
이 책을 정리할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의심받지 않게 행동해야지.
책을 챙기며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나, 아드리아스에 대해 생각했다.
게임에 센스가 없던 나는 모든 요소를 필기하며 플레이 했기에 아드리아스처럼 비중 없는 캐릭터도 알고 있었다.
일단 이 녀석은 게임 초기에 금방 죽는다.
모든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죽인 건 아니지만 적어도 12명의 캐릭터 중 일고여덟 번은 죽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보잘것없는 마법사를 굳이 왜 죽여야 했냐고?
이 녀석의 마법사 신분은 위장이다.
진짜 정체는 흑마법사.
그중에서도 사령술과 강령술을 다루는 네크로맨서였다.
나는 이 세계관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마법사인 네크로맨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