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폭발 (88/128)


#88화. 폭발
2022.09.01.


해가 저물어 갔다.

연주단의 음악도 그에 어울리는 낮고 잔잔한 선율로 바뀌었다.

5월의 연회를 즐기고 있던 유라의 어머니 유화연은 재희와 함께 서 있는 무혁을 보며 아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아까워. 우리 유라랑 딱이었는데.”

한때 유화연과 유라의 아버지 한진근 회장이 그토록 탐내던 무혁이었다.

그래서 혜란이 슬쩍 유라와의 맞선을 언질했을 때 두 손 들고 환영했었다.

비록 지금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지만, 이번 대한 백화점 리모델링 사업 때 아들 한유석과 합을 맞추는 걸 보니 사업파트너 관계로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이 참 잘 어울리기도 하고.’

신재희를 실제로 처음 봤을 때 유화연은 J 갤러리 관장 박명주가 왜 탐을 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용하고 선한 인상이 자기 아들인 한유석과도 퍽 잘 어울려서 아쉽기만 했다.


“우리 유라와도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둘이 동갑이니 나중에 재희와 유라를 서로 소개시켜 주리라 마음먹으며, 유화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유라, 얜 어디로 간 거람.”

곧 혜란이 그토록 공을 들였던 미셸과 일러스트레이터의 만남이 있을 예정이었다.

오늘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에 유라가 자리를 비우니 유화연은 속이 탔다.


 

* * *

한편 옷 갈아입히고 휴게실에서 울다 지쳐 잠든 도화의 배를 다독여 주던 세라의 표정은 차가웠다. 좀처럼 울음을 그칠 줄 모르고 울어대던 도화가 잠들기 직전에 한 말 때문이었다.
 


“그냥 그 언니가 세 번째로 이쁘다고 말한 것뿐인데 갑자기 도화를 밀쳤어. 안 넘어지려고 했는데, 넘어졌어. 미안해. 엄마. 도화가 미안해.”

 
몸도 마음도 약해져서 내내 병원에 있었던 도화가 아주 잠깐 걷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열심히 재활을 한 덕에 이젠 무리 없이 뛰고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도화는 그때 힘들어하던 세라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었다. 그 모습이 더 가슴에 사무쳤던 세라였기에, 도저히 유라가 한 짓을 용서할 수 없었다.

뒤에서 세라의 눈치를 살피던 케빈이 시간을 확인하곤 가까이 다가왔다.


“세라. 이제 나가야 해.”

“케빈. 나 지금 잘한 걸까.”

“…….”

“도화의 은인이라서 라윤 갤러리에 찾아달라고 부탁한 건데, 지금은 좀 후회돼.”

잠들기 전 도화의 표정을 본 뒤로 세라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케빈은 한숨을 내쉬며 세라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그 일러스트레이터, 도화가 좋아하잖아.”

“…….”

“도화가 스스럼없는 성격이긴 해도 무딘 아이는 아니야.”

천진난만해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도화는 예민한 성격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함부로 안기는 성격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도화가 스스럼없이 몽마르트르에서 처음 본 재희와 무혁에게 안겼다. 유라에게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 것도 분명 재희와 무혁의 영향이 큰 듯했다.


“도화가 그렇게 다른 사람 품에 답삭 안기는 거 나 처음 봤어.”

“…….”

“자기가 좋아하는 동화책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재희 씨인 걸 알면 도화도 분명 좋아할 거야.”

“그래. 중요한 건 재희 씨가 내가 찾던 일러스트레이터란 사실이지.”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그런 세라가 마음을 바꾼 것도 재희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지.”

다시 한번 마음을 굳힌 세라가 도화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다.


“도화야. 일어나 봐.”

이미 실컷 잠을 잤던 도화였기에, 작은 흔들림에도 금세 눈을 떴다.


“도화야. 언니 만나러 가자.”

“언니?”

“응. 도화가 좋아하는 재희 언니.”

“갈래!”

재희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도화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직 눈가에는 붉은기가 남아 있지만, 도화의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났다.

* * *

조금 급하게 주문했음에도 훌륭하게 인쇄된 삽화가 장독수의 그림 바로 아래 걸렸다.

마침 해가 지는 저녁 풍경과 잘 어울렸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삽화에 집중되었다.


“저게 오늘의 하이라이트인가.”

내내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던 강진이 혜란에게 와인을 건네주며 물었다. 한 번도 이런 적 없던 남편이 와인을 건네주자 혜란이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대꾸했다.


“맞아요. 지금을 위해서 내내 5월의 연회를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기대되는군.”

“의외네요. 당신이 내 일에 기대된다는 소리도 다 하고.”

혜란의 가벼운 타박에도 강진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시선이 다정하게 서 있는 재희와 무혁에게 향했다.

하루 내내 무혁은 거의 재희와 붙어 있다시피 했다.

이미 이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무혁이 얼마나 재희를 아끼는지 확인했지만, 오늘은 더 와닿았다.


“인제 그만해야겠군,”

강진 역시 자식을 사랑하긴 했다.

다만, 천상 기업가인 그는 무혁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사랑보다는 책임을 더 지웠다.

변덕으로 5월의 연회에 참가했지만, 강진은 연회에서 여러 모습을 보았다.

특히, 결혼한 지 몇십 년 만에 처음 본 혜란의 모습이 줄곧 시선에 걸렸다.

처음 도착했을 때 혜란과 잠시 다투었을 때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짧게 다투고 끝났지만, 강진은 처음으로 혜란에게 입은 옷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했다.
 


“제정신이에요?”

 
혜란이 놀란 듯 그렇게 대꾸했지만, 볼이 약간 붉어진 걸 보니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손님들이 강진과 혜란이 나란히 서 있으니 보기 좋다고 칭찬하니 혜란은 기쁜 듯 웃어 보였다. 아무리 쇼윈도 부부였어도 몇십 년을 함께 산 부부였기에 강진은 그 웃음이 거짓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당신, 여행 가고 싶단 생각은 안 드나?”

“여행이요?”

갑작스러운 강진의 말에 혜란이 미간을 좁혔다.

이 영감탱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번 5월의 연회가 끝나면 어디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설마 당신과 나 말하는 건가요?”

“그래.”

“시간은 낼 수 있고요? 난 사람 몰리는 거 싫어서 평일을 선호해요.”

혜란이 코웃음 치며 대꾸하자 강진이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일 언제 가고 싶은지 정해두도록 해. 시간을 내 볼 테니.”

“지금 진심이에요?”

“그래.”

강진의 근엄한 얼굴을 보던 혜란이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정말 진심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혜란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죠.”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알리는 시간이 되자 혜란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강진의 제안보다는 더 큰 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상에 올라간 혜란은 한 비서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받아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오늘 시간 내어 5월의 연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매년 열렸던 5월의 연회이지만, 올해는 더욱 뜻깊습니다. 한 번도 내한한 적이 없던 프랑스 화가 미셸이 오늘 이곳에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정원 여기저기서 기대에 찬 술렁거림이 번졌다.

혜란은 정원으로 나오는 입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해가 지면서 노을이 옅게 깔린 오후.

미셸과의 인연을 만들어준, 노을빛이 가득한 삽화 뒤에서 원작자가 걸어 나오도록 연출하여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주인공인 재희는 입구 안쪽 갤러리 로비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고대하던 일이 벌어지려는 찰나여서 그런 걸까.

혜란은 전율로 온몸이 가늘게 떨렸다.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셸이 특별히 우리 라윤 갤러리에게 찾아달라 요청한-.”

“일러스트레이터 한유라입니다.”

갑자기 난입한 목소리에 혜란의 표정이 굳어졌다.

술렁이던 인사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어느 한 곳에 집중되었다.

또각.

높은 힐을 신고 화사한 연분홍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유라의 귀에 화려한 귀걸이가 반짝였다.

유라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재희를 힐끗 바라보았다.

재희는 당황한 얼굴로 굳어 있었고, 무혁은 그런 재희의 어깨를 감싸며 싸늘한 얼굴로 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라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신재희.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유라는 불쾌한 얼굴로 미간을 좁힌 채 서 있는 혜란 앞에 서며 싱긋 웃었다.

그러곤 손에 들고 있던 그림을 일부러 정원에 모인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훑으며 혜란에게 내밀었다.

장제우가 마침내 완성한, 동화책의 삽화와 비슷한 화풍의 그림이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어머니. 부탁하신 그림 겨우 완성했지 뭐예요.”

“유라 너-!”

“어머니.”

유라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혜란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제가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고 말씀할 생각이에요?”

“뭐?”

“착오가 있었다고, 신재희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말씀하실 생각이냐고 물었어요.”

“너 지금 무슨 말을.”

“전 어머니를 좋아해요.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일러스트레이터가 신재희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으실 거예요.”

“뭐?”

“신재희는 오늘 여기서 끝날 거니까.”

혜란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일전에 관장실에서 봤던 모습과 달랐다.

지금의 한유라는 악과 독기만이 남아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동안 제게 사근사근하게 굴던 모습이 모두 꿈이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유라의 섬뜩한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 * *

한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케빈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 세라.”

“무슨 상황이긴. 라윤 갤러리가 일러스트레이터를 바로 옆에 두고도 못 찾았단 소리지.”

“아하. 그럼 전시회 관련 논의는?”

“재고의 여지도 없어. 거절해. 라윤 갤러리는 내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으니까.”

신재희를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소개했다면 세라는 기꺼이 전시회 제안을 수락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유라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믿고 있는 라윤 갤러리와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좋아.”

단호한 세라의 말에 케빈이 씩 웃으며 굳어 있는 혜란과 유라에게 향했다.

세라의 품에 안겨 있던 도화가 불안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엄마. 재희 언니 안 만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건지 도화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세라는 그런 도화의 등을 다독이며 고개 저었다.


“아니야. 만날 거야. 지금 말고.”

“으, 응.”

도화의 작은 손이 세라의 옷을 꼭 쥐었다.

* * *



“실례합니다. 관장님.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 한유라 씨?”

케빈은 충격으로 굳어 있는 혜란과 유라를 번갈아 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제가 들은게 맞다면 지금 미셸이 찾아달라고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한유라 씨고, 라윤 갤러리로 한유라 씨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알고 계신 겁니까.”

“네. 제가 바로 미셸이 찾던 일러스트레이터랍니다. 그 증거로 제가 직접 이 그림도 그려왔고요.

유라가 혜란이 대답하기도 전에 선수 치며 그림을 보여주었다.

유라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케빈의 입술 끝이 삐뚤어졌다.


“한유라, 너!”

화를 내려던 혜란의 말을 케빈이 잘랐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왠지 좋지 않은 예감에 혜란의 얼굴이 굳었다.


“저 여성분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미셸은 라윤 갤러리 50주년 특별 전시회 논의 자체를 거절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잠깐. 아니에요. 진짜 일러스트레이터는 유라가 아니에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혜란이 단상에서 허겁지겁 내려오다 휘청거렸다.

가까이 있던 강진이 얼른 잡아주었지만, 혜란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셸은 한유라 씨가 일러스트레이터라면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내 말 좀 들어봐요! 오해하고 있어요. 한유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에요.”

“미셸은 이미 결정을 내렸고 번복은 없습니다.”

들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 가차 없는 케빈의 말에 혜란이 충격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엄마!”

“여보!”

옆에서 강진과 우진이 뭐라 뭐라 외치며 부축하는 게 느껴졌지만, 혜란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 라윤 갤러리 50주년 전시회가 이렇게 어이없게…….’

몇 년 동안 공들이고 애써왔던 기획이었다.

그런데 유라의 거짓말로 손 쓰기도 전에 어이없게 무산이 되자 혜란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온 가족이 참석했는데, 그 결과가 처참하자 혜란의 높은 자존심마저도 산산이 부서졌다.


“미셸이 찾던 일러스트레이터가 나란 거 못 들었어요?”

단상에서 내려온 유라가 그림을 케빈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이고, 그쪽에서 먼저 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잖아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유라는 속으로 불안해했다.


‘어떻게든 미셸의 마음을 돌리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해.’

안 그러면 모두가 모인 이 자리에서 유라는 그야말로 끝이었다.


“당장 미셸더러 나오라고 해요. 내가 직접 만나서 얘기할 테니까!”

“미셸은 당신과의 만남을 원치 않습니다.”

케빈이 냉정하게 딱 잘랐지만, 유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계획이 꼬이자 순간 평정심이 무너진 탓이었다.


“지금 내가 직원 따위랑 얘기할 사람으로 보여? 미셸 어딨어? 내가 직접 만나야겠어!”

“아뇨. 유라 씨는 미셸과 만날 자격 없어요.”

재희가 삽화 뒤에서 무혁과 함께 걸어 나왔다.

단상으로 걸어오는 재희는 뒤에 걸린 삽화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재희가 삽화의 원작자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유라 씨는 미셸이 찾아달라고 요청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니까요.”

유라의 눈이 당장 험악해졌다.

독기를 품은 그 시선에도 재희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유라의 앞에 섰다.

재희는 유라를 똑바로 마주 보며 출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유라 씨. 여기 5월의 연회에서 나가요. 당장.”

“지금 나한테 나가라고 한 거야?”

“네. 나가지 않으면 당장 시큐리티를 불러서 쫓아내겠어요.”

“지금 누구한테 그딴 말을 하는 거야? 50주년 특별 전시회, 이대로 물 건너가는 건데 괜찮겠어?”

“유라 씨는 그럴 권한 없다는 거 잘 알 텐데요.”

“내가 누군지 잊었어? 난 미셸이 찾는 일러스트레이터야!”

“아뇨. 일러스트레이터는 저예요. 한유라 씨가 아니라.”

재희와 유라의 대치를 지켜보던 정원 곳곳의 사람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두 분이 서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말씀하시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던 세라가 걸어 나왔다.

재희가 세라를 보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으신 대로입니다. 미셸이 찾는 일러스트레이터는 저입니다.”

“그럼 라윤 갤러리에서 찾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본인이라고 우기는 저분은요?”

“거짓말입니다.”

티 한 점 없는 맑은 재희의 눈동자를 본 세라가 빙긋 웃었다.

거짓말과 악으로 가득 찬 유라의 말보단 재희의 말이 훨씬 더 신뢰가 갔다.


“지금 일에 대해선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아까 한 말은 다시 한번 재고를…….”

초조해질 대로 초조해진 유라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신재희! 뻔뻔하게 어디서 거짓말을……!”

<신재희, 그년이 감히 날 물 먹였다고! 내가 그 아줌마 눈에 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유라의 말을 자르며 정원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유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고 정원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화 상대방의 목소리는 잘렸지만, 유라의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라윤 갤러리 정원에 다시 한번 크게 울려 퍼졌다.


<김혜란, 그 잘나신 라윤 갤러리 관장을 말하는 거지, 누굴 말하는 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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