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데이트 (60/128)


#60화. 데이트
2022.05.26.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연결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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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씨!”

오후 업무가 한창인 시간.

박정수가 욕설을 내뱉으며 책상에 휴대전화를 던졌다.

퍽, 소리가 나며 휴대전화가 저 멀찍이 날아갔다.

팀원들은 ‘또 시작이네’ 싶어 팀장인 박정수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다가 시선을 거둬들였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저 또라이가 또 별 트집을 잡아 괴롭혀 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백으로 갑자기 팀장 자리에 떡하니 들어앉아서 하는 일 없이 온갖 갑질을 해대는 것도 짜증 나는데, 주기적으로 혼자 난리를 치니 팀원들은 이미 마음속에 사직서를 하나씩 품고 있었다.

팀원들이 그런 생각 하거나 말거나 박정수는 감히 제 전화를 냉정하게 끊은 재희에게 분노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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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지금도 날 좋아하는 게 맞는데.”

박정수가 알던 재희라면 이런 반응이 나와선 안 되었다.

오히려 조마조마해야 하고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야 했다.

박정수가 아는 재희라면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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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기가 원하는 걸 안 해줘서 그런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박정수가 비릿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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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아무리 신재희라도 그사이 물욕이 생겼겠지. 유라의 약혼자까지 뺏은 거 보면.”

박정수는 지난 모임에서 유라가 한 말을 떠올렸다.

* * *

박정수는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을 때, 저에게 다가온 유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유라가 상처받은 얼굴로 술잔을 매만지며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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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무혁 오빠, 내 약혼자였어. 어머님 체면을 봐서 잠깐 얼굴을 비추러 간 거였는데, 거기서 그 여자에게 홀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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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란 게 혹시 신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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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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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내가 바로 강무혁이 탐낸 신재희의 전 남친이었다고.”

 
박정수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쭉 폈다.

미대에서 여신이라 소문난 재희와 3개월 동안만이라도 사귀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박정수에겐 큰 자부심이었다.

박정수는 한유라, 네가 말 걸고 있는 남자가 이렇게 대단한 남자란 걸 자랑하듯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가슴을 더 크게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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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야. 무혁 오빠 정도면 욕심이 나니까 전 남친을 버리고서라도 꼬리 치고 싶었겠지.”

 
유라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박정수를 훑었다.

박정수는 낮잡아보는 듯한 그 시선에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제 취향인 유라의 외모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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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다고 정수 오빠가 모자란단 소리는 아니야. 다만, 아직도 정수 오빠에게 미련이 있어 보이는데 돈 보고 선택한 그 결혼 생활도 불만족스러워 보여서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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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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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윤 갤러리에 자주 놀러 가다 보니 재희 씨랑 조금 친해졌거든. 그때마다 결혼 생활에 불평불만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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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가 그럴 리가 없는데.”

 
박정수가 알던 신재희라면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묵묵히 감내했으면 했을 성격이었다.

그래서 박정수는 더 아쉬웠다.

조금만 좋아하는 걸 쥐여주면 제 맘대로 다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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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면 사람이 변할 수 있는 시간이야. 그동안 세속적으로 변했을지 누가 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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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가.”

 
박정수가 어리숙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 같이 들렸다.

그때 유라가 몸을 가까이 기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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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우리 유라. 적극적이네. 우리 잠시 나갈까.”

 
은근한 그 행동에 박정수가 실실 웃으면서 유라의 어깨를 감싸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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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수 오빠. 신재희랑 잘해봐.”

 
유라가 밀당하듯 몸을 뒤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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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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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신재희가 정수 오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잘해보라고.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야 행복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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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네가 더 마음에 드는데.”

 
박정수가 유혹하듯 유라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유라가 박정수의 뺨을 손으로 조금 세게 밀어내 버렸다.

술에 취했던 박정수가 그 힘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파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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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 혼자 뭐 하냐.”

박정수는 주변에 있던 친구들의 비웃음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유라에게 시선을 빼앗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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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정수 오빠가 마음에 드는데. 아직은 받아줄 수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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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왜? 신재희고 무혁이고 뭐고 깨끗하게 잊고 우리끼리 예쁜 사랑 하면 돼! 내가 너 하나 행복하게 못 해줄 것 같냐?”

 
박정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뽐내며 가슴을 탕탕 치고는 큰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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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에게 받은 내 상처가 아직 안 나았는걸. 그러니까 정수 오빠. 이 상처가 아물 때까진 나도 정수 오빠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유라의 말에 실망한 박정수는 이어진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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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르지. 둘이 이혼한다면 정수 오빠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 * *

거기까지 생각을 끝낸 박정수가 저 멀리 던져버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휴대전화 액정 구석이 깨져있자 박정수는 더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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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봐! 구경났어? 일 똑바로 안 해?”

괜히 팀원에게 화풀이하며 씩씩대던 박정수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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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강무혁. 그 새끼 이혼시키면 난 유라를 얻고, 강무혁은 엿 먹이고. 일석이조네.’

전부터 강무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옆에서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무혁은 박정수에게 거의 무시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거기에 내심 앙금이 쌓여 있던 박정수는 강무혁을 이혼시킬 생각에 짜릿해졌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박정수는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시고 올 생각으로 그대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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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재희의 생일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변함없는 평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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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찍 들어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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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오?”

무혁의 말에 아침을 먹던 재희가 고개를 들었다.

무혁이 노릇노릇 잘 구워진 토스트에 버터와 딸기잼을 정확히 딱 반씩 발라 재희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재희가 좋아하는 조합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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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라곤 해도 9시는 넘을 겁니다. 그래도 저녁 식사하고 같이 산책하고 싶습니다.”

무혁다운 진심이 담긴 투박한 데이트 신청이었다.

재희는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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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지금은 안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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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일 하나는 어느 정도 마무리 들어가서, 여유 시간이 조금 생겼습니다.”

대한 백화점 리모델링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윤 비서가 억지로 비워낸 시간이었다.

나날이 쌓여가는 피로회복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윤 비서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재희는 신혼여행 이후 오랜만에 무혁과 함께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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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요. 저녁에 준비하고 있을게요.”

무혁은 약간 상기된 재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팔을 뻗어 가만히 볼을 감쌌다.

재희가 피하지 않고 마주 보자, 무혁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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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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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론이에요.”

망설임 없는 재희의 대답에 무혁의 커다란 몸이 일으켜졌다.

촉.

따스한 입술이 잠깐 닿은 후 떨어지자 재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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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 아주머니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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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무혁의 말대로 경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부지런히 제 할 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못 말리겠다는 듯 재희가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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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녁에 기대하고 있을게요.”

 

* * *

저녁 9시가 되자 무혁이 칼같이 시간 맞춰 귀가했다.

조금 멀리 나가자는 무혁의 권유에 재희는 고개를 저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무혁이 피곤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그와 나란히 손잡고 느긋하게 길을 걷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동안 무혁의 늦은 퇴근 때문에 좀처럼 하지 못했던 외식도 오랜만에 하기로 했다.

차에 오른 무혁이 당연하다는 듯이 재희에게 안전벨트를 매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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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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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선뜻 대답 못 했던 그때와 달리 재희가 바로 대답했다.

무혁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그 마음과 다르게 그의 입에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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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겁니까.”

무혁을 만나면서 호사스러운 음식은 실컷 먹었었다.

신혼여행으로 간 프랑스에서조차 ‘헉’소리가 나는 고급 레스토랑 위주로 다니기도 했고, 경자의 음식 솜씨도 뛰어나서 어쩐지 그간 입이 호사스러워진 기분마저 들었다.

언제나 무혁과 먹는 음식은 다 맛있었지만, 오늘은 재희가 따로 먹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재희는 낮에 무혁이 레스토랑을 예약하려는 걸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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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는 못 먹는 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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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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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오랜만에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재희의 말에 무혁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며 어디든지 바로 달려갈 기세에 재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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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돼지껍데기.”

 

* * *

와글와글.

벽 한 편에 촌스러운 글씨체로 [튀는 돼지껍데기]라고 써진 간판을 단 가게 안은 시끄러웠다.

늦은 시간임에도 맛집인 듯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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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혁은 불판에서 치이익, 먹음직스러운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돼지껍데기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무혁의 시선이 불판 한쪽에서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에 닿았다가, 돼지껍데기를 기대에 찬 눈으로 보는 재희에게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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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다 됐어요. 이제 드시면 됩니다.”

돼지껍데기를 먹기 좋게 잘라준 아주머니가 자리를 떴다.

음료수를 따르던 재희가 무혁의 시선에 민망한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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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돼지껍데기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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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묵히 응시만 할 뿐 무혁이 대답하지 않자, 재희가 서둘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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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안 맞으면 지금이라도 다른 데 가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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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좋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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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아할 것 같았어요?”

무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예의 덤덤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무혁에게 재희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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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랑 어디서 뭘 먹어도 사실 다 맛있지만, 가끔은 이런 소란스러운 가게에서 부담 없이 먹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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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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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동기끼리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왔었거든요. 그래서 무혁 씨랑 한 번쯤은 꼭 같이 오고 싶었어요.”

탁, 가게 상호처럼 잘 익은 돼지껍데기 하나가 불판에서 튀어 올랐다.

무혁은 어쩐지 생기가 도는 재희의 얼굴을 보며 티 나지 않게 웃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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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무혁이 젓가락으로 돼지껍데기 하나를 집어 콩고물을 묻혀 재희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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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희 씨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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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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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냈던 그 시간이 무색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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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오늘 대화 많이 나눠요.”

재희도 돼지껍데기에 콩고물을 잔뜩 묻혀 무혁의 접시에 놓아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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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조금씩…… 서로에 대해서요.”

무혁은 돼지껍데기 하나를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재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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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조금씩 서로에 대해.”

서로 떨어져 있었던 그 시간을 메꾸기 위해선 앞으로 얼마만큼 시간을 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많았다.

재희가 무혁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무혁이 재희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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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녁을 먹은 둘은 근처 공원을 걷기로 했다.

재희는 가게에서 나올 때 무혁과 꼭 마주 잡은 손을 살짝살짝 흔들면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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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아주 따뜻해졌네요. 우리가 결혼할 땐 추운 2월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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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벌써 그렇게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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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요? 무혁 씨 처음에 되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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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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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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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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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비록 몇 번 만나지 못했을 때였지만, 무혁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진심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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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만나지 못했다라.”

무혁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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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이 아닐지도.’

무혁은 맞선으로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이렇게 재희와 얼굴을 마주 본 적이 없었음을 상기했다.

거기다 갓 대학에 입학한 재희를 서점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잠깐 본 이후로 바로 유학을 떠났으니, 그동안 재희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변했는지 무혁은 알 수 없었다.

8년이라는 공백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자신도, 재희도 변하기 충분한 시간.

다만, 확실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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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재희 씨에게 결혼하자고 했을 겁니다.”

무혁은 재희가 어떤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든 청혼했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몇십 년이 흐르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문득 재희의 걸음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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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무혁 역시 걸음을 멈추고 재희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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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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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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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답은 언제나 하나뿐입니다. 재희 씨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재희 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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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 이유가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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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무혁이 성큼, 재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재희는 피하지 않고 무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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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씨 생일 때, 그때 다 말해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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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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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재희 씨여야만 했는지.”

재희와 무혁이 처음 만났던 곳은 노을 서점이었다.

그러니 무혁은 노을 서점에서 모든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재희의 생일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무혁의 속 모를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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