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아침식사2022.02.03.
“정말 괜찮겠어요?”
경자가 연신 걱정된다는 듯 안절부절못했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집에 가셔서 푹 쉬세요.”
“하지만 이게 제 일인데…….”
“오늘 장 보는 거 같이 도와주셨잖아요. 충분해요.”
재희가 다독였지만 경자의 얼굴에선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알겠어요. 사모님. 그래도 혹시라도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새벽에라도 달려올 테니.”
“네. 얼른 들어가 보세요.”
경자는 손을 흔드는 재희를 연신 돌아보다가 마지못해 문을 나섰다. 이 집에서 일하게 된 지 딱 일주일 만에 경자는 하루 휴가를 받았다. 그러나 휴가를 가는 경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저렇게 착한 사모님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못살게 구시는 건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받고 나면 항상 어두운 안색으로 서재에서 나오는 재희를 자주 봤었다. 속이 말이 아닐 텐데도 재희는 경자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웃곤 했다. 그 웃음이 더 안타까워서 경자는 일부러 모른 체해주었다.
‘아무리 시어머니 심술은 하늘이 내린 심술이라고 해도 그렇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혼나는 재희를 보며 경자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 * *
“이건 여기에 넣고…… 이건 여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재희는 냉장고에 밑 준비를 한 재료를 정리했다. 며칠째 무혁의 출근은 이르고, 퇴근이 늦어졌다. 같이 식사는커녕 몇 마디 대화조차 힘들어진 요즘. 아침에 혜란의 전화를 받고 나서 재희는 작업도 미루고 바로 장을 봐왔다. 그러곤 경자에게 이틀 휴가까지 주었다. 처음 제 손으로 차리는 아침이어서 무혁과 단둘이 오붓하게 아침을 먹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오늘도 늦는다고 했지.”
휴대 전화를 고친 무혁은 결혼 전처럼 딱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해오곤 했다. 오늘도 늦을 테니 먼저 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무혁과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재희는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예쁜 종이에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오늘은 먼저 잘게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걸 준비해 놨어요. 출출하면 꼭 먹어요.] 반찬 덮개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 재희는 침실로 들어가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내일 무혁과 함께 아침 식사할 생각을 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 * * 눈이 떠졌다. 신경을 세우고 자서 그런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 재희는 옆자리를 먼저 살폈다. 무혁이 재희 쪽으로 돌아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무혁은 재희를 끌어안고 있었다.
‘피곤해 보여.’
방안은 어두워도 무혁의 얼굴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결혼 전에도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근래 들어 더 피곤해 보였다. 재희는 저도 모르게 무혁의 뺨으로 가져가려던 손을 다시 거뒀다. 혹시라도 무혁이 깰까, 싶은 걱정 때문이었다. 단 몇십 분이라도 조금 더 무혁이 자길 바라며 재희는 무혁의 팔을 풀어낸 뒤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무혁은 꽤 피곤했는지 제 품에도 재희가 벗어났는데도 깨지 않았다. 씻고 머리를 질끈 묶으며 부엌에 오자마자 어제 식탁에 놓아둔 간식을 살폈다.
‘어제 간식을 먹었나 보네. 입에 맞았을까.’
간식을 비운 그릇은 말끔하게 설거지 되어 있었다. 재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베란다 커튼을 걷었다. 새벽 5시. 아직 해도 뜨지 않는 시각이었지만 한강을 낀 도로에는 드문드문 차가 달리고 있었고, 한강 건너편 아파트에도 이른 시작을 하는 집이 보였다. 잠시 서울의 새벽을 감상하던 재희는 본격적으로 식사 준비를 했다. 결혼 전에도 곧잘 그 집의 영산댁을 도와 식사 준비하던 재희였다. 특히 까다로운 할머니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어지간한 요리는 할 줄 알게 되었다. 아침이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든든한 음식을 위주로 차려내니 그럴싸한 식사가 준비되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침상을 보던 재희는 사진을 찍고 혜란에게 전송했다. 혜란이 시간이 언제가 되든 상관없으니 바로 보내라고 일러둔 덕분이었다.
‘이제 같이 아침 먹으면서 그동안 못한 이야기 해야지.’
혜란의 명령에 시작한 아침상이었지만, 무혁과 마주 보고 앉아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할 생각에 재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을 때였다.
“……뭐 하고 있습니까.”
“일어났어요?”
막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를 쓸며 무혁이 성큼 다가왔다.
“이 새벽에 안 자고 뭐 하고 있습니까.”
“무혁 씨랑 같이 아침 먹으려구요. 얼른 씻고 와요. 국만 데우면 돼요.”
무혁의 시선이 식탁으로 향했다. 그릇에 예쁘게 담긴 음식들. 분명 하나하나 정성 들여 준비했을 음식들을 보던 무혁이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뭔가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싱거운 그의 반응에 설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제 막 일어났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겠지. 재희는 갓 지은 밥을 그릇에 담고 무혁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옷을 갈아입은 무혁이 식탁에 앉았다. 무혁이 수저는 들 생각도 하지 않고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기만 하자 재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음에 들어요? 아침이니까 속에 안 부대끼면서도 든든한 메뉴로 만들었어요.”
“전부 다 재희 씨가 한 겁니까?”
“전부는 아니고…… 아주머니께서 밑 재료 준비를 도와주셨어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희가 하려 했지만 경자가 극구 거부하며 기어이 밑 재료를 준비해 주었다. 덕분에 빠른 시간에 밑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무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수저를 들고 한입 먹자 재희는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름 솜씨를 부려본 거라 무혁에게서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혁은 묵묵히 식사에 집중할 뿐, 단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무혁이 먼저 ‘맛있다’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조금씩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던 재희의 계획이 처음부터 무너졌다. 초조한 눈으로 무혁의 기색을 살피던 재희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어때요? 입에 맞아요?”
“네.”
“다행이에요. 무혁 씨 입에 안 맞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거든요.”
“…….”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무혁은 대답만 간단히 했고, 애초에 말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재희도 서서히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운 무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하게요? 그럼 오늘 저녁은…….”
“앞으론 아침 같은 거 준비하지 마십시오.”
“…….”
단칼에 자르는 무혁의 말에 재희가 입을 다물었다.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지만, 예민한 재희는 알 수 있었다. 무혁이 드물게 지금 화가 난 상태인걸.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딱히 실수한 건 없었다. 오히려 실수를 하려 해도 그럴 틈도 없었다. 몇 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했고, 무혁은 식사에만 집중했으니까. 재희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았어요? 미안해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말해주면…….”
“재희 씨.”
아까보다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에 재희는 저도 모르게 옷자락을 꾹 쥐었다.
“난 원래 아침 안 먹습니다.”
“…….”
“음식 준비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재희 씨가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
“…….”
“도우미 아주머니를 괜히 고용한 거 아닙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하게 가라앉았다. 재희는 망연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무혁은 그런 재희를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생각이 읽히지 않는 남편의 시선을 마주하며 재희가 바싹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요. 아침을 안 먹는 줄 몰랐어요.”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Rrrr 휴대 전화 벨이 울렸다. 무혁이 휴대 전화를 꺼내 들자 액정에 윤 비서 이름이 떠 있었다. 무혁은 조금 흐트러진 재희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방금 전까지 화를 낸 남편의 손길이 한없이 다정해서 재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침 준비하느라 고생했습니다. 아침도 맛있었습니다. 이제 이만 들어가서 쉬십시오. 오늘도 늦을 것 같습니다.”
무혁은 재희를 안아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재희를 침대에 내려주며 무혁이 허리를 숙여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입맞춤이 함께 밤을 보낼 때마다 하던 진득하고 거친 키스와 다르게 부드럽게 다정해서 재희는 무혁의 심리를 더 종잡을 수 없었다. 무혁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출근을 해버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무혁의 출근 배웅까지 할 생각이었다. 함께 아침을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기분 좋은 배웅까지. 그게 재희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나 무혁은 그걸 원하지 않은 것 같았다. * * * 한참 동안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던 재희는 설거지라도 하기 위해 다시 부엌으로 나왔다. 그러나 식탁은 깨끗했고 그릇도 깨끗하게 설거지 되어 있었다. 무혁이 바쁜 와중에도 설거지까지 끝내놓고 출근한 모양이었다.
‘아까 그렇게 화를 냈으면서.’
무혁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재희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Rrrr 휴대 전화 벨이 울렸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사람은 단 한 사람. [어머님] 휴대 전화 액정에 뜬 이름을 본 재희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너 아침상에 이거 뭐니?
“……무슨 문제라도.”
-무혁이는 달래 같은 거 안 먹는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지만, 무혁이 달래를 입에 댄 걸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런 걸 아침상에 올렸어?
“…….”
-너는 남편 식성도 모르고 뭐 하니? 너 정말 그래 가지고 잘할 수 있겠어?
“죄송해요. 어머님. 주의할게요.”
-오늘 저녁상 사진도 잊지 마렴.
무혁이 뭘 잘 먹고 뭘 못 먹는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혜란은 늘 그랬듯 재희의 인사를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재희는 깨끗하게 설거지 된 그릇을 보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재희는 무혁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달래를 잔뜩 샀었다. 향긋한 달래나 쑥은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그래서 재희는 달래를 좋아했고, 무혁도 분명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무혁이 딱히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싫어하는 거였어.’
저녁 메뉴로 쓰려고 했던 남은 달래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재희의 손이 멈췄다.
‘하지만.’
달래를 싫어한다는 무혁은 달래를 넣은 된장국을 깨끗하게 비웠다. 뿐만 아니라 달래 무침도 깨끗하게 비웠다. 싫어한다는 내색도 없이 묵묵히 무혁은 아침을 모조리 깨끗하게 비웠다.
‘모르겠어.’
말과 행동이 다른 무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겨우 무혁에게 익숙해지나 싶다가도 이럴 땐 또 낯설다. 결국, 갈팡질팡한 마음을 어쩌지 못한 재희는 달래를 버리지 못했다. * * * 요 며칠간 재희가 이상했다. 아침 준비를 하지 말라고 일렀음에도 재희는 꿋꿋하게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재차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재희는 항상 이인분의 아침을 준비했고 두벌의 수저를 놓아두었다.
‘왜?’
무혁은 재희가 아침을 차리는 걸 원치 않았다. 원래 아침을 먹는 무혁이었지만, 그까짓 것 밖에서 먹으면 될 일이었다. 그까짓 아침밥 때문에 재희가 잠까지 줄여가며 고생하는 건 원치 않았다. 보다 못한 무혁이 직접 준비하려 하자 재희가 고집스럽게 무혁을 부엌에서 밀어냈다. 결국 무혁은 매일 아침을 준비하는 재희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처음엔 무혁이 즐기지 않는 음식이 몇 번 나왔다가 갈수록 무혁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딱히 음식을 가리지 않는 무혁이었지만, 재희가 정성스럽게 차려낸 아침상이어서 즐기지 않는 음식도 맛있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맛있었고 차리지 말라고 당부하면서도 무혁은 말끔하게 비웠다.
‘또.’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 무혁은 단 한 번도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 빠르면 11시, 늦으면 새벽에 퇴근하기 일쑤였다. 처음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다가 지금은 매일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분명 재희가 했을 그 밥을 모조리 비우면서도 무혁은 의문이었다.
‘대체 왜.’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을 준비하는 재희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무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를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재희는 작은 몸을 바지런히 움직였다. 무혁은 마치 먹잇감을 관찰하는 맹수처럼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선 채로 재희의 모습을 지켜봤다. 찰칵. 아침상을 다 차린 재희가 사진을 찍자 무혁의 한쪽 눈썹이 꿈틀, 거렸다.
“뭐 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