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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그는 어디 있는가 (74/126)


74. 그는 어디 있는가
2022.07.18.



 
황궁에 도착한 미카일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상자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궁 안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곳곳에서 신음과 비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장 위급한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안내해주십시오.”

“이쪽입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미카일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갔다.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가거나 이미 위독하여 의술로는 살리기 힘든 이들이 병상에 누워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신성력을 이용하여도 생존이 힘들 만큼 많은 부분이 다친 이들은 아예 다른 방으로 분리되었다. 위급한 부상자를 돌보던 프시케가 벌떡 일어나 미카일을 맞이했다.


“사제님!”

하루 만에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황후 폐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예. 황제 폐하 역시 무사하십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프시케와 함께 치료가 급한 부상자에게 다가가면서 미카일은 빠르게 공간을 훑었다.


‘데몬은 어디 있지?’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면 바로 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 방에 없었다.


‘설마, 위급한 부상자로 분류조차 되지 못한 것인가!’

남은 것은 부상이 경미한 자와, 사망자, 곧 사망할 자였다.

이렇게 처참하게 당한 부상자들이 많은데 흑마법사를 직접 상대한 데몬이 경미한 부상일 리 없었다.


‘남은 것은, 곧 사망할 사람과 사망자.’

어느 쪽인가.

어느 쪽이든 그의 가장 가까운 친우를 잃게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미카일의 갈색 눈에 슬픔이 가득했다. 차마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두려운 미카일이 다시 한번 데몬을 찾기 위해 부상자들 사이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사제님!”

데몬의 보좌관 하임이 미카일을 급히 찾았다.

***



“어서, 해! 루시아!”

타나는 혼절했던 루시아를 흔들어 깨우고는 당장 다시 엘리제를 저주하라며 그녀를 다그쳤다. 잘려 나간 팔에서 쉼 없이 피가 쏟아졌다.


“우욱!”

역한 피비린내가 루시아의 속을 뒤집었다.


“다시 한번 저주와 제물이 필요해.”

그러니 저주해! 어서!

그 빌어먹을 방해물을 없앨 수 있도록.


“싫어!”

루시아가 몸을 떨며 거부했다. 타나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루시아를 노려보았다. 붉어진 눈자위와 얼굴에 튄 핏자국들로 마치 눈으로도 피를 흘리는 것처럼 끔찍한 모습이었다.


“싫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저주는 아직 쓸 수 있으니 너를 제물로 사용하는 수밖에.”

자, 이제 살려달라 애원하며 어서 내 말대로 해.


“날……, 제물로 쓴, 다고?”

제물이라니!

너무 무서워 루시아는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꼼짝할 수 없게 굳었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

루시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어마마마!!”

공주의 비명에 타나는 흠칫 놀랐다. 너무 화가 나고 급해서 잊고 있었는데, 이곳은 시에델이고 왕가에는 정령의 힘이 흐르고 있다. 눈앞의 어리석은 공주는 정령의 힘이 전혀 없기에 접근이 수월했던 것이다.


“공주 마마! 무슨 일이십니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공주의 방문 앞에서 시종들이 외쳤다. 타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젠장, 안 그래도 힘이 부족한데…….’

여전히 잘려 나간 팔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정령의 힘을 가진 누군가가 온다면 피곤해질 뿐이었다.

스르륵.

흑마법사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공주 마마! 괜찮으십니까?”

문을 열고 공주의 방으로 시종들이 들어왔다. 공주의 방에 연기와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며 울고 있는 루시아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선혈만이 방 안에 남아 있었다.

***



“공주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엘리제 님을 하루라도 빨리 성녀로 모시고, 부탁을 드려 왕궁 곳곳에 정령수를 비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에델 왕궁에 한밤중 비상회의가 열렸다.

루시아 공주 방에 흑마법사가 침입해서 공주를 제물로 쓰겠다고 협박을 하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왕 페르만과 왕후 그레이스는 당연히 분개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 시에델에 흑마법이 침입할 수가 있단 말이오!”

“누군가 불순한 마음으로 저주를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페르만의 분개에 그레이스가 한탄을 금치 못했다.

루시아는 너무 두려워 사실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저주를 한 것이 자신이며, 그로 인해 오라버니가 죽을 뻔했다는 것, 자신이 한 저주 때문에 협박당하고 있음을 부왕과 모후가 알게 되었을 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어, 어떡해!’

“일단, 공주는 오늘부로 가능한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왕궁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레이스가 루시아를 껴안으며 말했다. 아들에 이어 딸까지 공격해오는 흑마법사를 가만두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어미가 지켜주겠습니다.”

그레이스가 루시아를 안은 채로 시종장에게 말했다.


“날이 밝는 대로 엘리제 님을 뵙고 도움을 청할 테니 아침이 되면 미리 말씀드려다오.”

“예, 마마.”

그 말을 들은 루시아는 사색이 되었다. 모후가 엘리제를 만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 흑마법사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제물을 찾아 저주를 완성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면 대공 각하께서 위험해져!’

차라리, 엘리제에게 부탁하면!

루시아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아닌 엘리제에게 사정해야 할 때임을.

***



“토리, 로떼 이제 괜찮아?”

“뀨 뀨!”

다행히 나의 귀여운 토끼와 다람쥐가 안정을 되찾았다. 보드라운 몸을 내게 비벼대며 이제 편안한지 다시 잠을 청하는 모습이었다.

아까 갑자기 품에 달려들어 날뛸 때는 마가렛도 나도 무척 놀라 최대한 조심하며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데몬도 없고, 그가 무사할까 걱정하고 있는 참에 토리와 로떼까지 불안해하니 솔직히 너무 무서웠었다. 하지만 로떼와 토리가 금세 편안해진 걸 보니 흑마법의 기운이 사라진 모양이다.


“우리는 아무 일 없어 다행이지만, 혹시 또 누가 다치셨을까 봐 걱정이네.”

“맞아요. 이번에는 왕궁에도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요.”

‘그리고 나의 데몬에게도…….’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나는 마가렛과 가슴을 졸이며 계속 기도 중이었다.

조금 전 우리가 확인한 하임의 두 번째 서신에는 황궁으로부터 미카일과 의료진을 보내달라 급히 요청이 와서 황궁으로 향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 안심시키는 말도 한 줄 포함해서.

『……가서 대공 각하를 뵙고 연락을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마가렛.』

연락을 기다리며 애가 탈 여동생을 배려하는 오빠의 마음이 느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애가 닳았다. 속이 모두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간절하게 기도하다 보니 어느덧 날이 모두 새고, 동이 트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똑똑똑.

이렇게 이른 시각에 누군가 우리를 찾아왔다.


“저 루시아예요. 엘리제 님과 급히 상의할 일이 있어요.”

“!”

맙소사! 이 꼭두새벽에 루시아가 날 보겠단다. 게다가 공주가 직접 문을 두드리고 있다니!

머릿속이 미궁인 것은 알았지만 정말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급히 오다니, 혹시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만요.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마가렛이 물어보려고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루시아 공주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엘리제 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녀가 울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루시아는 엘리제의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잠시 둘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청했다. 하지만 지금 데몬도 없는 상황에 밖이 안전한지 알 수 없는데 마가렛을 혼자 두는 것은 위험했다.


“마가렛이 함께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면 저도 듣지 않겠어요.”

엘리제의 단호한 모습에 루시아가 잠시 망설이더니 어쩔 수 없는지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부디 비밀로 해주시면 좋겠어요.”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공주는 난처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후와 부왕께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으니까.


“부탁을…… 드리러 왔어요.”

“공주 마마께서 제게요?”

엘리제는 공주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고 무언가에 쫓기는 불안하고 두려운 눈빛이었다.


“조금 전 제 방에 흑마법사가 나타났어요.”

“!”

루시아 공주의 말에 엘리제와 마가렛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절로 안부가 물어졌다. 토리와 로떼가 가만히 있는 것으로 봐서 루시아에게 흑마법의 영향이 남은 것은 아닌 듯했다. 공주는 계속해서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폈다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괜찮아요. 하지만 흑마법사가 저를 제물로 쓰고 싶다고 했어요.”

“세상에!”

엘리제는 그 두려움을 알고 있다. 머릿속으로만 울리는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팔과 다리. 누구보다도 흑마법의 주술이 어떤 공포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루시아 공주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안타까웠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감사하게도 지금은 정령의 힘이 있으니 흑마법사도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공격은 어렵고 방어밖에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힘이 있다는 사실에 용기가 났다.


“제발…….”

루시아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엘리제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엘리제는 정신이 멍해졌다.


“제발 대공 각하를 사랑하지 말아 주세요.”

“?!”

이게…… 지금 무슨 말인가.


“죄송하지만 제대로 말씀해주시겠어요?”

흑마법사가 공주를 찾아와 제물로 쓰겠다고 협박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엘리제더러 대공을 사랑하지 말라니.


“흑마법사가 엘리제 님을 저주하겠다고 했어요.”

“!!”

거짓말이다. 엘리제를 저주한 것은 자신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전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죄를 털어놓는 고해성사가 아니다. 공주는 그저 데몬을 살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저주의 완성이 엘리제 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를 제물로 쓰겠다고요.”

“……뭐……라고요?”

“제가 아니더라도 흑마법사는 어떻게든 제물을 구할 거예요!”

엘리제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루시아가 이어서 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된다고?’

그녀가 꾸었던 꿈과, 루시아에게 방금 들은 말이 엘리제를 흔들었다.

숨이 턱 막혔다.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엘리제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휘청. 시야가 아득해지며 엘리제의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엘리제 님!”

마가렛이 쓰러지는 그녀를 부축했다. 루시아는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엘리제에게 울며 매달렸다.


“엘리제 님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한, 그분은 죽게 되실 거예요!”

너 때문이야. 네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이런 일을 겪고, 그분도 위험해질 거라고!

루시아는 이제, 마치 엘리제를 탓하듯 말을 뱉고 있었다.


“제발 그분을 사랑하지 말아 주세요!”

루시아의 절규에 엘리제의 몸이 덜덜 떨렸다. 크고 아름다운 금안이 절망으로 가득 찼다.


‘그분께서 위험하신 것이…… 나 때문이라니!’

그가 나 때문에 죽게 되는 거라니.

몸과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

하임의 부름에 미카일은 고개를 돌렸다.


‘데몬의 소식을 알려주러 왔구나!’

자신을 찾아온 하임을 보고 미카일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친우의 보좌관이 곧 부고를 알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헉헉, 대공 각하 혹시, 못 뵈셨습니까?”

한참을 뛰어다녔는지 급히 숨을 몰아쉬며 하임이 물었다.


“데몬이 무사합니까?”

미카일이 오히려 되물었다.

황궁에 오자마자 자신은 위급한 환자가 있는 곳으로, 하임은 주군을 찾겠다고 각자 급히 달렸다. 그래서 미카일은 그가 데몬을 어디서든 발견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임은 여전히 주군을 찾지 못한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표정이 주군의 주검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마치 급한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주군을 찾지 못했을 때의 얼굴과 같았다.


“각하께서 무사하시냐고요?”

하임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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