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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사냥 대회 (55/126)


55. 사냥 대회
2022.05.12.


그사이 페르만은 두 사람에게 사냥 대회가 열리게 되는 배경을 설명 중이었다.

시에델의 사냥 대회는 미로니카의 사냥 대회와는 성격이 달랐다.

시에델은 정령의 나라. 그래서 사냥감을 포획하되 생명을 빼앗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 간의 무위(武威)를 뽐내고 사냥의 긴장감을 즐겼다.

숲에 들어가 동물들을 잡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대회가 끝나면 모두 다시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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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정령의 힘이 깃든다고 믿고 있소. 실제로도 정령의 숲에서 살생하게 되면 그만큼의 피해가 있게 되오.”

그래서 식량을 위해서만 생명을 거두는 것이 시에델의 철칙이었다.

정령의 숲에서 함부로 살생하면 피해나 저주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속설이었으나, 시에델의 사람들은 이를 철저히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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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사냥감을 잡아 오는 사람이 승리하는 건 동일합니다. 단, 부왕께서 설명하신 대로 반드시 산 채로 잡아야 하지요.”

자이드의 설명이 끝나자 페르만이 용건을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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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시에델의 사냥 대회에 두 분의 참석을 부탁하는 바이오”

나라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냥 대회는 시에델의 큰 행사였다.

때마침 성공적인 데뷔 무대 덕에 데몬과 엘리제에 대한 관심으로 시에델이 뜨거웠다.

두 사람이 참석하여 중요 행사인 사냥 대회의 참여율을 높이고 그 열기를 더해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엘리제에게는 사실 선택권이 없는 부탁이었다.

귀빈으로 대우받고 있었고, 기억을 되돌려주려고 애쓰는 왕후에게 수업까지 받는 입장이니까.

이미 과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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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렇게 부탁하시는데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겠지?’

거절하려면 충분한 이유나 명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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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리에 참석만 해주셔도 됩니다. 대회에는 꼭 출전하지 않으셔도 되니 부담 갖지 마십시오.”

데몬은 몰라도 엘리제는 꼭 사냥 대회에 있어 줘야 했다.

자이드가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는 그녀가 그 자리에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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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마력을 사용하면 사냥감이 모두 죽어버릴 테니 대공은 애초에 참여조차 못 할 거다.’

정령의 힘을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산 채로 사냥감을 잡는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파괴의 힘인 마력을 사용하는 자라면 곤란할 것이다.

자이드가 눈을 접으며 아름답게 웃었다.

페르만이 자이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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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소. 그리고 대회의 마지막인 축제도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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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요?”

엘리제가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데몬의 눈이 대번에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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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대회가 끝나면 연회가 열립니다.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회니만큼 젊은 연인들의 고백과 교제 요청이 축제 중에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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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드의 설명에 엘리제는 놀랐다. 시에델에 이런 문화도 있었다니! 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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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남자님께 고백하면 어쩌지?’

이미 제 눈에도 너무 멋진 이 남자에게 빠진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축제에서의 고백이라니, 낭만적으로 들릴 장면이었지만 원치 않는 누군가는 고백을 받고 입장이 난처할 것이 분명했다.

데몬은 사냥 대회 안에 숨은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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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날 대회의 우승자가 누구에게 교제를 요청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가 되겠군요.”

높낮이가 없는 음성으로 데몬이 말했다.

언뜻 화가 난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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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우승자의 고백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마음을 전하게 되지요.”

자이드가 눈을 접어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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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고백을 받은 분께는 보통 예의상 다른 이들도 고백하지 않습니다.”

마치 새겨들으라는 듯 그가 말하며 데몬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자신이 엘리제에게 먼저 고백하고 나면 당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그녀에게 고백하지 말아야 한다는 듯이.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자리이니만큼 대회의 우승자가 교제를 요청한다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상대에게 큰 실례이고 망신을 주는 일이 될 테니. 그러니 마음에 없더라도 엘리제도 일단 고백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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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우승의 영광은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그리고 분명, 그 영광은 자신이 차지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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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아는 왕궁을 드나드는 믿을만한 정보상을 통해 비밀리에 미약을 구했다.

처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그녀는 경악했었다. 아무리 시기 질투에 눈이 먼 철부지라 해도 그녀는 갓 성인이 된 순진한 공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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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그런 걸 사용하지?’

그녀의 예상대로 귀족들의 삶은 음란하고 이상했다.

왕후가 미약을 일컬어 위험하고 저속한 방법이라 말한 이유가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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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다른 방법으로 그분의 마음을 얻어야겠다.’

데몬과 평범하게 모임에서 만나는 것은 어려울 것이나 핑계를 만들어서 자주 만날 수는 있을 것이었다. 가령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입장이 된다면 꾸준히 반복적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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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드 오라버니께 도움을 청해야겠어.’

마침 저 멀리서 오라버니 자이드가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루시아가 치마 끝을 올리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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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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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어디 가는 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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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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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그래. 그 수업이 이제 곧 목적을 달성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자이드가 웃으며 이야기하자 루시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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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치지 마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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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라니, 나는 진지하다.”

자이드가 루시아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루시아가 흠칫 놀랐다. 잘생긴 오라버니가 그녀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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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이라면 내가 생각해도 훌륭한 네 남편감이야. 이번 사냥 대회 때 고백해보는 것이 어떠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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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루시아는 검은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오라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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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대회가 열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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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방금 부왕께도 허락을 받고 엘리제 님과 대공 각하의 참석도 승낙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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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도 오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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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각하께서도 대회에 참가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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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그건 어렵지 않을까? 본국의 사냥 규칙을 알잖느냐.”

그건 그렇지요.

하긴, 대공이 대회에 참가한다 한들 자신에게 고백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이 고백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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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의 축제에서 받는 고백은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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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겠네요.”

그래, 밑져야 본전. 고백이라도 해보자. 최후의 수단은 남겨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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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렇다면 올해 우승자는 오라버니가 되시겠네요.”

현재 시에델에서 정령의 힘이 가장 막강한 사람은 왕후 그레이스, 그다음이 자이드다.

왕후는 사냥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테니, 자이드가 대회의 승자일 것이 분명했다.

자이드는 대답 대신 여동생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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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고백을 하고 교제 요청을 하면 그녀가 절대 거절하지 못할까?’

워낙 예상을 깨는 엘리제니,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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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혹시 고백을 받는다면 어떻게 받고 싶으냐?”

그 말에 루시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데몬이 자신에게 고백을 한다면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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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백을 받는다면…….”

루시아가 부끄러운지 오라버니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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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구체적이구나?”

자이드가 어린 동생을 바라보며 미소 짓자, 루시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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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서 대회가 언제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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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후다.”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

데몬은 엘리제의 기억 찾기가 순조롭게 진행 중임을 로안에게 서신으로 알렸다. 로안은 기쁨의 답신을 보냈고, 미로니카의 황궁에도 별일 없다는 소식 역시 미카일을 통해 데몬에게 전해졌다.

엘리제는 그레이스의 수업에 성실히 임했고 데몬은 그녀의 밤을 며칠 더 지켰으며, 감사하게도 엘리제는 ‘특별한 잠버릇’ 없이 편하게 잠을 이루었다.

며칠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 사이 데몬은 엘리제가 만든 정령수의 힘을 확인하고, 엘리제는 정령의 힘을 물의 형태로 바꾸는 연습을 비밀리에 하고 있었다.

정령수를 만들고 나면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는데, 푹 쉬면 괜찮아져서 약간의 휴식 시간을 두고 일정량의 정령수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엘리제는 작은 성취들에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마가렛은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푸드덕푸드덕, 포르르 포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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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잔뜩 왔는데요?”

그녀가 엘리제의 방 창문 앞에 잔뜩 앉은 새들을 바라보며 푸념했다.

얼마 전부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아예 엘리제의 창문 근처에 둥지라도 튼 듯이 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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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청소하기가 점점 힘들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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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갑자기 여기가 마음에 들었나? 왜 이렇게 떼 지어 몰려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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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에요.”

엘리제의 방은 3층에 있었다. 왕궁의 3층이면 큰 나무와 높이가 비슷하니 높은 곳을 좋아하는 새들이 자꾸 날아오는 것인가 싶다.

청소하기 위해 마가렛이 창문을 활짝 열자 화들짝 놀란 새들이 황급히 날아갔다.

그런데 그때, 쪼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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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

열린 창문으로 다람쥐가 빠르게 들어와 엘리제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엘리제는 저도 모르게 다람쥐를 두 손으로 안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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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가렛은 깜짝 놀랐다. 다람쥐는 겁이 많고 예민한 동물이다. 사람을 보고 도망가는 것이 당연한데 되레 다람쥐가 먼저 품 안으로 달려들다니!

게다가 엘리제가 마치 애완동물을 대하듯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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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된 거지?”

엘리제도 어안이 벙벙했다. 마치 주인을 맞이하듯 달려든 다람쥐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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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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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

영문은 모르겠지만 작고 보드라운 생명체는 엘리제의 손이 편안한지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에 마가렛은 갑자기 번쩍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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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것도 엘리제 님의 힘과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요?”

새들에 이어 다람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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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정령의 힘이라더니 설마 동물들이 그 힘에 의해 모여드는 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감해져서 엘리제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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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한데.”

동물사육사가 될 계획은 아직 없다. 엘리제는 다람쥐를 가까이 올려 눈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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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마가렛의 추측이 맞는 거라면 내 힘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작고 동그란 검은 눈을 바라보며 엘리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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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좀 도와줘.”

톡!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작은 생명체의 코가 엘리제 코끝에 마주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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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사냥 대회의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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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피곤하다.”

방금 일어났는데, 전혀 잔 것 같지 않다. 엘리제는 몸을 공처럼 도르르 말며 다시 침대 이불 속으로 숨었다. 그녀의 품에 함께 몸을 말아 잠든 다람쥐는 아직 눈도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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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셔도 다 보여요. 어서 일어나세요.”

언제 들어왔는지 마가렛이 식사 카트를 밀면서 엘리제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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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어제 토리 훈련하느라 늦게 잤는걸…….”

며칠 전 엘리제 방으로 날 듯이 들어온 다람쥐는 이제 ‘토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성이 ‘도’ 이름이 ‘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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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 사냥 대회 날이라서 준비하실 것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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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그랬지?”

며칠간 낮에는 수업과 사업 구상에 밤에는 토리와 정령의 힘을 연습하느라 바빴더니 잊고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사냥 대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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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회 축제 때 우승자께서 제일 먼저 고백을 하시게 된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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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맞아.”

우물우물. 엘리제가 식사를 하며 식탁 위에 앉은 토리에게도 빵과 아몬드를 밀어주었다. 작은 두 손으로 야무지게 아몬드를 잡은 토리의 두 볼이 빵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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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님께 오늘 누가 고백을 하면 어쩌죠?”

마가렛이 걱정되어 물었다. 엘리제는 데몬뿐인데, 아직은 대외적인 관계가 아니니 다른 이들은 잘 모를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데몬이 아닌 시에델의 누군가에게 엘리제가 고백을 받아 데이트라도 하게 되면 어쩌나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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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영애가 대공 각하께 고백하면 또 어쩌고요. 거절하면 안 된다던데요.”

궁의 다른 시종들에게 마가렛도 대회와 축제에 대해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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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둔 것이 있긴 한데…….”

엘리제가 이번엔 토리에게 땅콩을 하나 밀어주며 중얼거렸다.

방법이라니. 받은 고백을 거절할 방법이나 명분을 엘리제가 미리 생각해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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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 대공 각하께서도 참가하실 수 있는 일반 사냥 대회였다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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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그랬다면 미로니카 황국에서도 제일가는 마력과 무위를 지닌 그가 당연히 사냥 대회의 우승자였을 테고, 그가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마음은 엘리제에게 가 있으니 이런 걱정은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엘리제가 식사와 준비를 마치자 문을 두드리고 데몬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토리가 쪼르르 엘리제의 치마 뒤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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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입니다. 엘리제 님.”

근사한 미소와 함께 등장한 그를 보니 엘리제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행복해 가슴이 벅차올랐다.

엘리제가 눈부시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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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좋은 아침이에요, 각하.”

시선을 내린 데몬의 눈에 엘리제 발목 위 반짝이는 발찌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발 옆에 작은 다람쥐 한 마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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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도 오늘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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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제 제법 말을 알아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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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찾게 되면 말씀해주시기로 한 것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데몬의 물음에 엘리제가 자신 있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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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지난 꿈에서 본 붉은 옷이요. 보자마자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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