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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양날의 검 (53/126)


53. 양날의 검
2022.05.05.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방 안 가득 빛과 함께 달콤한 장미 향이 데몬에게 쏟아졌다.

다행히 엘리제가 위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신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색 밝은 빛과 눈부신 엘리제의 모습이 붉은 눈에 담겼다.

가느다랗고 긴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색 빛이 흘러나와 그녀가 들고 있는 병 안으로 주르륵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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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데몬의 동공이 열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에 방 안의 세 명 모두 그 자리에 멈췄다.

이번에도 가장 놀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엘리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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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뭐지?”

어안이 벙벙했다.

찰랑. 잉크병에 가득 담긴 푸른 액체가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엘리제는 반짝이는 푸른 물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달콤한 장미 향이 가득 느껴졌다.

두 번째 각성이었다. 그건 알지만, 이 빛나는 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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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상황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침착하게 묻는 데몬 덕에 엘리제가 차분함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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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구상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마가렛에서 설명을 하던 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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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구상 중이시라고요?”

데몬은 적잖이 놀랐다. 그가 사랑하는 그녀는 오늘 왕녀의 자리를 거절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야무지게도 왕녀 대신 사업가를 꿈꾸는 중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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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델에 놀러 온 것이 아니니까요. 기억을 찾아서 첩에서도 벗어날 거고, 사업을 통해서 경제력도 갖추고 싶어 얼마 전부터 계획 중이었어요.”

엘리제가 분명한 목표를 갖고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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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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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감탄은 일러요. 나중에 제가 돈 많이 벌면 축하해 주세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엘리제가 쑥스러운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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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겠지만, 방금 이 세계 최초의 물건을 만들어내신 것 같습니다.”

데몬이 침착하게 보이는 그대로를 말했다. 그 말에 엘리제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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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물건이라고요?”

최초라니, 그만큼 희소성 있는 무언가가 자신에 의해 만들어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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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대단하셔요!”

마가렛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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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몇 가지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있긴 합니다만, 이용하신다면 계획하시는 사업은 분명 크게 성공할 것입니다. 필요하시다면 대공가에서 판로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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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번엔 엘리제의 입에서도 절로 감탄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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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데몬 말대로 이거 상품이 될 수 있겠구나!’

방금, 그녀도 모르게 자신의 힘을 눈에 보이는 액체의 형태로 만들어 용기에 담아냈다.

정령의 힘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변형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동과 보관이 가능하도록 어딘가에 담기까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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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계속해서 힘을 액체 형태로 담아낼 수 있는지,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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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어느 정도 지속되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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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델을 벗어나서도 효과가 계속되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몇 가지가 있다. 검증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엘리제가 창조한 물건이 가져올 파장은 무척 클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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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화된다면 그녀는 이제 세상에서 유일하게 정령수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이가 될 테니까.’

수 세기 전에 마력을 담아 사용하는 마도구가 있었으나 강력한 마력을 가진 이여도 마력을 담는 일은 쉽지 않았으며, 그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일이라 마도구의 사용은 상용화되지 못했다.

때문에 오랜 역사가 흐르는 동안 마법의 힘이 담긴 물체는 정령석뿐이었다.

그것도 채굴이 무척이나 힘들고 그 양도 적어서 권력의 최상층인 황가에서나 독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령의 힘이 담긴 다른 무엇이라니 아무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데몬이 알아본 바로는 이 시에델도 정령의 힘이 깃든 나라인 것은 분명하나 시에델을 벗어나면 그 힘이 무척이나 약해졌다. 시에델이 폐쇄적이고, 왕가의 사람들이 영토를 벗어나 살 수 없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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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나씩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데몬 덕에 어안이 벙벙하던 엘리제의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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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각성한 건데?’

두 번째 각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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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이 뭐지?”

조건을 알아야 다음번 각성도 가능할 것이었다.

엘리제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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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이요?”

마가렛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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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말하자면 방금 내가 정령의 힘을 각성한 건데…….”

데몬이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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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은 대공 각하 덕분에 가능했던 거였어.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각성이 된 것인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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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이라는 것이 특정한 조건을 달성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고 데몬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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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들었어요. 조건들이 갖춰지면 정령의 힘이 단계별로 열린다고요. 각성하는 열쇠가 ‘이 세계를 살아가는 힘’이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그 답은 엘리제밖에는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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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추측하건대, 방금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이 아닌지요.”

자신을 일으키는 그 무엇.

이 세계를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것이 처음에는 사랑이었다. 데몬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에델에 닿자 그녀의 첫 각성을 가능하게 했다.

조금 전 두 번째는 데몬 말처럼 그녀가 자신을 ‘성장’시키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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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립하려는 마음을 갖고 사업을 구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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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마음은 이미 예전에 가졌는걸요. 그때와 다른 것이라면 각하께서…….”

아!

거기까지 말을 하자, 엘리제는 두 번째 각성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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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구나!’

첫 번째 각성의 조건에 두 번째 조건까지 함께.

앞으로 세 번째 각성을 이루려면 세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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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왕후 마마께서 각성을 한 번밖에 이루지 못한 이유가 있었네.’

엘리제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각성은 진정 어려운 ‘레벨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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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 엘리제는 데몬과의 대화로 각성의 실마리를 풀었다.

하지만 데몬의 마음은 걱정으로 혼란스러웠다.

사실 그녀의 힘이 열리는 것에는 고비가 있고, 각성을 통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이미 예전 하임의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고비를 넘지 못하고 각성에 실패하게 되면 정령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도.

다행히도 엘리제는 시에델에 도착하여 각성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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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녀의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며칠 전 그녀의 각성이 이루어질 때 데몬은 그녀와 입맞춤 중이었다. 날것의 강력한 정령의 힘이 자신의 몸 안으로 그대로 들어와 감당해 내느라 앓아누웠던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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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첫 번째 각성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번이 두 번째 각성이다. 각성은 몇 번째까지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것이 혹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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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험하게 만드는 순간이 와서는 안 될 텐데.’

데몬의 두 눈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모든 강력한 힘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여도 그 힘이 되레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자신의 마력이 강한 대신 폭주를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그녀의 정령의 힘이 강력한 만큼 최후의 각성 때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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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힘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

급한 것은 하임과 미카일에게 전갈을 보내어 미리 모으고, 밤을 이용하여 잠시 미로니카 황국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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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녀가 각성을 새로 이루었다면……!’

그 말은 그녀가 또다시 수면 중 보행 증세를 보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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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손을 들어 올려 눈을 가렸다.

그리고 밤을 이용해 미로니카 황국에 다녀올 생각을 당장 철회했다.

당분간은 다시 뜬 눈으로 그녀의 밤을 지켜야 하니까.

잔인하고 달콤한 고문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

루시아는 사교계에서 왕년에 내로라했던 귀부인들을 초대하여 다과회를 열었다.

명목은 공주의 데뷔를 축하해 준 귀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자리였지만, 루시아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공주의 궁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뜰에서 호화롭게 차려입은 귀부인들이 부채를 흔들며 소리 높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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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호호호! 루시아 공주님께서 벌써 이런 농담도 다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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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언제까지나 귀여운 공주님으로만 계실 줄 알았는데요.”

루시아가 영애들의 속내를 읽어내고, 영식들과 모임 갖는 이유를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자 귀부인들이 맞장구를 쳤다. 같은 편끼리 뒤에서 험담하는 것만큼 그녀들에게 짜릿한 유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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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하니, 더한 방법도 있다던데요.”

루시아가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며 한 모금 마시고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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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 방법이요?”

귀부인 몇은 움찔 놀라고 나머지는 정말 호기심이 동한 듯 모두가 공주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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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마마마께 전부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 위험하고 저속한 방법 말이에요.”

물론 루시아 그녀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마치 왕후에게 이미 다 들어서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꺼내면 귀부인들의 입을 통해 분명 그것의 정체가 드러날 거라고 예상하고 말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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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이미 공주님께서 그것까지 알고 계실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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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요즘에도 설마 그런 것을 사용하는 영애가 있으려고요?”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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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세요. 사실 암암리에 다 사용하는걸요. 오히려 요즘이 더 수요가 늘었다고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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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그거 어디서 구할 수 있는데요?”

갓 성인이 된 공주를 앞에 두고도 저들끼리 난리가 났다.

루시아는 애가 탔다. 대화는 훨씬 자유롭게 오고 가고 있었으나 그 물건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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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위험하고 저속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냔 말이야!’

할 수만 있다면 속 시원하게 차라리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다 안다는 식으로 말을 꺼내놓은 상태였고, 공주가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걸 귀부인들이 알게 되면 그 자체로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 될 것이었다. 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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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그런 미약보다 더 좋은 걸 쓴다던데요.”

나왔다. 그 위험하고 저속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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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이라고?’

궁이라는 온실에서만 자라며 눈과 귀를 검열당해 온 루시아는 그것의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웠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사이 다른 여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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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 정말요? 저도 좀 알려주세요. 그건 뭐 어떤 건데요?”

본인의 신분도 잊은 채, 귀부인들이 눈이 벌게져서 득달같이 질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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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젊은 귀족들 사이에 무언가 더 강력한 것이 유행 중이라 들었어요.”

무엇인가 미약보다 훨씬 강력한 것. 미약이 이미 위험하고 저속한 것인데, 그보다 더 강력하다고? 이 사람들의 일상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이지?

루시아는 생각보다 귀족들의 삶이 훨씬 위험하고 문란할 수 있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위험하고 저속한 무엇보다 더욱 강렬한 것에 열광하는 그녀들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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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원하던 정보를 얻었어.’

귀족의 삶이야 부왕과 오라버니가 신경 쓸 일이다. 자신은 크레미언 대공의 마음을 얻는 일에만 집중하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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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 사람을 써야겠네.’

미약이 무엇인지도 알려주고, 그것을 구해줄 누군가를.

루시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마음 편히 이들의 대화나 엿듣다 다과회를 마무리할 생각을 하며.

***

밤이 되었다.

데몬은 엘리제의 밤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밤을 지키고 싶으면 옆에 누워달라 청했었다.

각오는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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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신 건가?’

정말 한숨도 잘 수 없을 것임을.

그녀 옆에서 자신이 잠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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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모르신단 말인가, 아니면 그만큼 나를 믿는다는 말인가.’

향긋한 체향에 정신이 온통 아찔해서 잠든 그녀가 고르게 숨을 쉴 때마다 반대로 데몬은 전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자다 뒤척이기라도 하면 함께 흔들리는 침대와 부드러운 감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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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잡았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

주술을 풀기 위해 손을 잡고 밤을 지새웠을 때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몰랐을 때니까.

참을 수 있었지.

그때는 되었던 것이, 지금은 안 된다.

고개만 돌리면 잠든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손안에도, 품 안에도 들어오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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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과 같은 잠버릇이 이어진다면 오늘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었다.

무언가를 참는 것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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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쩌면!’

갑자기 드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엘리제는 혹 자신이 참지 않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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