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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강제로 만든 흔적 (48/126)


48. 강제로 만든 흔적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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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델의 공주 루시아는 아침 일찍 모후인 그레이스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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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라, 루시아.”

그레이스는 웃으며 공주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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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마마, 제 데뷔탕트 때 신을 구두를 고르면서 생각이 났는데요. 엘리제 님의 구두도 제가 함께 주문해 드려도 될까요?”

한 식구가 될 엘리제를 루시아가 살뜰히 챙기는 것으로 생각한 그레이스는 딸의 말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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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세심하구나, 루시아!”

공주를 칭찬하며 그레이스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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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의 발 사이즈를 시녀에게 확인하여 꼭 맞게 주문해 주렴. 아직 동작이 서툴러서 발이라도 편해야 그나마 실수하지 않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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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어마마마.”

모후의 말에 루시아는 한편 안도했다. 엘리제의 춤 실력이 너무 뛰어날까 봐 걱정했더니, 생각보다 춤에 소질이 없는 모양이었다. 외모는 아름답지만 춤 실력은 없다니, 이럴 때 보면 신께서 참 공평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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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었을 때 분명 발이 편할 거예요. 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주문하겠습니다.”

춤추기도 전에 불편함을 느끼면 안 되니까. 불편하면 엘리제가 신발을 바꾸어버릴 테니, 편하고 꼭 맞는 신발이어야 한다. 그리고 춤을 한참 추다가 굽이 부러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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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언니가 실수하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겠지?’

엘리제의 춤 실력이 형편없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안 그래도 춤에 서툰 그녀가 구두 굽까지 부러진다면 당황하여 허우적대는 모습이 무척이나 눈에 띌 테니.

루시아의 입술 끝이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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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언니의 춤 상대가 함께 당황해준다면 좋으련만.’

보통 귀족 영애의 데뷔탕트 날 에스코트는 어릴 적부터의 정혼자나, 가족 중 손위의 남성, 그도 없으면 호위기사가 맡는다.

엘리제는 다른 나라에서 왔으니 여러 경우 중 호위인 데몬에게 에스코트를 받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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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자신은 오라버니인 자이드 왕태자로부터 에스코트 받을 예정이었다.

연회에서의 첫 춤은 에스코트 상대와 추는 것이 일반적.

그러니 자신은 자이드와, 엘리제는 데몬과 춤을 추게 될 것이었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엘리제는 춤을 추다 분명 넘어지고 실수를 할 것이니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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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라. 대공 각하의 눈앞에서 엘리제 언니는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직접 보이게 될 테니까.’

엘리제가 춤을 망치고 첫 번째 춤곡이 끝나면, 대공 각하의 두 번째 춤을 자신과 성공적으로 추면 될 것이 아닌가. 누구와는 다르게 하늘하늘 익숙하고 아름답게 춤을 추는 자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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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생각만 해도 기대되고 설레네.’

루시아가 두 눈을 반짝이며 미소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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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에 정령석이 있다는 데몬의 말이 사실이었어.’

프시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는 조금 전 황궁 여러 비밀 창고 중 하나에서 정령석을 발견하고 막 방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푸른색에 장미 향기가 나는 신비한 돌. 정령석은 발견도 채취도 매우 어려웠다.

물론 미로니카 황가는 귀한 정령석을 가지고 있을 만한 충분한 부와 권력이 있다. 프시케가 의아한 점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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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로안은 이 사실을 내게 숨겨왔을까?’

대대로 황가에 내려온 비밀이었을 것이다. 로안의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프시케는 그의 거의 모든 삶을 함께해왔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가까웠다.

하지만 황후인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인 황가의 치부일 가능성이 컸다.

데몬은 그 돌의 남아 있는 양을 궁금해했었다. 비밀 창고에는 소량만이 남아 있었다.

프시케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가 아는 것 중 오래된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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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신화가 사실이었나?’

예로부터 내려오는 미로니카 황국의 건국 신화. 그 안에는 크레미언 대공가가 황가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도 대공가로 그쳐야 했던 이유와 신비한 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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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사실이라면, 이건 중대한 문제다.’

프시케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순간에 시종이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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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 미카일 사제님 드셨습니다.”

황급히 생각을 갈무리하고 프시케는 정중히 미카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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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사제님. 아직 기도 의식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 어쩐 일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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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하실 소식이라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황제 폐하께도 말씀드렸는데, 곧 이리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미카일이 웃으며 프시케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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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께서 100일 기도가 끝나는 즈음에 미로니카에 직접 방문해 주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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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정말이십니까?”

프시케는 무척 놀라며 서신을 받아들었다. 신성국의 왕이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가를 위해 직접 나서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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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신다고 해도, 서신이나 미카일 사제님을 통해서일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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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의 깊으신 배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제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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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을요. 모두 신의 뜻이고, 성하의 은혜입니다.”

환하게 웃는 프시케를 향해 미카일이 겸손하게 답했다.

아마도 성하께서는 이 진실한 사제를 정말 아끼는 모양이었다. 그 덕에 황국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준 듯한 느낌이 들어 프시케는 미카일에게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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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나씩 풀려갈 것이야. 성하께 도움을 받는다면 흑마법에 대항할 힘을 갖출 수 있어.’

한동안 암담했던 눈앞에 희망의 빛이 보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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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황국 신화에 대해서도 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지혜로운 녹색 눈이 선명하게 빛났다.

***

내가 요즘 욕구불만인 것이 분명하다. 점점 꿈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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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의 사춘기도 아닌데, 왜 이리 야릇한 꿈들을 연속으로 꾸는 거지?’

아마 데몬을 향한 감정을 맘껏 표현하지 못하니 그게 쌓여 무의식이 꿈으로 드러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그를 맘껏 껴안고,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심지어는 어떤 스킨십까지 시도했던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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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했지.’

실제로 그런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멍한 얼굴로 화장대 앞에 앉아서 마가렛이 해주는 단장을 받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수줍은 새색시처럼 붉다.

그때,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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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입니다.”

앗, 오셨다! 생각만으로도 날아갈 듯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는 그가!

놀라서 달아나는 새끼 사슴처럼, 심장이 가볍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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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각하.”

마가렛이 얼른 가서 반기며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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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편안하셨어요?”

나도 일어나 데몬을 바라보고 살짝 드레스를 올리며 인사를 하였다.

그가 허리를 숙이며 내게 답례하였다. 그의 붉은 시선이 나의 발목을 향해 있는가 싶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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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지?’

나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것이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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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나신 건가?’

방금 그가 살짝 숙일 때 언뜻 목 근처에 무언가를 본 것 같은데.

본래 데몬의 제복 상의는 대부분 목 위로 깃이 있다. 오늘도 셔츠 위로 깃이 선 상의를 입었다. 게다가 그가 나보다 훨씬 키가 크니 그의 목 근처는 사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조금 전 붉은 멍울 같은 것을 본 것 같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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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동그랗게 눈을 뜨고 다시 그의 목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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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키, 키스 마크잖아!’

맙소사! 누가 내 남자한테 이런 짓을!!

순식간에 분노와 질투로 온몸이 뜨거워졌다.

***

엘리제는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의 목 근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데몬은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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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작품인 걸 전혀 모르시는 눈치군.’

그러니 어제 엘리제는 잠결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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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정말 매일 밤 곁을 지켜야겠다.’

데몬이 행복한 다짐을 하는 사이, 엘리제의 눈빛이 점점 무시무시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사실이 나름 데몬을 기쁘게 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젯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질투하는 엘리제라니 어쩐지 귀엽고 깜찍하게 느껴졌다.

데몬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슬쩍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속마음은 전혀 모른 채 엘리제는 여전히 혼자 씩씩대며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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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감히!’

내 남자에게 손을 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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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이 바람피울 리는 없는데.’

그는 절대 그런 성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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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가 강제로 데몬에게 흔적을 남겼다는 거잖아!’

그게 누굴까?

누가 만든 거지?

질투와 분노로 머리끝까지 뜨거워지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하얗게 머리가 저리며 정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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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에게 강제로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자가 이곳에 있다!’

그 생각이 엘리제를 얼어붙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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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당하신 거지? 반항도 못 하신 모양인데!’

데몬은 누구보다 강력한 힘과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의 몸에 강제로 키스 마크를 남길 만한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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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공주나 왕후가 권력을 이용하여?

그럴 리가. 만약 시도했다고 하여도 데몬이 분명 거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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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내가 모르는 막강한 흑막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녀가 데몬을 노리고 있는 것은!

나의 데몬을!

다시 질투로 온몸이 불타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제야 겨우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사랑한다 고백도 받아보았는데, 이렇게 그를 빼앗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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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력적이고 잘났으며 멋지고 귀엽고 섹시한 그를.’

뭐야, 말하다 보니 정말 내 남자 엄청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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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런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거였어?’

방금까지 질투로 몸이 타오를 듯 뜨거웠는데, 갑자기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차올랐다. 기쁘고 뿌듯하고 행복하여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지만 쉴 수 있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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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 정상이 아닌 거 같아.’

이랬다저랬다 엘리제의 심경이 널을 뛰었다.

변화무쌍한 표정의 그녀를 사랑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데몬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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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건 질투해주시는 얼굴이군. 이건 분노, 지금은 행복.’

그녀의 표정을 통해 감정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는 이 과정이 마치 세상의 보물들을 발견해나가는 것처럼 기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양한 그녀의 매력을 자신이 발견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히 느껴졌다.

그녀의 곁에서 새로운 그녀를 발견할 때마다 머릿속과 가슴속이 펑펑 소리를 내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를 했다.

그녀가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아주 강한 인내심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렸다. 그렇지 않고 조금만 인내력이 부족했더라도 그녀를 납치하여 아무도 없는 둘만 있는 곳으로 도망가 버렸을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녀가 답답하고 불안한 환경에 놓이는 것은 싫다.

그러니 그 납치를 합법적인 과정과 행위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도 그녀가 원하고 동의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황홀하고 행복하게.

자신 있다.

다만 시간이 제법 걸릴 뿐이지.

그러니 그 시일을 견뎌내는 힘을 주신 부모와 신께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더불어 자신의 곁으로 와준 그녀에게 가장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더욱 가까이 데려와서 절대 놓치지 않고 자신과 그녀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나눌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항상 자유를 주고 놓아주되.

대신, 자신이 그녀의 세상 전부가 되면 될 일이다.

그녀가 속한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바로, 그녀를 위해서 데몬이 준비하고 있는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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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지 말씀해보세요.”

엘리제가 결심한 듯 진지하게 데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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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른 척하는 데몬을 바라보며 엘리제가 마가렛에게 잠깐 둘만 있게 해달라며 조용히 부탁했다. 마가렛이 서둘러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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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당하신 거 맞죠? 그 목에 상처 말이에요.”

데몬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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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맞나 봐.’

이제 엘리제는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말하다 보니 감정이 점점 격해지고 복잡해져서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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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세요. 누구예요, 그 사람이?”

누구든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누군가 데몬의 목에 억지로 키스를 했고 그가 누군지 밝히지도 못하는 거라면 분명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어쩌면 데몬은 협박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물을 글썽이며 비장하기까지 한 엘리제의 얼굴과는 상반되게 데몬은 어딘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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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당신을 어찌하면 좋지요?”

갑자기 데몬이 커다란 두 손을 들어 엘리제의 하얀 손을 꼬옥 잡았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품에 안아 다독이고 싶었지만 그런다면 더 질주하고 싶은 마음을 막을 자신이 없다.

대신 그가 그녀의 손바닥을 펴서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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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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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접촉에 엘리제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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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빼앗기실까 두려우십니까?”

들어 올린 붉은 눈을 일렁이며 그가 물었다. 엘리제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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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자신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어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사로잡힌 듯 꼼짝할 수가 없다. 붉고 깊은 눈빛, 굳게 다문 입술, 손등에 따스하게 닿는 숨결. 모든 감각이 그에게 맞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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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두려워요.”

속내를 뱉을 수밖에. 당신이 나를 떠날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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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가져간 엘리제의 손바닥에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의 입술을 대고는 쭈욱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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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

절로 그녀의 손뿐만 아니라 온몸에 힘이 들어가며 전율이 일었다. 뜨거운 입술과 혀가 손바닥을 간질이며 강하게 빨아들이는 느낌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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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제 모든 걸 쥐고 계십니다. 이렇게.”

잡았던 손이 놓아졌다. 확인이라도 하듯 엘리제가 손을 펴자, 그가 만든 흔적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붉게 찍힌 도장처럼.

그게 자신의 마음이라 전하고 있었다.

당신이 이미 손에 넣은 것. 원하는 언제든 손만 펴면 확인할 수 있는 것.

데몬의 말을 들으니 엘리제는 더욱 애가 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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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에요. 누가 당신을 빼앗아갈까 봐 그러는 것이지.”

결국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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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얌전하게 내 남자를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을 생각 전혀 없어요.”

데몬의 붉은 눈이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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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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