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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날것 그대로의 (45/126)


45. 날것 그대로의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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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셨어요?”

아름답게 손질된 금발에 검은색 눈의 미인이 데몬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바라던 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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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님이 아니셨군.’

눈앞의 그녀는 시에델 왕국의 공주 루시아였다.

밤새 자신의 곁을 간호한 것이 루시아였나? 데몬은 아직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젖은 검은 머리가 그의 손에 의해 쓸어 올려졌다. 곧고 잘생긴 이마와 짙은 눈썹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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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를 모셔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붉어진 얼굴의 루시아가 사락거리는 풍성한 치마의 자락을 붙들고 자리를 옮겼다. 데몬이 눈을 들어 침대 옆에 놓인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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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침대 머리맡 이 자리에 루시아가 아니라 엘리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눈 뜨자마자 그녀가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분명 어젯밤 자신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앓아누웠던 것은 엘리제와의 입맞춤 때문인 것 같았다.

마력의 폭주를 막았다고 안심했었는데, 앓아눕다니 어찌 된 변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몸속의 마력량을 가늠하기 위해 체내에 마력 서클을 돌렸다. 그의 눈이 더욱 붉게 물들며 빛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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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가 없군.’

마력이 안정화되어 있었다. 그것도 매우 방대한 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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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한계치를 갱신했다. 게다가 매우 상승되었어.’

자신의 마력이 이전보다도 훨씬 강해졌다. 설마, 자신이 엘리제의 정령의 힘을 모두 흡수해버린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러면서 자신이 강해진 것이라면!

순식간에 온몸이 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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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그녀가 무사한지 가봐야겠다.’

데몬이 곧바로 몸을 일으켜 침대를 벗어나려는 찰나, 자이드와 루시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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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자신의 상태를 물으며 앞을 막아선 자이드를 향해 비키라는 듯 데몬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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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만 엘리제 님께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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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선 조금 전에 잠이 드셔서 매우 곤하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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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막 잠이 들었다고?’

엘리제가 무슨 연유로 날이 다 밝은 아침이 되어서야 잠들게 된 것이지?

게다가 자이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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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역시 아팠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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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신 건 아니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데몬이 경계하는 눈으로 자이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자이드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엘리제가 왜 조금 전 잠들었는지는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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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천진한 척하지만, 속에 들어앉은 것은 능구렁이군.’

데몬은 역시나 자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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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대공께서 조금 더 회복하신 후에 뵙는 것이 어떨지요.”

자이드가 아름답게 웃으며 데몬에게 자신의 필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먹힐 리가 없다. 상대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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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소가 안 통할 거라는 건 알지만, 지금 두 사람이 만나게 놔둘 순 없지.’

자신과 누이 앞에 선 대공은 지금 지나치게 섹시하고 매혹적이었다.

아팠던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풀어 헤쳐진 하얀 셔츠와 젖은 검은 머리가 늘 정제된 제복 차림의 그와 대조적으로 느껴져 퇴폐적으로 보였다.

잠시 흐트러진 모습인데도 이토록 섹시하니, 절대 엘리제에게 지금 데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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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엘리제에게 데몬은 각성제다.’

자이드는 어제, 엘리제가 각성한 것이 데몬 덕분일 거라 여겼다. 그와 함께 있다가 그녀가 각성하게 되었다면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 말은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그녀에게 데몬이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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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우리 남매를 통해 각성하셨으니 아마 내 예상이 맞을 것이야.’

데몬이 그녀에게 단순히 좋아하는 이성 이상의 소중한 존재라니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그녀의 선택이야 자유이지만, 다른 사람을 선택하도록 놔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름다운 엘리제는 그녀 자체만으로도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여인이었고, 시에델 왕국의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정령의 힘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말하자면 선택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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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운명이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으로 선택된 사람이라고 자이드는 저 자신과 데몬을 향해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옆에서 그런 오라버니를 바라보는 루시아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자신이 한눈에 반해버린 크레미언 대공은 엘리제의 호위를 위해 타국까지 온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젯밤 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쓰러졌으니, 눈 뜨자마자 지켜야 하는 대상인 엘리제를 보러 가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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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라버니께서 왜 대공 각하를 막으시는 거지?’

데몬이 엘리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루시아가 타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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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어제 대공 각하를 밤새 간호하신 분은 엘리제 님이신데.’

루시아는 오라버니의 속내를 다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엘리제가 대공을 밤새 간호한 사실을 자이드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자신도 아침에 데몬의 방에 왔을 때 엘리제가 데몬의 곁을 밤새 지켰다는 사실에 놀라고 질투를 느끼긴 했었지. 그녀 대신 자신이 데몬의 곁에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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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갑자기 쓰러지셔서 많이 놀랐어요.”

루시아가 데몬을 걱정하는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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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걱정을 끼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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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요. 대공께서 가지신 마력이 이제 안정되었으니 다행이지요.”

데몬의 말에 자이드가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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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구나. 내 마력이 불안정했던 것을.’

역시 자이드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데몬은 그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 웃고 있는 얼굴 뒤로 숨은 왕태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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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대공께서 무사하신 것을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대공과 엘리제 님은 저희 시에델의 귀빈이시니까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타국으로 보낸 대공이 크게 다치거나 아프다면 미로니카 황국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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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력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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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리하여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남자가 사뭇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루시아가 눈치껏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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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금 더 쉬시게 자리를 비켜드리고 식사를 가져오라 할게요.”

두 남자 모두 눈빛이 어딘가 예사롭지 않고 살벌한 것이, 지금은 떨어뜨려 놓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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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편하게 식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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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루시아가 데몬을 향해 웃으며 자이드를 데리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탁.

데몬의 방문이 닫히고 루시아가 안도감에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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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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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리도 좋으냐?”

붉어진 여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이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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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오라버니?”

놀리지 말라는 듯 루시아가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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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얼굴을 보게 된다면 누구든 나와 같은 생각이 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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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그녀는 황급히 두 손으로 자신의 빰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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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티가 많이 났나?’

루시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더욱 붉어졌다.

안 그래도 자신의 머릿속을 데몬이 가득 메워 다른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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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매력적일 수가 있지? 그래도 되나?’

촉촉하게 젖은 검은 머리카락에 열로 달아오른 붉은 입술이 남자의 것이지만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짙고 검은 눈썹 아래로 감은 두 눈의 속눈썹은 길고 가늘었다.

그녀의 오라버니인 자이드도 무척이나 미남자였으나, 데몬의 아름다움은 그것과는 다르게 남성적이었다.

탄탄하고 단단하게 잘 짜인 크고 건강한 몸은, 아직 남자를 잘 모르는 갓 성인이 된 루시아가 보더라도 지독하게 자극적이고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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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루시아에게 데몬은, 처음 느끼는 날것 그대로의 수컷이었다. 그런 향기가 데몬에게서 가득 풍겼다.

자꾸만 눈을 감은 대공의 얼굴과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던 어젯밤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안 그래도 루시아는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 달아오르는 착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순간에 오라버니인 자이드에게 놀림을 받자 무척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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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 몰라요!”

그녀는 얼굴을 가린 채 서둘러 자신의 방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이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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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리는 게 아니다, 동생아. 나는 네 사랑을 응원한다.”

데몬은 남자인 자신이 보아도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강인한 육체와 정신, 강력한 마력, 외교적으로 보아도 흠잡을 곳 없는 위치와 직책. 제부로 맞는다면 큰 영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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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대공을 마음껏 유혹해다오.”

루시아가 사라진 복도를 향해 자이드가 웃으며 들리지 않을 말을 중얼거렸다.

***

점심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엘리제는 시에델 왕궁 그녀의 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밤새 데몬을 간호하느라 긴장한 채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데몬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바튼에게 전해 듣고 무슨 정신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누워 있는 그를 간호하고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의 얼굴과 숨이 평온을 되찾고, 의원과 자이드가 이제 안정되어서 괜찮다는 말을 한 후에야 엘리제는 쓰러질 듯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가렛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잠에 빠졌다.

그녀의 방문에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기운을 차린 데몬이 제복을 갖춰 입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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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주무시는군.’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닫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녀가 잠든 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고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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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이토록 사랑하는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는 그 순간이 어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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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다시 한번 더 이름을 부르며, 데몬은 미카일에게 받았던 서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책이 있다고 들었어. 정령의 힘과 마력에 관한. 그 책이라면 엘리제가 어떻게 정령의 힘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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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엘리제, 당신은…….’

스스로가 짐작하는 그녀의 정체를 아직은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녀의 정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누구이든,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마음은 그녀에게 귀속될 것이었으므로.

그의 두 눈이 이전보다 더욱 붉고 진한 빛을 냈다. 날것 그대로의 정령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갈무리하여 더욱 강력해진 마력으로 인해.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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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당신이 내 마력의 각성제로군.’

데몬이 소중한 그녀의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번쩍!

갑자기 엘리제의 금안이 들어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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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고 말았구나!’

기척을 죽였으니 아마도 아까 그녀의 이름을 부른 탓에 깬 듯하였다. 데몬은 난감했다. 자고 있는 그녀를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그런데.

스르륵.

그녀가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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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는 데몬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다가왔다.

그녀의 무표정한 모습에 데몬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전에 그녀는 흑마법에 지배당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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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마력으로 확인하느라 데몬의 눈이 붉게 빛났다. 다행히 흑마법은 아니었다. 어딘가 멍하게 보이는 표정에 힘없이 걷는 모습이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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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혹시 수면 보행증이 있는 것인가?’

수면 보행증. 수면 각성 장애 중 하나로 몽유병이라고도 불린다.

엘리제가 자는 중이라고 믿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방을 걷고 있었다.

잠에서 깬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으나, 이건 이것대로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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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데몬.”

그녀가 몽환적인 미소를 지으며 데몬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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