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얼마든지 이용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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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얼마든지 이용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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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얼마든지 이용해주십시오
2022.03.31.
“쪽!”
데몬의 붉은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그의 눈이 이토록 커지는 것을 엘리제는 처음 보았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실은 왕후 마마께 들은 것이 있어서 확인을 좀 하고 싶었어요.”
기분이 나빴을 리가. 그런데 확인이 버드키스로 이뤄지는 건가?
“확인은 이제 다 끝나신 겁니까?”
데몬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내리며 물었다. 붉은 눈에 아쉬움이 가득 서렸다.
“아, 아뇨.”
‘부끄러워서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직접 말해!’
당신과 입맞춤하면 혹시 각성이 된다든가,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내 마음이 온통 당신으로 가득해서,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어쩐지 자신이 그를 이용한 것도 같아서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나는 아직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으니까.’
이런 걸 미리 자세히 설명하는 게 더 민망하니 허락을 받자마자 일단 저지르고 본 것이다.
“실은 이렇게만 해서는 잘 모르겠지만요. 대공 각하를 이용하려 해서 제가…….”
엘리제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데몬이 그녀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럼 조금만 더 확인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네??”
“제 입술을 얼마든지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입술을 얼마든지 이용하라니,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본다! 심지어 부탁한다니!
엘리제의 얼굴이 당황과 설렘으로 빠르게 붉어졌다.
‘조금만 더 확인해달라고? 좀만 더 입 맞춰 보자는 얘기로 들리잖아요!’
“아니, 그게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안 되는 게 아니라고? 데몬이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럼 부탁을 들어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말과 동시에 데몬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부드러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마!’
처음 부탁은 분명 엘리제 자신이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가 부탁한다며 그의 품에 안겨 있다!
“앗! 저어!”
그리고, 순식간에 두 사람의 입술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흡!”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데몬은 그녀를 더욱 끌어안았다. 한 손으로 가는 허리를 감아 자신에게 밀착시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바람에 마치 두 사람이 춤을 추다 키스한 듯한 형상이 되었다. 멀리서는 빛이 어둠에 삼켜지는 듯 보였다. 마침 태양이 지며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 어떡해!’
그와의 입맞춤을 그동안 얼마나 머릿속으로 되뇌었던가. 그가 너무 좋아서, 이제 어찌할 줄 모르겠다.
“!”
더욱 깊이 그녀의 안으로 들어오려는 데몬의 키스에 그녀의 허리가 뒤로 꺾이듯 휘었다.
숨소리가 너무 컸다.
엘리제는 정신이 아득해져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숨이 차서인지 황홀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던 건 분명 나인데!’
그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깊은 입맞춤을 해온다.
숨을 돌리고자 입술을 떨어뜨리려 하면, 그가 고개를 돌려가며 더 깊이 입을 맞춰왔다. 조금이라도 벌려지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눈앞을 물들이는 붉은 사위가 노을이 지고 있기 때문인지, 입을 맞추며 언뜻언뜻 보이는 그의 눈빛 때문인지 엘리제는 분간을 할 수 없어 두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
황홀한 키스가 이어지는 중에 데몬은 갑자기 그녀의 달콤한 장미 향이 무척이나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입술을 떼고 그녀를 불렀다.
“엘리제 님?”
엘리제도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에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의 몸에서 푸른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두 분 폐하께서 이리 정성스럽게 기도하시니, 신께서도 분명 미로니카를 가호해 주실 것입니다.”
미로니카 황국의 하늘도 석양이 지며 노을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기도를 마친 미카일과 로안, 프시케가 함께 차를 들었다. 어느덧 세 사람은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 나누는 이 일정이 익숙해졌다.
“사제님께서 가장 고생이 많으시지요. 성하께도 연락해주셨다는 이야기를 황후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로안이 미카일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성하, 즉 신성국의 왕이라면 이 세계 그 누구보다도 마력과 신성력, 흑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그만큼 오래 살았고, 가장 강력한 신성력을 가진 만큼 강력한 흑마법을 상대해 왔을 테니까.
“성하께 서신으로 미로니카의 상황을 말씀드려 놓긴 했습니다. 황국을 위협하는 범인을 찾는 방법이 있다면 분명 알려주실 것입니다.”
프시케는 자신의 동아줄이 되어준 미카일에게 크게 고마웠다.
‘부디 성하께서 좋은 방도를 찾아주셔야 할 것인데.’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위협에 그녀는 요새 불안함을 느꼈다. 여러 번 로안을 잃는 경험과 잃을 뻔한 일들을 겪어왔지만 이처럼 감도 잡히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때 시종장이 로안에게 다가와 서신을 하나 전했다.
“크레미언 대공으로부터 보고가 도착했습니다.”
시에델에 잘 도착했다는 서신을 받은 지 이틀만이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까?”
서신을 읽어보는 로안에게 프시케가 넌지시 물었다. 어쩐지 여동생을 멀리 유학이라도 보낸 기분이다.
“다행히 시에델에서 두 사람에게 귀빈 대접을 해주는 모양이오. 안 그래도 얼마 전 시에델의 왕후께도 서신이 왔었는데 따뜻한 분 같았소.”
“왕후께 서신이 왔었다고요?”
“그렇소. 마치 엘리제가 딸처럼 느껴져서 양녀로 삼고 싶다 하시더이다.”
로안이 뿌듯해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
프시케와 미카일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각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되면 엘리제가 시에델 왕국에서 공주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구나!’
안 그래도 황국과 로안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으니까.
‘엘리제 님이 시에델의 공주가 되면 데몬은 어쩌지?’
데몬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데!
프시케는 진지하고, 미카일은 고민하는 가운데 로안 혼자서만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
“아!”
데몬의 품 안에서 엘리제의 몸이 푸른빛에 휩싸였다.
역시 예상대로 데몬과 관계된 그 무엇인가가 자신에게는 열쇠인가 보다.
‘이게 각성이구나!’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몸이 푸른빛에 휩싸이면서 기분 좋은 장미 향이 느껴졌다. 온몸이 가벼워지며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엘리제 님, 괜찮으십니까?”
데몬은 그녀를 놓칠세라 품에 안은 채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그는 갑작스러운 현상에 제법 놀란 상태였다. 입술을 떼었는데도 달콤한 장미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네. 괜찮아요.”
엘리제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지금 현상이 그녀에게는 바라던 일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 혹시 이것이었나?’
사르르 웃는 그녀의 눈이 반으로 접히고, 아름다운 붉은 입술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밝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저도 모르게 엘리제의 허리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앗, 숨, 숨 막혀요.”
아차. 너무 힘이 들어갔나 보다. 데몬이 그녀를 살포시 놓아주었다.
엘리제의 몸에서 점차 빛이 사라졌다. 어디선가 불었던 기분 좋은 바람도 함께 잠잠해졌다.
깊어진 금색 눈이 데몬의 붉은 눈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더 선명해지고 보석처럼 빛나는 듯 보이는 것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일까.
데몬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니 또 입을 맞추고 그녀를 품에 안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저벅저벅.
어느새 마가렛이 엘리제의 가벼운 겉옷을 들고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조금 전 입맞춤과 각성으로 가슴이 진정되지 않은 엘리제에게 마가렛이 걸칠 옷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왕궁에 갔다가 미로니카의 전령이 다녀가는 것을 보았어요.”
그 말을 들은 데몬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돌아왔다. 그가 마가렛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다녀갔는지 아느냐?”
“그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엘리제 님의 데뷔탕트 날짜를 앞당기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궁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거든요.”
날짜를 앞당긴다고? 엘리제는 어리둥절했다.
“내 데뷔를 그렇게 급히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
나 아직 춤이 오징어 몸부림 수준인데?
데몬은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자이드가 요즘 바쁜 이유를 대충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진짜 목적을 황제가 알게 되기 전에 어서 시에델에서 데뷔시키고 싶겠지. 그 이후에 바라는 일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엘리제에게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
‘내 마음을 밀어내지는 않으셨지만, 아직 자신의 마음을 말할 용기가 없으셨어. 다른 일로 더 부담 느끼시게 하고 싶지 않다.’
자이드가 그녀를 욕심낸다면 그녀의 호위인 것을 내세워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물론 엘리제가 자이드를 원한다면 그녀의 뜻을 따를 생각이지만.
‘그러니 자이드를 원하시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이.
방금 깊게 입을 맞추고도 갈증이 일었다. 그녀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더욱 욕심이 나고 아직 충분하지 않은 기분이다. 그의 붉은 눈이 짙게 물들며 무언가 결심한 듯 더 깊어졌다.
“데뷔 날짜를 당긴다면 혹시 왕후 마마가 부르실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까요?”
“그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곧 해가 완전히 지면 더 쌀쌀해질 것입니다.”
엘리제의 말에 데몬이 맞장구를 쳤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이전보다 더 진득해졌다는 것을 뒤를 따르는 마가렛은 느낄 수 있었다.
‘잠깐 자리 비워드리길 역시 잘했구나!’
그녀는 진정, 유능한 시녀였다.
***
“공주 마마, 데뷔탕트의 시일을 2주 후로 앞당긴다는 연락입니다.”
“갑자기?”
루시아는 자신의 방에서 자수 연습을 하다 시종으로부터 전갈을 받았다.
“무슨 일이지? 어마마마를 뵈러 가겠다.”
측근 시녀에게 말하고 채비를 하려는데 방금 전갈을 전한 시종이 말을 이었다.
“왕후 마마께서는 조금 전 엘리제 님과 연회 홀로 향하셨습니다.”
“이 저녁에 연회 홀은 왜?”
그것도 엘리제를 데리고? 안 그래도 요즘 왕후가 자신보다 엘리제를 먼저 챙기는 느낌이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던 차였다.
“앞당기는 데뷔탕트 일정에 맞춰 엘리제 님의 춤 수업을 저녁에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춤까지 직접 가르치고 계신 거였어?’
폐쇄적인 시에델은 사교계 역시 보수적이었다. 그래서 연회나 데뷔탕트에서 외적 아름다움을 최고로 쳤다.
연회의 꽃은 한껏 꾸민 화려한 여성들이었고, 그 화려함은 춤을 추는 순간 최고조에 이른다.
그녀의 모후 그레이스는 왕년 시에델의 사교계를 휩쓴 춤의 여왕이었다.
웬만해서는 그레이스의 춤 실력을 따라올 자가 없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루시아 외에 절대 누군가에게 춤을 가르치지 않았었다.
‘나조차 어머니께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하지만 그레이스의 엄한 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루시아는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이에게 춤을 배웠다.
‘어머니께 직접 배운다면 엘리제 님도 춤을 무척이나 잘 추게 되겠지?’
수업을 포기했던 것은 스스로 했던 결정이었지만, 엘리제 역시 자신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니 어쩐지 서운했다. 엘리제가 그 힘든 수업을 견뎌내면 어쩌지?
‘그렇다면 모후께서는 그녀를 더욱 좋아할 것이 분명해. 지금도 특별해 보이는데!’
그레이스와 자이드로부터 두 사람이 엘리제를 자이드의 짝으로 점찍어두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특별히 챙기고 있다는 것도.
그러나 아무리 엘리제를 자이드의 배필로 생각하고 아끼는 거라 하여도, 딸인 자신보다 더 챙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속이 상할 것이었다.
입안이 써서 절로 이를 악물었다.
“이번 데뷔탕트의 주인공은 공주인 나여야 해.”
엘리제의 아름다움은 이미 이 세상 것이 아니다. 그런데 빼어나게 아름다운 그녀가 어머니의 춤 실력까지 이어받아 황홀하게 춤까지 추게 된다고 생각해보라.
‘주인공은 그녀가 되고, 시에델의 모든 남성이 그녀에게 홀딱 반하고 말 거야.’
모든 남성이 엘리제를 원하게 되겠지. 어쩌면 자신이 바라마지않는 대공께서도.
“그건 절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