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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혼돈의 연회 (24/126)

24. 혼돈의 연회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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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의 춤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손을 맞잡은 커플들이 나와 곧 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잘 추지도 못하는 춤 때문에 가뜩이나 부담스러운데, 숨이 곧 닿을 만큼 로안과 가까워지자 엘리제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16549602270438.jpg‘이 와중에 남주 미모는 또 왜 열일하는 거야!’

대상이 잘못되었지만 어쨌든 로안의 남주 버프가 작동 중인 것인지 엘리제의 눈에도 로안의 잘생긴 얼굴이 오늘따라 매력적으로 보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그윽하다 못해 정열적이었다.

16549602270438.jpg‘하지만, 폐하께서는 여주와 이뤄지셔야 하는 운명이셔요. 그러니 어서 정신을…….’

차리셔요! 꾹!

1654960227045.jpg“흡!”

엘리제에게 발이 밟힌 로안이 움찔 몸을 떨며 춤을 이어나갔다.

16549602270438.jpg“어머, 괜찮으세요?”

엘리제는 당황스러운 척, 미안한 척 열심히 연기했다.

1654960227045.jpg“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구나.”

분명 아팠을 텐데 로안이 괜찮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16549602270438.jpg‘오호? 참으실 만하시군요?’

휘리릭! 흩어지는 별빛처럼 반짝이며, 엘리제가 로안의 품에서 벗어나 한 바퀴 턴을 하고 다시 로안의 곁으로 오는 동작이 이어졌다. 엘리제는 다시 한번 조금 더 힘을 주어 로안의 발을 밟았다.

1654960227045.jpg“헙!”

로안이 입을 꾸욱 다물었다.

1654960227045.jpg‘요 앙큼한 것이!’

첫 번째 것은 실수인지 몰라도 방금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로안은 엘리제의 허리를 두 팔로 확 감싸 안았다.

16549602270438.jpg“핫! 폐하!”

엘리제가 그의 품에서 작게 소리쳤다.

1654960227045.jpg“네가 짐을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을 텐데…….”

16549602270438.jpg‘헉! 망, 망했다.’

그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하더니 이내 욕정으로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번 놀이도 그렇고, 그는 엘리제가 반항할수록 더욱 정복욕을 느끼는 성격이 분명해 보였다.

1654960227045.jpg“짐은 이미 잡아놓은 고기보다, 사냥해서 바로 먹는 고기 맛이 더 좋더구나.”

그 말을 하며 로안이 입맛을 다셨다. 엘리제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로안의 눈빛이 먹이를 앞에 둔 짐승의 것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1654960227045.jpg“오늘은 나의 엘리제가 싱싱하게 팔딱이는 먹이를 직접 잡는 재미를 주려나 보다.”

16549602270438.jpg‘힉! 무슨 말씀을 그리 살벌하게 하세요?’

진짜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로안이 자신을 꼭 끌어안자 엘리제의 몸이 바짝 경직되었다.

16549602270438.jpg“아, 아닙니다. 폐하. 농담이 지나치셔요. 그냥 제가 춤을 못 추어…….”

1654960227045.jpg“이젠 내게 반항에 이어 거짓말까지 하려는 것이냐?”

그가 여전히 두 팔에 엘리제를 가둔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엘리제는 절절맬 수밖에 없었다. 로안이 어서 자신을 놓아주고 운명의 짝인 프시케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좀 세게 발을 밟긴 했다. 그런데 되레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을 프시케와 데몬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각각 다른 상대를. 그 사이 어느덧 음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다음 곡이 시작되면 춤을 마치거나 파트너를 바꿔야 한다. 로안이 엘리제를 빠르게 돌리며 춤곡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는 제자리에 있고 엘리제만 뱅그르르 돌자, 혼자 달리기를 한 것처럼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에게 작게 속삭이며 로안이 손을 놓아주었다.

1654960227045.jpg“잠시 숨을 돌리고 있거라. 이후로는 나와의 시간으로 숨이 더욱 찰 것이니.”

16549602270438.jpg‘헉! 뭐 이렇게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셔요?’

따져 묻고 싶었지만 당황한 그녀의 입에서는 어버버 소리밖에 나가질 않았다. 엘리제를 앉혀놓은 로안이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프시케에게로 향했다. 그녀 곁에는 아직 데몬이 있었다. 또각또각 다가온 로안이 제 것을 찾아가는 모양새로 데몬과 프시케 앞에 섰다.

1654960227045.jpg“황후, 황후의 첫 춤 역시 짐에게 주면 안 되겠소?”

16549602325814.jpg“어머나!”

16549602325821.jpg“…….”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프시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데몬과 함께 연회장에 들어왔지만, 그와 춤을 추지는 않고 있었다. 그것이 로안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에스코트는 받았지만, 아직 첫 춤은 추지 않은 황후가 마치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6549602325821.jpg“폐하께서는 욕심이 많으시군요. 엘리제와 제 첫 춤을 모두 갖고자 하시다니요.”

황후가 못마땅한 듯 대답하고 로안의 손을 못 이긴 척 잡았다.

1654960227045.jpg“오늘이 엘리제를 위한 연회이니 너그러운 황후가 이해해주시오.”

알고 있었다. 그가 엘리제와 첫 춤을 추리라는 것을. 그나마 두 번째 춤을 추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것이 로안의 질투심을 일으켰다는 방증이라서 프시케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첫 춤을 마친 로안이 평소처럼 이후 연회가 어찌 되든 엘리제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그동안 로안은 연회에서 프시케와 첫 춤을 추고 편히 즐기라며 자리를 비켜준 적이 많았으나, 엘리제를 첩으로 맞이한 이후로는 첫 춤을 엘리제와 추고 그녀와 사라진 날이 더 많았다.

16549602325821.jpg“오늘만 그리 해드리지요.”

앞으로도 로안은 계속 엘리제를 찾겠지. 하지만 프시케는 점점 그의 마음을 찾아올 생각이었다. 오늘은 그 첫걸음이었다. 그녀의 계획대로 황제가 질투를 느꼈으니 첫발을 잘 뗀 셈이라 느껴졌다. 데몬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자리를 뜬 프시케가, 로안의 손을 잡고 연회장의 중앙으로 함께 걸어 나갔다. 그 옆에 선 로안은 저 혼자 대결에서 승리라도 한 표정이었다. 황제를 상징하는 붉은색 의복에 금으로 된 무늬와 장신구로 화려하게 꾸민 로안이, 초록빛 프시케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이 빙그르르 돌며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가까워지자, 마치 한 송이 꽃과 잎사귀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서로의 에스코트 상대끼리 춤을 추자, 남은 엘리제와 데몬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게 되었다.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어도 서로 고개를 돌리면 마주 볼 수 있어서 엘리제는 그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숨 가쁘게 떨려왔다. 조금 전까지 로안이 정신을 쏙 빼놓았었는데, 데몬을 보니 정신이 드는 기분이다. 그런데 또 이번엔 그가 좋아서 심장이 마구 뛰니, 이건 이것대로 죽을 맛이었다.

16549602270438.jpg‘혹시 데몬이 내게 춤을 청하지는 않겠지?’

다행히 데몬은 황제 부부를 응시한 채 미동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무엇이라도 찾는 듯, 연회장 곳곳을 살피는 눈치였다.

16549602270438.jpg‘다른 이 중에도 춤을 더 청하는 이가 없어야 할 텐데…….’

걱정되었다. 망신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긴 했으나, 춤을 추는 것도 타인의 발을 밟는 것도 더는 사양이었다. 엘리제가 로안의 발을 여러 차례 밟는 모습을 모두가 보았을 테니 아마도 더 이상은 춤을 청하는 이가 없을 것 같았다. 하긴, 황제의 공식적인 애첩에게 춤 신청을 해서 황제의 눈총을 받고 싶은 강심장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도 없을 거라 확신한 로안도 엘리제를 홀로 두고 프시케와 춤을 추러 간 것이었다.

16549602270438.jpg‘설마, 없겠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때, 멀리서 엷은 금발에 크림색 옷을 입은 키 큰 미남자가 엘리제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가진 남성이었다. 사르르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것이, 아무래도 엘리제에게 춤을 신청하러 오는 것 같아 불안했다.

16549602270438.jpg‘앗, 안 되는데!’

엘리제의 눈이 설마 하는 바로 그 순간, 쾅! 콰쾅! 펑! 몸을 흔드는 거대한 폭발음이 연회장을 가득 울렸다.

16549602325814.jpg“꺄아악!”

16549602352976.jpg“두 분 폐하를 보호하라!!”

귀를 멀게 하는 폭발음 뒤에 비명이 이어졌다. 엘리제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너무 놀라 숨조차 멈춘 엘리제의 시야가 갑자기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연기가 솟아올랐다. 강력한 폭발에 연회장이 흔들리며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이 질겁하여 소리 지르며 혼비백산하고, 황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황제 부부를 보호하기 위해 쏟아져 들어왔다. 화려했던 연회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16549602352976.jpg“두 분 폐하를 보호하라!”

1654960227045.jpg“엘리제!”

로안은 프시케의 어깨를 감싸며 황후를 보호함과 동시에, 고개를 엘리제 쪽으로 돌려 그녀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로안과 프시케는 다행히 무사했다. 호위 기사들이 폭발음과 동시에 황제와 황후를 몸으로 감싸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연기가 걷히고 엘리제가 서 있던 자리에 검은 인영이 서서히 드러났다. 로안의 벽안이 안도와 동시에 질투로 불타올랐다. 반짝이는 하늘의 별과 같이 아름다운 엘리제를 온통 검은색의 미남자가 껴안아 지켜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몬 크레미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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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0227045.jpg“엘리제!”

데몬의 품 안에서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엘리제가 보였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한 것 같았다. 데몬이 한쪽 팔을 들어 마력을 사용하여 방어막을 만들고 있었다. 쏟아지는 잔해와 파편들을 튕겨내며 데몬의 손에서 반구 모양의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1654960227045.jpg‘젠장!’

엘리제를 보고 애가 타는데도 로안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파편들과 도망치는 사람들, 자신과 황후를 지켜내려 몸으로 탑을 쌓은 병사들로 인해. 데몬은 침착하게 엘리제를 품에 안은 채로 자신의 한쪽 손에 마력을 더욱 끌어모았다. 손에서 반구 모양이었던 빛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연회장의 천장 높이까지 공간이 확대되고, 곧 연회장 전체를 보호하는 밝은 막이 생성되었다.

16549602270438.jpg“살, 살았다!”

사람들이 안도하며 움츠렸던 몸을 일으키거나 서둘러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 사람의 마력이라고 보기에 대단한 힘이었다.

16549602270438.jpg“대, 대공.”

로안이 정신을 차려 기사들을 헤치고 데몬과 엘리제 근처로 이동하였다.

16549602353056.jpg“아직 방심하시긴 이릅니다, 폐하.”

데몬이 로안을 바라보며 외쳤다.

16549602353056.jpg“폭탄을 설치한 자들이 아직 황궁에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데몬의 말에 로안의 눈이 분노로 가득 찼다.

1654960227045.jpg“당장, 수상한 자들을 찾아 체포해라!”

그 즉시 기사와 병사들이 황궁 전체로 퍼져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건물의 무너짐이 멈추자, 데몬은 마력을 사용했던 손을 거두고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16549602353056.jpg“괜찮으십니까?”

하얗게 질린 그녀가 데몬의 품에 안겨 떨고 있었다.

16549602270438.jpg“괜, 괜찮아요.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녀는 조금 전,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온 세상의 소리가 멈춘 듯 일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를 경험했다. 쏟아지는 건물과 사람들이 슬로모션처럼 자신의 눈앞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데몬의 크고 따뜻한 손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동시에 그의 검은 망토가 자신의 시야를 가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 오직 데몬의 따뜻한 품과 시원하고 향긋한 체향만이 느껴졌다. 폭발의 현장에서 그녀는, 아득하고 지독하게 감각적인 품에 안겼다. 그 순간이 그녀의 뇌리에 박히고 각인되었다. 멍한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그게 폭발의 충격 때문인지, 데몬의 치명적인 품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16549602270438.jpg‘……또 한 번의 목숨을 빚졌구나!’

이제 그는 자신의 목숨을 세 번이나 구한 사람이 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시에델의 왕태자 자이드도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16549602352976.jpg“왕태자 전하! 괜찮으십니까?”

폭발과 동시에 자이드의 보좌관 바튼이 몸을 날려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16549602382418.jpg“다행히 정령의 가호를 받아 괜찮다.”

자이드와 바튼의 몸에서 푸른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그래도 침착할 수 있는 것은 시에델 왕국의 왕가에만 내려오는 정령의 힘 덕분이었다. 자이드는 왕태자, 바튼은 그의 보좌관이자 사촌이었다.

16549602352976.jpg“미로니카 황국이 이토록 위험한 곳인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일단 밖으로 피하시지요.”

바튼이 자이드를 연회장 밖으로 이끌었다. 다치거나 쓰러진 사람들로 연회장과 황궁이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16549602382418.jpg‘크레미언 대공이라고 했던가?’

말도 안 되는 마력을 사용하는 자였다. 한 손만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탱하고 사람들을 구할 만큼의 방어막을 만들다니. 게다가.

16549602382418.jpg‘황제의 첩과는 무슨 사이지?’

그 폭발의 순간에 대공은 몸을 날려서 황제나 황후가 아니라 엘리제를 보호하였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사실 분명했다. 대공이 엘리제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 황제에 충성하는 자가 그 애첩을 구한 것이라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자이드는 데몬과 엘리제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자이드의 눈에는 분명 특별한 감정이 있는 눈빛으로 보였다.

16549602382418.jpg“재미있군.”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자이드의 눈에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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