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의 황비가 되어다오2021.12.30.
“엘리제의 건강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는 성대한 파티를 열 것이다!”
오전 정무회의 때 황제 로안이 대신들을 향해 외쳤다. 어젯밤 그의 애첩 엘리제가 크레미언 대공가에서 드디어 주술을 풀고 돌아왔다. 그동안 로안이 그녀를 기다리며 어떤 상태였는지 황궁의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귀환을 기뻐하며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쯤이야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프시케는 미리 예상한 일이었음에도 막상 현실로 마주하니 심란한 기분이었다. 엘리제가 어서 빨리 돌아와 로안이 마음의 안정을 찾길 바랐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애첩에 대한 로안의 감정이 더욱 깊어져 상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이럴 때를 위해 미리 크레미언 대공에게 제안을 해놓은 것이었는데, 그로부터 아직 반응이 없었다.
“아직 대공에게서 답이 없느냐?”
프시케가 곁을 모시는 자에게 물었다.
“아직 아무 연락도 없습니다.”
“안되겠구나. 내가 서신을 써줄 테니 사람을 시켜 대공가에 전하라 일러라.”
로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제일이었다. 황후인 자신이 로안이 가장 질투하는 자, 데몬 크레미언 대공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로안은 어떤 표정일까. 프시케가 써준 서신을 대공가로 보내기 위해 심부름꾼이 방을 나섰다. *** 엘리제는 텅 빈 자신의 방에 혼자였다. 대공가에서 황궁으로 돌아와 보니 예상치 못했던 큰 공허함이 갑자기 자신을 덮쳐왔다. 제일 힘든 점은 데몬이 그녀의 곁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며칠뿐이었지만, 상당한 시간을 그와 함께 겪은 듯이 자신의 시선, 몸과 마음 그 모든 것이 데몬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데몬은 곁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방에 있다 보니, 이전에 레이나와 함께였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시간이 갈수록 슬픔과 우울이 차올랐다. 황제가 황후를 시켜 새로 시녀들을 준비해놨으나 엘리제는 모두 나가달라 부탁했다. 혼자 있으면 두려우리만큼 쓸쓸하고 외롭고, 데몬을 보고 싶은 마음에 사무쳤지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것이 더 힘겨웠다. 차라리 힘들어도 혼자 있고 싶었다. 똑똑, 방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황후 폐하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여러 명도 준비하셨네.’
어젯밤부터 예상한 일이긴 했다. 지난 밤 황궁으로 도착한 마차 앞에는 로안이 두 팔 벌리고 엘리제를 마중 나와 있었다. 엘리제에게 손을 내밀어 마차에서 내리게 한 후 빼앗긴 제 것을 되찾듯, 로안은 서둘러 대공을 돌려보냈었다. 황제의 명에 데몬은 군말 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바로 대공가로 향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엘리제는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혹시라도 돌아가는 데몬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눈빛이나 몸짓 그 어디에든 티가 날까 봐. 로안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하여 황궁 입구에 들어서자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황후 프시케가 서 있었다.
“건강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구나, 엘리제. 고생 많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다. 엘리제가 돌아와 준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 사실에 상당히 놀랐지만, 다른 생각에 깊이 빠질 틈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이 물을 잔뜩 머금은 솜 이불처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안이 웃으며 말했다.
“황후가 엘리제 너를 위해 새 시녀를 선발해주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해 다오.”
레이나가 사라지고 없으니, 엘리제를 모실 다른 시녀가 필요했다. 본래 이런 내궁의 일은 황후의 소관이었다.
“특별히 좋은 사람으로 준비했으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계속 보내줄 테니 그중에 골라주면 좋겠구나.”
“예, 황후 폐하.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자신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마치 심장이 반 토막 난 것처럼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은데,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만은 어찌하지 못했다. 엘리제의 마음이 그녀의 얼굴에 드러나 수심이 깊어 보였다. 로안은 그것이 가까이 두었던 친구의 배신과 상실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친하고 아끼던 레이나가 엘리제를 배신하고 죽었으니, 충격이 컸을 것이었다.
“오늘은 따뜻하게 푹 쉬어라. 네가 잠드는 것만 보고 돌아가겠다.”
로안은 마치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이 당연한데, 오늘은 배려하겠다는 듯 말을 했다. 그의 말이 엘리제의 한쪽 귀로 흘러 들어와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갔다.
‘어쩐다……. 엘리제의 상심이 생각보다 크구나.’
사실 로안은 그 어느 때보다 그녀가 간절했다. 잃을 뻔했던 그녀를 다시 보게 되자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여러 낮과 여러 밤의 시간 동안 보듬고 달래고 울리며 부서져라 품에 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간절한 그녀가 크게 상처받았으니 잠시 기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래 기다릴 순 없었다. 단지 그녀의 마음이 좀 추슬러질 때까지만이었다. 그렇게 다행히 아무 일 없이 황궁으로 돌아온 첫날밤이 지나고, 오늘 아침에 엘리제가 일어나자마자 그녀를 새로 모실 시녀들이 소개되었다.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다음 순서인 사람이 들어오려는 모양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엘리제 님. 마가렛입니다.”
밀색 머리에 연둣빛 녹안(綠眼)을 가진 단정한 시녀가 들어와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엘리제에게 차 한 잔을 올리고 싶다 하였다.
“제가 차를 우리는 솜씨가 제법 훌륭하여 황후 폐하께서 보내셨습니다. 모시지 못하게 되더라도 차 한 잔은 올리고 싶습니다.”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단정하고 야무진 말투와 목소리였다. 엘리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달각, 찻잔이 엘리제 앞에 놓였다. 아무 생각 없이 찻잔을 들어 올리려는데, 찻잔과 받침 사이에 작은 서신이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황후궁의 시녀들은 문 앞에 있어서, 엘리제 지척에는 지금 마가렛 외에는 없었다. 엘리제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내려놓고 모두 나가서 기다려달라 부탁했다. 끼익. 방문이 닫히고 엘리제가 찻잔 사이에 있던 서신을 펼쳤다. 작은 쪽지에 적힌 글자 몇 개를 바라본 후 엘리제의 금안이 커지고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하임의 작은 누이」 데몬이 그녀를 위해 보낸 사람이었다.
***
“마가렛이 무사히 엘리제 님의 곁을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 참 다행이군.”
데몬은 하임의 보고를 들으며 한시름을 놓았다. 그녀를 보내고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가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곁에 있었던 시간으로 치면 일주일이 되지 않았을 텐데, 그 기간 동안 그녀가 마음에 이토록 크게 자리 잡았었는지 자신도 미처 몰랐었다. 엘리제를 황궁으로 돌려보내고 돌아왔을 때, 미카일에게 전해 들었던 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었다.
“그녀가 울면서 황궁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했고, 황제의 첩 자리도 싫다고 했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그렇게 울며 가기 싫다고 매달렸다는 그녀를 야멸차게 황궁으로 보내버리고 온 꼴이지 않은가. 데몬은 소리 없는 신음을 흘리며 이마를 짚었다.
‘어째서 그녀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이렇게 점점 늘어가는 것일까.’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마차 안에서 고개를 돌렸던 그녀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어째서 그런 얼굴이었던 건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분명 대공가에 더 남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바로 돌려보내기 싫었었다. 그러나 그녀를 되찾아오겠다던 결심은 황제의 명령 한 마디에 힘없이 무너져버리고 당장에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언젠가는 반드시 데려오겠다는 생각으로 엘리제에게 기다려달라 말을 꺼내었는데, 그 말이라도 전한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네가 부탁한 마력과 정령의 힘에 관해 나는 찾아볼 것이 있으니 좀 다녀올게.”
미카일은 데몬에게 그 말을 남기고 며칠 내로 돌아오겠다며 대공가를 떠났다. 미카일마저 대공가를 떠나서인지 데몬은 생전 처음으로 허전하고 쓸쓸하다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제에 대한 걱정이 이어졌다. 그런데 방금 그녀의 곁에 믿을만한 사람을 두고 나니, 비로소 좀 나았다. 이제 그녀를 다시 되찾아올 준비를 하고 만나러 가기 위해서라도 힘을 내어 할 일을 해야 했다. 그때 황궁에서 서신이 하나 도착했다.
“황후께서 보내셨습니다.”
제레미가 데몬에게 황후궁의 문양이 찍힌 서신을 전달했다. 황후가 매점매석을 해결해주면서 했던 제안에 대한 답변은 언제들을 수 있냐 묻고 있었다.
‘엘리제 일로 까맣게 잊고 있었군.’
황후가 알려준 정보 덕에, 영지 내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매점매석하여 대공가를 위기로 빠트리려 했던 일당을 소탕할 수 있었다. 도움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니,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없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데몬은 승낙의 답변 뒤에 몇 가지 조건을 적어 황후에게 보낼 답신을 완성했다.
“황후께 전하도록.”
“예, 각하. 그리고 밖에 테일러 백작이 와 있습니다.”
“벌써?”
지난번 엘리제에게서 정령의 힘이 느껴졌을 때, 확인을 위해 데몬은 테일러 백작에게 연통을 넣었다. 그에게 맡겼던 정령의 힘을 가진 물건을 찾는 임무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찾은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와서 데몬은 속히 그를 대공가로 불렀다. 그리고 며칠 만에 그가 당도한 것이었다. 대공의 집무실로 들어오며 그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드디어 찾았습니다.”
“다행이군!”
데몬도 반가운 소식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마침내 채굴에 성공했습니다. 양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만.”
“혹시 가져왔는가?”
“예. 준비해 왔습니다. 여기.”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왔던 정령석을 발견하고 채굴까지 성공했다니, 정말 기쁜 일이었다. 매장되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곳만도 수백 곳이 넘고, 채굴이 쉽지 않아서 정령석을 얻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수색과 채굴에 시일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일주일도 안 되어 발견하고 채굴까지 성공한 것이었다. 테일러 백작 뒤를 따르던 시종이 데몬 앞에 큰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열자 푸른빛이 영롱한 암석 세 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수고가 많았군. 이렇게 색이 맑은 것을 보니 그 힘도 강하겠어.”
“그렇습니다. 순도가 높아 이렇게 색과 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역시! 이 향기는……!’
아까부터 데몬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 향기를 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바로 그 장미 향이 나고 있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향기. 자신의 마력을 높이고 다스릴 수 있는 이 달콤한 장미 향은, 정령석의 향기인 동시에 엘리제, 그녀의 향기였다. *** 엘리제는 마가렛이 오고 나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대공께서 곁에서 모시며 안전하실 수 있게 도우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끔 소식도 전하신다고요.”
엘리제의 전담 시녀가 되고 둘만 남자, 마가렛이 엘리제에게 말을 전했었다. 데몬을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바로 곁에 있는 마가렛을 통해 그의 소식을 듣고 어쩌면 소식을 전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니 단숨에 기운이 솟았다. 게다가 사려 깊은 마가렛은 엘리제의 기분과 몸 상태에 맞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무척 잘 파악하여 제공해주었다. 엘리제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엘리제가 기운을 되찾는 것을 지켜본 이들이 로안에게 가서 고했다. 엘리제가 혈색도 좋아지고 예전처럼 산책을 시작했으며 종종 웃음도 짓는다고. 이 소식이 그를 무척 기쁘게 만들었다.
“내가 친히 엘리제에게 가서 선물을 전하겠다.”
로안이 미리 방문을 예고한 후 저녁 때 엘리제의 방을 찾았다. 곱고 단정한 옷차림의 엘리제가 마가렛과 함께 로안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대공가에 다녀 온 이후 엘리제는 겪은 일들이 많아 조금 수척해져 있었지만, 워낙 아름다워 수척해진 얼굴조차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로안은 어서 그녀의 얼굴에 생기를, 그뿐만 아니라 기쁨과 환희, 그리고 황홀까지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녀를 제대로 보듬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엘리제…….”
마가렛이 차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두 사람만 남자, 로안이 다가서며 그녀를 품에 안으려 했다.
‘헉, 싫어!’
엘리제가 저도 모르게 로안에게 벗어나려 뒷걸음질 치자 그 모습에 로안이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벽안이 잠시 흔들렸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아직 마음이 좋지 않아요.”
고개를 돌려 로안을 바라보지도 못하는데, 말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로안은 속으로 서운함을 삼켰다. 그녀가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온몸이 찢기며 부서졌던 일과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갉아먹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의 반응을 보니 역시 그녀의 기억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주술이 풀렸어도 쓰러졌을 때의 충격으로 잃은 기억은 되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프시케가 그에게 미리 이야기해 주었더랬다. 그래도 서운했다. 엘리제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만큼 자신에게 기대고 자신의 품을 찾길 바랐는데, 그녀는 한사코 자신을 밀어내는 기분이었다.
‘나의…… 착각인가?’
착각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엘리제가 자신을 밀어낸다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녀가 자신을 거부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참을 수 없었다. 지금에야 엘리제가 쓰러질 듯 버거워 보이니 어쩔 수 없을 뿐. 괜찮아지는 대로 그녀를 품에 안을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제 품에서 행복한 엘리제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주마.’
로안은 포옹 대신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고 푹신한 카우치로 이끌어 앉혔다. 곧 마가렛이 따뜻한 차를 준비해서 들어왔다.
“네가 기운을 내주어 정말 기쁘구나. 내게 돌아와 줘서 고맙다 엘리제.”
비록 흑마법사를 잡지는 못했지만, 엘리제가 주술을 풀고 살아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로안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계하여 그녀를 꼭 지키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준비한 선물이 있다.”
“선물이요?”
“그래. 네가 기쁘게 받아주면 좋겠구나.”
선물을 주겠다면서 로안은 빈손이었다. 뭐지? 마음 아픈 사람 앞에 두고 장난치는 건가?
“엘리제, 이번 파티에서…….”
다음에 이어질 말을 고르는 중인지 로안이 조금 뜸을 들었다.
‘아, 지금 파트너 말하려는 건가?’
소설과 이야기 속 무수히 등장하는 그것. 에스코트와 첫 춤은 흔히 파트너에게만 허락되는 영광이었다.
‘설마, 선물로 파트너가 되어주겠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로안이라면 그것도 가능하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의 입에서 믿고 싶지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이번 파티에서, 나의 황비가 되어다오.”
“……네?”
뭐요? 설마, 황후 다음의 그 황비요?
‘애첩도 때려치우고 황궁에서 도망가야 살 수 있는데, 더 깊숙이 발 담그는 황비가 되라고?’
엘리제의 속도 모르고 황제 로안은 그녀를 자신의 비(妃)로 승격시키려 하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만 소리 없이 절규하였다. 안 돼…… 제발 꿈이라고 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