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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황궁으로 돌아오라 (16/126)

16. 황궁으로 돌아오라2021.12.27.

엘리제 자신에게 걸린 주술이, 빙의할 때부터 이미 반은 풀려 있는 반쪽짜리였다니. 진짜 엘리제의 몸에 주술이 담기자마자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영혼이 삼켜지고 주술의 반이 풀려버린 것이 분명했다.

16549593798893.jpg‘그래서 껍질만 남은 엘리제의 몸에 현실에 있던 나의 영혼이 담긴 건가?’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정황이 들어맞았다. 지금 그것보다 엘리제에게 중요한 것은 주술이 풀렸으니 황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주술이 풀렸다는 사실을 저만 알았더라면 오히려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주술이 풀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조금이라도 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주술이 풀려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었지만, 더 이상 대공가에 머물 명분이 없었다.

16549593798898.jpg“엘리제 님, 괜찮으십니까?”

걱정으로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에게 데몬이 다가와 물었다.

16549593798893.jpg“괜, 괜찮아요.”

16549593798898.jpg“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여기 앉으십시오.”

데몬이 그녀의 손을 잡아 다시 침대로 이끌었다. 따뜻한 그의 손이 닿자 엘리제는 마음이 아렸다.

16549593798893.jpg‘이 손을 놓기조차 싫은데…….’

자신은 황제인 로안의 첩이니 황궁으로 돌아가면 대공인 데몬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좋아서 이제 어쩔 줄 모르게 되었는데 갑자기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되자 더욱 마음이 간절해졌다.

16549593798893.jpg‘어쩌지? 곁에 더 있고 싶은데.’

목숨이 구해져서 감격의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도 못한 이별의 상황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게다가 원작 속 엘리제는 황궁에서 황후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 생각을 하자 더욱 대공가를 떠나기가 싫었다.

16549593798893.jpg‘황궁으로 돌아가기 싫어!’

엘리제의 속마음은 모르고 미카일이 다가와 정중히 물었다.

16549593798898.jpg“몸이 불편하시면 조금 더 치유의 힘을 사용하겠습니다.”

16549593798893.jpg“아니에요. 그런 것이…….”

엘리제의 붉어진 눈을 본 미카일과 데몬이 동시에 당황하였다.

16549593798893.jpg“주술을 풀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다만, 지금 마음이 좀 복잡하니 잠시 혼자 있게 해주시겠어요?”

16549593798898.jpg‘역시 충격이 컸구나.’

데몬의 붉은 눈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가장 가까이 있던 친구가 첩자였고, 그녀가 자결하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주술이 풀리게 되었으니 그 상실감과 당혹감이 무척이나 클 것이었다. 엘리제의 복잡한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16549593798898.jpg“알겠습니다. 우선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실 테니 주술이 풀린 사실을 속히 전하겠습니다.”

엘리제의 속도 모르고 데몬이 무정하게 말했다.

16549593798893.jpg‘어떻게 해!’

풀썩. 엘리제는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져 침대에 엎드리고 말았다.

16549593828736.jpg“앗, 엘리제 님.”

흐느껴 우는 엘리제의 가까이로 미카일이 다가갔다.

16549593798893.jpg“사제 님……. 흐으엉.”

16549593798893.jpg‘어쩌면 좋아요, 저는…….’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조차 없어 답답했다. 그나마 마음을 터놓았던 레이나마저 이제 곁에 없다. 엘리제는 미카일의 옷깃을 잡고 흐느꼈다.

16549593828736.jpg“……제가 잠시 곁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미카일의 물음에 엘리제가 엎드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일을 남기고 방 안의 모두가 조용히 밖으로 나와 주었다. 하임도, 제레미도 엘리제의 모습이 안타까워 무거운 표정과 발걸음이었다. 방문을 닫으며 데몬은 침대에 엎드려 우는 엘리제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 곁에서 그녀를 위로해주는 이가, 다름 아닌 미카일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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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49593798893.jpg“흑, 사제님…….”

흐느끼며 엘리제가 말을 꺼냈다. 그런 엘리제를 미카일이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16549593798893.jpg“저를 좀 도와주세요.”

16549593828736.jpg“제가 어떻게 해드리기를 바라십니까?”

가장 친한 친우가 마음에 둔 여인이 슬픔에 싸여 울며 자신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일까. 미카일은 안타까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16549593798893.jpg“사실 저는, 황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16549593828736.jpg“!”

엘리제의 두 눈에서 영롱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안타까움 때문인지 미카일의 마음이 시큰했다.

16549593798893.jpg“황제님의 첩인 것도 싫고요!”

원작의 엘리제가 황후 손에 죽는 것이 그 때문이니까.

16549593828736.jpg‘원해서 황제의 첩이 된 것이 아니었나 보구나!’

사람의 눈물이 모두 같을진대, 미카일의 눈앞에서 애처로이 우는 여성의 눈물은 마치 다른 물질처럼 느껴졌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이슬이나 투명한 수정처럼 아름다웠다. 사제로서 수많은 사람의 고해성사를 받으며 수없이 많은 눈물을 보아왔으며, 삶의 고통 속에 눈물짓는 이들도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우는 모습이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이 절박하기 때문이겠지.

16549593828736.jpg‘위험하다.’

지금의 엘리제는 속세에 욕심이 크게 없는 미카일에게도 순간의 흔들림을 줄만큼 치명적이었다. 안타까운 이들에게 마음이 더욱 약해지는 것이 사제다. 미카일은 데몬을 생각했다.

16549593828736.jpg“황제께서 돌아오라 명하신다면, 당장은 거부하실 수 없으십니다.”

황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미카일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16549593828736.jpg“하지만 대공 각하와 함께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16549593798893.jpg“대공님과요?”

데몬의 이야기가 나오자, 엘리제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16549593828736.jpg‘이런! 이렇게 티가 나는데 데몬은 어찌하여 이분의 마음을 모르는 거지?’

서로를 향한 마음을 모르고 있는 두 사람이 안타까웠으나 미카일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함부로 끼어들거나 대신 전한다면 되레 일을 그르칠 수 있다.

16549593828736.jpg‘특히나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누가 나선다면 오히려 역효과겠지.’

미카일이 보기에 데몬은 아직 자신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게다가 두 사람은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엘리제는 이미 황제의 첩이고, 데몬은 그 황제를 모시는 대공이다. 각자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해도 쉽게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6549593828736.jpg‘이를 어쩐다…….’

양쪽 다 가슴 아픈 사랑을 하게 생겼으니 미카일은 벌써부터 마음이 좋지 않았다.

16549593828736.jpg“엘리제 님께서 본래는 대공가의 일원이었으니, 혹여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엘리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16549593828736.jpg“대공 각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연락드릴 방도도 찾아보겠습니다.”

16549593798893.jpg“감사드려요.”

그제야 엘리제는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레이나의 일도 충격이긴 했지만, 당장 자신의 일이 더 시급했다. 아직 흑마법사를 잡은 것은 아니니 안심할 수 없었으며, 황궁으로 돌아가도 언제 죽임을 당할 지 알 수 없었다.

16549593798893.jpg‘그러니, 황궁을 다시 떠날 방법을 찾게 된다면 정말 좋을 텐데…….’

좀 진정이 된 엘리제가 눈물을 그치고 바르게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미카일이 조심스레 물었다.

16549593828736.jpg“기운이 나시도록 기도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16549593798893.jpg“물론이죠, 고맙습니다. 부탁드려요.”

미카일이 엘리제의 두 손을 잡고 눈을 꼭 감았다. 엘리제도 그를 따라 눈을 감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이 미카일의 입을 통해 흐르자, 마주 잡은 두 손에서 따뜻하고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 「엘리제님의 주술을 풀었습니다. 첩자가 자결을 하여 흑마법사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에는 실패하였습니다.」 데몬은 황제 로안에게 급보를 보냈다. 다리에 서신을 달고 황궁으로 향했던 전서구는 반나절도 안 되어 답신을 달고 돌아왔다. 「주술이 풀렸으니, 엘리제를 지체 없이 황궁으로 돌려보내라. 지금 당장.」 지금 당장 오라니, 이미 날이 저물었지만 황명이었다. 엘리제는 당장에 출발해야 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대공가 사람들은 엘리제가 바로 떠날 수 있게 빠르게 채비를 마쳤다.

16549593798893.jpg‘이렇게 갑작스레 가야 한다고?’

엘리제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다가온 헤어짐에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깨닫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하지 못했는데. 따뜻하고 단단한 그의 품이 아직도 생생하며, 온몸이 녹아내릴 듯 황홀했던 키스도,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도 아직 기억 속에서 되새김질 되고 있는데.

16549593798893.jpg‘마음을 고백해 보지도 못했구나.’

안타까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야만 했다.

16549593913297.jpg“엘리제 님, 또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계십시오.”

대공가의 사람들이 마중을 했다. 엘리제도 고맙다며 마음을 전했다. 미카일이 먼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16549593828736.jpg“또 뵙겠습니다.”

16549593798893.jpg“……치료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미카일이 상냥히 웃으며 엘리제에게 물었다.

16549593828736.jpg“가끔 안부 차 서신을 드려도 될지요?”

아! 연락할 방도를 찾겠다더니, 미카일은 그녀를 치료한 사제의 신분으로 엘리제에게 연락할 구실을 찾은 모양이었다. 속내를 읽은 엘리제가 속히 답을 전했다.

16549593798893.jpg“그럼요. 제 생명의 은인이신걸요. 폐하께 말씀드려서 황궁으로도 곧 모실게요.”

16549593828736.jpg“말씀 감사합니다.”

미카일이 어쩌면 데몬과 방법을 찾아 편지로 알려줄지도 몰랐다. 그나마 가뭄으로 메마른 땅에 빗방울 하나 떨어진 기분이었지만 엘리제는 기운을 내어 몸을 돌렸다. 데몬은 이미 엘리제가 타고 황궁으로 돌아갈 마차 앞에 서 있었다. 마차에 올라타는 엘리제를 에스코트하기 위해서였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옷의 제복을 입은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표정으로도 어떤 마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엘리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16549593798898.jpg“마차에 오르십시오.”

데몬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16549593913297.jpg“주인님, 다녀오십시오. 엘리제 님 안녕히 가시기를.”

제레미와 하임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탁, 마차의 문이 닫히고 엘리제와 데몬을 태운 마차가 출발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16549593798893.jpg‘황궁으로 향하는 이 시간이 데몬과 함께하는 마지막이면 어쩌지?’

심장이 조급하게 죄어왔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마음이 어지러워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좁은 마차 안에 그와 둘만 있으려니 아까부터 가슴이 떨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기도 했다. 한참의 고요가 지나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16549593798898.jpg“할 일들을 마치면,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16549593798898.jpg“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뭘 마치고, 누굴 모시러 가요? 언제요?

16549593798893.jpg“대공께서…… 저를요?”

16549593798898.jpg“그렇습니다.”

로안과 따로 약속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미카일과 벌써 이야기라도 나눈 것일까. 어느 쪽이든 데몬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16549593798893.jpg“좋아요.”

16549593798898.jpg“……감사합니다.”

16549593798893.jpg“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주술을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엘리제는 고개 숙여 데몬에게 인사했다.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뿐인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16549593798893.jpg‘앗, 안 돼. 여기서 울면 데몬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엘리제의 마음을 눈치챌지도 몰랐다. 아직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는데 헤어지게 된 마당에, 감정을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 눈물부터 쏟아낼 수는 없었다. 꼴사납게 주체 못 하고 울면서, 자신이 데몬에게 고백하는 셈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안 된다. 무조건 참아야 했다. 엘리제는 눈물을 삼키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데몬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발끝을 응시할 뿐이었다. 덜컹. 엘리제와 데몬을 태운 마차가 드디어 멈췄다.

16549593949773.jpg“어서 와라, 나의 엘리제!”

마차의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로안이 달려 나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다시 돌아왔다. 엘리제 저 자신을 기다리는 황제 로안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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