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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온몸이 삼켜졌다 (3/126)

3. 온몸이 삼켜졌다2021.11.11.

16549590634885.jpg“정말, 참기 힘들구나.”

16549590634903.jpg“안 돼요! 참으셔야 해요!”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 말에 로안이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16549590634903.jpg‘아! 장난인 건가?’

어쩐지. 아픈 애첩에게 무조건 들이대는 황제라니, 사람이 아니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로안이 나를 놀렸던 모양이다. 어휴 그런 줄도 모르고 초긴장했네.

16549590634903.jpg“휴.”

그 순간, 순식간에 그가 내 목에 입을 맞추고 살을 쭉 빨아들였다.

16549590634903.jpg“힉!”

내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당황할 틈도 없이 번쩍 로안에게 들려서 그대로 침대에 눕혀졌다. 순식간에 그의 몸 아래 깔렸다. 뭐, 뭐야, 장난 아니었어?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몸이 코앞이었다. 긴장으로 빠르게 오르내리는 나의 가슴이 로안에게 닿을까 봐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내 고개를 숙인 그가 방금 닿았던 목 근처를 다시 한번 삼켜서 빨아당겼다. 아까보다 더 길게, 천천히.

16549590634903.jpg“흐읍.”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처음 느끼는 뜨겁고 말랑한 감촉들에 숨이 멎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소설 19금 아니었잖아! 황제님, 왜 이러셔요! 두 팔로 로안을 힘껏 밀어내며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로안의 푸른 눈이 깊고 강렬했다.

16549590634885.jpg“순종적인 엘리제도 좋았지만, 지금 나의 엘리제도 무척 마음에 드는구나.”

나는 그만 얼어붙었다. 로안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그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느리게 핥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뇌쇄적이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먹이를 바라보고 입맛을 다시는 짐승의 모습이 이와 같을까.

16549590634885.jpg“하혈의 기간이어도,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16549590634903.jpg“네?”

16549590634885.jpg“밤은 길다. 나의 엘리제.”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황제의 짓궂은 장난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놓으려던 차였는데. 그러니까 지금 그 기간이어도 상관이 없단 그 말씀……이세요?

16549590634903.jpg‘그게, 가능해? 말이 돼?’

모자이크 된 어른들의 세계가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당황한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뭐가 좋은지 로안이 웃고 있다. 곱게 휜 벽안이 반짝였다. 아, 제발 장난이라고 말해줘.

16549590634885.jpg“의사가 평소에 자주 함께 하던 일을 하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16549590634903.jpg“뭐라고요?”

16549590634885.jpg“네 기억을 찾는 일인데, 당연히 내가 도와줘야지.”

16549590634903.jpg“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16549590634885.jpg“황궁의에게 직접 물었다. 평소에 자주 가던 곳, 자주 하던 일을 하면 기억이 빨리 돌아올 수 있다고 하던데.”

16549590634903.jpg“평소에 자주 가던 곳이라면…….”

16549590634885.jpg“늘 나와 이 침소에서 함께였지.”

그리고 평소에 자주 함께하던 일이 그러니까 스킨십이란 말……

16549590634903.jpg“농담이시죠?”

16549590634885.jpg“농담으로 보이나?”

로안이 맹수의 눈빛으로 다시 한번 입맛을 다셨다.

16549590634903.jpg‘의사 할아버지! 이 짐승이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게 놔두시면 어떡해요!’

이제 어쩌지?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강한 통증과 함께 머리를 울리는 음성이 들렸다.

16549590694078.jpg[엘리제…….]

16549590634903.jpg“악!”

16549590634885.jpg“엘리제? 갑자기 왜 그러느냐!”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16549590694078.jpg[아름다운 엘리제. 이리 내 곁으로 오라.]

16549590634903.jpg“아, 아파!”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낮고 음산한 남성의 음성이 들릴 때마다, 깨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로안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16549590634885.jpg“엘리제! 어디, 어디가 아픈 것이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이 열려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몸인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16549590694078.jpg[지금 나에게로. 걸어오라.]

나의 두 눈이 열렸다. 고통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계속되는 깨질 듯한 두통에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몸이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16549590634885.jpg“엘리제?”

어느새 로안의 품에서 벗어나 나는 방문을 향하고 있었다. 로안이 나를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놀람과 걱정으로 그의 얼굴 역시 일그러져 있었다.

16549590634885.jpg“엘리제! 정신 차려 나를 보거라!”

절박하고 애절한 로안의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나를 부르는 그에게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내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16549590634903.jpg“가, 가야 해요.”

겨우겨우 말을 내뱉었는데 더 큰 고통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16549590634903.jpg“아아!”

16549590634885.jpg“당장, 황궁의를 불러라!”

로안이 밖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16549590634885.jpg“그리고 최대한 빨리 대공을 모셔와! 빨리!”

로안이 사색이 되어 나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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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안은 눈앞의 엘리제를 더 꽉 안았다. 그녀는 로안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모습에 심장이 베인 것처럼 아팠다.

16549590634885.jpg‘이게 도대체 어찌 된 거지?’

불과 몇 분 전에, 제 품에 안겨 반항 한 번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입을 삐죽이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못 견딜 만큼 사랑스러운 그녀를 마음껏 놀리며 밤새 제 품 안에 녹여놓을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제가 비명을 지르며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방을 나가려 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녀를 붙잡아 안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치명적이고 위험한 게 분명했다. 로안의 머릿속에 오늘 하루가 빠르게 스쳐 갔다. 아침엔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엘리제가 쓰러졌다는 보고를 전해 들었을 때는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무척 놀랐지만, 나중엔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그 깜찍한 연극에 속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황후가 방 안에 들어온 이후로도 엘리제는 평소와 다른 말과 행동을 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의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말투도 행동도 쓰러지기 이전의 그녀와는 완전히 달랐으니. 그래도 기억이 돌아오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살아 있으니 되었다. 하지만.

16549590634885.jpg‘나보다 황후가 좋다고 말했겠다?’

자신보다 황후가 좋다니, 자신에 대한 거부를 돌려 말한 거 아닌가. 심술이 났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어 조금 짓궂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픈 사람에게 밤에 다시 찾아오겠다 선언했는데 어찌나 소스라치게 놀라던지. 잠자리 준비를 듣고는 기겁을 했다지? 게다가 자신을 유혹하며 과감한 옷차림도 서슴지 않았던 그녀인데, 지금 쇄골까지 모두 가린 잠옷을 입고 있다. 슬립 안에 엉뚱한 속바지까지 겹쳐 입고. 방문을 열고 그 모습을 처음 본 순간,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기억을 진실로 잃은 것은 걱정되는 일이었으나, 기억을 잃은 것으로 인해 그녀가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들이 로안의 마음에 더욱 불을 당겼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이전의 엘리제보다 더. 이런 엉뚱한 모습까지 모두 사랑스럽다니,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6549590634885.jpg‘맘 같아선 정말 한입에 삼켜버리고 싶구나.’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녀가 상처 입겠지. 그래서 참을 수 없는 욕정을 겨우 밀어내고 그녀 목의 하얀 피부를 입안 가득 담았다. 자신의 흔적을 그녀의 곳곳에 그저 남기는 것으로 오늘은 만족하려고 했다.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두자 따뜻하고 둥근 가슴이 숨 쉴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그대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멀어졌다. 그녀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져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토록 소중한 그녀가.

16549590634885.jpg‘다른 무언가에 삼켜져 버리다니.’

발작이나 정신병일지도 몰랐다. 로안이 점점 초조해지던 그때, 황궁의가 부름을 받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16549590634885.jpg“어서, 엘리제를 진찰하라!”

그녀는 여전히 로안의 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눈은 허공을 바라보듯 초점이 없었다. 의사는 손목을 잡아 맥을 확인하고, 그녀의 입과 눈을 들여다보았다.

16549590761113.jpg“폐하, 일반적인 질환과는 다른 듯합니다.”

16549590634885.jpg“무슨 말이냐?”

16549590761113.jpg“병이 아닙니다. 신체상으로는 이상이 없고, 무언가에 홀리신 듯 보입니다.”

16549590634885.jpg“……주술이란 말인가?”

16549590761113.jpg“제 소견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16549590634885.jpg“…….”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로안이 애써 배제하던 선택지가 결국 답이 되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기억을 잃은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미칠 듯이 사랑하는 그녀는 주술에 걸린 상태였다.

16549590634885.jpg‘누가, 왜 엘리제에게 주술을 건 거지?’

로안 자신의 적들이라면 엘리제를 이용하여 황제를 협박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엘리제의 적이라면 그녀 자체를 없애려는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황후일 수도 있었다. 지금 로안에게 여자는 황후와 엘리제 둘뿐이니까. 치정으로 인한 살인, 질투로 인한 싸움은 역사 속에 셀 수 없이 많았다.

16549590634885.jpg‘역시, 대공에게 미리 연락을 했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대공이 온다면, 그래서 그의 강력한 마력으로 주술을 깬다면 엘리제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 엘리제가 쓰러진 이후 이상해졌다고 느껴졌을 때 미리 대공을 불렀어야 했다.

16549590634885.jpg“대공은 아직인가?”

로안의 벽안이 붉게 충혈되었다. 주술이라니, 엘리제를 진짜 잃게 될지도 몰랐다. 어떤 종류의 주술인지 몰라도, 주술을 거는 대가가 컸다면 푸는 데에도 그만한 희생이 필요했다. 그러니 황국에서 가장 마력이 강한 크레미언 대공가여야 했다. 시종의 대답이 들렸다.

16549590761113.jpg“대공께선 곧 도착하실 겁니다.”

품속의 엘리제가 식은땀을 흘리며 아까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 분, 일 초가 몇 년만큼 길게 느껴졌다. 애가 탄 로안이 버럭 화를 냈다.

16549590634885.jpg“늦어! 대체 어디쯤이란 말이냐!”

로안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시종이 두려움에 차서 말했다.

16549590761113.jpg“그, 그게 지금 황후궁에서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16549590634885.jpg“황후궁?”

되묻는 로안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16549590634885.jpg‘이 야밤에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고?’

자신의 엘리제가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이 순간, 설마 황후와 대공이 밀회라도 즐기고 있었단 말인가? 로안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순간.

16549590634885.jpg‘그게 아니라, 주술을 건 사람이 황후와 대공이라면?’

순식간에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엘리제에게 주술을 건 사람이 대공이고, 그것을 사주한 것이 황후라면? 로안의 벽안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황후고, 대공이어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대공에게 엘리제를 보이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주술을 건 주인이 대공이라면, 엘리제와 만나는 순간 엘리제의 고통이 멈추고 주술의 정체가 드러날 테니까. 그때 로안의 등 뒤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16549590789587.jpg“찾으셨습니까, 폐하.”

로안이 고개를 돌리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둘러싸인 장신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붉은 두 눈만이 그가 만든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크레미언 대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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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넓고 아름다운 크레미언 대공가. 그곳 가주의 집무실에서 대공의 보좌관 하임과 집사 제레미가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16549590761113.jpg“이 바쁜 와중에 각하께서 갑자기 무슨 일로 황궁에 가신 거지?”

가신 가문들과의 회의가 내일이었다. 남겨진 서류들을 정리하며 하임이 중얼거렸다. 집무실 한편에는 보기만 해도 달콤하고 간질간질한 형형색색의 편지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16549590761113.jpg‘저건 또 언제 다 갖다 버리나.’

안 그래도 바쁜데 전혀 쓸데없는 편지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버려도 또 쌓이니 하임이 편지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16549590761113.jpg“어휴, 각하께선 관심도 없으신데 다들 정말 열정적이시지.”

16549590761113.jpg“편지 말씀이시지요? 허허, 그러게요. 하지만 그만큼 대공 각하께서 멋지시니까요.”

옆에서 제레미가 맞장구를 쳤다. 미로니카 황국에 유일한 대공가이자, 황가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가진 크레미언가. 그 가문의 가주인 데몬 크레미언은 마력마저 황국 최강이었다. 강력한 그 힘으로 치르는 전쟁마다 승리로 이끌었다. 게다가 무척이나 잘생긴 얼굴, 넓은 어깨, 건장한 체격에 희귀하고 뇌쇄적인 붉은 눈까지 어우러져 황국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의 영애들까지 목매며 그에게 구애 중이었다.

16549590761113.jpg“하긴 남자인 제가 봐도 멋있으시긴 해요. 하지만, 영애분들이 실제로 각하를 뵙게 되신다면 사모하고 있다는 말이 쏙 들어갈 텐데요…….”

그건 그랬다. 일밖에 모르는 대공은 한눈판 적이 없을뿐더러, 성격이 칼 같았다. 두 사람 모두 대공을 가까이서 오래 모셔왔지만 연애는커녕 지금까지 이성과 눈 한번 오래 맞추고 있질 않았다. 하지만 대공이 딱 한 번 관심을 가진 여인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역시 사적인 관심은 아니었다.

16549590761113.jpg‘이름이 엘리제였지?’

하임은 마치 이 세상 존재가 아닌 듯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그녀를 떠올렸다. 보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아 멍해지게 만드는 여인. 그녀는 본래 대공가의 하녀였다. 대공가 사람 모두가 그녀를 기억한다. 기억할 수밖에.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 봤으니. 하지만 정작 대공은 그녀를 직접 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크레미언 대공가에 많고 많은 사용인 중 하나였던 그녀가 특별해진 이유는 황제가 그녀를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16549590761113.jpg“없는 사이 남의 사람을 제 것인 양 당연한 듯 빼앗아 가다니!”

전쟁을 마치고 대공가로 돌아온 날, 데몬이 낮게 으르렁대며 뱉었던 말을 하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목숨 걸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왔더니 그 승리를 위해 대공가를 비운 사이, 황제가 제멋대로 마음에 드는 하녀 하나를 데려가 버렸다. 크레미언 대공에게 그녀는 개인적인 존재는 아니었으나, 대공가의 일원이었다. 데려가기 전에 엘리제 본인의 의사를 묻기나 했을까? 황제가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 그리고 황명이라 그녀가 거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주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했겠지. 황제의 행동에 데몬이 분개하는 것은 크레미언가의 주인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일 외에도 대공은 마력과 관련하여 때때로 황가를 향해 분노를 삼켜왔었다.

16549590761113.jpg“그때 분명히 되찾아 오실 것 같은 눈빛이었는데…….”

16549590761113.jpg“각하께서요? 무엇을요?”

하임의 혼잣말에 제레미가 물었다.

16549590761113.jpg“아, 아닙니다. 하하하.”

물론 엘리제를 뜻하는 것이었지만,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기에 결점 없이 잘생기고 아름답기만 한 주군은, 무시무시한 마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는 성정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16549590761113.jpg‘괜한 소리 했다가 업무 폭탄을 맞을 지도 몰라!’

자신의 주군은 귀신같은 촉을 가진 자였다. 갑자기 그 붉은 두 눈이 어디선가 지금도 선명하게 붉은 빛을 내며 자신을 지켜보는 착각이 들었다.

16549590761113.jpg“으으으, 추워.”

한겨울에 젖은 몸을 털어내는 개처럼, 갑자기 찾아온 한기에 온몸을 부르르 떤 하임은 하던 일에 마저 집중했다. 자신이 방금 중얼거린 사람들이 황궁 어느 방에서 마주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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