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그의 눈은 매우 불안하게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그는 모르는 듯했다. 그걸 눈치챈 건 나 혼자만이 아닌 듯했으나, 대공은 보란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이 거짓을 고했다지?”
“거, 거짓이요? 제, 제가요?? 아, 아닙니다. 제가 누구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저는 오늘 보고한 것이 없는데요.”
하지만 경비병은 끌고 온 기사에 의해 바닥으로 몸이 고꾸라져 버린 후였다.
“그대가 증언을 했다 들었는데?”
“네……? 즈, 증언이요……?”
“렉스가 밖으로 나가는 걸 봤다던데? 몇 시간 전에.”
“제, 제가 그리 증언했습니까?”
경비병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닌가?”
“네…… 저, 저는 그런 증언을 한 적 없습니다.”
“그러면 네놈을 이곳으로 데려온 저 기사를 본 적 있나?”
“저분이야 아는 분이시죠. 기사님이시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뵌 적 없습니다.”
순간 기사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닙니다. 대공 전하. 저 경비병이 거짓말하는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왔는데, 뭘 거짓말한다는 거지?”
“아까는 분명 제게…… 그리 말했습니다. 렉스가 외출하는 걸 봤다고.”
정말 이쪽도 저쪽도 거짓말투성이였다.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경비병이 거짓을 말한 것일까, 아니면 기사가 처음부터 거짓을 말했던 걸까.”
대공이 그 주변을 천천히 걷다가 그들 앞에 섰다.
“대공비와 이야기할 때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난 기사. 그리고 그 기사에게 거짓을 고한 경비병.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저…… 저는 정말 아닙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도 모르겠구요. 누구 앞이라고 제가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본 자가 없다고 저리 거짓을 말하는 겁니다. 아까 제 앞에서 분명 저리 말했습니다. 대공 전하. 대공가에 몸 바쳐 온 제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대공비와 퍽 다를 것 없는 존재였다. 마치 대공비가 한 말을 답습하기라도 하는 듯, 그는 열심히 상황을 부정하기 바빴다.
“그렇지. 대공가에 몸 바쳐 온 이가 거짓말할 리가 없지.”
“그럼요!”
“하지만 저 경비병도 대공가에 몸 바쳐 온 이지. 그러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거지?”
“그건!”
이번에도 기사가 먼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대공이 그를 막아섰다.
“왜. 신분이 더 고귀한 자의 말을 믿어야 한다고, 그대 또한 그 말을 할 것인가? 대공비가 그랬던 것처럼? 경비병처럼 평민 출신은 믿을 게 못 된다고?”
“그건…….”
“대공비의 사람이 아니랄까 봐 이렇게까지 똑같을 줄이야. 아이샤, 그리고 로헨, 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열만 세도록 해.”
아이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난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손으로 귀를 막게 하고 눈을 감게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된 건지 대공은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었다.
잠시 우리 쪽을 바라보던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스릉 하는 스산한 소리와 함께 대공은 경비병과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심증으로는 누가 범인인지 알 거 같은데…….”
그의 칼날이 기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물증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 되지.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감히 누가 대공 앞에서 거짓을 고했는지, 수사에 방해되었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차분히 말하는 그의 어투에서 그가 제정신이 아님이 느껴졌다. 소설 속에서 쌍둥이들은 정신 나간 애들이라 불렸는데, 그 핏줄이 아마 대공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랐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군. 아주 간단한 건데. 그냥 둘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야.”
“네……?”
“네? 아, 아니,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경비병은 여전히 억울함을 토로했고, 기사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감히 대공인 내게 거짓을 고하는 자가 있어. 그런데 말하지 않고 끝끝내 거짓만 고한다면, 그냥 둘 다 죽여 버려야지. 누가 범인인지도 모르는데, 살려 둘 순 없잖아? 어느 한쪽 편을 들어 그 사람을 살려 주었는데 그 사람이 범인이면 어떻게 해. 그러니 둘 다 죽여 버리는 게 최고이지 않겠어?”
결론이 그렇게 나는 게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아.’
그래도 지금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한 건지 아까 아이들에게 눈과 귀를 감고 닫으라 하긴 했지만, 소설 속이었다면 아이들의 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지 안 봐도 알 정도다.
‘저러니까 애들이 흑막을 넘어서 미친 애들이라는 말을 듣지. 참 착한 애들인데.’
착하고 깨끗할수록 쉽게 더러워지고 물드는 법이다.
그러는 사이 대공의 칼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경비병의 손가락 사이로 꽂혔다.
“으학!”
“다음번에는 못 피할 것이다.”
“자, 잠시만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 그러면 이쪽은 어떠려나.”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모른다고 하는 경비병을 보며 피식피식 웃던 대공은 기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는 조금 더 과격했다. 렉스는 내가 눈을 뜨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걸 알자마자 내 앞을 막았지만, 난 그의 다리 사이로 열심히 상황을 살폈다.
대공은 기사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너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예정이지?”
“그…… 그것이.”
“아니. 말하지 마. 이제 와서 모든 게 거짓이었다, 살려 달라, 이딴 말 듣기 싫어.”
“네……? 그러면 살려 주시는 겁니까?”
“아니, 그냥 죽여 버릴 거니까 괜한 말 하지 마. 귀만 더러워지니까.”
대공은 손사래를 쳤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처럼.
“대, 대공 전하.”
“이제 와서 하는 변명이 무슨 소용이겠나. 그냥 죽어. 그게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는 것일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기사를 처단하려는 듯 칼을 높이 들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낀 건지 그제야 기사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 덕분에 대공의 칼이 기사가 아닌 허공으로 휘둘러졌다.
“사, 살려 주십쇼. 저도 사주를 받고 한 일입니다. 그러니…… 그러니.”
“피하지 마. 다음번에는 제대로 죽일 테니까. 그래도 한 번에 목숨을 끊어 주는 아량은 베풀 거니까. 물론 피하면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으니,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대, 대공 전하! 비 마마께서, 대공비 마마께서 시키신 겁니다. 저, 저는 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살려만 주세요!!”
다시 한번 휘둘러지던 검은 이내 공중에서 멈췄다.
“대공비가 시킨 거다?”
“네. 저……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를 주면 때맞춰 나타나라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기사 렉스가 도망쳤다고 말하면 된다고…….”
“그러면 저자는 왜 데려온 거지?”
“그…… 그게 아무나 데려왔습니다. 그래도 대공 전하 앞이면…… 없는 죄라도 불까 싶어 제일 심약한 자를 데려왔을 뿐입니다.”
진실을 술술 말하던 기사는 고개를 들어 대공비 쪽을 바라보다가 대공을 바라보다가를 반복했다. 누가 봐도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네 말은 이건 모두 대공비가 시킨 일이다 이거지?”
“네. 대공 전하.”
“거, 거짓말입니다. 저것조차 나를 몰아가려는 함정이에요.”
“그럼 이 기사를 누가 사주했다는 거지? 아까처럼 내가 했다고 할 건가? 아니면 고작 여덟 살짜리 고아 소녀가 했다고 할 건가. 또 그게 아니면…… 누가 했다고 할 건가?”
“그…… 그건…….”
“말해 보도록, 대공비. 누가 그랬다 할 거지?”
그녀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여기선 또 어떤 핑계를 댈 것인가.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른다 할 건가. 나도 궁금함에 렉스의 발에 매달려 그들을 바라봤다.
“저, 저자를 데려가서 조사하도록 해요. 그러면…… 그러면 나중에 진실을 말할 거예요. 지금은 그냥 당황하니까 아무 말이나 하는 거예요.”
“왜. 데려가서 또 다른 말 하라 시키려고? 위협이라도 하려고?”
묘할 정도로 섬뜩하게 입꼬리를 틀어 올린 대공은 기사에게 다가가 주저 없이 그를 베었다.
“끄업…… 대…… 대공 전하…….”
“이제 어쩌지. 대공비. 데려가 조사할 사람이 없는데?”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대공비도 정신 차리라고 하는 소리야. 나는 말이야, 지금 많이 화가 났거든? 하마터면 아이샤를 잃을 뻔했잖아.”
“……그…… 그건…….”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가 위험했다고. 그런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도 화가 나고, 지금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는 대공비를 보면서도 화가 났는데, 저 기사까지 화가 날 만한 소리를 하잖나. 나를 화나게 했으니 죽여 버려야지. 안 그래?”
대공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그래도 어떻게…….”
“그러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은 내게 거짓을 고한 기사 하나뿐이지만, 다음번에는 바닥에 저렇게 쓰러져 있는 게 대공비일지도 모르니까.”
“…….”
“그리고 말이야.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대에게 속는다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끝까지 그대가 진실을 말하길 바랐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 그대는 멍청하기 그지없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그 소리군. 정말…… 그 가냘픈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야.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런 소리를 할지…… 정말 궁금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