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77)화 (77/99)

-77화- 

“그런데 아까 왜 그렇게 늦으셨어요?”

“아까? 아아.”

“바로 오실 줄 알았어요.”

천천히 마차는 출발했고, 뒤늦게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오려 했는데, 멜로디아 신녀에게 연락이 왔더군. 할 말이 있다며. 오늘 오실 때 자신한테 꼭 들러 달라면서 말이야.”

“아, 그래요?”

“그래. 아이들의 모친에 대한 소문을 들은 거 같더군.”

“쌍둥이들의…… 엄마요?”

순간 로헨이 살짝 움찔거렸다. 하지만 로헨에게 부모는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책 속에서 로헨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맘대로 태어나게 해놓고, 맘대로 부모라 지칭하냐고. 멋대로 자기들 뜻대로 태어나게 해놓고, 결국 또 상처를 주는 거냐고.

미쳐 버린 모친의 모습을 원한 건 아니라고. 차라리 자신들을 버렸으면, 지켜 주지 못했으면 잘 살기라도 하든가, 왜 이런 모습이냐고.

절망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어차피 소설 전개에서 쌍둥이들의 모친은 나오니까.

‘그런데 쌍둥이들의 모친은 멜로디아 신녀가 아니라 여주인공이 찾아 주는데.’

반쯤 미쳐 있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내가 먼저 찾아 주려 했었다. 적어도 그런 미래를 안겨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왜…… 멜로디아 신녀가 여기서 나오는 거지?

“그래. 쌍둥이들의 모친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요?”

소설에서 언급되던 쌍둥이의 모친은 아이들과 똑같이 갇혀 지냈다. 부모가 없이 자란 아이들.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들. 그런데 쌍둥이들의 모친은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낳자마자 빼앗겼다.

아이를 돌려 달라고, 뭐든지 할 테니까 아이만 돌려 달라고. 하지만 쌍둥이들의 모친을 가둬 두었던 대공비는 아이들을 죽여 버렸다고 거짓말해 버린다. 그 탓에 그녀는 점점 미치기 시작했고, 모두가 방심한 어느 날 대공비의 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미 미쳐서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누군지도,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녀는 신전에서 보호받게 되었다. 그래서 대공비가 그녀를 찾지 못했다. 신전과 긴밀하게 관련이 있던 여주인공이 찾아내 쌍둥이들 앞에 데려다 놓을 때까지 그렇게 그녀는 정신을 찾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멜로디아 신녀가 쌍둥이 모친에 대해 알아 오는 게…… 가능한 건가?’

진짜 그녀인 걸까. 아니면 다른 이인 걸까.

“별로 믿기진 않지만…… 그래도 확실하다고 하니…… 믿어 봐야겠지.”

“그렇구나…….”

“매우 이상하긴 해. 내가 아무리 찾으려 노력해도 절대 못 찾던 사람이 이렇게 쉽게 나타났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과거를 생각하면 신전에서 그녀가 발견되었기에 멜로디아 신녀가 쌍둥이의 모친을 찾아냈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대공은 쌍둥이들의 모친에 대해 조사하다 결국 대공비에게까지 시선이 닿았다. 그래서 그녀는 쌍둥이의 모친을 감시하던 인원을 대폭 줄이다가 그녀가 도망치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 모든 건 미래의 일인데.’

지금 시점하고 너무 맞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면 좋겠군. 과거에는…… 지켜 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전히 대공비가 난리를 치면 그는 그 여인을 지켜 주지 못할 테지만 과거와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지금은 쌍둥이들도 함께니까. 그녀를 지키지 못한다면, 어린 쌍둥이들을 지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걸 말하는 듯 대공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굳어져 있었다.

“무리하지 마.”

그때였다.

우리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로헨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응?”

“아니. 그…… 아…… 아…….”

“아?”

“아니이! 그쪽 말이야. 무리하지 말라고.”

분명 아빠라는 말을 하려는 것처럼 아, 아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던 로헨은 괜히 성질을 냈다.

“아아. 나에 대해 말한 건가? 별로 무리하는 건 없는데.”

“그럴 때에는 걱정해 줘서 고맙다, 무리 안 하마, 하면 되는 거예요.”

로헨의 성격이 어디서 비롯된 건가 했더니 대공과 꼭 닮았다.

“아…… 그렇구나. 고맙다. 로헨. 무리는 하지 않으마.”

“어…… 응.”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굴던 로헨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휙 돌렸다.

그 탓에 마차 안은 아까보다 더 냉랭해졌다. 대공은 맘에 드는 듯 웃고 있었지만, 로헨의 얼굴은 말도 못하게 붉어져 버린 상태다.

난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대공의 품에 안겨 있는 라리를 바라봤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 나는 오늘 라리를…… 깨울 생각이다. 

그렇기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맞는 일을 하는 건지, 뭐가 맞는 것인지. 그럼에도 멈춰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리렌이 있어서인지 신전에 도착한 이후 우리는 바로 대신녀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받았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게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신전 사람들이 우리의 잦은 방문과,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 대신녀님과의 만남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이들을 아예 만나지 않게 우리는 남들이 오지 않는 뒤쪽 길로 안내받았다. 그곳에서는 성기사들이 작은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우선 아이샤 님 먼저 들어가신 뒤에 우리가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거지?”

“대신녀님께서 아이샤 님을 먼저 뵙고 싶다 말씀하셔서요. 불편하시더라도 잠시 대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렌은 조용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이샤만 보내는 건 싫어.”

“금방 갔다 올게.”

“자꾸만 너만 보자고 하는 게 이상하잖아. 대신녀라는 사람이 왜.”

로헨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대공이 아이를 막았다.

“대신녀님도 대신녀님만의 생각이 있겠지. 그분이 나쁜 일을 할 리는 없다. 그러니 로헨, 잠시만 기다리자꾸나.”

“정말 여기는 마음에 들지 않아.”

로헨은 짜증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대공의 말은 퍽 잘 듣는 듯 한 발 물러섰다. 그 후에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

리렌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 나는 그 외딴 길을 혼자 걸어갔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밖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물론 그 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지키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작은 정원 안에는 푸릇푸릇한 나무들과 꽃들이 가득했다. 휠체어를 타고 그곳을 둘러보고 있던 대신녀님은 내가 기사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자 시선을 옮겼다.

“아이샤.”

“대신녀님!”

마치 고향에 온 듯 대신녀님을 만나자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나는 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막상 막 안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의 몸은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버석한 나뭇가지 같았기에, 나는 그녀 앞에서 급히 멈춰 섰다.

“안기지 않고?”

“혹시나 제가 안았다가 대신녀님이 넘어지거나 다칠까 봐서요.”

어색하게 웃으며 대신녀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생각보다 튼튼한 몸이랍니다.”

“그러면 다행이지만요.”

“잘 지냈어요? 나는 아이샤가 바로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아서 조금 섭섭했어요.”

“조금 바빴어요!”

“그랬군요.”

대신녀님은 손을 들어 뒤편에 있는 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휠체어를 밀어 주던 신녀는 빠르게 사라졌고, 작은 정원 안에는 나와 대신녀님만이 남게 되었다.

“저…… 우선 대신녀님.”

“네.”

“저…… 이제는 부탁드리러 왔어요. 이제는 때가 된 거 같아요. 라리를…… 깨워 주세요.”

도리어 내 말에 대신녀님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고민해 봤거든요. 원래라면 모든 게 다 해결되거나, 범인을 알아내거나, 범인에게 벌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증거가 나오면 라리를 깨워 달라 하려 했어요. 그런데요…… 제가 아이의 시간을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어요.”

“응?”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그걸 제가 막고 있는 거고. 그러니 틀린 거 같아요.”

“아이샤.”

대신녀님은 그런 나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맞고 틀리고는 없어요. 그저 선택의 연속일 뿐이죠. 이 또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일 뿐이예요. 어쩌면 아이샤가 바라는 길로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일 수도 있고, 또 빙빙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을 뿐이에요.”

“아…….”

“부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길 바라요.”

“네! 그렇게 할 거예요. 저는…… 꼭 미래를 바꿀 거예요.”

“나는 바꾸지 못했지만 아이샤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녀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들어오라 해야겠네요. 대공과 대공자, 대공녀를.”

“네! 들어오라 할까요?”

“그 전에. 리렌에게 조사해 달라 했던 게 있죠?”

“네!”

“그것에 대해서 내가 따로 조사했어요. 그리고 그게 뭔지 알아냈어요.”

벌써 알아낼 수 있었던 건가. 나는 놀라움에 그녀를 바라봤다. 

“말하기 전에…… 혹시 그게 어디 있던 건가요?”

“아…… 혹시 유추되는 곳이 있으세요?”

“네. 혹시 유난히 고온다습한 곳 아니었나요? 습하면서도 온도가 계속 뜨거울 수 있는 곳.”

“아……!! 설마. 이불이나 베개는 되지 않지만 인형은 가능했던 게…… 습하면서 온도가 뜨거워야 했기 때문이에요?”

“네. 그건…… 씨앗일 때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싹이 트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는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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