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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72)화 (72/99)

-72화-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난 눈만 깜빡였다.

“누구……예요?”

“새로 온 시녀입니다.”

“이렇게나 빨리 구해진 거예요?”

며칠은 걸릴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이렇게 빨리 사람을 구해 오다니.

“아이들하고 함께 자라더니…….”

이거 순 사기꾼 아니야. 말로는 다 배려해 줄 것처럼 그러더니. 괜히 섭섭함이 몰려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렉스가 급시 입을 열었다.

“혹여나 오해할까 봐 대공 전하께서 한마디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 인정한 시녀가 아니니 불편없이 지내라고.”

“……아?”

자신이 인정한 시녀가 올 때까지 아이들 옆에서 자라고 했었지. 나는 가만히 렉스를 바라봤다. 내 황당한 시선을 알아차린 건지 그는 어색하게 자신의 옆에 있는 시녀를 소개했다.

“리렌. 대신녀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온 시녀입니다. 아직 배움이 약하나, 그래도 믿을 만한 자라 생각하여 바로 모셔 온 거라고 꼭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신전에서 보낸 사람이요?”

대놓고 보낼 줄은 몰랐네.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샤 님.”

“잘 부탁드려요. 아이샤예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혹여나 불편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이곳의 시녀들과는 기본적인 눈빛부터가 달랐다. 진심으로 나를 모시고 싶어하는 이의 표정. 아이들은 그런 감정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누가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해.

적어도 그녀는 이제껏 만난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네!”

“그러면 저는 밤이 늦었으니,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혹여나 기사인 자신이 이곳에 오래 있는 것만으로도 무슨 말이 나올까 걱정스러운 건지, 렉스는 급히 인사를 했다.

“잘 가요!”

“네. 아이샤 님이 말씀해 주신 물건에 대해서는 최대한으로 알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렉스는 밖으로 나갔다.

“바로 주무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을까요?”

“그 전에…… 정말 대신녀님이 보낸 거 맞아요?”

나는 리렌을 빤히 바라봤다. 혹시나 대신녀님이 보냈다고 해놓고 다른 이가 온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네. 다른 분도 아니고 대신녀님의 이름을 팔아먹을 만한 자는 없습니다.”

리렌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하다. 신전에서 온 것도 아니고 대신녀라는 이름을 거론한 거 보면.

아무리 대신녀님이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대신녀님이다. 아직 그녀를 따르는 사람은 많다. 그녀는 신전을 대표하는 상징 그 자체니까.

“그렇죠……?”

“네. 그리고 제 앞에 계신 아이샤 님이 특별한 분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를 향해 몸을 숙였다.

“이곳에서뿐만 아니라 추후에 신전에 가실 때, 그리고 그 후에도 제가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아…….”

이미 내가 다음 대신녀가 될 거라는 것도 아는구나. 나는 그녀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네…… 아, 부, 부탁할 게 있어요!”

그것만 생각하면 슬퍼진다. 쌍둥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을 거다. 쌍둥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대신녀가 되는 게 맞을 거다. 신이 시간도 돌려주었으니.

“부탁이요?”

“네. 그 전에 로헨하고 라리랑 인사해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침실 쪽으로 급히 몸을 움직였다. 라리가 쓰러진 이후, 로헨은 거의 라리와 꼭 붙어 있는 상태다. 나에게 집착하거나 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로헨에게 있어 최우선은 라리였다.

그걸 보여 주기라도 하듯 낯선 이의 방문에 로헨의 표정은 절로 굳어졌다.

“뭐야. 그 사람은.”

“대신녀님이 보내 준 새로운 시녀래.”

“대신녀? 그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우리에게 잘해 주는 거야?”

로헨도 이제는 이상함을 느낀 건지 그녀를 경계했다.

“신께서는 자애로우시고, 그분의 뜻을 전하시는 대신녀님도 자애로운 분이시니까요.”

“원래 이유 없이 잘해 주는 사람 따윈 없다 그랬어.”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말에 무어라 불편할 만한데, 리렌은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대공자님. 제가 부담스러우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세 분을 편히 모시려고 온 사람일 뿐, 불편하게 해드리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편해지실 때까지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도 괜찮습니다.”

“내가 무슨…… 벌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라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상하다는 거지.”

언제나 날 서 있던 로헨도 이제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여전히 라리를 지키려고 툴툴거리는 건 있었지만.

“어쨌든! 이쪽은 대신녀님이 소개해 줘서 시녀로 이곳에 온 리렌. 저희는 누군지 알죠?”

“네. 대공자님, 대공녀님, 그리고 아이샤 님을 모를 리가 없죠.”

그녀를 보며 나는 우리가 한쪽에 빼두었던 인형을 내밀었다.

“그럼 이거 부탁해요.”

“이게 무엇인가요?”

“아까 말했던 부탁할 거요. 인형 솜 안에 이상한 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봐 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별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두 사람에게 조사를 모두 맡겼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조사 결과를 들고 올 그들을 기다리며 내가 조사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다.

“그럼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아니요. 오늘은 이만 가도 될 거 같아요.”

그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믿을 만한 사람이야?”

“뭐…… 우선은?”

“으응…… 아이샤. 라리는 언제 일어날까? 인형들을 모두 치웠으니까 반응이 오지 않을까?”

“복합적인 거 같아. 인형 한 가지로 라리를 재운 건 아닐 거야.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대공비의 팔다리가 모두 잘려 나갔으니…… 무언가 다음 반응을 보이겠지.”

라리를 바라보다가 침대로 올라갔다.

“우린 우선 자자. 나 조금 피곤해.”

“응. 자자.”

로헨은 라리와 마주 보고 누운 날 보며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로헨은 안 자?”

“지킬래. 이제 누구도…… 아픈 거 싫어.”

“어떻게 지키려고.”

“그냥…… 모르겠어. 그래도 지킬래.”

저 나이의 아이답게, 자신이 모두를 지키겠다고 말하는 그 평범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로헨은 정말 우리를 지키는지 간간이 혼잣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피곤함에 난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그렇게 꿈으로 빠져들었다.

***

다음 날. 로헨도 잠에 든 건지 어느새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자고 있었다.

그런 로헨이 안쓰럽고 또 예뻐서 머리를 쓰다듬던 그때였다.

“안 됩니다.”

갑작스럽게 밖이 시끄러워졌다.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선을 지키려는 듯 조용조용 이야기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더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결국 난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나서야, 대신녀가 일부러 대놓고 자신의 이름을 대고 그녀를 보낸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쌍둥이들이 대공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니까 자신의 이름을 보호막으로 쓰라는 연유인 것만 같다.

대신녀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함부로 못하게 하려는 마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샤 님. 제가 막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침실 쪽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대공비 쪽 시녀들. 리렌은 그들을 막아서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리렌이 막으니 억지로는 못 들어오고 있으나, 대공비의 시녀들은 어떻게든 내 눈에 들려는 사람들처럼 조급해 보였다.

리렌이 아니었으면 저 상태 그대로 침실까지 들어왔을 판국이다.

“막길 뭘 막아요. 이곳은 대공가. 대신녀님이 보냈다 한들, 우리 앞을 막을 이유가 없을 텐데요?”

“막을 이유가 없긴 왜 없어요. 원래 방에 아무나 이렇게 들어오는 거예요?”

“네?”

“들어오라고 말한 적 없는데요. 이 방은 내 방도 아니고 대공녀와 대공자가 있는 방인데요?”

“그, 그래서 저희는 음식을 가져온 것뿐인걸요.”

저들이 만들어 낸 나름의 핑곗거리가 저건가 보다. 난 피식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평상시에도 식사가 나빴던 건 아니었으나, 그들은 눈이 돌아갈 만큼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은쟁반에 들고선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식사하고 싶다고 한 적도 없는데요.”

“그래도 맛있는 걸 드셔야죠.”

“글쎄요. 오히려 대공자와 대공녀가 있는 방에 함부로 쳐들어온 당신들이 이해가 가지 않네요? 이곳에서 잘렸던 사람들이 무슨 명분으로 이러는 건지.”

그사이 그들을 막기 위해 방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렉스까지 안으로 들어섰다.

‘어떻게든 이 방 안에 있어야 한다 이건가.’

뭐가 있기에.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인형을 싹 다 치워 버리든지 해야겠다.

“그 일은…….”

“렉스. 로헨과 라리가 불편해하니까 다른 이들은 아무도 들이지 말아 주세요. 아, 대공비 마마께서 말씀하셨던 의원은 제외하고요.”

“알겠습니다. 들으셨죠.”

“아니, 이 방은 대공자님과 대공녀님의 방인데 왜……!”

원래도 막 나가던 이들은, 더 막 나가기로 마음먹은 건지 불만을 토로했다. 그때, 자고 있던 로헨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샤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야. 아이샤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할 거니까 토 달지 마.”

그 말에 방금 전에 입을 열었던 시녀가 급히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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