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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67)화 (67/99)

-67화- 

응. 너무 사랑해.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너희들을 사랑해.

이 마음을 꺼내어 보여 주고 싶다. 쉬운 마음으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고. 솔직히 미래에 벌어질 일이니 뭐니 하는 그 일도 현실감이 없긴 하다.

그러니 그 미래의 약속을 지키려고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이…… 로헨과 라리를 지키고 싶어한다.

“그거면 됐어.”

“그걸로…… 되었다. 우리를 위해 울어 줄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리 못된 짓만 하던 우리에게…… 그래도 신은 작은 천사를 보내 준 모양이구나…….”

꿈같은 곳에서 봤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 로헨은 큰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을 위해 울어 줄 단 한 명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그 모습이…… 지금의 로헨과 겹쳐졌다.

자신의 동생을 이용하는 나를 보고도, 괜찮다는 저 말이 가슴 찢어지게 아프다.

“무슨 일이든 해. 솔직히 라리 말고 나를 이용하라고 하고 싶은데…… 나는 라리처럼 아프지 않으니까.”

“그러게. 왜 라리만 일어나지 못하는 걸까. 라리의 건강이 제일 나빴던 걸까.”

“아이샤. 나는 네가 잠들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해. 라리는…… 괜찮을 거니까.”

슬픈 눈매로 로헨은 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쩐지 행복한 미소였다.

“으응……. 정말 빨리 원인을 알아내고 싶다. 로헨 너의 몸은 괜찮아?”

“응. 초반에는 나도 라리처럼 조금 졸리긴 했지만 지금은 괜찮아.”

“너도 처음에는 조금 졸렸다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졸린 증상이 있었다. 하지만 대신녀님의 말대로 나는 아마 내 몸을 보호해 주는 무언가 때문에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라리와 같은 물건들을 쓴다 해도 나는 그랬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로헨은?

‘만약에 내가 대공비면, 누구를 얌전하게 만들고 싶을까.’

그건 당연히 로헨이 아닐까? 라리가 아닌 로헨. 라리는 이미 대공비의 말을 잘 따르고 있었다. 그냥 두었어도 라리는 문제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대공비는 분명 라리에게 독약을 썼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고민들.

그럼 왜. 로헨은 단지 경계심이 심해서? 무언가 하려고 해도 잘 안 되어서? 라리를 아프게 해서 로헨을 묶어 두려고?

‘그것도 아니면…… 로헨에게도 시도했는데 잘 안 되었다. 그 때문에 최소한의 접촉으로 로헨도 라리 같이 무기력하면서 잠만 자게 만들려고 독약의 성분을 늘리다가 잘못되어서 아프기 시작한 거다.’

결론으로 도달해 버렸다.

대공비가 바라는 건 뭘까. 자신의 아들이 대공의 자리에 오르는 것. 그걸 방해하는 제일 큰 요소는 쌍둥이다. 그래서 쌍둥이를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 못했고 결국 쌍둥이들은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러면 대공비에게 쌍둥이를 대공 자리에 못 올라가게 할 방도는, 쌍둥이들에게 하자가 있다고 하는 거겠지. 그걸 위해서는 라리의 현 상태가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니 분명 로헨에게도 무언가 방법을 썼을 거다.

“로헨.”

“응?”

“대공가에 오고 초반에 혹시 너한테 온 특별한 뭔가가 있었어?”

“나한테 온 특별한 거?”

그 당시에 나도 정신이 없었다. 대공가에 막 오고 나서 이곳에 적응하는 데 여념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대공가이기에 쌍둥이들에게 물건은 많이 들어왔을 테고 그때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라리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건 나와 로헨이 온 이후니까.

“응.”

“특별한 거라면……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특별한 건 없었는데.”

아닌가. 뭐지. 분명 로헨에게도 똑같이 뭔가 했을 텐데. 그게 뭔지만 알아도…… 그렇게만 해도……

“라리가 이상했던 건 있어.”

“어?”

“인형. 라리가 인형을 주었어. 좋아하지도 않는 인형을 가지고 놀자고 내게 하나 쥐여주더라. 여기 시녀들도 라리가 쥐여준 인형 잘 가지고 노시냐는 말도 했었고. 그런 걸 내가 왜 가지고 놀아. 다 라리 줘버렸는데.”

그제야 라리의 침대 주변을 바라봤다. 이상하리만큼 많은 인형. 라리가 인형을 좋아해서 단순히 그 이유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나 또한 라리가 들고 다니는 인형을 들고 다녔음에도 별 이상이 없기에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어쩌면…… 인형이랑 무언가 결합된 걸 수도 있겠구나.’

이상하리만큼 인형이 많다.

“그러네…… 그거구나.”

“응?”

“라리는 누군가가 시켜서 너한테 인형을 준 거겠지. 오빠도 인형을 좋아할 거라고…… 아마…… 그거인 거 같아.”

“그거라니?”

나는 라리가 안고 있던 인형을 가만히 살폈다. 그냥 보기에는 별다를 게 없다. 나는 그중에 아이의 품에 있던 인형을 빼냈다. 얼마나 강하게 아이의 손이 올려져 있던 건지 꽤나 끙끙거리며 인형을 뺐다.

그 탓에 인형은 힘없이 목이 뜯어졌다.

뜯어진 인형 안에서 솜이 삐져나왔다. 새하얀 솜. 그런데 조금 묘했다.

“역시…… 뭔가 있긴 한가 봐.”

“왜?”

얼핏 보기에는 솜이었으나, 솜 속에는 씨앗 같이 생긴 무언가가 콕콕 박혀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뭉친 솜 정도로 느껴질 테지만 검은색 씨앗은 보기에도 뭔가 이상했다. 개중에서 대부분은 새싹까지 나 있었다.

“이거 봐.”

“이게 뭔데.”

“몰라. 근데 뭐가 있긴 한 거 같네. 이걸 조사하면 딱 좋을 텐데.”

“그게…… 라리를 저렇게 만든 원인일지 모른단 거야?”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걸 손에 꽉 쥐었다. 하지만 로헨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내 손을 억지로 폈다.

“로헨…… 왜 그래?”

“나쁜 거라며! 라리를 저렇게 만든 거라는데! 너도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그러더니 제 옷으로 내 손까지 툴툴 털어 냈다. 사색이 된 얼굴로 화까지 내면서.

“아…….”

“이런 짓 하지 마. 너까지 잃을 수 없어. 그러니까…….”

왜 이렇게 로헨의 손이 떨리는 거 같지.

“미안해…… 내가 너무 안일했어.”

“어…… 그러니까 이러지 마.”

“그래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럼 손수건에 담아 볼까? 그것도 싫으면…… 저걸 꿰매 달라 해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줘버릴까?”

“어. 그렇게 해. 너는 다시는 저 씨앗 만지지 마. 알았어?”

로헨에게는 차마 말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이런 거 상관없다고. 빌어먹게도 신의 선택을 받아서 이제 아플 일은 없다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분명 이렇게 말하면 의심부터 하겠지.’

대신녀와 친하게 지내는 그것부터 의심할 게 뻔하다.

결국 나는 떠나게 될 거지만, 그 전까지는…… 이것만은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신전과 조금이라도 연결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면 안 된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너는 약하니까…… 너도 라리도 약하니까.”

“응. 그러면 우리 책 읽고 있을까.”

“……저걸 믿을 만한 사람 누구에게 맡길 거야?”

로헨은 어설프게 뜯어진 인형을 내 손에서 빼앗아 쓰레기를 잡는 것처럼 들고선 창가에 내려 두었다.

“저것뿐만이 아닐 거야.”

“어. 그런데…… 우리한테 믿을 만한 사람이 있기는 해?”

원초적인 그 질문에 난 어색하게 웃었다.

믿을 만한 사람.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잘해 주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한쪽은 나를 볼모로 잡고 있고, 또 한쪽은 대공의 사람이다.

‘어느 쪽이 나으려나.’

“아니면 우리가 조사를…….”

“우리가 조사한다고 외부로 맡겨 봤자, 결국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게 될 거야. 차라리 맡기는 게 낫겠지. 믿을 만하지 않더라도, 우선 우리에게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말이야. 렉스와 대신녀님, 이렇게 둘한테 맡길 거야.”

이번에도 로헨에게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는 씩 웃으며 밖으로 후다닥 나갔다. 내가 갑자기 밖으로 나오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안쪽이 시끄러우시던데.”

“아니야. 렉스 혹시 봤어?”

“아. 그 기사요. 글쎄요. 뭐, 대공 전하에게 이르러 갔나. 보이질 않네요~?”

이미 렉스에 대해서는 매우 나쁘게 생각하는 듯 그녀들은 숙덕거리기 바빴다.

“대공 전하께 갔으려나.”

“네. 워낙 각별한 사람이니, 아이샤 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말하고 다니겠죠.”

일부러 렉스와 내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듯, 그들은 렉스를 몰아갔다.

“하긴. 매일매일 밤마다 사라지는 게 다 대공 전하께 보고하러 갔는지 모르죠.”

“조심하세요. 온갖 말을 다 전할지도 모른답니다.”

“듣자니 더러운 핏줄 소생이던데. 그런 자를 뭘 믿을 수 있겠어요.”

저들끼리 까르르까르르하는 것을 보니 구역질이 날 것만 같다.

“그런가.”

그러는 사이 난 문을 하나 더 열고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근처에 서 있던 렉스가 날 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를 보러 나오신 겁니까?”

“응! 이리 와봐요.”

“네!”

커다란 강아지처럼 렉스는 날 따라 쫄래쫄래 들어왔다. 원래라면 바로 로헨이 있는 곳으로 갈 테지만, 렉스가 밖에 있었음에도 열심히 그를 깎아내리던 이들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까 렉스에 대해서 뭐라더라…… 더러운 핏줄 소생이니 뭐니 하던데 그건 무슨 말이에요?”

이럴 때는 눈치 없는 아이인 척하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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