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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66)화 (66/99)

-66화-

“로헨.”

“이용당하는 거…… 괜찮아. 우릴 막 이용해서…… 좋은 집안으로 가도 되고, 엄청 돈 많이 뜯어내도 돼. 그런데…… 다 괜찮은데…… 우릴 버리지만 마.”

난 로헨을 품에 꼭 껴안았다.

“아…….”

“절대 버리지 않아. 이곳을 떠나려는 게 아니라, 이곳에 있으려고 그랬어. 미안해…… 네가 그런 생각 하는지 몰랐어.”

행복하게 해준다고 해놓고, 왜 이런 불안한 마음을 안겨 준 걸까. 뭐든지 다 할 것처럼 굴고선 나는…… 왜 이다지도 너에게 상처를 준 걸까.

“그 말…… 믿어도 되는 말이야?”

“응.”

“정말 믿어도 돼? 우릴 떠나지 않는다는 그 말. 우릴 버리지 않는다는 그 말…….”

“응.”

고작 이런 대답으로 내 마음이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다. 진심으로 너희를 아끼는 내 마음을. 너희와 함께하고 싶은 이 마음을.

“있잖아.”

“응. 로헨.”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어.”

갑작스러운 로헨의 말에 난 눈만 깜빡였다. 돌아가고 싶다니.

“설마 보육원으로?”

“응. 그곳에서 우린…… 행복했잖아.”

“하지만…… 하지만…….”

“너는…… 누나는 그러지 않았어?”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로헨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그곳에서 행복했어. 행복했고말고.”

“응. 그래서 돌아가고 싶었어. 정말 행복했거든. 우리가 서로만 바라봤잖아.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처럼. 하지만 여기서는 누나가 자꾸 다른 곳만 봐.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 그게 너무 샘나고 화가 나는데 말리지 못하겠어. 말리면 안 될 거 같아서.”

“로헨. 그래도…… 그곳에서 로헨과 라리는 아팠잖아…….”

“아팠어도 괜찮아. 온전히 우리만 누나를 가지고 있었는걸. 그 예쁜 눈동자에 우리만 담겨 있던걸.”

그 정도였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자신들이 학대받았어도 괜찮으니까 나와 함께 있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니.

가슴이 저미는 것만 같다. 상처를 주지 않겠노라 다짐해 놓고, 과거 같은 일은 없게 하겠다 다짐해 놓고 나는 또다시 이렇게 상처를 주고 있었나 보다.

“로헨…….”

“그래도 괜찮아. 이제 우리랑 함께 있을 거잖아. 절대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을 거잖아.”

“응.”

“그러니까…… 나도 라리도 괜찮아. 그래도…… 그립긴 하다. 이렇게 잠만 자는 라리는 아니었는데. 내가 툴툴거려도 언제나 나만 봐주던 누나였는데.”

누나라는 그 말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언제나 야, 하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던 로헨이었는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다음부터…… 대공이 무슨 일을 시키면, 다 할게.”

“응?”

“그러니까…… 그러니까 옆에 있어.”

“내가 대공 전하한테 했던 말 때문에 그렇구나…… 아니야. 진짜 떠나려고 그런 거 아냐.”

“응…… 그럼 됐어.”

로헨이 웃었다. 이곳에 와서는 웃음을 잘 보여 주지 않던 로헨이 겨우겨우 웃었다. 너무나 슬픈 얼굴이었다. 차라리 화르륵 화를 내지. 계속 계속 화를 내지.

혹여나 화를 내서 내가 자신들을 미워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로헨의 분노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로헨.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너 많이 바쁜 거 같아서.”

“조금 생각할 것도 많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어.”

아이들의 마음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좋은 미래,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 해도, 결국 마음이 시들어 버리면.

‘내가 봤던 미래가 다가오는 기분이 들어.’

바꾸기 힘들다던 대신녀님의 말처럼, 자꾸만 일이 잘될라 치면 틀어지는 기분이다. 쌍둥이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했던 일들이 로헨과 라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까.

‘실격이네, 나.’

어색하게 웃으며 로헨을 바라봤다.

“나 사실은 고백할 것도 있어, 로헨.”

“응?”

“미움받는 게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어. 하지만…… 말해야 하는 거라 생각해.”

“뭔데?”

로헨의 통통한 볼이 좌우로 흔들렸다.

“라리가 아픈 이유는 독 때문인 거 같아. 하지만 어떤 독인지 알 수는 없어. 그 독이 뭔지 알기 위해 내가 라리와 똑같이 입고, 똑같은 걸 쓰고, 똑같은 걸 먹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어.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독 같은데 알 수가 없어.”

“아.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있던 거야?”

“응.”

내가 가져왔던 책들을 로헨에게 보여 주었다.

쌍둥이들을 위해 가져온, 쉽게 배울 수 있는 제국의 역사서, 글자와 예법, 그리고 그 중간에 넣은 식물과 관련된 얇디얇은 책들.

“내가 본다고 해서 알아볼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들은 모두 찾아보고 싶어.”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비겁한 짓을 하고 있어. 그래서…… 차마 말하지 못했어.”

로헨과 말하면서 난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비겁한 짓?”

“응…… 대신녀님. 기억나?”

“응. 되게 이상한 아줌마였지.”

“대신녀님이 라리를 낫게 해주신다 했어. 바로 깨어날 수 있게.”

그 말에 로헨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아졌다.

“정말? 정말로? 그럼 라리 예전처럼 다시 눈 뜨고 그러는 거야? 이제 같이 뛰어 놀 수 있는 거야?”

“어…… 하지만 그러지 말아 달라 했어.”

“……응?”

자신이 잘못 들은 거 아니냐는 듯, 로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아니, 맞게 들은 거야. 내가…… 그러지 말아 달라 했어. 바로 낫게 해줄 수 있다 했는데, 그러지 말라 했어.”

“왜.”

단답형의 짧은 로헨의 목소리는 내가 이제껏 들은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차가워서 심장이 마구 짓이겨지는 기분이었다.

“그게…….”

말해도 될까. 로헨이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 대신녀님 말같이 될 거라는 걸 느꼈다. 노력해도 미래를 바꾸기는 힘들다는 그 말. 아마도 나도 그리되겠지.

소설 속 내용 좀 안다고 미래는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었으니까.

“왜냐고. 바로 낫게 하면 되잖아. 왜. 라리를 저리 아프게 계속 두는 건데.”

“원인을 알아야 하니까.”

“원인?”

“응. 라리한테는 너무 미안하고, 로헨 너한테도 미안하지만 이대로 그냥 지나가면 또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해. 그래서 이 일을 만들어 낸 사람을, 증거를 찾아서 다시는 못 하게 하려 해.”

“뻔한 거 아냐. 누가 그러는지 알잖아.”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대공 전하께 가서 우리 라리가 독을 먹은 거 같아요, 해봤자. 이미 의원들도 다 성장 중에 있는 일이라고 해버렸는데 뭘 믿어 줄까. 어린아이의 말을.”

이미 한 번의 좌절을 겪었다. 예상한 좌절이었기에 충격이 크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어른들이 우리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깨달았다.

“고작 그런 이유들로…… 라리를 저렇게 아프게 둔다는 거야?”

“응.”

“고작…… 고작……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다시는 못 하게 하려고…… 고작 그런 이유들로?”

“로헨. 고작이 아니야.”

“다시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는 일 때문에…… 라리를 저리 두는 거야?”

로헨은 라리와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말하지 않는 게 맞았던 걸까. 하지만 더 이상 속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난, 지금 맞는 일을 한 걸까. 과거보다 더한 아픔을 건네준 건 아닐까.

“맞아…….”

“라리는…… 언니를 참 좋아했어.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해 온, 오빠인 나보다 언니인 너를. 그런데…… 그런데 너는…… 라리를 낫게 해줄 수 있는 방도를 알면서도…… 이런다고?”

“나도 좋아해. 좋아하니까 이런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잘 안다. 솔직히 또 안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우리가 지금 겪는 이 일이, 라리가 독에 당해서 저러고 있는 게 반복된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그저 대공비를 끌어내리고 싶은 것뿐이다. 그저 위험이 없게. 그것뿐인데 로헨이 이해 못하는 건 당연하다.

“우선 깨워야지. 깨우고 나서 뭘 하든지 해야지. 왜 그걸 안 해? 왜 그걸 막아! 다 해준다잖아!”

그러고 나면…… 난 이곳을 떠나야 하니까. 그만큼의 도움을 받으면 난…… 이곳을 떠나야 하니까.

너희들에게 위험만 안겨 준 채, 대공비를 그냥 둔 채, 그렇게 떠나야 하니까.

더 이상 내가 너희를 보호해 줄 방도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이 이야기까진 할 수 없었다. 다 말하겠다 마음먹었지만, 로헨의 반응을 보고 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저런 반응들이.

라리가 나을 방도가 있음에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내가 못된 거니까. 어쩌면 내가 감정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 걸지도 모른다.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이 일을 만든 사람을 찾아낼 거야. 다시는 이런 일 없게.”

“…….”

“지지까지는 바라지 않아. 그냥…… 그냥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

“그래서,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거구나. 그래서…….”

로헨은 허탈한 웃음을 뱉어 내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

“하지만 내 마음의 변화는 없어.”

설령 네가 날 싫어하게 된다 해도, 라리가 날 미워하게 된다 해도. 이게 현재의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도야.

“아이샤.”

“응.”

“너는…… 우리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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