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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65)화 (65/99)

-65화-

대공과 이야기하러 방에 들어갔던 렉스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밖으로 나왔다.

“빨리 나왔네요?”

“네.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왔습니다.”

“아아. 내가 도서관에서 뭘 보는지 그런 이야기요?”

“아니요?”

당연한 걸 물었는데, 렉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라구요?”

“네. 도서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샤 님이 자주 가시니 관리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했는걸요.”

“아.”

당연스레 내가 도서관에서 뭐 하는지, 무슨 책을 보는지 그런 일상들을 보고하는 줄 알았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 눈만 깜빡였다.

‘아니면 나한테는 거짓말하는 걸까. 다 말해 놓고 다른 것만 이야기했다고?’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해맑다. 렉스는 감정 자체가 모습에 드러나는 사람인 것 같아서, 그의 행동이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린다. 괜한 사람 의심하는 기분이라서.

“그럼 가볼까요? 도련님과 아가씨께서 기다리시겠어요.”

“아…… 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바로 출발할 것처럼 굴던 렉스는 주변을 잠시 훑어보다 꽤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참 이상하네요.”

“뭐가요?”

“도련님과 아가씨가 움직이실 때보다 아이샤 님 혼자 움직일 때, 더 많은 감시자가 붙는 거 같아서요.”

“저한테 관심이 많나 봐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 아줌마, 아니 대공비의 성격상, 쌍둥이들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감시 붙인 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니까.

“그럴까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왜요. 렉스는 대공비 마마가 의심스러워요?”

하지만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밝게 웃거나 내 이야기에 하나하나 호응해 주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색하리만큼 조용해진 그의 모습에 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면…… 렉스 또한 그쪽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쪽 사람이요?”

“대공비 마마의 사람이요! 이미 많이 있잖아요.”

“아닙니다. 그런 거. 저는 대공 전하의 사람입니다.”

“대답을 못 하길래 물어본 것뿐이에요.”

그 말에 렉스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손을 내게로 내밀었다.

“제가 말이 없던 건 조금 신기해서였습니다. 감시하는 사람들을 보고선 어떻게 바로 대공비 마마를 생각하는지 신기해서요.”

“대공 전하께서는 이렇게 대놓고 감시자를 붙여 주셨으니까요?”

그의 손을 잡고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그가 우물쭈물했다.

“아…….”

“괜찮아요. 감시자여도. 렉스는 뭔가 편하게 해주거든요.”

“저 아이샤 님. 저는…….”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열려다가 금세 다물었다.

“왜요?”

“아닙니다.”

“네!”

굳이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졸라 이야기해 달라고 할 필요는 없기에, 난 별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 아까 말하던 도서관 말인데요.”

“네. 대공 전하께서 뭐라 하시던가요?”

“네. 다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뭐를요?”

혹시나 싶어 떠보듯이 물어본 거였는데, 그는 도리어 활짝 웃고 있었다.

“뭘 해주신다는 거예요?”

“아이샤 님이 도서관에서 더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도서관 환경을 개선하고, 아이샤 님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어 주시기로 하셨고, 사서를 고용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관리가 안 되고 있는지 몰랐다면서, 오히려 그곳의 상황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면서 최대한의 배려를 해주신다 하셨어요.”

대공이 몰랐을 거라는 건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 배려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 그렇군요.”

“걱정 마세요. 환경 개선이 된다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건 아니라고 확답해 주셨습니다. 원래도 허가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혹시 제가 한 말 때문에 그동안의 평안이 깨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아마도…… 대공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까요.”

나름의 배려를 해주려는 듯 렉스의 말과 행동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괜찮아요. 저는 빌려 쓰는 입장인걸요. 그러니 어떤 상황이든 전 괜찮아요.”

“그, 그런가요. 죄송해요. 생각해 보니 제 생각이 너무 짧았네요.”

“정말 괜찮아요. 이참에 복작복작해지면 좋겠네요. 괜찮으면 로헨과 라리도 데려갈 수 있을 테니. 지금은 너무…… 오히려 잘됐어요. 라리를 데려올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제야 그는 안도감이 깃든 표정으로 웃었다.

“다행입니다.”

“그러니 어서 가도록 해요. 라리와 로헨이 기다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다음엔 말이 없었다. 렉스나 나나 서로 할 말은 많은데 서로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쌍둥이들이 있는 방까지 당도했다.

“늦었네.”

언제 일어난 건지 로헨이 매우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일어나 있었어?”

“어. 도대체 어디 갔다 오길래 이렇게 늦은 거야.”

“도, 도서관 갔다 왔어.”

“거짓말.”

단호한 로헨의 말에 어쩐지 난 거짓말을 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데 왜 로헨 앞에서는 이리 마음이 쿡쿡 쑤시는 걸까.

“……왜. 아니다.”

뭔가 말하려던 로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그럼 오늘은 라리가 일어나기 전에 같이 책이라도 볼까?”

“그래. 아까 가져다 놓은 책 거기 있어.”

“응! 아…….”

그제야 로헨이 나를 그리 불편하게 바라보던 이유를 알았다. 로헨이 말한 곳에 놓인 책. 방금 도서관에 갔다 왔다는 사람의 책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알면서 물어본 거였구나.

“로헨.”

나는 책을 하나 들고선 로헨의 옆으로 갔다. 아무래도 내가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아서. 그렇게 갔는데, 로헨은 날 쳐다도 보지 않는다.

“로헨?”

“…….”

“나 안 볼 거야?”

“뭐.”

평소였다면 내 말에 어떠한 반응이라도 했을 로헨은 아무 말도 없이 라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로헨…….”

“…….”

“말 안 할 거야? 거짓말해서 미안해. 도서관 갔다가 대공비 마마가 불러서 갔다 왔어. 네가 걱정할까 봐 이야기 안 한 거고.”

잠시 날 보던 로헨은 내가 가져온 책을 펼쳤다. 물론 그런다고 해도 그걸 볼 수 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로헨은 책을 읽는 척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였다.

“읽어 줄까?”

“…….”

“읽어 줄게.”

“……왜 요새 우리한테 말 안 하고 자꾸 밖으로만 돌아?”

“어?”

차분히 말하는 로헨의 말투가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직 앳됨이 남아 있지만 다 큰 후의 로헨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그렇잖아. 마치 우리를 피하는 사람처럼, 계속 계속 외부로만 돌잖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니라고? 시녀들이 나한테 이야기할 때만 해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맞는 거 같아.”

“무슨 말?”

로헨은 그동안의 불만을 토로하듯이, 나를 향해 빠르게 목소리를 뱉어 냈다.

“시녀들이 그러더라. 네가 떠날 준비를 하는 거 같다고. 자꾸만 외부로 도는 것도 그렇고, 대공비 마마와 대공 전하를 번갈아 가며 만난다고. 나는 아닐 거라고 믿었는데, 계속 계속 믿었는데…… 대공 전하한테 이곳에서 나가도 상관없다고 내 앞에서 그랬잖아.”

“그랬……지.”

“그리고 그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한테 숨기는 것처럼 지금도…… 지금도 그랬잖아. 왜…… 왜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 라리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너까지 왜 그래.”

로헨의 목소리가 왜 이다지도 애달프게 느껴지는 걸까.

삶의 마지막 순간, 그 과거의 시간에서 신에게 울부짖던 그 로헨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나는 그런 로헨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로헨. 정말 미안해.”

괜찮은 줄 알았어. 언제나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너는 괜찮은 줄 알았어. 아직 어린아이인데, 기댈 곳 없는 아이인데. 언제나 라리의 보호자로,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아이인데.

‘이제야 겨우 편안해졌는데.’

로헨의 집이라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보다. 모든 게 다 끝나고 설명하면 되겠거니 그리 생각해 버렸다. 로헨은 이해해 줄 거라고.

로헨과 라리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애쓰고 있는 거니까 이해해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날 믿으라고 해놓고 믿음 하나 안 주고 있었다.

“로헨……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 주변에는 우리들뿐이었다. 렉스도 시녀들도 모두 물러난 상태였다. 그러니 말하면 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다…….”

너희를 위한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다. 로헨. 나는 너희를 위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닌가 봐. 나를 위해서 하는 건가 봐. 정말 너를 위해서 하는 거였다면 이렇게 입이 안 떨어질 리 없었겠지.

“괜찮아.”

“응……?”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랬어. 알아. 네가, 누나가 우리를 위해 그러는 거라는 거. 잘 알아. 우리한테 말 못 하는 것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냥…… 섭섭했어. 그냥 떠날까 봐 두려웠어.”

라리의 손을 잡고 있던 로헨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떠날까 봐……?”

“응…… 네가…… 우리한테 말 안 해주고 다른 일 해도 괜찮아. 절대 우리한테 나쁜 일 만들 사람이 아니란 거 잘 알아. 설사 나쁜 일 만들어도 괜찮아. 그런데…… 네가 떠나는 건 너무 두려워. 우리 이용해도 되니까……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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