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응?”
“대공비 마마가 보시기에도 자라나는 과정 중에 아픈 게 아니라, 문제가 있는 거 같죠.”
“아, 글쎄? 나는 잘 모르겠구나.”
“방금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아픈 게 얼른 나아야 할 텐데 하고.”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이게 아닌데 그런 표정들이 비쳤다. 물론 그녀는 금세 표정을 지워 냈다.
“그러니 확실히 조사라도 해봐야겠어요. 의원들이 전부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가 봤을 때는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대공비 마마께서 그리 말씀하신 거 보면…….”
“내가 의원도 아닌데 뭘 알겠니. 의원들이 하는 말이 맞겠지.”
“그럴까요?”
“그, 그럼…….”
“하지만 아이를 키워 보신 대공비 마마께서도 절대 성장 중에 나타나는 보통의 일로는 보이지 않으신단 거잖아요.”
집요한 내 말에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대공 전하께도 말씀드리게요. 분명 좋아해 주실 거예요. 대공비 마마께서도 우리 라리한테 이렇게 신경 쓰고 계신단 걸 아시면요.”
“그…… 그렇겠지.”
슬쩍 대공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대공비의 반응이 조금 심상치 않았다. 대공과 사랑하지 않았던, 오로지 대공비의 자리를 탐냈던 사람. 그렇기에 대공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고, 그의 약점을 만들어 어떻게든 대공가에서의 자신의 세력을 늘리고 싶어한 사람.
지금 그녀의 반응을 보니 아직 그녀는 대공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아직 대공의 힘이 강할 때란 거겠지.’
하긴 그러니까 나를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 거겠지.
“대공 전하께 보고를 올린 사람들을 전부 다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들은 아무 이상 없다고 그래서…….”
“아직 모르는 거잖니. 그래, 내가 라리에게 새로운 의원을 보내 줄까? 조금 더 명확하게 판단할 사람을?”
“좋아요! 언제 와요?”
“내일은 힘들 테니 3일 후에 들어오라고 하마.”
“네!”
그러면 나는 의원이 오는 날에 맞춰 신전에 갈 것이다. 의원이 직접 신전에 와서 라리를 진료할 수 있게. 이런 식으로 대공비를 계속해서 건드려서 그녀가 여기저기 자신을 표출할 수 있게. 나는…… 아직 아무 힘이 없는 아이일 뿐이니까.
온전히 내 편이 없는 아이. 그렇기에 어른들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며 지켜만 봐야 하는 사람. 참 힘들다. 내가 어른이었다면, 힘이 있었다면 이렇게 삥삥 돌 이유도 없을 텐데.
“그래서 또 다른 건 없니?”
“네!”
“그래. 언제든지 특별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려무나.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는 언제든지 되어 있으니까.”
“네! 초코우유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샤.”
“네?”
“이제 어디로 갈 거니?”
“쌍둥이들한테 가야죠. 너무 오래 비워 놨어요. 아이들이 절 찾을 거예요.”
“아이들은 참 너를 잘 따르는 것 같아. 보육원에서부터 그랬니?”
대공비는 돌아서 가려는 나를 멈춰 세웠다. 묘하게 그녀의 말에 가시가 돋친 듯한 느낌이었다.
“네!”
“나는 두 아이의 어미로서 그 아이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하구나. 또…… 도대체 누가 우리 아이들을 학대한 건지도.”
“학대한 건 잘 아시네요?”
“들었으니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난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호응했다.
“그렇구나. 맞아요. 거기에서 학대당했어요. 보육원장님이 아이들을 막 학대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모습이 처참하던지.”
“그 말을 그이에게도 했니?”
“아니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꼴 당한 걸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아마도 네가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 그이는…… 나도 그이를 말리지 못하니까.”
말끝을 흐리는 그녀는 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학대당한 건 아시지 않아요?”
“그래도 말이야. 더 깊은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거란 소리야. 너를 위해서 하는 충고란다. 너는…… 똑똑하고 특별한 아이니 내 말을 알아듣겠지?”
한마디로 보육원에 대한 이야기는 입을 다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이야기가 뭔지 모르니, 아마도 이런 식으로 막으려는 거겠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녀에게 무언가 말한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내가 생각보다 아이들과 오래 있었고, 생각보다 보육원에 대한 걸 많이 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듣지 않았으면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지.’
도리어 내게 물었을 것이다. 떠보는 척하면서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혹여나 보육원장과 자신의 연관관계를 알까 봐, 그걸 대공에게 이야기할까 봐. 그게 아니라는건…… 내가 그것까지는 모른다는 걸 그녀 또한 안다는 뜻이다.
대신 대공이 나를 통해 들은 정보를 이용해 대공비와 보육원장의 연관관계를 찾을 수도 있으니 입 다물게 시키려는 것이다. 순간 보육원장이 떠올랐다.
대공은 그녀를 죽였다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과거에 살아 있었어.’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모습이긴 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그러니 지금도…… 살아 있고, 대공비와 연락을 하고 지내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특별한 사람을 참 좋아한단다. 하지만 특별하다는 건 언제나 위험하단 소리야. 부디…… 내 말을 잘 알아듣는 아이이길 바라.”
“네!”
“하나만 더 묻자꾸나. 어떻게 아이들을 찾아내었던 거지?”
“아! 그건…….”
보육원 아이들이 알려 줬어요. 그곳에서 짐승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라고 하면 대공이 살려 준 보육원 아이들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대공비는…… 이 순간 그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접촉했던 이들을 모두 처단할 것이니까.
“그냥 알게 되었어요. 창고에서 소리가 났거든요.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단순히 그것만으로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니? 신기하구나.”
“그러게요. 운명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나 봐요!”
대충 둘러댔다.
“운명…… 참 좋은 말이지. 그래. 이제 가보도록 하려무나.”
“네!”
난 그녀가 더 많은 것들을 물어보기 전에 몸을 휙 돌렸다. 우리의 이야기가 끝난 걸 알아차린 건지 렉스가 손을 흔들었다. 자신은 이곳에 있다고.
난 그를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이야기는 잘하셨습니까?”
“응!”
슬쩍 주변을 살피는 척 흘겨본 대공비는 아직도 내게 시선을 떼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혹 부당한 일을 당하신 건 아니죠?”
“아니에요. 대공비 마마께서 초코우유를 주셨어요!”
“그런가요?”
“네!”
“그럼 돌아가실까요?”
렉스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나를 향해 손을 내밀 뿐. 난 그의 손을 잡고 대공비의 정원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렉스는.”
“네?”
“아무것도 묻지 않네요?”
“네. 저는 묻는 자가 아닌 지키는 자니까요.”
웃는 그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렉스. 혹시 따라오는 사람은 없어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라오는 사람이요?”
“네! 대공비 마마 사람이 따라올 것 같은 기분이 확 들었거든요.”
“아. 한 명 오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난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그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그렇구나. 그러면 저 방에 가기 전에 갈 곳이 있어요.”
“어디요?”
“대공 전하의 방이요!”
“아! 네. 바로 가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데 괜찮으세요?”
“네! 따라오는 사람이 있어야 하거든요.”
렉스는 의문을 담아 나를 바라봤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난 보여 줘야만 한다.
우린 더 보란 듯이 대공의 방으로 향했다. 렉스는 계속해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음을 내게 알려 주었고, 난 당당히 대공의 방문을 두들겼다.
“어쩐 일이지……?”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이라 그런지, 대공은 내가 왔다는 말에 방문을 열어 주면서도, 나를 보자마자 의아함을 뱉어 냈다.
“그냥요!”
“그냥이라니.”
“사실 할 말이 있어서요! 앉아도 되나요?”
문이 닫히기 전 누군가 들으라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 나는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해요. 갑자기 찾아와서.”
“갑작스러운 변화는 뭐지?”
“조금…… 친한 척해 봤어요.”
대공비에게 보여 주기 위한 방도였다. 내가 대공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그리고 대공에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최근 목표는 그녀를 그 어느 때보다 조급하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뭐. 네가 갑작스럽게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앉거라.”
“네.”
“할 말이라는 건 뭐지?”
“아, 저……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라…… 사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보육원 기억하세요?”
순간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대공비의 말처럼 그곳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면 안 될 것처럼 기운이 사나워졌다.
“그래. 근데 왜.”
하지만 난 꼭 알아야만 했다. 보육원장의 진실을. 그녀가 살아 있다면, 그녀를 통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유추가 가능할 테니까.
“보육원장님이 혹시 살아 있나 하구요.”
“굉장히 뜬금없는 질문이군. 이런 걸 내게 묻는 연유가 뭐지. 이제 와서 키워 준 그녀가 그리워지기라도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