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60)화 (60/99)

-60화- 

“제가 불편하신가요?”

“아, 아니, 왜 그런 생각 해요?”

“아이샤 님께서 저를 빤히 바라보시길래요.”

“셀렉스…… 아니, 렉스 님을 제게 붙여 준 게 의아해서요.”

그 말에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대공자님과 대공녀님뿐만 아니라 대공 전하께서는 아이샤 님께도 꽤 신경을 쓰고 계신답니다. 그래서 아닐까요?”

“그렇구나…….”

“어디로 가실 건가요?”

“도서관 가보고 싶어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건가 싶어서 그를 빤히 바라봤다.

“아. 죄송해요. 제 동생에게 하던 것이 버릇이 되어서.”

“잡아도 돼요?”

“그럼요!”

도리어 그는 내 행동에 기뻐했다. 순박하디순박한 남자. 하지만 이후의 삶이 그리 평온치는 않은 사람. 그는 내가 손을 잡자 아이처럼 환히 웃으며 그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제 동생은 사실 잘 잡아 주지 않거든요.”

“대신할 수 있으면 할게요.”

“대신이라기보단, 연습이라고 하죠. 아이샤 님을 잘 돌봐 드리고, 그 경험으로 동생을 잘 돌봐야겠어요. 꽤 미움 당하고 있거든요.”

그 후로 딱히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셀렉스 테로반의 테로반은 소설에 언급될 정도로 꽤 비중이 있는 인물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원래 가문인 펠레우스 후작가가 언급된 거였지만.

셀렉스 테로반. 그는 펠레우스 후작가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정식으로 후작이 되기전에 요절을 해버린다. 헬프텔 펠리우스. 20세란 젊은 나이에 이유도 모를 죽음이었다.

19세부터 갑작스레 이유모를 병을 앓기 시작한 남자. 그에게는 정혼자는 없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셀렉스 테로반의 모친인 브렐린. 18세부터 그와 연인이 되었던 브렐린. 정식으로 헬프텔의 정혼자가 되기도 전, 그가 갑자기 아프다는 걸 알아 버린다. 이미 깊은 관계였지만, 피까지 토하는 헬프텔을 그녀는 끌어안지 못했다. 죽을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 남편이 병으로 사망한 경우 부인 되는 사람이 정갈하지 못했다 하여 자신의 가문에서조차 내쳐진다.

그게 두려웠던 브렐린은 헬프텔에게 이별을 고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렐린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임신. 하지만 병으로 죽을 게 뻔한 남자와의 결혼은 그녀의 남은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오라버니의 아이로 입양시켜 버리고 자신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 따윈 없었다. 아이는 그녀에게 있어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릴 부산물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테로반 가문에서는 셀렉스를 탐탁지 않아했지.’

이상하리만큼 천재였다. 외양은 모두 테로반 가문의 것을 닮아 버린지라 부친을 찾을 수도 없는 상태인데, 검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하나도 없던 가문에서 태어나 버린 검술 천재였으니.

‘결국 셀렉스는 그 가문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지.’

테로반 남작은 그런 셀렉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특히 결혼도 하지 않고 애 하나 던져 놓고선 저 좋다고 여러 남자를 만나다가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남자와 결혼한 여동생도 싫어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셀렉스가 친자식이 아님을 가문 모두에게 떠들어 댔고,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알 정도였다.

그의 자식은 아니나 남작과 꼭 닮았으니, 모두가 다 셀렉스가 남작의 여동생이 낳아 온 자식이란 걸 모를 리 없었다.

‘결국…… 남작의 어린 딸조차 무시하기 일쑤였지.’

그런 남자의 밑에서 자란 셀렉스는 그런 부당함 속에서도 가족을 참 좋아했다. 특히 여동생을. 자신을 볼 때마다 틱틱거리고, 어디서 주워 온 자식이면서 친한 척하지 말라는 말에도 여동생을 참 아꼈다.

펠레우스 후작가에 정식으로 입양될 때까지.

죽은 형을 제치고 후작에 오른 로디온은 25년이 되도록 후사를 보지 못했던 터라, 방계 혈족에게 가문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결국 셀렉스를 찾아내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한다.

형의 자식을 거뒀다는 시선 덕에 평판도 좋아졌고, 가문을 빼앗기지 않게 되었으니 그에게도 이득이었다.

‘셀렉스는 그곳에 가서도 남작가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려 했어. 남작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셀렉스를 통해 이득을 보려 했고…….’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는 게 바로 이 부분부터다. 결국 셀렉스는 자신의 양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동생인 레지나를 후작가에 입적시킨다. 어차피 자식을 낳지 못하는 로디온 펠레우스 후작은 레지나를 품게 된다. 욕망이 있는 도구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니. 그 아이를 황태자와 결혼시키려 한다.

‘셀렉스는 그러면 안 된다고, 황태자는 이미 사랑하는 여인이 있으니 그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지. 로디온 펠레우스 또한 레지나가 황태자와 결혼하길 바랐으니까.’

소설 속에서 황태자와 여주의 사랑을 방해했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 

왜 내가 셀렉스를 기억하냐면, 그가 중간에서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레지나는 여주에게 집착하는 쌍둥이들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여주를 떼어 내야 황태자가 자신의 것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탓에 쌍둥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척하면서 둘을 부추긴다.

“그 애를 납치해. 그리고 너희들 곁에 둬. 그렇게 하면 너희들만 보게 될 거고 사랑하게 될 거야.”

대공이 죽고 대공의 자리에 오른 쌍둥이들을 그런 식으로 부추기고, 자신의 오라비였던 셀렉스를 움직이게 한 것.

셀렉스는 끝까지 대공비가 아닌 대공의 편에 선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셀렉스를 움직인 것 또한 레지나였다. 결국 셀렉스는 제 동생이 부추겨 여주를 납치하는 쌍둥이들을 지켜보게 된다.

그것 때문에 쌍둥이들이 난처하게 되자,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게 되고, 셀렉스는 자신은 대공가에 있을 게 못 된다며 홀연히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다며.

그는 진심으로 대공가를 아꼈지만, 그만큼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세요?”

안타까운 사람. 난 그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그냥! 셀렉스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요.”

“저요…….”

대공이 끝까지 믿었던 사람. 그래서 쌍둥이들에게 이자만은 믿어도 된다고 신신당부했던 사람.

너무나 착했던 셀렉스인 걸 알기에, 대공이 믿는 사람인 걸 잘 알기에 난 그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저는 그저 저입니다. 아마도 아이샤 님과 비슷한 나이의 동생이 있어 제가 선택된 건 아닐까요?”

“그런가.”

“그러는 사이 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대공가의 도서관입니다.”

보통 도서관이라 함은 지키는 사람도 있을 만한데 지키는 사람 하나 없다. 그가 문을 열자마자 관리가 잘되지 않은 듯한 책 냄새가 풍겨 왔다.

“허허, 아무도 오지 않아서 많이 낡아서 그렇습니다. 어릴 적에 대공 전하께서는 자주 오셨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는 오는 사람이…….”

“대공 전하도 안 오셔요?”

“네. 여기 있는 책은 이미 다 읽으셨다 해요. 그런데 이리도 관리가 안 될 줄이야. 대공 전하께 말씀드려야겠네요. 대공비 마마께서 관리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는 꽤 안타까운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이런 것들이 많을 것이다. 대공비가 관리한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관리하지 않은 것들. 대공가를 관리하라고 준 돈 대부분은 그녀가 다른 짓을 하느라 다 썼을 테니까.

‘보육원 원장에게도 꽤 돈을 줬을 테지. 아무리 대공비라고는 하나 대공가의 돈은 그리 쉽게 막 쓸 수는 없을 거야.’

한두 군데가 아닐 거다.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무 관리가 되지 않은 것들이.

‘그런 것부터 찾으면 되려나…….’

“우선 보고 싶은 책이 있으시면 찾아 드릴게요!”

그를 바라보다가 내가 직접 걸어서 주변을 살폈다. 우선은 쌍둥이들을 위해 쉽게 배울 수 있는 역사라든가 글자, 예법에 관한 책들을 골랐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초약본으로 나온 식물 책들도 몇 가지 챙겼다.

“이 정도면 될 거 같아요!”

“그런가요? 모두 다 대공자님과 대공녀님을 위한 책들인가 보네요?”

“네!”

“정말 다정하신 분이에요. 두 분을 직접 가르치려 하다니. 같은 나이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거군요.”

조금 감동한 듯 웃던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책을 단번에 들었다.

“이건 제가 직접 가져다 놓을게요.”

“네!”

“그럼 이제 돌아가시죠.”

책을 고르느라 시간을 꽤 쓴 탓에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지체되었다.

난 그를 대신해 도서관 문을 열고 밖으로 다시금 걸음했다. 올 때와 달리 손을 잡아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셀렉스는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미안함을 대신하려는 것처럼.

“제 동생은 아주 못돼 먹었답니다.”

“정말요?”

“네. 그래서 고민이에요. 참 예쁜 아이인데. 동생이 태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참 예뻐했는데…… 못된 말들을 어디서 배워 오는 건지…… 오빠로서 참 걱정이 되어요.”

그 동생이 당신의 미래를 엉망으로 만들 거라고, 그 착한 마음을 이용할 거라고 말해야 하는데 말할 수가 없다.

“우움…… 그러면…….”

“아이샤 님 같으면 참 좋을 텐데요.”

“아!”

“왜 그러세요?”

“한번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어차피 쌍둥이들한테도 친구가 필요할 테고, 저랑 나이도 같다고 했으니까요.”

그 말에 그도 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네요. 그렇게 좋은 방도가 있었네요! 대공 전하께서도 요새 도련님과 아가씨의 친구를 구하고 계셨는데, 이참에 말해 봐야겠네요.”

“네!”

그때였다. 셀렉스가 기쁜 듯 내게 쫑알쫑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그때 한 시녀가 우리 앞을 막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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