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59)화 (59/99)

-59화- 

“왜 네가 미안해?”

“내가 아빠라고만 제대로 말했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 거 같아서. 그런데…… 입 밖으로 안나오더라.”

난 로헨의 머리를 툭 하고 쳤다.

“미안할 거 아니야.”

“그래도…… 잘못했으면 쫓겨나는 거잖아. 그래도 대공이 마음을 바꿔 먹어서 다행이야. 혹시나 고집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대신녀…… 그 여자 덕분인 거지?”

네가 아빠라고 말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을 열고 그리 말해서 그런 거라고. 대신녀님이나 다른 것들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고 다 네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하지만 그런 말들은 할 수가 없었다.

대공이 그리 말하지 않길 바랐으니까.

“맞아.”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막 전혀 아빠라고 안 하려던 거 아니야. 또 누나가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을 때, 내 자존심을 억지로 무너뜨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 했을 때, 조금…… 조금 나올 뻔했어. 아빠라는 말이.”

기분이 오락가락하는지 로헨은 발을 동동 굴리며 웃다가, 슬픈 표정을 짓다가를 반복했다.

“귀여워.”

풀 죽은 강아지 같다. 그러다 눈을 보고 기뻐하는 강아지. 난 그런 로헨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자기가 애냐고 그 손길을 피했을 로헨이었지만, 어쩐 일로 로헨은 그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전혀 미래에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가지 않아.’

그게 진실이라면, 정말 내게 펼쳐질 미래였고, 이미 벌어진 미래였다면. 그게 로헨의 진짜 모습이라는 건데, 로헨의 그 모습은…… 다 큰 로헨의 모습은 소설 속에 언급된 것보다 더 슬프고 처참했다.

평생을 자신의 편이라고 여겼던,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라리를 잃은 그 모습은…… 가슴이 저며질 정도로 아팠다.

‘내가 여기서 해야 할 건…… 그 미래를 바꾸는 것과 나에 대해 알아보는 거겠지.’

그런 미래를 안겨 주지 않기 위해. 일차원적으로 생각할 건 아니다. 쌍둥이들을 살려야지, 대공비를 내쫓아야지, 이게 아니라…… 무언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 처음은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겠지.’

소설 속에서 나는 분명 죽었다. 고아원의 화재로 인해 다른 이들과 다 죽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꿈이 사실이라면, 그 꿈에서 나는 분명…… 화상으로 얼굴이 반쯤 녹은 보육원장과 함께 있었다. 그건 그저 꿈인 거 같아서, 별일 아니라고 치부했는데.

그 꿈이 떠올랐다.

[이러시면 안 되는 거예요. 원장님……!]

[착한 네가 그런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건 알지. 알다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면 나는 그곳에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느냐. 하지만 너는 다르지. 그 아이들은 널 기억도 못 할 거다. 출신도 대충 속이면 되고.]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잔말 말고 가거라. 내가 어떻게 널 키웠는지 안다면 대공가로 가!]

그때는 그저 이상한 일이라고. 원래 꿈은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섞이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조차도 내 미래의 단편적인 기억 중 하나였다.

“아.”

“왜 그래?”

내가 손길을 멈추자 로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니야.”

그러고 나자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 와봤음에도 익숙했던…… 불꽃놀이를 보던 그날의 기억. 로헨, 그 당시는 라리인 줄 알았던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던 그곳은 묘하게 익숙했다. 와본 적 없음에도 와봤던 것처럼.

‘지금 보니 그게 과거에 이미 왔던 곳이었던 거야.’

내 몸은 이미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뭐. 쓰다듬는 게 싫긴 하지만 오늘은 허락해 줄 테니까 맘껏 쓰다듬어.”

로헨은 흠흠 하며 자신의 머리를 내게 더 들이밀었다.

정말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쓰다듬을수록 심적 안정이 몰려왔다. 

‘결국…… 보육원장을…… 그녀에게 뭔가 있다는 거네. 도대체 보육원장은 뭘 하려고 나를 아이들에게로 보낸 거지? 그리고 나 또한…… 분명 끝까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쌍둥이들을 감시했던 거 같은데…… 도대체 누구지.’

단순하게 생각하면 대공비일 테지만, 그것도 이상하다.

‘만약 대공비가 그런 거라면…….’

이미 로헨이 대공에 오른 이후에 그녀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을 건데. 그렇다면 대공비가 아닐 수도 있단 소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육원장이…… 해답이려나.’

그녀는 살아 있으려나.

“하아.”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내 머리 쓰다듬는 게 힘들어?”

“아니. 전혀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생각할 게 있어 가지고. 모르겠다. 오늘은 도서관 허락받았으니 도서관이라도 갈래.”

“같이 가!”

“로헨은 라리 지켜야지.”

그 말에 로헨의 미간이 좁게 좁혀졌다.

“아.”

“언제 일어날지 모르잖아.”

“……그러네. 라리…… 지켜야지. 너도 지키고 싶은데.”

로헨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렸다. 나를 지켜 준다는 저 말이, 꽤 기분 좋게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날 지킬 때가 아니다.

“지금은 라리를 지켜야 할 때야.”

“왜. 라리는…… 대공녀잖아. 라리를 위협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그래도. 우리가 잘 지켰다면 라리가 저렇게 잠만 자는 상태가 되었을까? 대신녀님께 다녀온 이후 좀 편안해진 듯하지만 라리의 상태는…….”

일부러 라리를 단번에 낫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는데도 거부했다. 대신녀가 힘을 써주면 아이는 낫는다.

그럼에도 그리하지 않았던 건, 라리를 저리 만든 사람들이 더 발작하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원래 어떤 일이든 급하게 하면 실수가 생기는 법. 그래서 그 실수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라리에게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죽지 않을 거라는 그런 믿음 하나 때문에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거부한 내가…….

‘쓰레기 같네.’

내내 마음의 짐으로 안고 가야 하겠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것들뿐이니까.

“……알겠어.”

“로헨.”

“응.”

“언제나 라리를 지켜야 해. 두 사람만은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던, 한날한시에 태어나 같은 날 떠난 너희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으니까.

“그러면 너는,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냐?”

“나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해?”

“그래도 모르는 거잖아. 나는, 나는…….”

확정적으로 말해야 하는데, 나 또한 배신할 생각 없다고. 내가 가진 마음이 너희가 서로에게 가지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라리가 아픈데도 치료할 생각부터 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 때문에 난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이미 나는 소설 속에 들어와서 미래를 봤고, 비참한 미래를 겪었기에, 그런 미래들을 봤으니까.

“……야.”

“으응……?”

싸늘한 로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실망했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던 그때였다. 로헨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을 끌어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내 머리에 얹었다.

“괜찮아.”

“어……?”

“부모도 버린 우리야. 어느 누구도 사랑해 주지 않았고, 이용해 먹으려고만 했던. 그런 우리한테…… 너는 처음으로 사랑을 주었어. 부모도 주지 않았던 그런 사랑을.”

가슴이 아파 왔다.

“그런 우리에게 사랑을 준 너야. 그러니 괜찮아. 이해해. 조금은 마음이 흔들려도 괜찮아. 우리가 너를 믿으니까.”

“로헨.”

“우리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될게. 그러니까…… 서로서로 믿을 만한 사람이 되자. 우리는 너를 믿고, 너는 우리를 믿고.”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응. 미안해. 아주 잠시 동안 딴생각을 했어. 그냥 내가 하는 일들이 너희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 맞나 그런 생각 하느라……,”

“무엇이든, 네가 우릴 위한다는 거 잘 알아. 그러니까 스스로를 믿어. 뭐! 진짜 진짜 잘못되어도 거기서 지낼 때보다 더하겠어?”

웃는 너의 모습이 날 아프게 한다.

그때보다 더한 시절은 없다고 말하는 모습이, 그곳에서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말하는 것만 같아서. 내 심장은 무너질 것만 같다.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서 소금에 묻힌 느낌이랄까.

“……다시는 그런 시절 안 만들어.”

“어. 믿을게. 그 말 꼭 지켜.”

“응.”

“그러면 얼른 도서관 갔다 와. 라리 일어나면 같이 갈게.”

“응!”

로헨을 바라보다가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아이샤 님. 대공 전하의 명을 받고 아이샤 님을 모시게 된 기사 셀렉스라고 합니다. 편하게 렉스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인상 좋은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네. 이제부터는 아이샤 님이 이곳에 계시는 동안 봐드리도록 할 겁니다.”

“네!”

붉은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남자. 불과 물이 함께 있는 듯한 오묘한 얼굴을 한 이 남자를 나는 안다. 소설속에서 흔치 않게 등장한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이 사람을 왜 나한테 붙여 준 걸까.’

셀렉스 테로반. 테로반 남작가의 장자. 여러 가지 부가 설명들이 존재하는 사람이다.

검술이 뛰어나나 가문이 한미했기에 별다른 일을 발현하지 못한 사람. 거기에 모친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셀렉스를 낳았기에 그는 더욱더 입지가 작아졌다.

그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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