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내가 자신을 봐서인지 그녀는 손을 흔들었고, 나 또한 같이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멜로디아 신녀는 보육원에서 봤을 때처럼 날 보며 방긋 웃었다.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네?”
대공이 걷는 속도는 여전히 빨랐고, 그가 하는 말은 여전히 주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신전 말이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묘하게 고압적이지. 그래서 나는 이곳을 좋아하지 않아. 흘러가는 게 아닌 갇혀 있는 물은 언제나 썩기 마련이니까.”
“아.”
하긴. 신전에서 하는 사업 중 하나인 보육만 봐도 썩을 대로 썩긴 했다. 내가 있던 보육원뿐만 아니라 다른 보육원들도 썩어 빠졌을 텐데 신녀들은 방문만 할 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그리 느끼고 있는 건가.”
“조금은요?”
“멜로디아 신녀와는 과거서부터 아는 사이 같던데?”
“네. 보육원에는 주기적으로 신녀님들이 방문하시거든요. 어쨌든 보육원은 신전의 사업 중 하나니까요. 그때 뵈었던 분이에요. 다른 분들에 비해 멜로디아 신녀님은 참 친절하신 분이시거든요.”
하지만 그는 멜로디아 신녀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하지 않은 듯했다. 그녀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한 건지만 궁금해하는 것 같달까.
“그렇군. 참 이상해. 어린아이인데 너와 이야기하다 보면 무언가 말이 통하는 기분이 들어. 어린아이여서 내가 너무 마음을 편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건진 알 수 없지만. 누군가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게 오랜만인 것 같군. 이야기하면서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이야.”
“그렇구나.”
“나는 말이지. 신전 사람들은 다 믿지 않는다. 딱 한 사람을 빼고는.”
“그 한 명이 대신녀님이세요?”
“그래.”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모르겠다. 대공이 갑작스럽게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그리고 어떤 말들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사람이 나를 떠보기 위해 이런 말들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생긴 건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또 느낌이 나쁘진 않아.’
대신녀님은 내 감을 믿으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공은 정말 내게 마음을 열어서 이런 말들을 하는 걸까.
그때였다.
“궁금해하지 않는구나. 쌍둥이를 찾아준 멜로디아 신녀가 아닌 대신녀님을 믿는 이유를.”
“그냥. 저 같아도 그럴 거 같아서요.”
“너도?”
“네. 예전에는 멜로디아 신녀님이 참 좋았어요. 지금도 멜로디아 신녀님이 참 좋지만, 그래도 예전같은 마음은 아니어서…….”
그가 피식 웃었다.
“나도. 나도 오늘 본 저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오는 내내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던 로헨이 이때다 싶었던 건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같은 면이 참 많은 거 같아. 아이샤.”
꽤 기대하는 듯한 표정의 로헨의 눈은 반짝 빛이 났다.
“아니지. 우리는이 아니라 우리들이겠지. 나 또한 멜로디아 신녀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거든.”
“뭐. 저 여자는 그쪽 되게 좋아하는 거 같던데.”
대공이 자신과 닮았다고 말했을 때부터 불만스러워하던 로헨은 괜스레 시비를 툭툭 걸었다. 물론 대공에게는 조금도 타격이 없었지만.
“맞아. 어렸을 때부터 인기가 많았어서 말이지. 로헨. 너도 날 닮았으면 어렸을 때부터 인기가 많을 거다.”
“정말? 나 인기 많을 거야?”
한 번도 대공의 말에 호응하지 않았던 로헨은 잔뜩 기대되는 표정으로 대공을 바라봤다.
“날 닮았으니까. 그렇겠지.”
“그렇구나.”
로헨은 어쩐지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내가 인기가 좋대.”
“……응?”
“그래도 나는 한 사람만 좋아할 거야.”
“응. 나중에 애인 될 사람은 행복하겠네.”
순간 아까 봤던 미래의 로헨이 떠올랐다.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동생마저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곁에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해주었던 로헨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동생만 보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여주 말고 정말 진심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그래도 지금처럼만 자란다면, 과거에 상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 자라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겠지.
나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헨의 어깨를 툭툭 쳤다.
엄마 된 마음이랄까.
그러는 사이 우리는 마차에 당도했다.
“어서 가자. 로헨.”
그제야 로헨은 말없이 마차로 올라탔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한참이나 우물거리던 로헨은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먼저 자리 잡았고, 난 로헨의 옆에 앉았다.
우리 맞은편에는 라리를 안고 있는 대공이 앉았다.
그렇게 우리를 태운 마차는 다시금 출발했다.
“대공 전하.”
“왜 그러지.”
“대공 전하는…… 왜 멜로디아 신녀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았거든.”
“멜로디아 신녀님이요?”
조금 의외의 말이었던지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신녀가 아니었지. 아마도 신녀가 된 건 내가 대공비와 결혼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었을 거야. 파티에 갈 때마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던 이가 신녀가 되어 나타났던지라 조금 놀랐거든.”
“아. 신녀님은 대공 전하를 좋아했나 보구나.”
“뭐. 좋아해서 그리 보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 바라보고 있던 건지 모르지.”
“아아.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거세요?”
“무조건적인 호감은 싫어하는 편인지라.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 아무 이유 없는 감정은 존재할 수 없어.”
그는 가만히 자신의 품에서 잠든 라리를 바라봤다.
“내가 이 아이가 자꾸 신경 쓰이는 것도 핏줄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난 네가 참 이상하다 생각한다.”
“제가요?”
“그래. 맨 처음 쌍둥이들을 잘해 주고 따라온 건 모두 원하는 바가 있어서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건 별로 원하지 않는 거 같아서 말이지. 돈을 바란 것도 아니고, 쌍둥이들을 빌미로 좋은 가문에 입양 보내 달라 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이상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단순히 대신녀가 보여 준 그 일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마음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나도 참 이상하군. 네 앞에서 주절주절 말하는 꼴이라니.”
어색하게 웃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말이 끝이었다. 원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고 마차는 잔잔히 움직이며 대공가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옆에 있던 로헨은 억지로 잠을 이겨 내려고 하다가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나를 걱정한 건지 로헨의 손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이샤.”
“네?”
“고생했다.”
한참 끝에 그는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고생은요. 전혀요. 오히려 저 때문에 이곳에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니다. 겸사겸사 대신녀님을 뵙고 좋았지.”
다시금 정적. 예전처럼 날 선 모습은 없었지만, 신전에서 보던 조금의 다정한 모습도 없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묻지 않으세요?”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하지?”
“대신녀님이 저를 이곳으로 오게 한 이유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시니까…….”
당장 그에게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의아했다. 꽤 오랜 시간 대신녀와 있었으니까.
“뭐. 필요하면 말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신녀님을 뵌 거잖아요.”
“그게 문제인 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요.”
“그냥 때가 되면 이야기하겠지. 그러니 말하는 것에 부담 가질 필요 없다.”
“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는 마차에서도 대공가에 도착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저 방 침대에 라리를 눕혀 준 후 밖으로 나갈 뿐이었다.
로헨도 피곤한지 라리의 곁에 누웠고, 나만 대공가 시녀들이 씻겨 주었다.
평소라면 대충 옷을 갈아입혀 주고 말았을 그녀들이었지만, 어쩐 일로 그들은 꽤나 극진히 나를 씻겼다. 아주 오래.
물 온도는 괜찮냐, 불편한 곳은 없냐. 그런 말들을 해가며. 왜 이들이 이렇게까지 잘해 주나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저, 신전에서는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무슨 일?”
로헨에게는 물어봤자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생각한 건지 일찌감치 그쪽에 대한 기대는 접은 듯했다. 물론 나한테 물어봤자 아무 말 안 할 거란 걸 알 테지만, 대공비와 이야기했던 일 때문인지 시녀들은 내게 일말의 기대감을 걸고 있었다.
꽤 다정한 표정으로.
“네. 생각보다 오래 계셨던 거 같으셔서요.”
“아! 있었다.”
난 조금의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으셨어요?”
“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내가 대답할 것 같아요? 이제껏 나를 볼 때마다 그리도 불편히 여겼으면서, 갑작스럽게 그리 물으면 내가 대답해야 하나요?”
두 명의 시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요. 말하고 말고는…….”
“그래도 말해 주셔야 저희도 나갈 준비도 하고 그럴 테니까요.”
서로 말도 못 맞추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그러네요. 사실 별일은 아니었어요. 대신녀님이 신전에 자주 오라 하셨어요.”
“네?”
“대신녀님이요?”
“라리에게 축복을 계속 주고 싶다 하셨거든요.”
과연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대공비는 어떻게 나올까.
‘라리에게 하던 일에 박차를 가하겠지. 혹여나 자신이 하는 일이 들킬까 봐, 라리를 나가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겠지.’
일부러 대신녀님이 자주 오라 했다고 그 말을 했으니, 이제 대공비가 낚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