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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52)화 (52/99)

-52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할 필요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네게……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괜찮았는지 몰라. 너의 착한 마음을…… 이용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 같았거든.’

눈물이 난다. 아이샤,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지금처럼 아이들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했던 내가 너무나 구역질 나게 싫어서.

왜 내가 다 큰 쌍둥이들과 함께 있는지, 왜 저들의 시녀인지, 무엇을 알아내려 한 건지, 어떤 상황에서 그런 건진 몰라도…… 내 자신이 너무나 싫다.

그때였다.

눈물만 흘리는 아이샤의 어깨를 로헨이 툭툭 쳤다.

‘아이샤.’

‘네……? 그만 말씀하세요. 제가…… 제가 어떻게서든…….’

‘난 이미 틀렸다. 그러니…… 내가 숨이 끊어지기 전에 하나만 묻지. 내 동생은 너를 참으로 좋아했다. 너는…… 이용당했지만 그래도 너는…… 우리를…… 좋아했나……?’

‘좋아했어요. 많이…… 아주 많이. 그래서 다 끊어 내고 오려 했어요. 진심으로 두 분 곁에 있고 싶었어요. 그런데…… 빨리 오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걸로…… 되었다. 우리를 위해 울어 줄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리 못된 짓만 하던 우리에게…… 그래도 신은 작은 천사를 보내 준 모양이구나…….’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샤를 보며 로헨은 미소 지었다.

‘라리…… 우리가…… 그렇게 나쁘게만 산 건 아닌가 봐…… 다행이야. 세상에…… 우릴 위해 울어 줄…… 소중한 사람…… 고맙다. 끝까지 함께해 줘서.’

‘도련님……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순간 로헨의 숨이 툭 끊어졌다. 마지막으로 토혈을 한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살아 있는 것처럼 자신의 품위를 유지한 채 그는 그렇게 죽었다.

방 안에 가득 차 있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샤는, 어른이 된 아이샤는 한발 늦게 로헨에게 살짝 손을 대었다.

‘도련……님?’

하지만 그녀의 부름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제야 아이샤는 로헨의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반응 따윈 없었다.

‘아…… 안 돼…… 안 돼.’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로헨과 라리를 번갈아 가며 흔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살아 있는 사람은 그녀 하나뿐이었다.

울고 또 울고. 그러다 아이샤는 로헨을 바닥에 눕혔다. 그렇게 사랑하던 동생 라리 옆에.

그리고 아이샤는 다시금 울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고, 가슴에 꽂힌 칼을 빼내 주고. 로헨이 걸치고 있던 망토를 풀어내 두 사람에게 덮어 주었다. 핏자국 따윈 보이지 않게.

예쁜 얼굴에 묻은 피도 깨끗이 닦아 주었다.

원래도 하얀 얼굴 탓에 살아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의 표정은 온화했다. 하지만 아이샤는 분노에 휩싸였다.

‘모두가 그리 욕했지만…… 나쁜 아이들이 아녔잖아요……. 그저 이용당해 왔고,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짐승 같은 아이들이었을 뿐. 그런 아이들이 결국은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죽게 만드는 건…… 잔인해요…… 신이 있다면…… 이 아이들에게 이러면 안 되잖아요…….’

신이 응답할 리 없었다.

신은 언제나 그들의 편인 적이 없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좋은 기억 하나 없이 학대만 당해 오다가…… 겨우 가족을 만난 아이들이었어요. 그렇게 가족을 만나서…… 대공비에게 괴롭힘당하고, 겨우 만난 모친은 미쳐 버린 상태였고…… 그마저도 얼마 안 되어 죽고. 잘못한 거라곤…… 그저 사랑받지 못해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뿐인데…….’

나보다 더 오랜 세월 아이들을 봐온 듯, 어른인 아이샤는 신에게 원망을 쏟아 냈다.

‘그런데…… 결국 죽임을 당하다니요. 결국…… 결국……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이 하늘 아래 오로지 둘뿐인 죽음을 맞이하다니요…… 이런 게…… 이런 불공평한 게 어디 있어요. 그렇게 이용당했는데…… 이용당한 건 도리어 두 사람인데…….’

너무나 많이 운 탓인지 아이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뭉개졌다.

‘그 여자에게…… 이용당한 건 오히려 두 사람이었는데……. 불공평해…… 신이 있다면…… 신이 있다면……!! 제발…… 다른 걸 바라지 않아요…… 거창하게 살려 달라는 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그저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 하나 가질 수 있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할 수 있게만…… 그렇게만 해달란 거예요.’

아이샤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무릎을 꿇고 신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저 하늘을 바라봤다.

‘그것만…… 그것만 하게 해줄 수 있다면…… 제 목숨을 가져가셔도 좋아요……. 그걸로, 내가 이 아이들에게 지은 죄를…… 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 죄를, 결국 이렇게 끝으로 몰리게 한 죄를 조금이나마 갚을 길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뭐든지 할게요…….’

그때였다.

갑작스레 그들이 있는 홀의 유리창이 하나둘 깨지기 시작했다.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누군가가 돌을 던진 건지, 화살을 던진 건지 불규칙하게 깨지기 시작하는 유리창.

그리고 솟구치는 화염.

“저주받은 대공은 나와라! 대공을 죽여라!!”

“성녀님을 해치려고 한 악독한 자들을 모두 끌어내라!!”

아이샤는 가만히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마지막까지도…… 죽고 나서도 편하지 않네요…… 안온한 죽음조차 당신들에게는 힘든 걸까요.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래도…… 내가 지킬게요. 그러니 봐줘요. 당신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있음을, 진심으로 당신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말이에요…….’

아이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이 그들을 감쌌다.

아이샤는 놀란 듯 주변을 바라봤다. 마치 이 공간만 따로 있는 듯한 착각. 그리고  아이샤의 귀에는 들리지 말아야 할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은 그들에게 주는 기회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만 아직도 아이샤의 눈앞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귓가에 소리만 들려올 뿐.

[하지만 그것을 되돌리고 싶은 것이냐. 아이야.]

나조차 그 존재를 알 수 없었다. 아이샤를 통해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구나 알 뿐.

‘기회가 어떻게 죽음이 될 수 있어. 그런 건……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인간은 여전히 똑같구나. 평온한 죽음조차 거부하는구나. 죽음이야말로 행복이거늘. 왜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평온? 사랑조차 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벌레 취급 당하며 죽는 게 어떻게 평온이야. 당신…… 신이죠…… 신이어서, 감정이 없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 이런 건…… 이런 건 있을 수 없는 거잖아요. 살아 있기에 슬픔도 즐거움도 행복도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죽으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조차 모르게 되는걸. 그러니까 이건…… 말도 안 돼요.’

생의 마지막 순간 신께 간절히 기도하면 신이 응답해 준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아마도 지금이 그런 상황이지 않을까.

아이샤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었던 듯 신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아른거렸다.

[잔인이라. 그러면 아이야. 너는 다시 살리고 싶은 것이냐. 과거보다 저 아이들이 더 아플 수 있다. 죽는 게 더 나았겠구나 싶을 만큼의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느냐.]

‘당연히. 당연한걸. 이번엔 내가 아프지 않게 할 거예요. 내가…… 내가.’

[너도 합당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다른 이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

‘괜찮아요.’

그 말을 끝으로 빛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다시 그들의 모습이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연극을 보여 주듯 그렇게 막이 내려갔고, 눈앞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이 모든 게…… 네가 저들을 만나고, 저들에게 마음을 준 게. 그들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나를 울부짖게 만든 건, 네가 적법한…… ✕✕✕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사실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그리고 넌…… 죽을 때까지 내게 이용당할 거라는 걸……. 이 순간을 후회하는 건…… 바로 네가 될 것이다. 이제야…… 찾았으니까.]

그 말이 끝이었다.

방금 전의 다정하고 보드라운 신의 음성과는 무언가 달랐다.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 음산하고 스산한 목소리. 무언가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듯한 그 목소리를 끝으로 정신이 차려졌다.

“아…….”

“아이샤. 괜찮은 겁니까?”

대신녀의 목소리였다. 갑작스럽게 다른 세상이 된 듯, 주변의 감각이 모두 다르게 느껴졌다.

“아…… 네…… 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고개를 찬찬히 들어 올렸다. 자리에 앉아 있는 대신녀의 몸에 기대어 있던 나는 급히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손이 닿고 나서 갑자기 이상한 일들이 떠올랐으니까.

“꿈을 꾸었나요?”

“네……?”

“길고 긴 꿈을 꾸지 않았나요. 아이샤?”

그리고 분명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 대신녀가…… 무언가 안다는 듯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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