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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49)화 (49/99)

-49화-

멜로디아 신녀는 나보다 한발 늦게 내리는 로헨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기분에 따라 그녀의 손은 내 머리를 보드랍게 어루만졌다.

“예상이요?”

“그래. 사실은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대공가의 아이들인 거 같다고 내가 말했거든.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단다.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구나.”

“그랬군요!”

어쩐지 소설에 비해 모든 게 급박하게 진행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대공이 무언가 아는 것처럼 오기도 했었고. 그런데 그 모든 게 그녀 덕분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의외였던지라 난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왜 변했나 했는데 이게 원인이었나.’

과거였다면 대공은 그렇게 빨리 올 리가 없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성장한 후 왔을 테니까.

‘변한 게 그거 하나만은 아니긴 하지만.’

쌍둥이들은 그렇게 빠르게 대공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서로 모습을 바꿀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라리가 이렇게 먼저 아플 일도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난 마차로 오는 동안 잠들어 버린 라리를 안타까이 바라봤다. 원래라면 더 나이를 먹고 아팠을 라리가 나 때문에, 내가 변화시킨 일 때문에 벌써부터 아파 버렸다.

가슴이 저며 오는 건 당연했다.

그때.

라리를 품에 안은 대공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로군. 멜로디아 신녀.”

“오랜만에 뵈옵니다. 대공 전하.”

“아이들을 찾아 준 것에 대한 인사를 전해야 했는데, 그게 늦었군.”

멜로디아 신녀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찾고 계시던 자제분들을 만나신 것만으로도,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 인사를 다 받은 듯합니다.”

천사가 있다면 그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멜로디아 신녀는 착하기만 했다.

“아. 그보다 그대에게 말한다는 걸 잊었군.”

“네?”

“그때 그대가 알려 준 그 보육원 말이야.”

“아. 네. 저희에게 당분간 어떠한 조사도 하지 말라 하셨죠. 아무래도…… 자제분들이 좋지 않은 일을 당하셨던 곳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하신다고.”

“그래. 홧김에 불 질러 버렸어.”

“아. 그렇…… 네?”

가만히 대공의 이야기를 듣던 멜로디아 신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건 당연했다. 입을 어물거리며 황당한 듯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공 전하. 제가 잘못 들은 거 같습니다.”

“맞다. 불태워 버렸어. 보육원장에게는 그에 맞는 벌을 주고선.”

“……그…… 그곳의 아이들은요? 선생님들도 계셨을 텐데…….”

아니죠. 아니라고 해주세요. 설마 그럴 리 없잖아요. 그녀는 수많은 질문들을 보내 오는 듯했다. 하지만 대공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내 알 바 아니다.”

“대공 전하!! 아무리…… 아무리 소문이 좋지 않은 대공 전하라고는 하나, 이건 너무하시잖아요. 어떻게…… 어떻게…….”

충격을 받은 듯 입을 감싸는 멜로디아 신녀의 모습에도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할 법한데.’

과거의 나도 저러했다. 어떻게 사람들을 그냥 불타게 두는 거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더 많은 설명을 원하며 따져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공은 결국 쌍둥이들의 말을 듣고선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하긴 했다는 점이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늘 뭐라도 들을 수 있을까 했는데, 도리어 대공은 오해하게 만들 뿐이었다. 알아서 잘 해결했다고, 원장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했다고, 그 정도만 말해도 되었을 법하지만 그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 순 없으니…….”

“대공 전하. 정말 정말 그들은…….”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가 보도록.”

그게 끝이었다. 멜로디아 신녀는 너무나 단호한 모습에 뭐라 따져 물으려 했지만, 그녀는 일개 신녀일 뿐이었다.

그녀 앞에 있는 건 감정이 없다 일컬어지는 대공. 그에게 있어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윈 그리 중요치 않았다.

그런 사람인 걸 알기에 그녀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안내하도록 해. 대신녀 레벨리아께서 고아…… 아니, 아이샤를 보자 하셨다지.”

“네.”

대신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눈동자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수명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전해지는 대현자. 외부적으로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녀 대신 대사제가 대부분의 일을 일임하고 있기에 특별한 날이어도 그녀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레벨리아…….’

레벨리아 대신녀를 본 자들은, 신이 현신한 게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라고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죄를 잊을 만큼 몸이 깨끗해지는 느낌이고, 그녀가 축복해 주는 자는 모든 병에서 말끔히 나을 정도로 성스럽다고.

‘그녀가 나를 보자고 한 거면…… 그녀에게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의원도 알아내지 못한 병을 앓고 있는 라리를, 자신의 편이 거의 없다시피 한 아이의 병인지 아닌지 모를 그것을 낫게 해주지 않을까.’

책 속에서 라리는 어린 시절 내내 아팠다고 하니까. 그런 시절을 주고 싶지 않다. 지금도 내내 자느라 제대로 나이를 느껴 보지 못하니까.

내 얼굴엔 자연히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대공 전하.”

보육원이 불탔다는 충격에서 생각보다 쉽게 벗어난 멜로디아는 굳은 목소리로 대공에게 목소리를 전했다.

“레벨리아 님이 아이샤를 보자 하신 연유에 대해서는 혹시 아시나요?”

“왜기는. 우리도 그 이유를 모르니까 온 것이다. 마중을 나온 그대라면 알고 있던 게 아닌가?”

“저는 대공 전하께서 오신다 하셔서, 레벨리아 님께서 대공 전하나 자제분들을 보시려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신녀님께서 보시려고 한 게…… 아이샤였다니.”

그녀는 놀란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보육원에 있을 때에는 한없이 다정하고 한없이 친절했던 멜로디아의 얼굴이 이전과는 묘하게 다른 기분이었다.

그 묘함이 뭔지는 모르겠다. 긍정적인 건지, 부정적인 건지. 혹은 또 다른 감정인 건지.

‘아니면 내가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니까 조금 고깝게 생각하는 건가? 에이, 아닐 거야. 멜로디아 신녀님인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억지로 웃었다.

“좋은 거겠죠?”

그래서 예전처럼 해맑게 웃으며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다행이랄지, 멜로디아는 금세 표정을 풀어 내고선 나와 눈을 맞췄다.

“네. 당연하죠. 레벨리아 님께서 지정하여 부르셨다는 건, 특별하단 의미랍니다. 아마도…….”

“우선 가지. 언제까지 이렇게 서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 네.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대공이 그녀를 재촉했다. 방금 전까지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멜로디아 신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쪽으로 가시죠.”

그 뒤로 다른 말은 없었다. 보육원 사건이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온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멜로디아 신녀는 앞장서 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그녀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고, 마침내 우리는 어느 방 앞에 멈춰 섰다.

“이곳에 레벨리아 대신녀님께서 계십니다.”

“들어가도록 하지.”

“아…… 보자고 한 게 아이샤 혼자라면, 아마 혼자 들어가는 게 나을 거예요.”

“왜 그래야 하지? 난 이 애의…….”

대공은 라리를 품에 안은 채 나를 매섭게 바라봤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나 또한 그의 시선에 맞춰 대공을 노려봤다.

하지만 한참 끝에 나온 말은 날 놀라게 했다.

“보호자다.”

계약관계라든지, 임시로 데리고 있는 사람이랄지, 그런 말을 할 거라는 예상과는 확실히 달랐다.

“아…… 보호자. 하지만……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못 들어가게 한다 한들 대공 전하께서는 들어가실 게 뻔하니까요.”

이미 거기서 물려 버린 듯 멜로디아는 한 발 물러났다. 그러고선 노크를 하여 밖에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그래서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멜로디아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이대로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

“네.”

그 말이 끝이었다. 우린 그녀가 열어 준 문 너머로 들어섰고, 그 안에는 고결하다는 느낌을 풍기는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레벨리아 대신녀님.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맞아요. 카시미르 블레어 대공. 내가 찾았습니다. 그 아이를. 그래서 그 아이만 보고 싶은데 말이죠. 나가 주시겠습니까.”

자애로운 모습과 달리 단호한 태도였다.

“하지만 저도 들어야 겠습니다. 저는 이 아이의 보…… 보호자입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몸. 목소리만 들으면 중년 여인의 목소리로 들렸지만, 그녀의 외양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거리는 은색 머리칼과 새하얀 레이스로 눈을 가린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성스러워 보였다.

“보호자라. 참 좋은 말이군요. 하지만 블레어 대공. 모든 이에게는 저마다의 운명이 있습니다.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그건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할 문제입니다.”

“대신녀님.”

“네. 듣고 있습니다.”

“하…… 정녕 이곳에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네.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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