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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46)화 (46/99)

-46화- 

“되었다. 그쪽은…… 열어 놓도록 해.”

“네? 하지만 방해받는 게 싫으시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아. 그럼 그쪽도 병력을 배치해 놓을까요.”

“아니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게 그냥 두도록 해.”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다른 말은 그만하도록.”

“아. 네. 그럼 그 옆의 것은…….”

기사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새로 뽑힌 기사인지 그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했다. 가끔 대공이 라리, 로헨의 방에 왔을 때에도 없던 기사이다. 

“아이들의…… 친구다.”

“친구요? 아이들이라 하시면…….”

“쌍둥이들의.”

“아, 그렇군요. 이야기로만 듣던 그 아이인가 보군요. 그런데 왜 그 아이가 여기에…….”

“길을 헤매다 온 모양이야.”

여전히 기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좀 이상하네요. 길을 헤매다 이곳에 올 리가…… 다른 이들에게 길을 물어볼 수도 있고…….”

처음 봤을 때부터 나한테 사람도 아닌 ‘옆의 것’이라고 했던 기사는 명백하게 적대감을 표했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던데요.”

“네?”

“저를 볼 때마다 벌레 보듯 피하는데 어떻게 물어보겠어요. 그래서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이쪽까지 온 거죠.”

“아아. 그러니?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참 당돌한 아이로구나.”

대공비도, 대공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은 당황하기라도 할 텐데 이 기사는 조금 남달랐다. 나에게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묘했다.

“펠렌. 아이와 말싸움하라고 그대를 이곳에 둔 건 아닐 텐데.”

그때 움직임이 지연되는 것에 짜증이 난 듯 대공이 기사를 노려봤다.

“아, 송구합니다.”

“온 지 얼마 안 된 이라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경고하지. 그대는 내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말도록. 물어보는 건 내가 할 일이니, 그대는 어떠한 물음도 궁금증도 가지지 말도록.”

“……네. 그럼 그 아이는…… 아닙니다.”

“고아 소녀는 내가 데리고 갈 것이다. 펠렌. 그대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생각하며 연무장 정리를 하도록 해.”

기사의 표정이 굳는 건 당연했다.

“그런 허드렛일을 저보고 하라는 것입니까?”

“토 달지 말라 했을 텐데.”

아까 나를 봤을 때 뿜어내던 살기보다 더한 살기가 대공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제서야 펠렌이라는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 따르겠습니다.”

“고아 소녀. 넌 나와 가지. 방까지 데려다주마.”

뭐. 대공이 직접 데려다준다니 이보다 황송하면서 되게 불편한 일이 또 있을까.

“네?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시키셔도…….”

“난 두 번 말하는 게 싫다.”

“네, 물론 다른 사람 시켜도 되지만, 대공 전하께서 데려다주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 같네요,”

하. 이 권력 앞에 어쩔 줄 모르는 내 신세란. 

약간의 신세 한탄을 한 나는 그를 향해 애써 웃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좋아하는 건지, 그의 표정이 아주 묘하게 변했다.

“대공 전하?”

“아니다. 어쨌든 가도록 하지.”

물론 손을 잡아 준다든가 그런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성큼성큼 걸어가는 통에 따라가는 다리가 찢어지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이 될 뿐.

아닌 척하려 해도 어른의 체력을 따라가는 건 역시나 무리였다. 결국 입에서는 헉헉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고, 그 소리를 들은 건지 대공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친절한 분인 거 같아요.”

“내게 한 말인가?”

“네!”

마음에서 우러나는 칭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친절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이들은?”

“물론이죠.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베푸는 작은 친절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니까요.”

“그렇군…….”

“하지만 쌍둥이들에겐 아닐 거예요. 그 아이들은 상처가 크니까요.”

방금 전까지 해답이라도 찾은 사람처럼 밝아지던 그의 얼굴은 다시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그는 정말 쌍둥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가 보다.

그게 묘하게 다가왔다.

‘정말 대공이나 쌍둥이나 서로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거구나.’

활자 속의 그는,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고, 원하는 걸 다 해주었다고. 그게 그에게는 정말 사랑의 방법이었나 보다.

‘어쩌면 내가 없어도 이 관계는 많은 변화가 생길지 모르겠어.’

내가 개입함으로 인해 이미 미래는 바뀌고 있으니까. 

“그런데 대공님은.”

“내가 무섭지 않나? 나불나불 잘도 떠들어.”

“무섭긴 한데…… 친구 아버님이잖아요. 어느 누가 자식의 친구를 괴롭히거나 죽이려 하겠어요. 안 그래요?”

“친구…… 아버님이라니. 허흠…….”

“아까 친구라고 하셨잖아요.”

대충 둘러댄 말이긴 했으나, 고아 소녀이긴 했으나,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쌍둥이들의 친구들. 난 그 말이 생각보다 듣기 좋았다.

“뻔뻔하기까지 해.”

“고아원에서 살아남으려면 뻔뻔해야 하거든요.”

고개까지 끄덕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그도 함께 웃었다.

“그래. 알았다. 그래서 뭘 말하려고 날 부른 거지?”

“움…… 쌍둥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한다 해도,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 직접 듣고 싶었다.

물론 그걸 물으면서도 조금 긴장감이 몰려왔다.

자신의 기사에게조차 묻는 건 자신이 할 일이라고, 궁금증조차 가지지 말라 했던 대공이었기에 혹시 내 말에 불편해할까 봐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그는 나에게까지 그렇게 대하진 않았다.

“내 자식들.”

“아아.”

“온전한, 진짜 내 자식들.”

그게 조금 묘했다. 그저 내 자식들이라고 해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텐데 그는 다른 말들을 붙였다. 내가 아는 대공은 적어도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마디 한마디 다 뜻이 있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지금 그의 표정은 좀 묘했다. 왜인지 모르게 상처받은 표정이랄까.

“온전한…… 진짜.”

“왜 그런 걸 묻지?”

“그냥 혈육이라서 쌍둥이들을 데려온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해서요. 로헨에게 아빠라는 말을 듣고 싶은 이유도 궁금하고.”

“자식이니까. 호칭이 주는 힘은 강하다.”

“정말 순수하게 듣고 싶은 거네요. 아빠라는 소리를. 자식에게.”

대공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굳어졌다. 묻지 말아야 하는 걸 물은 걸까.

“뭐…… 당연한 것 아닌가.”

“다른 자식에게도 듣는 말 아니에요?”

“다른 자식? 아아, 론. 그것과 다른 거다. 그러니 꼭 해내도록. 아이들의 친구인 너를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은 사그라들었으니.”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대공이 웃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만약에요.”

“응?”

“제가 그걸 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노력해 주세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만만하더니.”

“억지로 말하게 하고 싶진 않거든요. 대공 전하의 말씀대로 호칭이 주는 힘이 강하다면, 그건 진심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대공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떤 뜻인지 몰라서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잡아 주려는 것이다. 잡아도 된다.”

“아…… 네.”

어쩐 일일까. 뭐 잘못 먹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변화하기 시작한 걸까. 난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는 자신의 손을 잡으라는 것처럼 팔을 움직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묘하게 그 옷을 입고 있으니, 라리가 된 거 같아. 그래서인지 마음이 쓰이는군.”

“그런 거죠?”

“그래. 거기에 쫑알쫑알 말하면서 졸려 가지고 몸을 비틀거리는 꼴이 영 신경 쓰여서 말이지. 네가 그렇게 졸면서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로헨이 난리 칠 걸 아니 잡아 주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도록.”

아아. 그거구나.

어쩐지 아까부터 생각이 조금 힘들더라니.

머리가 자꾸만 멍해지고, 길이 묘하게 흔들리는 게 다 그 탓이었구나.

“아, 네.”

그 말이 전부였다. 덥석 잡은 그의 손은 이상하리만큼 컸다. 이 세계에 와서 어른 남자의 손을 잡아 본 적은 없던 거 같다. 그래서였을까. 유난스러울 정도로 따뜻하고 든든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다시금 걸었다. 아까보다 훨씬 느린 걸음으로 걷는 대공은 정면만을 볼 뿐이었다. 난 그를 한번 바라보다가 다시금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라리와 같은 음식, 같은 것들을 해서 오는 부작용인지, 아니면 대공비와 말싸움을 하느라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또 그게 아니면 헤매느라 돌아다닌 탓인지 눈이 자꾸 감겼고 내 기억은 툭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금 정신을 차린 건, 순간 들려온 엄청난 목소리 때문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잠든지도 몰랐던 나는, 갑작스러운 소음에 깨서는 급히 정면을 바라봤다. 걷다가 잠든 듯싶은데, 눈뜨자 보인 건 대공의 얼굴이었다.

“허헙…… 왜…….”

왜 우리 시선이 이렇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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