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인 듯 그녀가 입만 우물거렸다. 난 그런 대공비를 보며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저는 저를 버린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요. 정말 저를 사랑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고아원에 둔 거라면 찾아왔겠죠. 어떠한 방법으로든 저와의 관계성을 만들려고 했겠죠. 하지만 찾아오지 않는 엄마에겐 관심도 없어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이야기했다. 아이를 버리는 것은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언제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찾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설사 어떤 종류의 사정이 있다 한들 편지 한 통은 쓸 수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죽었다고 하면, 어디가 많이 아프다면 그건 또 다를지 모르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어쩔 수 없이 자식을 고아원 앞에 두어야 한다, 이런 거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부정적인 건 대공비의 말 때문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 모친이라는 사람은 살아 있다. 그것도 아주 멀쩡히.
내가 이 상황에서 그녀의 손을 잡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공비라 할지라도 결국 내 엄마라는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하지만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혹시 죽기라도 했으면 저렇게 당당하게 나올 수 없을 거다.
“피,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해도, 한 번은 연락을 했겠죠. 살아 있으면서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건 날 보지 않겠단 뜻이고, 찾지도 않겠단 뜻인 거죠.”
“죽었을 수도 있잖니?”
역시나 그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서든 내 관심을 끌려는 것처럼 그녀의 행동은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데려와 주신다고 하실 정도면, 살아 있다는 거겠죠. 그리고 대공비 마마의 말씀처럼 제 머리와 눈이 특이한 거였다면, 제 엄마라는 사람도 알았겠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찾지 않았다는 건 너무 뻔한 거 아니겠어요?”
사고 쳐서 낳은 아이거나,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아이.
정말 부모가 있었더라면, 아이샤는, 이 몸은 적어도 한 번이라도 그 부모를 봤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부모와 달리 내 부모는 편지 한 통 남기지 않고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까.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 말을 듣는 대공비의 표정은 매우 수상했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말과 달리 네 눈에는 그리움이 묻어나 보이는구나.”
가소로움 아니구요?
당당히 말하는 그녀를 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어차피 그녀 생각하기 나름의 문제일 테니까. 난 가족이 궁금하지도 않고, 날 낳아 준 사람이 누구인지 왜 버렸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글쎄요.”
거기에, 대공비가 봤다면, 수도에 계속 빌붙어 있게 된다면 언젠가 나 또한 마주할 일이다.
그리워할 필요도,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사람.
혹여나 나중에라도 마주친다면 그저 저런 사람이 있구나 그 정도만 생각하면 되는 사람. 그렇기에 난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말은 그리했지만 네가 네 모친을 보고 싶어한다는 거 잘 안다.”
“편할 대로 생각하세요.”
“결국 너는 내 손을 잡게 될 것이다.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어. 또 누구나 자신의 출생을 궁금해하지. 결국 찾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이 승자가 된 것처럼 그녀가 웃었다.
뭐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어느 정도 호응은 해줘야겠지. 난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래. 좋아. 이제야 아이답구나.”
“그럼 대공비 마마.”
“그래. 그사이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거야?”
“아뇨. 저도 궁금한 게 있어서요.”
순간 그녀의 안색이 굳어졌다.
“궁금한 거?”
“네. 대공비 마마께서는 쌍둥이들을 많이 아끼시나요?”
“당연히. 어린 너한테 들을 만한 소리는 아닌 것 같구나.”
“그러면 궁금하네요. 그렇게 아끼는 아이들에게 왜 엄마를 보여 줄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지. 아이는 낳아 준 엄마를 궁금해한다 하셨잖아요. 그런데 별거 아닌 저에게조차 엄마를 찾아 주신다 하셨으면서 왜 애들한테는…….”
말끝을 흐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과연 뭐라고 말할까. 쌍둥이들의 모친은 그녀에 의해 아이들과 떨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정신이 나간다. 쌍둥이들은 아주 나중에 자신들의 모친을 찾는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을 빼앗겼다는 충격 때문에 그녀는 정신이 나간 후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버린 후에 찾으니까.’
그마저도 여주가 찾아 준다. 그것 때문에 쌍둥이들은, 여주에게 더 집착을 하게 된다. 은인이나 다름없으니까.
조금만 더 빨리 찾았더라면, 어쩌면 그녀는 쌍둥이들을 알아보고 덜 미쳤을지 모른다.
하다못해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첫사랑인, 쌍둥이들의 모친을 보고 싶어하던 대공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만큼 대공비는 그녀를 꽁꽁 숨겨 놨으니까.
“애들한테는 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그냥 왜 안 찾아 주시나 해서요! 그게 궁금했을 뿐이에요.”
대공비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쌍둥이들의 모친이었다. 그녀 또한 대공의 자식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제나 불안해했다.
쌍둥이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싶어했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패악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의아할 따름이다.
‘물론 대공비의 아들인 론이…… 쌍둥이들에 비해 대공의 힘을 거의 이어받지 못한 데다가, 대공의 아들치고는 부족한 점투성이긴 했지. 육체적으로 튼튼한 것도 아니고, 똑똑한 것도 아니고. 다들 대공의 아들이 맞냐고 할 정도긴 했어.’
그래서였는지 어쨌든 대공비는 쌍둥이들을 지독하리만큼 싫어했다.
대공에게 딸려서 왔을 때만 해도 대공의 눈치를 봐서인지 그 정도까진 아녔지만.
‘지금처럼 초반에는 그나마 잘했었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 거지만.’
“대공비 마마?”
난 말 없는 그녀를 재촉했다. 우물거리던 그녀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곧…… 찾을 거란다.”
“그렇죠? 정말 대공비 마마께서는 로헨과 라리를 아끼시는 거 같아요.”
“그럼. 아끼다마다.”
“다행이에요. 혹시 대공비 마마의 아이들이 아니라고 미워하고 차별할까 봐 걱정했거든요.”
“그럴 일 없다.”
실컷 말하던 대공비의 얼굴이 굳어진 건 그때였다. 대화의 주체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녀는 이를 아득 갈다가 다시금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행이구요.”
무언가 말을 더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는 가만히 나를 지켜만 봤다. 한참 동안을.
난 한참 동안이나 앉아 있다가, 5분여가 흘렀을 때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심히 놀란 듯싶었다.
“뭐 하는 거지?”
“더 이상 하실 말씀 없으신 거 아니에요?”
“뭐?”
“너무 가만히 계시길래요.”
아마도 생각하고 있던 거겠지. 나를 어떻게 하면 제 편한 대로 쓸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쓸 수 있는 패는 이미 다 썼기에 그녀는 나를 이곳에 묶어 둘 딱히 어떤 방법도 없어 보였다.
“아.”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신 건가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있을 리가.
협박도 회유도 다 안 통하는 걸 알았는데. 그나마 내 엄마라는 사람에 대한 게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마저도 확실한 게 아니었기에 그녀는 억지로 웃었다.
“아.”
“그래, 내게 할 말 있니? 내가 말한 제안 중에 받아들이고 싶은 게 있어?”
“만약에요.”
“그래.”
“아주 만약에 대공 전하와의 약속을 못 지키게 돼서 쫓겨날 거 같을 때요…….”
그제야 그녀는 무언가 희망을 느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비 마마께서 안 쫓겨나게 해주실 수 있어요?”
“그러엄.”
“아까는 내쫓으실 것처럼 구셨…….”
“물론 그렇지. 맨입으로 해줄 순 없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뭘 해야 하는데요?”
“아까 말한 그거.”
“아, 친구들 팔아먹는 거요?”
내가 제대로 이야기한 듯 그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팔아먹다니. 그냥 어미에게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말해 달라는 거지.”
“제가 안 해도 시녀들하고 시종들이 다 말하지 않아요?”
순수한 아이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말하다니.”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에게 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서예요.”
다시금 굳어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활짝 웃었다.
“혹시나 대공비 마마의 편이 되려면 뭐 할지 알아야 하잖아요?”
“흐흠…… 그, 그렇지. 아까 말했다시피 그냥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 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너를 보호해 주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마음을 담아.
‘그러면 과거와 달라질 게 없잖아.’
순간 내 목소리인 듯 아닌 듯한 목소리가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랐다. 귀에 들리면 환청이라 생각하겠지만 이건 내 생각에 아까운 것이었다.
‘또야…… 도대체 뭐야. 과거가 뭔데. 도대체…….’
하지만 난 다시금 표정이 굳어질까 봐 애써 머릿속에 든 생각을 지우고선 표정을 변화시켰다.
“생각해 볼게요!”
“그래, 생각…… 아니, 한다는 게 아니었어?”
“네. 뭐 들어만 본다는 거죠. 대공님과의 약속이 우선이니까요.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대공비 마마. 오늘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