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40)화 (40/99)

-40화-

“정말요?”

“그래.”

굉장히 큰 소득이다. 나는 대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도.”

“네?”

“적어도 내 아이들을 걱정한다.”

말은 걱정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무표정은 1도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데 충분했다.

“아. 네.”

“믿지 않는군.”

“그런 표정으로 말하니까요. 누가 봐도 난 그런 걱정 따윈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라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요.”

그제야 그가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정말 걱정이 될 때는 음…… 이렇게 눈매를 자연스럽게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난 차마 손도 댈 수 없는 그의 몸을 대신해 내 눈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고선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축 내렸다.

“그런 표정? 그런 표정이 걱정하는 표정인가.”

“네. 이런 표정으로 말하면 아주 조금은 걱정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 거예요.”

내 말에 허튼소리라고 뭐라 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대공은 자신의 눈가를 축 늘어뜨렸다.

“이렇게 하면 되나.”

“어…… 아마도요. 아, 아까보다 좋아요!”

하지만 그의 인상은 이렇게 해서 좋아질 리가 만무했다. 분명 노력은 하고 있는데 전혀 좋아지는 게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묘한 얼굴로 사람을 노려본다는 느낌을 줄 뿐.

그럼에도 난 거짓말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에서 당신이 그래 봤자 표정이 나아지지 않네요, 했다가는 대공이 화낼 거 같다.

“정말?”

“네! 아주 좋아요. 원체 인물이 좋으시다 보니 이런 얼굴도 잘 어울리시네요.”

“흠흠…….”

너무 과하게 칭찬했나.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로헨과 라리의 부친 아니랄까 봐 대공의 얼굴은 꽤 미남이니까. 반은 아부고 반은 진실이랄까. 그런데 영 반응이 별로다.

‘다음부터 아부는 좀 뺄까. 이건 거짓말해서 미안한 마음에 한 말인데.’

그때.

“이런 표정 자주 짓도록 하지.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는…… 보통의 아버지가 되고 싶으니까.”

“네……?”

“사실 잘 모른다. 난 자식들을 제대로 사랑해 준 적도 안아 준 적도 없다. 실상 이 쌍둥이들도 마찬가지지.”

암요암요. 그래도 당신에게 이 쌍둥이들은 많이 특별하잖아요.

‘당신의 첫사랑이 낳은 아이니까. 당신이 그리도 찾던 아이들이니까.’

자신과 꼭 닮은 아이들 너머로 첫사랑을 그려 보고 있겠지. 대공비에게 처음으로 부탁까지 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그 사랑을.

“알아요.”

“어찌 되었든…… 뭐, 네 말을 모두 듣겠단 뜻은 아니다. 아이샤. 그저 조금은 참조해 본다는 것이지.”

“좋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제일 따르는 건 다름 아닌 너니까.”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 듯했지만, 대공은 다른 말은 더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지켜볼 뿐.

‘무언가 할 말이 많은 것처럼 쳐다보지 말고, 그냥 이렇게 된 거 나를 이 집에 있게 해주면 참 좋으련만.’

하지만 그럴 의도 따윈 없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내게는 냉랭했으니까.

“어찌 되었든 다음에 신전에 갈 때 보도록 하지.”

“네~.”

“내가 너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본다 해서.”

“네?”

“오해하지 말도록. 이건 그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것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거니까. 다른 뜻은 절대 없다.”

암요, 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원래 절~대 다른 뜻 없는 사람 중에, 진짜 아무 뜻 없는 사람은 없던데.

‘퍽 궁금하긴 했나 보네.’

이상하게 대공은 쌍둥이들을 편애했다. 그 나름대로의 방법대로. 장자인 론이 있지만, 론은 별개의 문제다. 대공비가 제 아들에게는 유별나게 굴어서인지 다정하게 말 한마디 한 적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쌍둥이들에게는 조금 달랐다. 표현 방법이 조금 잘못되어서 그렇지, 그는 쌍둥이들에게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마치 자식이 쌍둥이들만 있는 것처럼.’

“왜 그렇게 쳐다보지?”

“그냥요.”

“혹시나 기대할 생각이 있다면 절대 하지 말도록. 네게 말을 많이 건다 하여, 그때 약조한 걸 무를 생각은 없으니까.”

“네.”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혹시나 무언가 이상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해.”

아주 조금의 변화랄까. 내 이야기는 잘 듣지도 않으려고 했던 사람치고는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대공은 밖으로 나갔다. 대공과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로헨은 그제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마음에 들지 않아.”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야?”

“지금까지는 관심도 없다가 이제 와서 신경 쓰는 척하는 꼴이 꼴사나워서. 버려 놓고선 이제 와서…….”

“그럴 만하지. 이해해.”

내 말에 로헨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해해?”

“그럼.”

“하긴…… 너도 버려졌으니까. 걱정 마. 내가 누나 널 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어?”

“아니. 내가 아니라 우리가. 라리와 나는…… 너 안 버려. 그러니까…… 아, 몰라. 잘래.”

어쩐 일로 로헨은 라리가 있는 침대까지 폴짝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선 라리를 마치 인형 안듯이 안았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난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둘을 바라봤다.

“둘이 이러고 있는 거 보니까 참 좋다.”

하지만 쑥스러웠던 건지 로헨은 라리의 등짝에 고개를 파묻었다.

“쑥스러워하기는.”

“아니거든. 그냥…… 졸린 거거든.‘

난 씩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런 시간을 기다렸어. ’

아무렴 기다렸고말고. 그때였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내 기억인 듯, 내 생각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내 생각이 아닌 것만 같다.

‘이상해…….’

왜 이러는 거지.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든다.

“왜 그래?”

“어? 아냐. 그냥…… 뭐 좀 생각하느라고. 이렇게 된 거 나도 자야겠다.”

난 냉큼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거 괜찮아?”

“안 괜찮을 거 있어? 왜. 로헨은 싫어?”

“아니, 좋아. 그래도.”

오늘따라 로헨은 참 이상했다. 자꾸만 주저주저한다.

‘부끄럽기라도 한 걸까. 귀엽다니까.’

이다지도 귀여운데, 이다지도 사랑스러운데. 왜 그렇게 힘든 길로 갔던 걸까. 두 아이들의 삶이 참으로 기구한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존재하는 거겠지.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라고.’

아니, 소설 속 일을 반복하지 말라고. 나도 모르게 자꾸만 이상한 말들이 떠올랐다.

“피곤해서 그런가…….”

“피곤하다고? 얼른 자.”

피곤하다는 내 말에 놀란 듯 로헨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어어…… 자야지.”

“약한 게 맨날 뭐 하겠다고 졸랑거리니까 피곤하지. 어서 자. 픽 쓰러지지 말구.”

그때였다. 로헨이 라리의 몸을 반쯤 누르고선 말하자 라리가 답답한지 눈을 떴다.

“우웅…… 라리 죽어, 라리!”

“안 죽어. 엄살쟁이.”

그 모습에 로헨은 피식 웃더니 라리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얼마나 잠꼬대를 하면서 자는지 얼굴 여기저기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우웅…….”

나는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는 라리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었다.

“라리야.”

“우웅…….”

공작이 나간 후 비몽사몽 일어난 라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직도 졸음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이곳에 온 이후부터 이렇게 잠이 많아졌다 했지?”

“응!”

독이 아니다. 아니, 먹는 독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의원이 했던 말은, 한 가지만 먹여서 이리 된 게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하긴 대공의 자식들은 타고난 성질 때문에 어지간한 독에는 당하지 않아. 하지만 당했다는 건…… 그걸 발견했다는 건 결국…….’

난 고개를 끄덕이며 라리를 바라봤다.

그나마 다행히 이제부터 대공비는 공작이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렇다면 대공비는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다.

순간 잊고 있었던 소설 속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이곳에 온 이후부터는 자꾸만 흐릿해지는 소설 속 이야기. 어느 날은 문득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 다시금 이곳에 있는 이유들이 떠오르곤 했다. 여긴 소설 속이고, 내 앞에 있는 쌍둥이들은 짐승이라 불리는 소설 속 흑막들이라고. 자꾸만 떠올려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 사라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난 내 기억들을 몇 번이나 떠올렸다.

‘이건 소설 속이야. 잊지 말아야 해. 소설 속. 나는 조연이고,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은 소설 속 흑막들이야.’

여주를 지독히도 사랑하게 되는 악역과 악녀. 이들은 여주에게 집착해 그녀를 납치까지 했다가 결국 소설 속 주인공인 황태자에 의해 처단당한다고. 짐승들이라서 애들의 감정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날것에 가깝다는 것.

그리 많지 않은 서술 중에서 라리와 로헨에 대한 서술도 있긴 했다.

‘지금 같은 상황도 분명 있었지.’

소설 속, 로헨이 과할 정도로 제 동생을 챙기는 것. 그것은 라리가 로헨보다 약한 몸을 타고난 탓도 있지만 대공가에 온 뒤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탓도 있었다. 그래서 로헨은 유일한 자신의 편인 동생이 잘못될까 봐 더 안타까워하며 모든 걸 해줬다고.

대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쌍둥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려 했던 대공은 그런 라리를 위해 안 해준 게 없다. 그게 대공비를 더 화나게 만들었고.

“어쩐지…… 곧 연락이 올 것 같은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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