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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38)화 (38/99)

-38화-

“혼낸 거야, 그거. 누가 사용인이고 누가 아가씨인지 모르겠네. 라리, 그럴 땐 너네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해서 난처해진 거면서 누구한테 뭐라 하는 거냐고 따끔히 말해. 알았지? 그…… 원장이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 것처럼 화내도 돼.”

“그러다가 미워하면 어떻게 해?”

“괜찮아.”

아주 그것들 버릇을 고쳐 줘야겠네. 자신들이 제대로 아이를 돌보지 않는 거면서, 감히 귀하디귀한 라리를 혼내?

물론 그들이 따라오지 않은 덕에 라리는 이곳에 더 편히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녀들이 안다면 난리를 칠 게 뻔하다. 시녀도 없이 이곳에 드나드는 걸 대공이 알게 되면 출입이 금지될지도 모를 일이다.

‘적당히 뭐라 해야겠네.’

그러는 사이 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니야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지.”

“이럴땐 로헨이랑 라리 성격 반씩 섞고 싶네.”

“내 성격이 좋긴 하지.”

가만히 우리 이야기를 듣던 로헨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전혀 그런 의미 아냐. 로헨처럼 할 말 다 하는 걸 라리도 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런 거야? 알았어! 그럼 나 할 말 다 할게!”

“응! 아무도 너를 미워하지 않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라리인걸.”

“좋아.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들은 나 미워해도 괜찮아. 난 언니야만 좋아해 주면 돼.”

라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다가 내게 기대었다. 난 그런 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의 출입이 적은 숲이어서 유난스럽게 고요했다. 간간이 경비병들이 돌아다니는 듯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거리가 꽤 되는 듯 그 소리는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오는 곳. 난 그 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이곳에 있다 보니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

“이제 가야 할 거 같은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분명 앉은 상태로 잠깐 눈을 감은 거 같은데 어느새 나는 풀밭에 누워 있었다. 해도 이미 져버린 후였다.

“아…….”

“일어났어?”

“으응…… 오래 지났어?”

“이제 막 해가 졌어. 오래 있다가는 감기라도 들까 봐.”

“그렇지. 라리는 몸이 약하니까, 감기 걸릴 수도 있지.”

나는 내 옆에 누워 있는 라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기 고양이처럼 라리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어…… 어, 그래. 라리…… 맞아. 라리가 감기 걸릴 수도 있지.”

“응?”

“어쨌든 들어가자. 더 있다가는 시녀들이 잔소리할 게 뻔해.”

“그렇지. 잔소리…….”

“그냥 잔소리하는 거면 무시해 버리면 되는데, 혹시나 우리가 여기 들어온다는 걸 일러 버려서 못 들어오게 할까 봐.”

그 말에 끄응 하며 몸을 쭈욱 늘어뜨리고선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어서 가자. 라리야. 일어나야지.”

하지만 몸을 흔들었음에도 라리는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많이 피곤한가 보네.”

도저히 일어날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라리를 들어 올렸다. 몸이 절로 휘청거린다. 온몸의 힘이란 힘은 다 뺀 건지 라리의 몸은 고양이 몸처럼 축 처졌다.

“으…… 무겁다. 그래도 내가 라리 업고 갈게. 걱정 마.”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로헨을 보며 억지로 웃었다.

“걱정 안 해. 그리고 비쩍 말라서는 뭘 업어. 내가 업고 가면 돼.”

그러더니 빠르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라리를 등에 업었다. 그래 봐야 라리보다 조금 큰 정도지만, 이런 일은 자주 있던 듯 로헨은 몸을 숙여 아이의 다리가 최대한 바닥에 닿지 않게 하고선 걷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래도 내가 조금 더 키가 큰데…….”

“크면 뭐 해.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은데. 힘도 없으면서. 내가 업으면 돼.”

“으응…….”

“어릴 적부터 라리는 업히는 걸 좋아해서 자주 이랬어.”

별일 아니라는 듯 로헨은 뚜벅뚜벅 걸었다. 몸을 잔뜩 숙이고 있긴 했지만, 정말 익숙한 듯 로헨의 걸음은 보통의 걸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공가의 핏줄을 이어받은 덕에 신체 능력은 워낙 뛰어난 게 확실히 느껴질 정도다.

“으응. 그럼 어서 가자.”

“그래. 누나 밥도 먹어야지. 밥 먹어야 살찔 거 아냐. 얼른 살쪄.”

“나 걱정해 주는 거야?”

“걱정은 무슨.”

“다정해졌네.”

내 말들에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듯 로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아까보다 더 빠르게 걸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남들에게 예쁘게 표현하는 법을 모를 뿐 로헨도 참 다정한 아이였다.

그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을 연 사람들 한정이긴 했지만.

‘어쩌면 로헨처럼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여기에서 더 삐뚤어지지만 않으면.’

“왜 그렇게 쳐다봐.”

“응. 귀여워서.”

“귀엽기는, 안 귀엽거든.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 그리고…… 어…… 그래! 할 말 있어. 나는…… 그 인간을 아빠라 부르지 않을 거야. 도저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아.”

민망한 분위기를 어떻게서든 벗어나려는 것처럼 로헨은 묻지 않은 말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알아. 아주 어릴 적부터 미움은 계속 가슴속에 자리 잡았을 테니까, 그런 반응들이 당연해. 도리어 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아버지라 부를 필요 없어.”

“그런데 내가 말 안 하면 누나가 쫓겨나잖아. 그것도 싫어.”

“으음…… 방법이 또 있겠지. 어쨌든 시간은 벌었잖아?”

“……만에 하나 방법 없으면 어떻게 해. 그냥 부를까……?”

언제나 당당하던 로헨이 어쩐지 시무룩해졌다. 난 그런 로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믿어. 고아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날 믿어.”

“……떠나지 않을 거야?”

“어……?”

“혹시 일부러 떠나기 위해 그런 핑계를 댄 거 아닐까…… 사실 우리랑 있는 것보다 대공한테 돈 많이 받고, 혹은 좋은 가문에 입양 가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도 하고 있었구나. 난 꽤 진지해 보이는 로헨을 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뭐?”

“하지만 나한테는 나쁜 생각이야. 난 너희들을 지키려고 마음먹었어. 그러니까 그런 일은 없어. 너희들이 다 클 때까지 옆에 있을 거야.”

“약속할 수 있어?”

“응. 어떤 일이 있든 이 가문에 척 달라붙어 있을게. 너희가 다 크는 그날까지. 그러니까 걱정 마.”

그 후로 로헨은 방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아까보다 훨씬 밝은 표정이었다.

***

우리의 일상은 달라진 것 없이 흘러갔다.

매일매일 함께했다 잘 때만은 따로 자겠다고 했지만, 라리는 내가 없으면 못 잘 거 같다는 투정을 부렸고, 결국 우리 셋은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대공은 아침저녁으로 와서 우리를 보고만 갔고, 시녀들은 그날 이후 어떠한 터치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한 달 후에 이곳에서 쫓겨나면 그때부터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매일매일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렇게 2주 정도라는 시간이 지났다.

라리의 몸은 점점 더 상태가 나빠졌다. 하루에 일어나 있는 시간이 몇 시간 되지 않을 만큼 잠에 취했다.

결국 나는 아침 일찍 우리를 찾아온 대공과 또다시 독대를 해야 했다.

“이상한 점 느끼지 않아요?”

“이상한 점?”

“네.”

“글쎄. 음…… 네가 조금 살이 찐 것?”

“……아니, 살이 찐 건 맞는데…… 그런 걸 물어볼 리가 없잖아요. 나 말고 다른 애들이요.”

난 누워서 잠만 자는 라리와 그 옆에 서 있는 로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제야 내가 뭘 말하는지 알았다는 듯 공작은 두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살폈다. 

내가 아팠다 일어난 이후 대공은 그나마 나를 인간 정도로 취급해 주었다. 그 전에는 먼지 정도로 취급해 주더니.

“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작은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모르겠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왜 오는 거예요?”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지. 내 자식들이니까.”

“그러니까 왜 보기 위해서예요? 애틋해서? 사랑스러워서? 아니면 그냥 살아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절로 짜증이 올라왔다.

아주 조금만 신경 쓰면 이상한 걸 깨달을 텐데 왜 알아차리지 못할까. 하지만 난 아직 이곳에서, 인간 먼지 같은 존재이기에 우다다 말을 뱉어 내고 살짝 눈치를 봤다.

곁에 있던 시녀들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웠던 건지 모르는 척 주변을 정리하는 것처럼 몸을 움직여 댔다.

“……말이 심하군. 너의 오만까지 봐준다 하지 않았는데.”

“……그냥 순간 울컥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래도 대공 전하라면, 자신의 자식들인 아이들에게 신경 써주실 줄 알았거든요.”

“신경 쓰고 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보고만 있잖아요…… 아이들의 상태가 어떤지도 보셔야죠.”

“상태? 문제가 있다는 건가?”

똑똑한데 멍청한 사람인가. 아니면 세상사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가. 할 줄 아는 건 남을 자신의 아래로 보는 것밖에 못 하는 사람처럼 그는 어깨를 들썩였다.

적어도 그가 직접 이런 것들을 보길 바랐는데.

혹시나 내가 없었을 때, 그럴 때에도 아이들을 살펴보는 방법을 배우길 바랐는데.

“하아…….”

“왜 그러지?”

“라리요. 초반에는 대공 전하가 올 때마다 일어나서는 아빠, 라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요새는 계속 자는 거 같지 않아요?”

“그렇군…… 왜 계속 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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