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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34)화 (34/99)

-34화- 

내 스스로 정신을 차렸다기보단, 갑작스런 외침에 억지로 정신이 차려졌다.

“어…… 어?”

눈만 뜬 채 멀뚱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로헨이 내 몸을 마구 흔들었다.

“괜찮아? 어?”

“어…. 어떻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려던 그때였다.

“언니야…. 언니야가 깨어났어……?”

자다 일어난 건지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푸닥거리며 달려오는 소리까지 들렸다.

“언니야!”

마침내 보인 라리는 두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라리의 눈에는 다시금 눈물이 가득 맺혔다.

“괜차나…. 언니야 안 아파? 언니야 눈 떠써? 언니 맞아…?”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라리의 눈가를 닦아 줘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아…….”

“언니. 왜 그래. 아직 어디 아파? 응?”

흔들리는 내 손을 급하게 잡은 라리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심각하게 굳어졌다.

“아냐. 그냥 힘이 없어서 그래.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해도 몸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나뭇가지라도 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몸에 힘 하나도 안 들어가지?”

방금 전까지 짜증을 내던 로헨이 분노를 가라앉힌 건지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를 냈다.

“어…?”

“몇 날 며칠 그러고 누워 있었으니까 힘이 안 들어가지.”

“나… 누워 있었어? 내내?”

로헨과 라리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어, 얼마나.”

“3일.”

“그래서 언니 잘못되는 거 아닌가 우리 엄청 걱정했었어.”

입을 삐죽 내밀던 라리는 내 손을 만지작만지작거렸다.

“그랬어……? 나 혹시 어디 많이 아프대…?”

그래 봐야 몇 시간 잤겠구나, 생각했었는데. 3일이나 잤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몸에 기운이 없구나. 밥도 못 먹고 잠만 잤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황당할 정도였다.

‘이 몸이 그렇게나 약해빠진 몸이었나.’

꽤 강인한 몸이라 생각했는데.

거기에 쌍둥이들은 아까부터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진짜 내 몸… 어디가 안 좋대……? 괜찮아, 말해도 돼.”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나을 것이기에, 한참 끝에 다시 물었지만, 여전히 쌍둥이들은 말이 없었다. 라리는 로헨에게 말하라는 듯 미루고 있었고, 로헨은 자신의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나 죽을병이라도 걸린 거야?”

“풋.”

정말 심각해져서 물었는데, 한참 끝에 들려온 소리는 비웃음 소리였다.

“뭐야. 그 웃음은.”

“이상 없대. 그냥 긴장이 풀어지고 피로해서 그런 거 같다고만 하더라.”

“…정말? 뭔가 내가 큰 병 있는데 숨기는 거 아냐?”

원래라면 소설 속에서 끔찍한 일을 당해야만 했던 고아원 아이로서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혹여나 소설을 틀어버려서, 그래서 진작 죽어야 했던 내 운명이 이렇게 작용하는 걸까 봐 손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로헨은 그런 내 걱정이 우습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런 걸 숨길 리가 없잖아. 네가 뭐라고 그런 걸 숨겨.”

“…….”

“정말 괜찮대. 안 믿기면 강아지처럼 너한테 매달려있는 라리한테 물어보던가.”

그 말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라리에게로 향했다.

“라리….”

“응, 진짜야! 걱정할 거 하나도 없댔어!”

“정말……?”

“응! 라리는 거짓말 안 해!”

해맑게 웃는 라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도가 몰려왔다. 로헨은 하나도 안 믿기는데 라리는 믿긴달까.

“다행이다.”

“대신 잘 먹어야 한댔어. 잘 못 먹어서 비쩍 마른 거라고. 언니도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댔어.”

“그건 뭐…….”

“그리고 잘은 모르겠는데 나중에 신전 한번 가 보라 하던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신전의 존재에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보고 신전을?”

“어.”

“…아.”

“왜. 가면 안 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딱히 신전에 가 본 적은 없어서.”

신녀들을 본 적은 있었지만, 신전에 갈 일은 없었다. 신성한 곳인데다가 제국 수도 혹은 큰 도시에만 있는 신전을 보육원장이 우릴 데리고 갈 리가 없었다.

가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쓸데없다면서.

그래서 신전이라는 말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한번 가 보래.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러더라.”

“어…. 그래……. 갈 수 있으면 가 봐야겠네.”

가고 싶다 해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어. 지금은 괜찮은 거 같아. 몸에 힘없는 거 빼고는.”

“언니 아푸면 안 대. 언니가 아프니까 라리 가슴이 콕콕 아팠어.”

볼을 잔뜩 부풀린 모습이 꼭 다람쥐 같은 라리는 이불에 볼을 부비적부비적거렸다.

“응, 알았어.”

“내가 우리 양돌이도 줄 테니까 아프지 마. 아…. 아닌데. 주는 건 안 되고…… 언니 괜찮아질 때까지 잠시 빌려줄게.”

치아가 모두 보일 만큼 환하게 웃던 라리는 언제나 품에 안고 있던 인형을 내 베개에 눕혔다.

“응?”

“이거 받은 이후에 좋은 일들만 있었으니까! 헤헤. 나의 수호신이야. 그러니까 언니도 지켜 줄 거야.”

라리의 모습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쩐지 하나를 주고 열을 받는 듯한 기분이다. 무조건적인, 맹목적인 라리의 사랑을 받으니 미안한 마음마저 들 정도다.

“그러니 아프지 마. 언니 아픈 건 허락지 않았어.”

“응?”

“아프면……. 헤헤. 아니야.”

순간 작게 떠진 라리의 눈동자가, 그 눈에서 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기분이 아주 조금 묘해졌지만, 난 금세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기분 탓이라고 넘겨버리면서.

괜스레 시선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그 묘한 기운을 애써 넘기려는 것처럼. 그러자 보인 건 내가 누워 있는 침대의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착각했나 싶어 주변을 봤지만, 아무래도 착각한 게 아닌 듯하다.

“그런데 여기는…… 너희 침대 아냐?”

아닌 게 아니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도 한참이 걸릴 것 같은 커다란 침대는 아무리 봐도 내가 누워 있을 만한 곳이 아녔다. 등 뒤로 차르륵 느껴지는 침구의 촉감. 마치 내 머리모양에 맞춰 쑥쑥 들어가는 듯한 베개. 이건 아무리 봐도 최고급이다.

거기에 천장을 수놓은 고급스러운 벽지들. 누가 봐도 여긴 쌍둥이들이 지내는 방임이 틀림없었다.

“응! 우리 침대야!”

“정말…?”

“응! 그래서 언니 자는 내내 우리가 옆에서 같이 자써! 라리는 정말 너무 좋아써! 옛날 생각두 나고.”

어느새 다시금 내 옆에 누운 라리는 기쁜 듯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랬어?”

“응응! 앞으로도 계속 계속 여기서 자자.”

그래도 되려나. 대공이 분명 가만있지 않을 텐데. 생각만 해도 등 뒤에 털이 오소소 솟는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도 되려나. 분명 가만 있지 않을 텐데.”

“하긴……. 오빠가 아빠랑 엄청 싸우긴 해썽.”

“싸우다니?”

“뭔가 병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고. 우선 다른 곳으로 격리해야겠다는 말을 했거든! 그래서 오빠가 막 화냈었어.”

라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럴 만했네…. 그런데 맞는 말이잖아. 갑자기 3일 동안 일어나지 못한 거면……. 의심할만하지. 건강 자체를. 아무래도 그 사람에게 있어 너희들은…….”

“뭐가 그럴 만해. 너까지 짜증 나는 소리를 하냐. 하. 진짜 짜증 나. 병은 무슨. 건강한 애가 피곤해서 좀 자는 거 가지고.”

나에게조차 짜증을 내던 로헨은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래도 괜찮나 보네.”

“응! 이제 괜찮아! 조금 힘없는 거 빼고.”

“…더 자. 하여튼 너도 눈만 뜨면 사람 짜증 나게 하는 데 뭐 있어.”

그 말을 한 로헨은 갑자기 방 안을 천천히 움직이더니 켜져 있는 불을 모두 꺼버리고 말았다. 결국 밤 같은 어둠이 찾아왔고, 옆에 꼭 붙어 잠든 라리와 함께 난 잠에 들고 말았다.

***

내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그날로부터 4일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였다. 결국 이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난 다시금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밥은 아직 침대에서 먹어야 했고, 일어나려면 눈치 주는 로헨을 피해서만 가능했지만.

“아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가만 누워있던 나는 답답함에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방에서 늘어져 있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일어나자마자 로헨이 내 어깨를 살짝 쳤고, 반동에 내 몸이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왜 일어나. 넌 더 누워 있어야 해.”

“누나한테 맨날 너래.”

“누나가 누나다워야지. 지 몸 아픈지도 모르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가 쓰러져놓고.”

괜스레 투덜거리던 로헨은 내 머리 위로 축축한 손수건을 얹었다. 제대로 짜지 않아서인지 수건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 금세 베개를 적셨다.

“안 아프다니까.”

“뭐가 안 아파. 믿을 수가 없어.”

“……”

“그러니까 누워 있어.”

“언제까지.”

쌍둥이들의 보호자로 여기 온 건데, 졸지에 내가 보호받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어리기에, 더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 마음만 급하다.

우선은 이곳에 있는 걸 허가받았지만, 그렇다 해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언니. 요롷게 라리랑 코오 자자.”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던 라리는 잠에 잔뜩 취해서는 날 부둥켜안았다.

“아아……. 더 자고 싶긴 한데, 여기서 이럴 순 없어.”

“왜. 뭐. 자꾸 왜 일어나려는 건데.”

“…나 한 달짜리 시한부잖아.”

시한부라는 말에 순간 로헨의 얼굴이 굳어졌다.

“시한부라는 그딴 말 쓰지 마. 순간 깜짝깜짝 놀라니까.”

“응? 놀랐어?”

“어.”

“알았어. 그런데 진짜 내겐 꽤 중요한 일이라고. 제대로 하는 걸 보여 줘야……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방해 안 받지.”

“뭘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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