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나를 걱정하는 건지, 이기적인 건지 알 순 없지만 아이들은 날 양쪽으로 잡고 질질 끌기 시작했다. 마치 범죄자가 연행되는 듯한 기분이 심히 풍겨 온다.
“잠깐…….”
하지만 내 목소리 자체가 안 들리는 것처럼 쌍둥이들은 그렇게 날 마차로 욱여넣었다. 이럴 땐 쌍둥이 아니랄까 봐 죽이 얼마나 척척 맞는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난 마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나 이렇게 간다고……?”
“어.”
“응! 언니야는 이제 우리랑 함께 가는 거야!”
심지어 마차에 억지로 실려 있는 내가 다시 내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양옆에 자리 잡고 앉아 버렸다. 그런 아이들을 말릴 생각조차 없는 듯 대공이 맞은편에 자리했다.
“저…… 제가 이렇게 가도 괜찮나요……? 아니, 저는 기본적으로 부모도 모르는 고아이고…… 그리고 교육에도 그리 좋지 않을 테고…….”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바라보는 대공에게 횡설수설하며 아무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다.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따라가고 싶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내가 이 이상 소설에 참견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나란 존재 자체가 어쩌면 쌍둥이들에게 지옥 같았던 어린 시절을 기억시키는 매개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자꾸만 자신이 없어졌다.
대공이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과, 쌍둥이들을 위해서라도 쳐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마음들이 자꾸만 날 중간에서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다.
그때, 라리가 아까부터 내 손을 꽉 잡았다.
“얘 못 데려가게 하면 안 갈 거야.”
대공이 입을 벌리고 말하려던 그때 로헨이 선수를 쳤다.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오로지 감정은 아이들에게만 내비치는 사람처럼 무표정하던 그가 아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표정으로 나와 로헨을 번갈아 바라봤다.
“뭘 가져가든 상관없다.”
……물론 대공은 날 물건 취급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긴 하다. 하긴 소설 속에서 아이들이 흑막과 악역으로 자라는 데에 그의 영향이 매우 지대했다.
과거에 무슨 큰 상처라도 받은 사람처럼 대공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고, 그 때문에 아이들은 그의 성격을 꼭 닮는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 상관없는 성격.
또 대공이 겨우 찾은 아이들에게 뭐든 다 해줬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격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아무것도 누리지 못했던 아이들은 과할 정도로 모든 걸 가졌고, 그게 부작용이 되어, 아이들의 욕심은 점점 더 과해졌다.
‘원하는 건 모두 가져야만 하고, 남의 감정 따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아이들은 꼭 새하얀 종이 같아서 여러 가지 감정에 쉽게 물들곤 한다. 과거에 학대까지 받았고,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 따윈 없었던. 그러다 뒤늦게 알게 된 자신들의 자리가 너무 커서 아이들은 삐뚤어진 집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고쳐야 할 건 아이들이 아니라 대공이겠는데.’
그의 성격을 고치지 않는 이상에야 아이들의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게 뻔하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였다. 마차 문이 닫혔고, 대신 대공이 앉아 있는 쪽의 창문이 열렸다.
“이후에 어떻게 할까요. 전하.”
“증거를 찾아내기 전까지 살려 두도록. 증거를 찾는 즉시 죽여라. 또한 보육원은 불태우도록. 내 자식들에게 약점이 되는 곳은 모두 없앤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장 내가 이곳을 떠난다는 것만 집중하여 잠시 잊고 있었다. 소설 원작에서 대공이 이곳을 불태워 버린다는 사실을.
“자, 잠시만요!”
손을 흔들며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대공이라는 사람이 내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안 돼요. 이곳엔 아이들이 있어요. 불태우면 그 아이들은! 그 불쌍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구요. 이곳에 있는 선생님들도 그냥 상황이 그랬을 뿐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옆에 앉아 있던 쌍둥이가 놀란 듯 급히 내 팔을 잡았지만,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쌍한 아이들을,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단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냉기가 풀풀 뿜어져 나오는 대공의 눈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도리어 그는 날 향해 불편감을 내비쳤다.
“내 자식들의 처절했던 어린 시절을 봤던 이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애들 잘못도 아니잖아요!”
“내 알 바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자신 말곤 아무에게 관심도 없는 인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와중에 대공의 말을 들으려는 듯 기사들이 천천히 멀어져 가는 게 보였다.
“잠깐! 잠깐만!”
“언니야. 쩌기 사람이 중요해?”
“어. 중요해. 저대로 두면 안 돼. 저렇게 놓고 갈 수 없어!”
“……그렇다는데. 그쪽. 이대로 그냥 갈 거야?”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채 머리를 갸웃거리는 라리와 달리 로헨은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버지에게 그쪽이라 부르다니. 그 말버릇부터 고쳐야겠구나.”
“이제서야 찾아와 놓고 아버지라 부르길 바라는 건 양심 없는 거 아냐?”
냉랭한 대공의 말에도 로헨은 조금의 주저 따윈 하지 않았다. 꽤 버릇없는 모습에 화가 났을 텐데도 불구하고, 대공은 어색하게 웃었다.
“꼭 누구를 닮았구나.”
“그건 기분 나쁜데. 난 나야. 누구를 닮은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어쩔 건데. 얘가 안 된대잖아.”
“……그런 것이 하는 말 따윌 내가 왜 들어야 하지?”
“그럼 안 갈래.”
방금 전까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있던 로헨이 벌떡 몸을 세운 건 그쯤이었다. 예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로헨에는 조금의 주저함 따윈 없었다.
“누나. 뭐 해. 일어나.”
“뭐 하는 짓이지.”
“난 내 거가 싫다는 건 싫어.”
“그래 봤자 장난감일 뿐이다. 결국 흥미를 잃어버릴 장난감. 그런 것 때문에 내 자식들에게 약점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두라는 건가?”
“어.”
간결하게 대답한 로헨의 말에 대공은 황당한 듯 허허 웃었다. 하지만 로헨은 당당했고, 심지어 가만히 있던 라리즈까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언니야가 싫으면 안 갈래.”
“허. 라리즈.”
“시러시러. 그러니까 언니가 원하는 대로 해줘!”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 때문에 한참이나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점점 화난 것처럼 변해 가던 그의 얼굴은 한참 끝에 평온을 되찾았다.
“……알았다. 그러니 앉도록.”
“어.”
당장이라도 내릴 듯 굴던 로헨은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별일 아니라는 듯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대공은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로헨은 퍽 당당했다.
닫혔던 창문을 다시금 연 그는 마차 옆에 서 있던 기사를 불러 한참이나 숙덕거렸다. 귀에 대고 조용히 속닥거리는 터라, 조용한 마차 안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이제 가지.”
이제는 귀찮은 듯 그는 손을 휘적거렸고, 가까이 붙었던 기사가 마부에게 무어라 말하고 나자 마차도 함께 움직였다.
쌍둥이들 때문에 밖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점점 멀어지는 보육원이 불타거나 하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안에서 또 무슨 일을 벌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소설처럼 모두가 끔찍한 결말을 맡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나자 가슴 어딘가 두근두근 뛰었다. 아까 원장을 볼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한 감정. 가슴 깊은 곳에서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감정들이 물 위에 공깃방울이 떠오르는 것처럼 포르르 올라왔다.
‘기쁜 건가…….’
단순히 보육원 사람들을 살렸다는 생각 때문에 기쁜 것과는 또 달랐다. 눈물이 차오를 것처럼 자꾸만 마음이 울컥울컥했다. 누군가가 툭 건들면 울 것처럼 마음이 불안해졌다.
단 한 번도 내 감정에 대해 이런 느낌을 받아 본 적 없던 나로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아 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혹여나 눈물이 날까 봐.
그런 내 모습에 라리가 놀란 듯 고개를 밑으로 쑥 내밀었지만, 난 아무렇지 않은 듯 겨우겨우 웃었다.
“언니야 어디 아파?”
“아냐. 안 아파! 그냥 마차를 처음 타봐서 그래.”
“웅! 이제 익숙하꾸야! 마차 타는 거 재미있어.”
헤벌쭉 웃는 라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다리를 콩콩 움직였다. 그 모습에 마음은 아까보다 훨씬 평온해졌다.
“촌스럽기는. 앞으로도 많이 탈 텐데 익숙해져. 힘들면 자든지.”
당당한 말과 달리 로헨은 굉장히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심지어 동상이 되어 버린 것처럼 뻣뻣한 자세로 앉아서는 밖의 풍경도 제대로 감상도 못 하는 상태였다. 그걸 보며 어쩐지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