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응?”
“멍청이라고.”
“라리야. 네가 그런 말 하니까 너무 이상하다.”
로헨이 생각난다랄까. 쌍둥이라 똑같이 생겨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오늘따라 행동하는 것도 로헨인 것 같다.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하는 건지 알아차린 듯 라리는 어깨를 들썩였다.
“이상할 게 뭐 있어. 오, 오빠도 그랬어. 언니가 멍청이 같은 짓 할 때마다 꼭 말하라고.”
“멍청이라고 말하래?”
“응.”
맑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분명 라리의 것인데, 참 묘하다.
내 귀여운 라리에게서 로헨의 향기가 짙게 난달까.
‘쌍둥이라 닮은 걸까.’
아무래도 그런 거겠지?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언니.”
“……그렇지.”
“날 그냥 버려.”
“그게 무슨 소리야?”
“뭘 아등바등 다 가지고 가려고 그래. 그렇게 안 해도…… 언니 너는 충분히 노력한 거 아니까 그만해도 돼. 창고에 안 찾아와도 돼. 나 혼자 가 있어도 돼. 원래 거기 살았는걸. 그냥 언니는 언니답게 다시 살아. 원래처럼.”
난 고개를 들어 라리를 바라봤다.
“……그럼 널 버려두라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안 죽을 거 알잖아.”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내버려 두지 않아. 너희가 상처입는 일 따윈 없게 할 거야.”
차라리 너희들을 몰랐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아닌걸.
어느새 아이들은 내 가족이고, 친구였으니까.
죽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해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절대 상처 주지 않을 거야. 방법이 필시 있겠지.”
“……그러다 언니도 다쳐.”
“…….”
그 말에 대답이 나오지 않긴 했다. 사실 위험한 건 나니까.
정도를 지나치면 분명 원장도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하지만 크게 별일을 하진 않겠지. 직접적인 학대는 당해 보지 않았지만, 견딜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날 잊겠지. 하지만 라리는 아니야.’
오늘 확인해 본 결과 과거에도 아마 이런 식으로 라리를 끌고 가려 했었을 것이다.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나가 처리하려고.
그러려면 누군가가 와야만 했다. 원장 혼자 라리를 잡을 순 없었을 테니 오늘처럼 마차든 사람이든 올 게 분명했다.
오늘의 일이 쓸모없는 일은 아녔다는 걸 알기에 난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마 누군가 올 때일 거야. 오늘로써 그건 확실히 알았어. 그러니까 보육원에 모르는 사람들이 오면 그때만 조심…….”
하지만 라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만 했다.
“무리하지 마.”
자리에 주저앉은 라리가 내 볼을 보드랍게 감쌌다.
“어……?”
“언니는 충분히 노력했잖아. 우리를 위해서.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꺼내 줘서 맛있는 것도 주고 해줘서…… 그것만 해도 충분해. 언니는 우리에게 빛이었어. 이후에 우리를 놓더라도 딱히 원망하지 않아.”
자꾸만 눈물이 난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난 왜 이렇게 어린 걸까.
하다못해 열 살만 넘었어도, 외출이 자유로운 열 살만 넘었어도 라리즈를 구할 수 있을 텐데.
“아냐. 그래도…….”
“진짜야. 로헨이랑 나 둘 다, 우리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은 생각보다 즐거웠어. 고구마를 같이 못 구워 먹은 게 조금 아쉬웠지만, 셋이서 불꽃놀이를 못 본 게 아쉽지만. 이게 끝이 아닌걸.”
언제 이렇게 말을 잘하게 된 걸까.
혼자 대단한 사람인 척했지만, 위로는 내가 받은 기분이다.
난 하던 행동을 멈추고선 라리를 가만히 바라만 봤다.
날 보며 씩 웃은 라리는 제대로 묶지 못한 짐보따리가 풀어지지 않게 꽁꽁 묶었다.
“하지만 언니가 챙겨 준 거니까 이거 다 가져가야지.”
그것도 모자라 라리는 내가 싼 보따리를 손에 쥐고선 창가로 다가갔다.
“라리?”
“난 끝 아냐. 우리가 이렇게 끝인 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걱정 마. 숲에서 난 잘 견딜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 간다고 혼자 울고 있지 마.”
마치 주저하는 내게 걱정하지 말란 것처럼 라리는 그렇게 창문을 넘어갔다.
“라, 라리!”
심지어 2층에 위치해 있었지만, 아이는 주저 없이 그곳을 뛰어넘어 갔다.
그동안 숲에서 살았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처럼, 대공가의 자식들은 늑대에 가깝다는 말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라리는 순식간에 숲으로 뛰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멀어져 가는 라리를 붙잡아야 하는데, 내가 데려와 놓고 내가 떠나보냈다.
“나는…… 결국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소설을 바꾸는 일 따윈, 오만하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대단한 존재라도 된 듯 잘난 척은 다 해놓고선. 나는…… 나는 뭘 한 걸까.
결국 나 혼자 해낸 건 아무것도 없다.
그날 유난히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난 한참이나 창틀에 앉아 숲을 바라봤다.
언제나 언니라 불러 주던 라리가, 멍청이라고 하던 로헨이 보고 싶어서 결국 잠에 들지 못했다. 새벽이 올 때까지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잠겨 있던 방문을 누가 억지로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잔뜩 성이 난 보육원장이었다.
들어오자마자 화를 주체하지 못한 그녀는 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 있어!”
“뭐가요?”
“그 애 말이야!”
“아! 아! 어디 갔지……!!”
입을 떡 벌린 채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이샤!”
“아! 그 애라면…… 갔어요.”
“뭐?”
“보육원장님이 너무 무섭게 한다고 떠났어요.”
내 말에 그녀의 안색이 굳어지는 건 당연했다.
“네, 네가 미쳤구나.”
“미치기는요…… 저는 아무 힘이 없는걸요. 원장님.”
“하. 잡았어야지!”
“간다는데 어떻게 잡아요.”
“어디로 갔는데. 어디로.”
“글쎄요.”
자신에게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 날 보던 보육원장은 결국 품고 있던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갑작스레 팔을 우악스럽게 꼬집었다.
“아…….”
“네가 아주 요새 네 멋대로 구는구나. 참 마음에 안 들어.”
“…….”
“하. 네가 걔 잘 데리고만 있었어도!! 아니다. 말을 말아야지. 아이샤. 너 다시 한번만 내 말에 반항하면 그땐 다른 곳에 넘겨버릴 테니 조심해. 어? 멜로디아 신녀님이 예뻐하니 아주 기어올라.”
이게 무슨 일일까.
왜 내가 라리를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지? 라는 생각들에 난 한참 동안 우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씩씩거렸고, 난 금방이라도 멍이 들 것 같은 팔을 매만져야만 했다.
아직도 화가 주체가 되지 않는지 그녀는 다른 일을 할 것처럼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때려봐야 손만 아프다 느낀 건지 그녀는 이내 제 손을 내려놓고 날 내려다봤다.
“이래서 저런 것들은 다 싫어.”
아득바득 이를 갈던 보육원장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방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문을 닫고 가버렸다.
“하하…… 하. 정말…….”
그걸 보며 난 안도했다.
어제 가길 잘했다고.
안 그랬으면 라리가 이 꼴을 당했을 테니까. 차라리 괜찮다면서.
***
그날 이후 일상은 똑같았다.
보육원장은 그날 이후 숲을 뒤지면서 나를 감시했다.
혹여나 다시금 라리와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날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녔다.
그 덕분에 낮이고 밤이고 난 창고 근처는 가지도 못했다.
그저 예전처럼 아름드리나무에 앉아 책을 읽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로헨이 대공과 떠난 지 꼭 한 달이 되던 날.
그 일이 터졌다.
모든 일은 내 예상과는 확연히 다르게 돌아갔다.
분명 5년은 있어야 올 예정이었던 대공이 로헨의 손을 잡고 보육원을 찾았다.
“마차다!”
“저 마차는…….”
보육원에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에 누군가의 방문은 아이들에게 큰 사건이곤 했다.
특히 누가 봐도 화려한 대공가의 마차를 이미 한번 본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모자라 책을 읽고 있던 내게로 뛰어와서는 내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 마차야! 아이샤! 아이샤!”
“왜. 귀찮게 하지 마.”
“그 애 하나 데려간 그 마차라니까!!”
“……어? 뭐?”
다른 애의 말에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동산 위로 올랐다. 그러자 아주 먼 곳이긴 하나 마차가 오는 게 확실히 보였다.
은빛의 마차가, 지난번보다 더 많은 기사와 작은 마차들을 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온몸이 굳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그런 생각에 난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멀리서 오는 건 그 대공가의 마차가 확실했다.
“바뀌었어…….”
소설 속 내용이 바뀌어 버렸다. 원래라면 지금 와선 안 될 마차다. 그런 마차가 지금 왔다는 건, 라리를 데리러 온 거다.
“어, 어? 어디 가, 아이샤!”
난 마차를 보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두고선 급히 몸을 돌렸다.
뒤에서는 놀란 듯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녔다.
‘라리를…… 찾아야 해.’
역시나 내가 뛰자, 알 수 없는 인기척이 내 뒤를 따랐다. 언제나 나를 따르는 저 인기척 때문에 아이샤를 찾으러 갈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녔다.
‘라리를 지금 찾는다면, 그리고 저 수상한 인기척의 사람들을 조사한다면…….’
어쩌면 대공비와의 접점을 찾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문에 난 아까보다 더 빠르게 뛰고 또 뛰었다.
물론 약간의 시간 텀을 두기 위해 담장을 삥 돌아가지 않고 개구멍으로 간다든지 하면서 최대한 따돌렸다.
“어디 있어…… 어디 있어…… 제발 나타나…….”
그와 동시에 숲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