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그러니 걱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무리 강한 생존력을 지녔고, 도망을 잘 친다 해도, 아이는 아이다.
매일매일 포식자에게 잡아먹힐까 봐 두려워하는 초식동물처럼 그렇게 살게 만들고 싶진 않다.
‘내가 보호할 거야.’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난 라리의 손을 잡은 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멜로디아 신녀님께서 오신 거예요? 어디요?”
“저기 마차가 있단다.”
“나가 볼래요.”
아닌 게 아니라 보육원 앞에 마차 한 대가 와 있긴 하다. 아마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인지 하얀 갑옷을 입은 남자들까지 떡하니 서 있다.
내가 창가로 호다닥 뛰어가서 마차를 보고 있자, 원장은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먹을 것을 들이밀었다.
“이거 안 먹고 갈 거야? 하나라도 먹지.”
하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샌드위치를 건네는 보육원장을 보며 라리는 더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싫어. 안 먹어.”
“그, 그렇다면 별수 없고. 그럼 어서 타고 가야지. 착한 아이지.”
라리가 본인 입으로 직접 음식을 먹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나서야 보육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 걸었다.
“언니야. 그럼 라리즈, 가야 하는 거야?”
“그런 건가 봐.”
“싫은데…….”
어차피 아이들이 반항해 봤자 소용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반항하면 보육원장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아무리 자기가 이곳의 원장이고 모두를 통솔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소문이다.
거기에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겠지.
꾸밈없이 모든 걸 다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말들은 어른들이 막을래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도리어 ‘이 말은 하면 안 돼.’라고 하면 그 부분까지 다 말하는 게 바로 아이들이니까.
그래서 보육원장은 일부러 신전의 마차까지 준비한 거겠지.
결국 우리는 원장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그 방을 나와 마차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우리는 새하얀 마차 앞에 당도했다. 신전에서 마차가 왔다는 소문을 들어서인지 보육교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까지 마차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걸 보며 원장은 우리를 다시 한번 재촉했다. 빨리 보내려는 것처럼.
“자. 어서 타렴. 아이샤. 너도 가고 싶다면 가도 돼.”
“저도요?”
“그래. 너희는 같이 다니고 싶어 했잖니?”
내 말에 라리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언제나 내 말을 잘 듣던 라리였지만, 이 이상은 갈 수 없다는 걸 보여 주는 듯했다.
물론 나도 저 마차에 탈 생각 따윈 처음부터 없었다.
‘원장은 이 마차를 가져옴으로써 나나 라리즈를 단번에 보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둘이 없어진 이유로 신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등의 핑계를 만들려 한 듯싶지만. 난 그 반대로 이용해 주겠어.’
모두 앞에서 우리를 이상한 곳으로 보내려 했던 걸로,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도 교사들 사이에서도 원장이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그리 몰아야겠다.
“그런데 원장님.”
“그래.”
난 마차를 빤히 바라보다가 마차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에는 신전 마차에 맨날 있는 문양이 없는데요?”
“어?”
“멜로디아 신녀님이 타고 온 마차에는 언제나 문양이 있었잖아요. 거기에 성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도 조금 이상해요. 그 갑옷은 언제나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색이었는데. 아! 찾아보니까 이상한 것투성이예요. 언제나 신전 마차는 새하얀 말이 끌었는데, 지금은 갈색 말이네요.”
꼬치꼬치 이야기하는 날 보며 원장은 허탈하게 웃었다.
“무슨 소리니. 뭐가 다르단 건지 난 모르겠구나. 아이샤. 여기서 바쁜 분들 괴롭히지 말고 어서 타.”
“아, 안 탈래요. 수상해요. 라리즈. 이 마차 이상해. 타지 마.”
그 말에 신전 마차라고 달려왔던 아이들과 교사들이 의아해했다.
“무, 무슨 말이니. 신전 마차가 맞는걸.”
“신녀님도 안 계신걸요.”
“바빠서 못 오신 거야. 언제나 오실 순 없잖아. 문양은 나도 모르겠고, 갑옷은 갑자기 색이 바뀌었을 수도 있잖니. 거기에 말도…… 말들이 아파서 바뀌었나 보지.”
“그런데 진짜 이상하긴 해요. 저번에 기사님이 말하기를, 신전 소속 성기사들은 매일 아침 정갈한 몸으로 신을 뵙는다는 생각에 갑옷을 정비한다 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의 갑옷은 안 닦은 걸로 보여요.”
원장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어느새 달려와서는 내 말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이거 가짜인가 봐.”
“마차가 조잡스러워.”
“맞아, 맞아. 게다가 기사들도 이상해. 처음 봐.”
심지어 열린 문 사이로 순식간에 들어갔던 아이는 코까지 막아 가며 급히 내렸다.
“안에서 이상한 냄새. 으.”
이럴 때는 보육원 문제아들이 참 반갑다. 보육원에서 어떤 일이 생기든 제일 먼저 나타나는 문제아들은 이번에도 나타나서는 먼저 마차 안으로 고개를 쓱 들이밀었다.
역시나 원장은 버럭 짜증을 내며 몰려든 아이들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 너네 안 물러나?!”
원장의 한마디에 급하게 아이들은 도망갔지만, 그리 멀리 가진 않았다.
“봐봐요. 다 이상하다 하잖아요. 그렇죠. 선생님.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이상하시죠?”
언제나 신전에서 마차가 오면 대기해야 했던 교사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글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원장님이 설마 가짜를 가져왔겠니?”
회의적인 반응이지만, 전부 다 비슷한 반응을 하긴 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모두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물러서. 내가 맞는다면 맞는 거야.”
“하지만 안 탈래요. 신녀님 오면 탈래요. 멜로디아 신녀님 오시면요.”
“아이샤!”
“저 마차도 이상하고 기사도 이상하고 다 이상해요!”
“어서 타라니까!”
싫다는데도 버럭 소리 지르는 원장을 보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설, 설마 우리 납치하시려는 거예요? 저 이상한 사람들한테 팔아넘기시려는 거예요?!”
결국 원장이 강압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난 버럭버럭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주변을 훑었다. 그제야 엘을 비롯한 몇 명의 보육원 애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지 마세요. 원장님.”
“워, 원장님이 때리시기는 하지만 우리를 팔아넘기는 분은 아니셨잖아요.”
“맞아요.”
“너, 너희들 정말……!”
그동안 보육원에서 약한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준 보람이 있다.
원래라면 원장 말에 절대 나서지 않을 아이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내가 소리 지른 건 보육교사들을 자극하기 위함이었지만, 다른 소득이 있었다. 그리고 돈 때문에 보육원에서 일하고, 원장에게 맨날 나쁜 소리를 듣는 교사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원장님. 저희가 봐도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저들은 대부분 착한 사람들이었다. 원장에게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나가지 못하는 건, 보육원 아이들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나가면 지금보다 취급이 더 나빠질 걸 아니까.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
“아뇨. 아무래도 아이들이 보는 눈도 있고, 신전에 멜로디아 신녀님께 직접 오시라 말씀드리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
“맞아요. 멜로디아 신녀님이 오시면 갈게요! 하지만 이대로 끌고 가시면 시장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될 거예요. 제가 다 소문내 놨으니.”
그러고 나서야 보육원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짜증 나는구나. 아이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요.”
“네 맘대로 하거라. 하지만 오늘 가지 않으면 결국 후회하게 될 거야.”
“네! 전 이곳이 좋아요. 그러니 그냥 후회할래요!”
원장이 얼굴이 굳어지든 말든 난 라리의 손을 꼭 잡고 물러섰다.
“그럼 우린 가자!”
“응!”
“얘들아, 고마워. 선생님들도 감사합니다!”
그새 마음이 바뀌어서 억지로 마차에 집어넣을까 봐 난 인사를 하고선 빠르게 뛰었다. 우리가 물러서고 나자 아이들도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나며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헤헤. 아냐. 맨날 아이샤가 우리 도와준걸.”
“나쁜 애들한테서 지켜 준 적도 많잖아.”
“맞아, 맞아. 우리 할 일도 대신해 주고.”
착하고 순진한 웃음을 보며 난 다시 한번 다짐했다. 라리를 지키고 이 보육원의 아이들도 꼭 지켜 낼 거라고.
난 그런 아이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혹시 몰라 숨겨 놓은 간식들과 입을 만한 옷 등을 커다란 담요에 돌돌 쌌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카디건 중에 제일 두꺼운 걸 꺼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자신의 손을 놓고 짐을 챙기자 라리가 놀란 듯 내 곁으로 다가왔다.
“뭐 해?”
“라리.”
“응.”
“당분간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아마 한동안은 계속해서 너를 이곳에서 내보내려 하겠지.”
뭐가 더 있어야 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인형을 두 개 사 올 걸 그랬다. 라리가 착하게도 제 오빠한테 인형을 보낼 줄 알았더라면.
“그래서 지금 뭐 하는 거야?”
“담요랑 먹을 거 챙겨서 여기서 나가자.”
“어디 가게.”
“창고라도 가 있게. 그곳이 이곳보다 안전할 거야.”
이번에야 그냥 넘어갔지만, 우리가 잠든 사이 방에라도 찾아온다면 큰일 날 거다.
“그래서 나보고 거기 가 있으라고?”
“응. 혼자라서 무섭겠지만…… 내가 밤에 매일 거기로 갈게. 그러니까 당분간만이라도…….”
가슴이 두근두근 떨린다.
혼자 보낼 생각에 미안함과 걱정이 앞선다.
“뭘 더 싸야 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은신처나 만들 걸 그랬네. 이거 말고 또…….”
그때, 바닥에 주저앉아 담요에 이것저것 싸는 내 머리 위에 라리의 작은 손이 얹어졌다.
“멍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