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보육원장은 나와 로헨을 놀란 듯 바라봤다.
그리고 주변을 훑으러 달려갔던 기사들이 우리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난 그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로헨을 내 앞에 세웠다.
“살펴볼 필요도 없이 내 자식이다. 아직 힘이 개방되지 않았음에도 나와 같은 힘이 느껴지는군.”
“네. 저희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전하.”
제일 선두에 서 있던 기사가 로헨을 보며 고개를 조아렸다.
“……학대받고 있는 게 아닌가 했는데, 별문제는 없었나 보군.”
“…….”
말이 없는 아이를 보며 대공은 아이 앞에 섰다. 앞에 선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진다.
“말을 하지 못하나.”
“아니. 말해.”
“다행이군.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있을 줄이야.”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부자의 만남치고는 조금의 애정도 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애정을 어떻게서든 표현하고 싶지만, 그걸 표현할 줄 모르는 대공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느낌을 풍기는 로헨이라는 느낌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뱉던 대공은 살짝 몸을 숙여 로헨에게 손을 내밀었다.
“있으니 되었다. 그럼 가지. 내가 네 부친이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
하지만 로헨은 그를 바라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주었다.
“왜. 그것도 데려가야 하는 건가.”
“……아니. 나 혼자 갈 거야.”
혼자 남은 라리를 생각하는 듯 로헨은 한참 끝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 그럼 가도록 하지.”
오늘따라 로헨은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내 손을 꼭 잡은 채 대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내미는 대공의 손은 잡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난 날 잡고 있는 손을 놓고 로헨을 바라봤다.
“걱정 마. 널 잘 보살펴 줄 거야.”
“그, 그럴까?”
“응.”
먼저 대공가로 떠난 로헨은 어느 누구보다 대공의 관심을 받으며 잘 자란다.
그러니 걱정할 게 없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대공의 손을 잡자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내려다봤다.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아이를 보는 그를 향해 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로헨이에요, 그 아이는.”
“……내게 말을 건 건가.”
고개를 들어 올려 대공에게 로헨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보육원장이 급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이샤! 감히 네가 쳐다볼 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래도 말해야죠. 로헨. 로헨이에요.”
“로헨? 우연의 일치치고는 짜증 날 정도군.”
짜증 난다는 말을 하지만, 그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아이들의 모친이 대공에게 이야기했던 이름이 바로 로헨과 라리즈였다.
그와 어떤 관계인지, 또 이름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은 여인은 하룻밤의 관계는 아니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아이들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너희들의 엄마가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꼭 지어 주고 싶어하던 이름이 로헨과 라리라고.”
그 때문에 난 말없이 대공에게로 올려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 좋아. 로헨. 그럼 이제 가지. 여기 더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어. 어.”
이제야 떠난다는 걸 실감한 듯 멍해진 로헨을 향해 환히 웃었다.
“로헨. 걱정 말고. 잘 챙겨 먹고 알았지?”
가면 안 되냐고, 꼭 가야 하는 거냐고. 그런 말을 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하룻밤 만에 마음의 정리가 끝난 듯 로헨은 고개를 느리게 꾸벅거리며 나와 눈을 맞췄다.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오물거리던 로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으, 응! 갈게. 지금은 가지만…… 나 잊지 말아야 해! 금방 다시 올게!”
“응. 잘 가.”
결국 로헨은 대공의 손을 잡고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아이처럼 손을 흔드는 로헨을 보며 난 눈물을 닦아 냈다.
뿌듯하다. 소설 속 모습과 달리 로헨이 인간다운 모습으로 이곳을 떠나는 걸 보는 게.
그 와중에 쌍둥이는 쌍둥인가 보다. 소중하다는 듯 양 인형을 품에 안고 손을 흔드는 모습은 라리와 판박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로헨이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마차 문은 닫혔고, 더 이야기할 새도 없이 마차는 이곳을 떠났다.
‘원래도 대공은 이곳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 그가 화가 났던 건 먼저 떠났던 로헨에게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들은 후였어.’
그러니 우선은 그냥 떠나는 게 맞다.
그 때문에 난 한참 동안 마차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물론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듯 보육원장은 날 노려봤지만,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그녀는 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역시나 방에 도착하자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라리가 보였다.
난 방에 도착해 라리를 뒤에서 껴안아 주었다.
“라리. 너무 쓸쓸해하지 마. 언니야가 있잖아.”
“…….”
“라리?”
방에만 있던 라리즈는 내 말에도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 라리즈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어.”
“귀여운 라리.”
시무룩하겠지. 평생 함께했던 사이가 헤어지니까.
하지만 둘은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너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게다가 아무 힘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소설을 너무 비틀어 버리면, 그 후에 오는 일에 대한 예상도 불가할 테니까.
추후에 먼저 간 로헨은 자신들을 학대한 보육원보다 대공가가 더 있을 만한 곳이라 생각할 테고, 라리를 데리러 올 때까지만 내가 보호하면 될 일이다.
‘소설 속에서도 했으니까 분명…… 이번에도 할 수 있어.’
내 목표는 아이들을 거창하게 바꾸는 게 아니라, 쌍둥이의 어린 시절에 조금은 좋은 기억을 심어 주는 것과 보육원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라리는 그날 꽤 충격을 받은 아이처럼 한참 동안 창문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여나 마차가 돌아올까 걱정하는 아이처럼.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난 창가에 아예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앉은 라리를 불렀다.
“라리.”
“……어.”
그러고선 어서 오라는 듯 내 침대를 손으로 툭툭 쳤다.
“오늘도 언니랑 같이 자자.”
평소라면 그 말에 기쁜 듯 토끼처럼 달려왔을 라리는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 가, 같이 자준다고?”
“응!”
“됐어.”
오늘따라 유난히 부끄러워하며 반대편 침대에 누워 버리고 말았다.
난 그런 라리즈의 옆에 베개를 가지고 가서 누웠다.
“언니는 살짝 후회 중이야.”
“왜?”
“로헨이 싫다 하더라도 로헨이랑 라리랑 셋이서 이렇게 자지 못한 걸 후회 중이야.”
“그런 걸 왜 후회해.”
퉁명스럽게 말하는 라리의 목소리에 입술만 살짝 움찔거렸다.
“로헨이 보기에는 그렇게 단단해 보여도 여리디여린 아이니까. 억지로라도 껴안고 잘걸.”
잘해 준 것보다 못 해준 것투성이다.
날 잘 따르는 라리에게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로헨에게는 아쉬운 것만 많다.
매번 미운 일곱 살처럼 내 말에 사사건건 반대해 신경을 못 쓴 것 같으니.
“로헨이 여려?”
“응. 여리고말고. 로헨은 라리를 돌봐 주기 위해 오빠로서 그런 것뿐이야.”
“……그런 거구나.”
평소라면 품에 폭 안겼을 라리즈는 평소와 달리 살짝 거리를 두고선 입술만 들썩였다.
“응. 대신에…… 로헨에게 못 해준 것만큼 라리에게 더 잘해 줄게.”
그때. 평소보다 더 촉촉이 젖은 눈으로 라리가 날 바라봤다.
푸른 눈동자는 마치 호수에 비친 달처럼 아련했다.
“있잖아. 로헨이 정말 돌아올까?”
“오고말고.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쌍둥이인걸.”
“그렇겠지.”
“그러니까 어서 자자. 오늘은 푹 자야지. 일찍 일어나서 준비까지 했잖아.”
“……응.”
“우리 내일은 뭐 하고 놀까?”
평소라면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이야기했을 라리는 어떤 말을 해도 신나하지 않았다.
“방에서 놀래.”
“그럴래?”
“로헨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내가 다른 곳에 있다가 못 찾으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방에 있어야지. 저 멀리서 마차가 올지 모르니까.”
“그러자! 그러면!”
아주 먼 훗날 온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다. 혹여나 더 실망할까 봐. 아무리 내가 있다 해도, 가족이랑 떨어지게 된 거니까.
‘미안해.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지 못해서.’
언젠가, 언젠가 라리가 많이 크고 나면 이야기할 수 있겠지. 과거의 이야기처럼, 그땐 그랬었다고.
***
로헨이 떠난 지 3일이 지나고 나서야 라리는 포기한 듯했다. 그 전까지는 돌아올지 모른다며 창가에 앉아서는 먼 곳을 바라보곤 했는데, 3일이 지난 후부터는 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헨이 떠난 날로부터 9일이 지난 뒤, 난 언제나처럼 보육원 애들과 조금 거리를 둔 채 아름드리나무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책 읽어 줄까?”
예전처럼 다시 밝아진 라리는 활짝 웃었다.
“아니! 같이 시장 구경하러 가자. 시장 가보고 싶어.”
“어? 그래도 되긴 하지만…… 라리는 밖으로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했잖아.”
“궁금해. 로, 로헨은 이제부터 밖에 살게 될 텐데…… 나도 밖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하긴. 자신과 사는 세상이 달라졌을 테니까. 뒤늦게 이렇게 해서라도 라리가 떠난 로헨과 함께하고 싶다는 걸 알아차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게다가 들어 보니까 오늘 축제가 열리는 날이래. 우리도 축제 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