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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15)화 (15/99)

-15화-

적어도 학대받고 나쁜 기억만 남은 게 아닐 테니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꼭 그저 누가 누군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꼭 닮은 얼굴로 서로를 봤다 나를 봤다 할 뿐. 머리카락 길이까지 똑같아서, 헷갈릴 지경이다.

“얘들아…….”

그리고 대답 없는 두 사람을 보며 난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었다.

“로헨. 라리. 너희들에게 있어 이곳은 나쁜 곳이기만 했어?”

그 말에 두 아이가 동시에 입을 벌렸다.

“아니.”

“아니.”

순간 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아이의 목소리는 화음을 이뤘다.

심지어 오늘따라 옷도 똑같이 입고 있어서 구분이 안 간다.

“그럼 됐어. 앞으로 그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 줘. 적어도 세상 모두가 너네를 싫어한 게 아니라고.”

“…….”

“사실은 내가 너희들을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나쁜 기억을 안겨 주긴 했지만…… 적어도 그렇게 기억해 주라.”

하지만 두 아이 다 아무 말도 없었다. 난 그런 애들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서 뭐라도 가져올게. 고구마는…… 못 구워 먹게 되었지만, 뒤져 보면 뭐라도 먹을 게 있을 거야. 초콜릿이라도 가져올게.”

더 빨리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봄에는 같이 꽃놀이도 보러 다니고, 여름에는 물놀이도 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곳에서 고구마도 쪄 먹었을 텐데.

‘미안해.’

그냥, 미안했다.

고작 이 정도 좋은 기억 안겨 주고선 미래에 너희들은 나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게.

문밖으로 나가면서도 난, 그런 미안함에 가슴이 아렸다.

내가 나간 후 자신들끼리 무언갈 이야기하는 듯 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음은 잘되는 듯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제대로 된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주방으로 뛰어가 뭐라도 가져오려 했지만, 나 또한 지금 상황이 슬펐기에 난 그 문에 기대어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아주아주 나중에……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이야기해야지. 그냥…… 너희 편할 대로 살라고. 악역이든 흑막이든 상관없이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너네들은 그리 나쁜 애들이 아니라고. 대신에 죽지 않게, 소설 속 여주인공하고는 어울리지 말라고. 그렇게만 해야지. 그게 내가 아이들을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적어도 라리랑은 5년이나 더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걸로 위안 삼자.’

가만히 있으면 더 눈물이 날 거 같아서, 난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서 주방으로 뛰어갔다.

***

그날 밤, 로헨에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자자고 했음에도 로헨은 적극적으로 날 거부했다.

마지막이라도 함께 자고 싶었는데, 미쳤냐는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난 언제나처럼 라리랑 한 침대에서 잤다.

유난히도 라리는 내 품에서 보챘고, 난 그런 라리를 다독이다가 선잠에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로헨을 떠나 보내는 그날이 찾아왔다.

비몽사몽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두 아이들이 씻고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준비 다 한 거야?”

하지만 어느 때보다 시무룩해 보이는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걱정 마. 너희들은 곧 만나게 될 거야.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너희들은 쌍둥이인걸. 그러면 라리. 여기 있어? 언니야 금방 올게.”

난 인형을 안고 있는 라리를 바라봤다.

“나 라리 아냐. 로헨이야.”

평소보다 조금은 유해진 목소리로 로헨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 그래? 인형 안고 있길래 라리인 줄 알았어.”

“어…… 라리가 인형 줬어. 이거 가져가라고.”

“아아, 그럴 만하지. 라리 착하네.”

난 옆에서 말없이 서 있는 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에 비해 오늘의 라리는 조금 뚱하긴 하지만, 로헨과 떨어질 생각에 저러는 거라 생각하곤 아이를 품에 한 번 안았다 놨다.

“걱정 마. 언니야가 로헨 데려다주고 올게.”

“응.”

그제야 라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로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소설에 묘사되기로는 아침이 오자마자 대공이 찾아왔다고 쓰여 있었다. 정확히 몇 시라기보단, 쌍둥이들이 그날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곳에서 ‘해가 뜨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가 어릴 적부터 갇혀 있던 창고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숲 여기저기를 살피는 듯 그들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라면서.

언제나 선두에 서서 동생을 보호하던 로헨은 잡혀가듯 그들에게 끌려갔고, 라리즈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기사들은 창고에 숨겨 두었던 라리를 혼자 두고선 떠났다고.

‘그러니 곧 올 거야.’

난 어쩐 일로 내 손을 꼭 잡은 로헨의 손을 보드랍게 감쌌다.

“로헨.”

“응!”

“걱정 마. 다 괜찮아질 거야.”

“괜찮겠지?”

“응. 그리고 결국 찾아오게 될 거야. 그때까지 내가 라리를 잘 데리고 있을게. 너는 그곳에 가서 잘 적응해야 해?”

아이의 작은 얼굴이 크게 끄덕여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기억은 나쁘지 않았다 해줘. 너희들을 괴롭힌 보육원장에 대한 거, 우리에게 가끔 저녁 야식도 가져다주고 옷도 가져다준 친구들에 대한 거. 보육원장 몰래 신경 써준 보육교사들에 대한 거…… 복수는 내가 다 할 테니까.”

“응!”

평소의 로헨이라면 그딴 건 신경 안 쓴다고 할 테지만, 떠날 때가 되니 로헨도 보통의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보육원에서 제일 높은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동산에 올랐다.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소설에 적혀 있는 것처럼 저 멀리서부터 마차 한 대가 보육원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보육원 근처에는 작은 마을도 있지만, 멀리서 보일 만큼 큰 마차와 기사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이제 오나 보다.”

“저거야?”

“응. 로헨. 내 말 맞지? 믿을 만하지?”

그 말에 아이는 양 인형을 품에 꼭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걱정할 거 없어. 내 말대로 모든 게 다 변할 테니까. 거기 가서 맘껏 누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옷도 입고. 알았지? 찾아오려거든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찾아와.”

그게 아마 5년이겠지만.

어찌 보면 길고, 어찌 보면 짧은 5년이란 세월. 그 안에서 난 어떻게서든 남은 라리를 지킬 테니까 넌 누구보다 멋진 대공가의 공자가 되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야 해.

“응. 걱정 마.”

웃는 아이를 보며, 난 떨리는 마음을 애써 잠재웠다.

마차는 쉼 없이 달려 우리가 있는 보육원까지 단번에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마차의 등장에 보육원장과 선생님들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침 시간도 아닌지라 아이들은 아직 정신도 못 차리는 듯했다.

우린 한 발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별을 담아 놓은 듯 반짝이는 은색의 마차에는 검을 물고 있는 푸른 눈의 늑대가 그려져 있었다.

그 마차는 이내 보육원에 멈춰 섰다. 기다릴 새도 없는지, 안에서부터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이곳에 내 자식이 있다 들었는데.”

용건이 급한 듯 말하자마자 말을 내뱉은 남자의 외모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은색 실을 한 땀, 한 땀 땋아 만든 듯한 찬란한 은색 머리칼과 감정의 고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푸른 눈동자.

신이 조각했다는 말이 꼭 어울릴 만큼 찬란한 외모를 지닌 남자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한단 말이 나올 정도로.

‘대공. 소설 속 두 흑막들의 부친이지. 표지에는 얼굴이 나오지 않아 저렇게 잘생긴 줄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머리도 제대로 묶지 못한 채 나온 보육원장이 급히 눈을 비볐다.

“네, 네?”

“고개를 조아리도록. 카시미르 블레어 대공 전하시다.”

“대, 대공 전…… 전하……! 이, 이곳엔 어쩐 일로…….”

보육원장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여 가며 외쳤다.

그 모습에 보육교사들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소란에 일어난 아이들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었지만, 평소와 달리 무거운 분위기에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 내 자식이 있다 들었다. 두 번 말하게 할 건가.”

“아, 아닙니다. 하, 하지만 대공 전하. 이곳에 있는 건 부모가 없는 아이들뿐입니다. 대공 전하의 귀한 자녀분이 있을 리가…….”

이때까지만 해도 보육원장은 자신이 숨겨 놨던 쌍둥이들이 대공의 아이인 줄 모른다.

알았으면 그걸 가지고 대공과 딜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대공비 또한 자신이 대공비임을 밝히지 않고, 은밀히 몇 번 찾아왔을 뿐이다. 그러니 보육원장의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간다.

“찾도록.”

“네. 전하.”

우물거리는 원장의 모습에 대공은 표정 변화 없이 주변을 살폈다.

당장이라도 보육원을 뒤질 듯한 그 모습에 난 로헨의 손을 잡고 그들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감정 변화 없이 주변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한곳에 멈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은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누가 봐도 자신과 꼭 닮은 외모를 지닌 아이가 떡하니 서 있었으니까.

“……찾은 것 같군.”

기사들을 향해 감정 없이 말을 툭 내뱉던 대공은 로헨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렇게 나와 로헨은 대공 앞에 섰다.

방금 전까지 어찌할 바를 모르던 보육원장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떡하니 벌렸다.

“네. 네? 이, 이 아이가 대공 전하의 아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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