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13)화 (13/99)

-13화-

‘이걸 어떻게 건드리지?’ 하는 감정이 날것 그대로 내게 느껴진다.

나 때문에 조사까지 받았으니 그녀의 눈동자에 분노가 차 있는 건 당연했다.

‘나 때문에 그동안 귀족 나리들 비위 맞춰 준 게 다 날아갔겠지.’

그리고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보던 보육원장은 주변을 한번 살폈다. 하필 고구마를 심어 놓은 밭이 보육원 뒤쪽인 데다가, 사람들이 잘 안 오는 외진 곳이었기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나쁜 짓 하기 딱 좋게.’

역시나 보육원장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졌다.

“잘못하기는. 아이샤. 나는 예전부터 네가 참 영특해서 마음에 들었단다.”

“제가 좀 똑똑하긴 하죠.”

“그런데 이번 일은 좀 과했어.”

그녀는 커다란 주먹을 꽉 쥐더니 천천히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무엇이요?”

“저런 것들을 발견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얘기했어야지. 왜 신녀에게 먼저 이야기한 거지? 저것들한테 무슨 이야기라도 들은 거야? 응?”

“자랑하고 싶었어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뱉어 냈다.

“……자랑?”

단호하게 뱉어 낸 그 말에 원장도 퍽 당황하는 듯했다.

“네!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었거든요! 제가! 친구들을 발견했다고요! 신녀님이 오셨을 때 말해야 더 많이 칭찬해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천진난만한 얼굴과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한발 늦게 알겠다는 듯 그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자랑…… 그래. 좋지. 하지만 아이샤. 저 아이들은 내가 데려가야겠구나.”

“안 돼요.”

“……뭐? 내 말에 반발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네! 신녀님이 잘 보살펴 주라 한걸요. 그러니 데려가실 수 없으세요! 그건 약속이라서 지켜야 해요! 약속은 소중한 거니까요!”

“웃기는 소리.”

콧방귀를 뀌어 보인 그녀는 조금의 주저 없이 나를 지나치려 했다. 심지어 양 인형을 품에 안고선 오들오들 떨고 있는 라리에게로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라리즈의 작은 얼굴을 짓이겨 버릴 듯 손을 벌린다.

“고구마 드세요!”

난 호다닥 뛰어가 그 손아귀 안에 토실토실한 고구마 하나를 넣어 줬다.

“……뭐, 뭐 하는 짓이지?”

“뭐 하는 짓이긴요. 고구마 드시라고요. 고구마가 잘 커서, 꼭 원장님 다리처럼 토실토실해요.”

“아이샤!”

“그럼 저흰 가볼게요!”

“야!”

“절대 얘들 못 데려가요! 절대!”

말 한마디까지 덧붙였다.

며칠 내내 우리를 멀리서 지켜만 보던 보육원장이 지금 여기서 이런다는 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날 이후 보육원 곳곳에는 기사들이 배치되었다. 파견이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보육원장이라 한들 성기사들 앞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못할 거니까.

그게 멜리디아 신녀가 자신의 상황이 난처해져 가면서도 성기사를 보육원으로 파견하는 걸 포기하지 않은 이유겠지. 그게 아마 보육원장을 자유롭게 풀어 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겠지.

“아이샤! 이리 안 와!”

난 두 아이들의 손을 잡고선 빠르게 뛰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지킬 거다. 절대 데려가지 못하게. 건들지도 못하게.

다행히 두 아이들 다 나를 따라 같이 뛰었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달리 원장은 빠르지 않았고, 그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편하게 방에 당도했다.

하지만 그날 고구마를 구워 먹겠다는 내 야심 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늦은 밤이 되었음에도 우리는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보육원장이 그 더러운 속내를 드러냈으니, 언제 어디서 우리를 노릴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외진 곳일수록 더욱더 위험해진다.

그렇다 해서 고구마를 안에서 구워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나무로 된 방을 모두 태워 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언니야…… 고구마는…….”

기대하는 듯한 라리즈에게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힘들 거 같아. 대신에 다음에 구워 먹자!”

“응. 라리는 언니야가 하는 거 다 조아!”

“……좋기는. 이상하게 생긴 거 구워 먹어 봤자 뭐가 맛있겠어.”

한 방에 네 명까지 수용할 수 있게 놓인 이층침대 중에 맞은편 이층침대의 2층에 누운 로헨은 여전히 내 모든 말에 반박했다.

“로헨은 아직 세상을 덜 살아 봐서 그래.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그중에서 고구마는…… 참 맛있어. 달달하니…….”

“우리보다 고작 한 살 많으면서 남들이 보면 우리보다 몇십 년은 더 산 줄 알겠네.”

쿡 하고 마음 어딘가가 찔렸다.

눈치 빠른 놈. 난 혹시나 진실을 알아차릴까 봐 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한 살이 얼마나 많은 시간인데.”

“마자. 언니야는 우리보다 한 살이나 많아서 엄청 똑똑한걸.”

그때.

로헨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여기 와서 자.”

그 말에 자신의 침대 대신 내 침대, 그것도 내 옆에 콕 붙어 있던 라리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시러! 언니야랑 잘 거야.”

“……네가 애냐?”

“응! 라리는 애야! 오빠도 애기잖아.”

“아니거든. 나는 애가 아냐.”

그걸 보며 라리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내 품을 더 파고들었다.

“라리는 애기 할래. 언니 품에 이렇게 안겨 있을래.”

오히려 상처가 심했던 사람일수록, 작은 친절에 쉽게 맘을 열곤 한다. 지금의 라리처럼.

“나는 언니야가 참 좋아……. 언니야는…… 맨날 책도 읽어 주구, 나쁜 사람들한테도 우릴 보호해 조. 언닌 착해!”

“나는 그리 착하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내 이런 행동들이 너희들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길 바라. 적어도 세상에 모두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리 믿었으면 좋겠어.

“웃기지 마. 인간은 다 나빠.”

내 말에 반박하려는 듯 로헨이 굳은 목소리를 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에 난 아이처럼 온전히 날 믿고 있는 라리를 한번 꼭 안았다.

“맞아. 사실은 라리. 로헨의 말처럼 인간은 다 나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믿지 마?”

“하지만…… 오빠가 언니야도 믿을 수 없다 했는데, 언니야는 이렇게 좋은 사람인걸!”

고개를 삐죽 들어 올린 아이의 눈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그렇긴 하지. 그럼 라리야. 언니랑 로헨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만 믿는 거야. 알았지?”

“웅!”

라리는 품에 안고 있던 양 인형을 더 꽉 끌어안았다.

로헨이 라리에게 주었던, 담요로 만든 허름한 망토를 뒤집어쓴 양 인형이다.

“그럼 어서 자자!”

“언니야. 책 읽어 줘.”

“언니가 기억하고 있는 책 읽어 줄게.”

“웅!”

가만히 생각하던 난 라리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옛날 옛적에 가족들에게 미움을 받던 신데렐라라는 불쌍한 애가 있었어. 새엄마랑 언니가 엄청 구박하고, 학대를 받던 아이지.”

“세상에! 그래서! 왕자님을 만난 거야?”

“아니. 세상에 왕자님은 없어. 세상은 혼자 살아남는 거야! 그래서 신데렐라는 자기 힘으로 복수를 해버렸지.”

얼마 전 보육원의 다른 아이들이 하는 동화 속 왕자님 이야기를 멀리서 들었던 라리는 어느 때보다 기대하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에 왕자님은 없어.’

“우움…… 언니야. 그럼 멋진 왕자님 없어……?”

“응. 없어. 왕자든 황태자든 황자든. 권력을 가진 남자들은 믿을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니 절대 믿지 마?”

그제야 라리는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어서 자자. 라리.”

“웅.”

“……그렇게 좁은 침대에서 둘이 자는 거 불편하잖아.”

하지만 우리가 막 자려고 하던 그때 로헨이 여전히 불편한 목소리를 냈다.

“언니야! 불편해?”

“아니. 절대 안 불편해.”

“……안 불편하면 그렇게 있든지.”

우리를 바라보던 로헨은 퉁명스러운 한마디를 내뱉고선 몸을 돌렸다.

‘샘내는 걸까. 다음에는 로헨을 안고 자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난 기분 좋게 웃으며 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피곤했던 건지 라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별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우리를 덮쳤다.

예상외로 보육원장은 우리에게 금방 신경을 껐다. 보육원을 지키던 성기사들이 임무가 끝난 듯 하나둘 돌아가고, 몇 명 남지 않았을 때까지도 별다른 일이 없어서였는지, 그녀는 꽤나 안심하는 듯했다.

더 이상 보육원장은 나와 쌍둥이들을 억지로 떼어 놓으려 하든가 혹은 쌍둥이들만 데려가려 한다든가 그러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의 눈에 아이들이 보이니 더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보통의 아이들 같은 시간을 보내던 그때였다.

“열흘 뒤, 축제가 열린대!”

그 한마디에 난 가슴 어딘가가 아파 왔다. 요새 쌍둥이들과 보내느라 그 시기가 온 줄도 몰랐다.

유난히 들뜬 보육원 아이들이 아녔다면, 지나쳐 버렸을 거다. 우리가 곧 헤어진다는 걸.

‘쌍둥이들의 부친이 쌍둥이들을 데리러 오는 그 첫날.’

축제가 시작되기 9일 전, 그날이 소설 속 두 아이들이 본래의 가족들을 찾아가는 시기다.

“언니야. 축제가 뭐야?”

원장이 관심이 떨어졌기에, 이젠 고구마를 구워 먹으려고 장작감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나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놓칠 뻔했다.

“……축제…….”

“언니? 왜 구래?”

“어…… 아, 아니야, 아무것도. 우리 우선 들어가자.”

“응? 오늘은 고구마 구워 먹는다며!”

“그건…… 나중에 먹도록 하고. 두 사람한테 할 말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