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12)화 (12/99)

-12화-

“아.”

“그런데 그런 건 못 구하니까…… 그래서 담요를 인형이라 생각하라 해서, 그래서 안고 다녔던 거야. 그런데 언니야 선물도 좋은데…… 오빠가 힘들게 만들어 준 것도…… 헤헤. 이게 이래 보여도 처음에는 오빠가 줄로 똘똘 묶어서 인형 같긴 했다?”

이것도 저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듯, 슬픈 얼굴을 하는 라리즈를 보던 난 손뼉을 딱 치며 웃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 담요로 양의 옷을 만들어 주는 거야. 그러면 둘 다 가지게 되는 거잖아.”

“와…… 언니야. 천재야! 나 태어나서 천재 처음 봤어!”

라리즈는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내게 안겼다.

“라리의 언니야는 천재다!”

“천재라니…….”

부끄러움에 괜스레 머리만 긁적이던 그때, 로헨이 문을 벌컥 열고 안에서 나왔다. 수건으로 야무지게 제 중요 부위를 가린 로헨은 당당하게 내 앞에 섰다.

“어때. 나 다 씻었어. 나도 깨끗해졌어.”

칭찬해 달라는 아이처럼 로헨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로헨. 대단한데?”

“뭐, 이쯤이야.”

맘에 드는 칭찬이었던 건지, 어깨를 들썩거리던 로헨은 입을 비죽였다.

“이제 뭐 해야 해?”

“옷 입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곧 저녁 시간이야.”

“원한다면 그리해 주지.”

마치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겠노라 하는 것처럼 로헨은 나를 가만 내려다봤다. 난 그런 로헨을 보며 옷을 내밀었다.

“짜잔. 너희를 위해 준비한 옷!”

“똑같아.”

“응. 오빠. 똑같아.”

“……왜.”

“왜일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런 거 좋아하는 줄 아나 봐.”

똑같이 생긴 애 둘이서 내 옷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말 안 하니 어쩜 이리 똑같이 생긴 건지. 순간 굳어 버린 두 사람의 얼굴을 보던 난 움찔하고 말았다.

“그래도 언니야가 저리 좋아하는데 입어 주자.”

“……네가 입고 싶다 해서 입어 주는 거야.”

“응.”

“어. 입자.”

“입자.”

그러더니 주저 없이 내가 마련해 온 옷을 입었다. 짧은 바지 형태의 멜빵을 입고 나니 사랑스러울 정도다.

“생각보다 엄청 귀엽구나.”

이래서 애들은 싫어하는데 엄마들이 똑같이 입히는 거구나. 

사진기만 있었으면 백여 장은 찍었을 정도다.

“헤헤. 언니야가 더 귀여운걸.”

“정말?”

“……귀엽기는. 안 귀여워. 자, 배고파. 밥 어디 있어?”

“응. 내려가야 돼.”

“……다른 사람 마주하는 거 싫은데.”

“맞아…… 오빠랑 거기서 빠져나가서 가끔 시장에 갔었는데, 거기서 막…… 다들 우리들 보면 때렸어.”

라리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그래서 그렇게 경계를 했던 거구나.

‘잠깐……?’

“너희, 갇혀 산 게 아냐?”

“응. 개구멍으로 외출도 했었어.”

“어쩐지 말을 잘한다 했는데….”

“하지만 언니야. 우리한테 그렇게 정성을 준 건 언니야뿐이었다? 그치, 오빠!”

“……어. 뭐. 몰라. 어쨌든 내려가기 싫으니까 밥 가져와.”

못된 놈. 이렇게 날 부려 먹다니.

하지만 저렇게 싫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난 별수 없이 쌍둥이를 방에 둔 채 식당으로 내려갔다.

원래라면 외부로 유출이 안 되지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교사들은 방에서 먹을 수 있게 따로 식판을 준비해 줬다.

물론 보육원의 문제아들이 이번에도 시비를 걸었으나, 난 언제나처럼 애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까불지 마. 나나 우리 애들 건드리면…… 너네 이걸로 안 끝날 줄 알아.”

입술을 비죽거렸다.

아주 몸에 있는 알이란 알은 다 까줄 테니까.

“어, 어쩔 건데……!”

여전히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문제아들의 몸의 중심 어딘가를 바라봤다.

“글쎄. 어떻게 해야 너희들이 입을 다물까.”

그러고선 환하게 웃었다.

“……야. 야. 저거 미친 거라니까. 그만해. 진짜 큰일나.”

“에이씨…… 퉤다, 퉤!”

결국 문제아들은 그렇게 멀어졌고, 난 방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방에 도착해서 식판을 내밀자, 로헨이 기다렸다는 듯 실망한 표정을 했다.

“이게 다야?”

“어. 그래도 오늘은 신전에서 온 날이라 먹을 게 많아. 고기도 있는걸! 거기에 우유도 나왔다니까.”

“그런데 언니야. 왜 식판이 두 개야?”

“어. 내 손이 두 개잖아. 그리고 두 개에 몰아야 더 준단 말이지.”

라리는 작고 동그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언니야는 뭐 먹어?”

“나? 나 안 먹어도 돼. 둘이 먹어.”

“우릴…… 위해서 양보하는 거야?”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어서 먹어. 로헨도.”

우리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로헨은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왜 그래. 내가 좀 멋있어?”

“……이상해. 너 말이야. 왜 우리한테 잘해 줘?”

마치 참고 참았던 질문을 하듯 로헨은 식기조차 들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푸른 바다를 담아 놓은 듯 파란 눈동자에 정적이 흘렀다.

“불쌍해서.”

“어?”

“너무 불쌍해서.”

원해서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원해서 학대받은 것도 아니고.

또 원해서 흑막과 악역이 된 것도 아닌 너희가 지독히도 안쓰러워서.

처음에는 아이들을 살려서 살아남아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겪으면 겪을수록 아이들은 가슴 아플 정도로 불쌍했다.

“……불쌍해서라니.”

“그러니까 내 간섭이 싫고, 내 참견이 싫으면 보통 사람처럼 되도록 해.”

곧 너희의 가족이 찾아올 테니까.

“자. 그럼 어서 식사하도록. 쌍둥이들.”

“언니야, 진짜 안 먹어……?”

“응! 너네한테 양보한 거야.”

그러니까 쑥쑥 잘 자라라. 통통해져야 해.

그러는 사이 참고 참던 쌍둥이들은 식사를 시작했고, 난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

그 후의 일상은 평범하게 흘러갔다.

쌍둥이들의 나빴던 기억을 중화하기 위해 난 매일같이 쌍둥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너네 고구마라고 알아?”

“고구마가 뭐야?”

“그런 건 들어 본 적 없는데.”

“엄청 귀한 거야. 내가 저번에 어디서 고구마를 발견한 거 있지. 그래서 보육원 한쪽에 고구마를 심어 놨지.”

마음 같아선 멋들어지게 사과 농장으로 가 사과를 따주고 싶었으나, 30분 거리를 걸어가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 때문에 난 내 보물 창고에서 고구마를 캤다.

땅에서 튀어나온 괴상망측한 고구마를 보고 로헨은 이마를 찌푸렸다.

“이게 뭐야.”

“구워 먹으면 맛있어. 이따 저녁에 구워 먹자. 싫음 말고.”

아직 어려서 모르네. 고구마를 호호 불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잘 익은 고구마에 김장김치를 꺼내서 떡 얹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츄릅. 입에서 침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한국에서 살던 삶이 그립지는 않다. 이곳에서 버림받았듯이 한국의 나란 인간도 가족들에게 버림받았으니까.

그래서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데 음식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처럼.

“……침 흘렀어.”

급히 닦았는데 그사이 본 건지 로헨이 질린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침 안 흘렸어. 잘못 본 거야.”

“어. 그래. 그런데 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안 될 건 뭐야.”

“보육원장이 하루 종일 찾아다니는 거 같던데.”

“아, 맞네.”

아쉽게도 보육원장을 철저히 조사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는 3일 만에 자유를 찾았다.

얼마나 권력자들의 똥꼬를 닦아 준 건지, 도리어 조사를 명했던 신전의 멜로디아 신녀 쪽이 난처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번에 봤던 성기사가 그리 전해 줬다. 그 후로 다른 성기사들이 와서 보육원을 감시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우리들을 무시했기에 멜로디아 신녀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예상대로 쌍둥이들의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되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다시금 보육원장이 이곳의 왕이 되었단 거지.’

“하아…… 가야겠다.”

로헨의 말이 틀린 건 아녔기에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털었다.

바구니에는 이미 고구마가 수북이 쌓인 후다.

“언니야. 언니야. 그럼 이따가 저거 꾸어 먹어?”

“응!”

“……정말…….”

언제나처럼 로헨은 나를 보며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지만, 난 고구마를 구워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뻐졌다.

난 바구니 가득 쌓인 고구마를 든 채 라리의 손을 꼭 잡았다.

자연스럽게 로헨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는 보육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따 고구마를 어디다 구워 먹을지 신나게 의논하면서.

하지만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다.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보육원장이 떡하니 뒷문에 서 있었다.

“아이샤. 어디 갔다 오니?”

“아. 보육원장님.”

“아침 일은 다 하고 다녀오는 거야?”

“당연하죠!”

아이들의 노동력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보육원장은 예전처럼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나와 쌍둥이들을 바라봤다.

당당하게 나오는 내 태도가 못내 못마땅한 건지 그녀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런데 저 찾으셨어요?”

“그래. 이제부터 그 애들도 일을 시키도록 해. 일하지 않는 자들은 먹지 말아야 하니까.”

“네!”

“말은 참 잘하는구나.”

여전히 그녀는 못돼 처먹었다.

못됨못됨 열매를 먹는 건지, 얼굴에도 심술보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칭찬이신 거죠!”

“아니. 칭찬이 아니니 선물도 주지 않을 거야.”

“아아, 아쉬워라. 저는 원장님의 칭찬을 받는 게 참 좋아요!”

“……그래. 아이샤. 그러니 이제 말을 잘 들어야지.”

“잘 듣고 있는걸요? 원장님, 제가 혹시 뭐 잘못했어요?”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원장은 여전히 나를 보며 불편감을 토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