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래, 잘했고말고. 잘했어. 네 덕분에 창고에 갇힌 아이들도 구하지 않았니. 잘한 거지.”
“정말요? 그러면 저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부탁이라니.”
“칭찬받으면 원하는 거 하나를 받을 수 있잖아요!”
원장의 얼굴에 순간순간 짜증이 몰려온 게 느껴졌지만, 난 일부러 더 오버스러운 행동을 했다.
결국 포기한 듯,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뭔데 그러니? 뭐기에 지금 이 상황에 칭찬에 대한 보답을 해달라는 거야.”
“저요! 아이들을 제가 돌볼 수 있게 해주세요! 멜로디아 신녀님께서는 허락해 주셨지만, 원장님이 허락해 주셔야 하잖아요!”
“네가 돌본다니.”
“이렇게나 저를 좋아하는걸요!”
해맑게 웃어 가며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았다.
로헨이 살짝 몸을 움찔거렸지만, 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원장을 재촉했다.
“네?”
“역시 안 될까요? 역시 화나신 걸까요?”
일부러 그녀가 생각할 시간도 가지지 못하게 재촉했다.
“…….”
“그러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어차피 아이들을 이곳에 둘 거라면 말이죠.”
그사이 멜로디아 신녀가 내 말에 호응했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별수 없다 생각한 건지 보육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알아서 하거라. 씻기는 것도, 밥 먹이는 것도. 다 네가 알아서 하거라. 도와주지 않을 거니까. 네 말에 대한 책임은 그리 지도록 하거라.”
포기한 걸까, 아니면 다른 수를 쓰는 걸까.
‘무어가 되었든 보육원장이 이대로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지만.’
아무리 보육원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보육원장이라 할지라도, 이 상황에서 쉽사리 손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원하기도 한 거고.’
적어도 아이들을 때릴 일 따윈 없겠지. 신녀가 파견까지 보낸다 했으니까. 예상보단 아주 조금은 안정적인 상황이 되었다.
“네! 저 잘할 수 있어요!”
“……그래. 그러면 가서 아이샤, 네가 한번 아이들을 돌봐 보렴. 어려운 게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들한테 이야기하고.”
“네!”
멜로디아는 자애롭게 웃으며 나를 달래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와 쌍둥이들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가 생각나는 모습들을 하고 있구나. 탁하긴 하지만 은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라니.”
“특이한 건가요?”
“아, 아니야. 그냥 우연이겠지. 어서 가자꾸나.”
그제야 그녀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 와중에도 성기사들은 무슨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는 건지, 나와 아이들을 번갈아 보기 바빴다.
우리는 보육원 앞마당에 도착했다.
보육원을 찾은 신녀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혹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각자 흩어져 신녀들과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멜로디아 신녀와 나,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동시에 몰려들었다.
“우와…… 새로운 애들이야!”
“너네는 누구야?”
“누구예요?”
“아이샤. 걔네는?”
“멜로디아 신녀님. 그 애들은 어떻게 된 애들입니까.”
다른 아이들을 지키고 있던 다른 신녀들도 놀라서 급히 다가왔다. 다른 보육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색이 된 얼굴로 다가온 그들은 빠르게 쌍둥이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런 관심이 조금도 달갑지 않은 쌍둥이는 급히 내 뒤로 숨었다.
뒤늦게 우리를 살피던 멜로디아 신녀가 다가오는 이들을 허겁지겁 막아섰다.
“한 발 물러서도록 하세요.”
“네? 하지만 아이들이…….”
“괜찮아요. 어른을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 거리를 두도록 해요.”
그제야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이들이 천천히 뒷걸음쳤다.
하지만 아이들은 도리어 더 몰려들었다.
“저희는 다가가도 되죠?”
“우리는 아이들이니까.”
“아니요. 어린이들도 가지 말도록 해요. 당분간은 아이샤만 아이들에게 접근하도록 해요. 아무래도 아이샤에게만은 경계를 푸는 것 같으니.”
멜로디아 신녀의 단호한 말이 들리고 나서야, 내게 달라붙었던 아이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 발씩 물러섰다.
그제야 안심한 듯 쌍둥이가 꿈틀거리며 내 뒤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 나서야 멜로디아 신녀는 주변을 살폈다.
“신녀님들. 가져온 선물들은 아이들에게 모두 전해 주었나요?”
“네. 멜로디아 신녀님.”
“다들 고생했어요. 우선 오늘은 빨리 돌아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언제나 늦은 밤까지 아이들과 놀아 주던 멜로디아 신녀가 먼저 나서서 돌아간다 하자 모두들 의아해했다.
“갑자기요?”
“네. 감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리고 보육원장님은 당분간 보육원장 직에서 물러날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들이 당분간 그 직책을 대신하도록 해요. 정식 절차에 대한 건 서류로 보내도록 하죠.”
그 말에 보육교사들의 얼굴이 일률적으로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간단하게 내가 말하도록 하죠. 그 외에 자세한 건 보육원장님이 직접 이야기하실 거예요. 꼭 그게 아니더라도 신전 측에서 사람을 파견할 테니, 그들을 통해서 들어도 됩니다. 서류를 통해서도 한번 더 알려 줄 거고요.”
보육교사들을 찬찬히 살피던 멜로디아 신녀는 내게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가만히 우리를 보던 멜로디아 신녀는 얼굴을 굳히다가 나와 눈을 맞췄다.
“그럼 아이샤. 또 찾아올 테니 아이들을 잘 돌봐 주렴.”
“네!”
“다음번에 왔을 때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 네가 그렇게 만들 수 있지?”
“네! 걱정 마세요, 멜로디아 신녀님.”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정말 행복한 아이처럼 그런 연기를 했다.
그제야 멜로디아 신녀는 나와 쌍둥이들을 바라보다가 보육교사들 쪽으로 다가갔다.
“우린 저쪽으로 가죠.”
그제야 보육교사들은 신녀를 따라가려는 듯 급히 아이들을 정리했다.
“그, 그럼 우선 너희들끼리 놀고 있으렴.”
“네!”
나는 급히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선생님. 저는 얘네들이랑 방으로 가도 돼요? 너무 더러워서 씻기고 싶어요.”
“그러려무나. 엘. 다른 친구들이랑 가서 아이샤에게 옷 좀 가져다주렴.”
“네!”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난 쌍둥이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로헨이 내 손을 뿌리치려는 듯 움찔거렸지만, 난 그럴수록 로헨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난 두 사람을 내 방까지 데려오고 나서야 잡고 있던 손을 놨다.
“그래도 보육원 시설이 좋아서 방 안에 샤워실도 있어.”
“우아! 아이들의 방이야!”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라리즈는 품에 안고 있던 담요를 더 꽉 끌어안고선 주변을 바라봤다.
“여기가! 언니야 방이야?”
“응! 다행히 룸메이트가 없던 차였으니 잘됐지, 뭐.”
“…….”
자신들이 지내던 곳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라리는 눈을 반짝였다.
그에 반해 로헨은 영 불편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왜? 로헨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래도 여기가 보육원 방중에선 제일 좋은 방 중에 하난데…….”
내가 말을 하든 말든 상관치 않는 것처럼, 로헨은 창으로 다가가더니 밖을 바라봤다.
“왜? 뭐가 이상해?”
“여기는 정말 안전한 곳이야?”
“당연하지. 문 잠그면 아무도 못 들어와.”
“……못 믿어.”
“그래? 그럼 잘됐다, 로헨. 그러면 네가 여기서 방 잘 지키고 있어. 난 라리즈 씻길게.”
방금 전까지 매서운 독수리의 눈매를 해 보이며 밖을 보던 로헨의 얼굴이 굳어지는 건 당연했다.
“라리즈. 언니랑 씻을래?”
“어…… 하지만, 난 흉해…….”
“괜찮아.”
“언니야가 나 싫어할까 봐 걱정돼…….”
아이는 시무룩하게 몸을 배배 꼬았다. 난 그런 라리의 머리를 보드랍게 쓰다듬었다.
아무리 놀라울 정도의 치유력이 있다고 하지만, 중첩으로 쌓인 학대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라리는 내게 몸을 보여 주길 싫어하는 거다. 그걸 알기에 난 더 환히 웃었다.
“괜찮아. 어떤 모습이든 언니는 절대 라리랑 로헨을 싫어하지 않아.”
“정말? 오빠. 언니야가 우리 안 시러한대!”
“……그걸 믿는 거야?”
“응! 오빠. 내가 그래짜나. 언니는 특별했다구! 맨 처음 개구멍을 통해 들어왔을 때부터!”
라리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 가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로헨은 여전히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난 로헨이 더 툴툴거리기 전에 라리의 어깨를 보드랍게 매만졌다.
“그래. 그러면 이제 어서 씻으러 가자.”
“응! 라리는 깨끗해지 꺼야! 오빠는 냄새나게 살오!”
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보인 라리즈가 내 손을 잡았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권력자의 아이라서 사랑스러운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아이가 사랑스럽다.
‘이렇게 예쁜 앤데 악녀가 된다니.’
그건 절대 두고 볼 수 없다. 라리즈만은 행복하게 해서 나쁜 길로 가지 않게 만들겠노라 생각하며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언니야. 얼굴이 무서워…….”
“어? 아냐. 안 무서워! 걱정 마!”
그런 내 모습을 본 건지 라리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그런 아이를 향해 손을 세차게 저었다.
“으응……!”
“있잖아. 라리. 난 꼭 구해 낼 거야.”
“이미 구해 줬는걸.”
“아니! 너희들의 어린 시절을 구해 낼 거야.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라게 해줄게.”
“언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