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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9)화 (9/99)

-9화-

멜로디아 신녀가 매섭게 고개를 돌려 보육원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듯 눈알을 굴릴 뿐이었다.

“보육원장!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죠? 정말 아이들을 이곳에 가둬 키운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그 아이들은 저도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보, 보육원을 하는 제가 설마 아이들을 창고에 가둬 키우겠습니까?”

입술만 달싹이며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며 신녀의 안색이 차갑게 변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죠. 정말 몰랐던 건지, 알면서도 가둬 놓은 건지. 이 사안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이 창고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겁니까?”

처음에는 모른다로 일관하던 보육원장은 금세 안면 표정을 바꿨다.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생각한 건지, 아니면 핑곗거리가 생각난 건지 꽤나 급작스러운 변화였다.

“보육원장으로서 이런 곳이 있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맨 처음 보육원 부지를 올릴 때부터 함께였으니까요.”

“…….”

“하지만 이미 이 창고는 오래전에 버린 창고이기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저런 아이들이 이곳에 스며들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보육원장은 쌍둥이들을 노려봤다. 이미 아이들은 나오자마자 보육원장과 눈도 못 마주쳤다. 그 때문에 그녀는 절대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는 듯했다.

‘심지어 지금도 눈빛으로 쌍둥이들을 위협하고 있어.’

나쁜 인간. 실제로 그녀의 기세는 흉흉했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해 자신의 말만 듣게 했지만, 쌍둥이들은 입에 담기 힘든 일까지 했으니까.

보육원을 오랫동안 운영한 그녀는 폭력의 두려움을 잘 알 것이다. 특히나 강압적인 일을 당한 아이들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진실을 말할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잡지도 못한다는걸. 그녀는 참 잘 아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신녀는 코웃음 치며 그녀를 바라봤다.

“몰랐을 수도 있다 생각하나, 산드라 보육원장님은 지금 아이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시네요.”

“설마요. 그저 혹여나 우리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아이들은 아닌가 살펴보는 것뿐이랍니다.”

사사건건 말대답을 하는 보육원장을 보며 멜로디아 신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된다니…… 처음부터 나쁜 아이는 세상에 없어요. 나빠지게 되는 건 보호자가 그리 만드는 거죠.”

“그런가요?”

신녀의 말이 가소롭다는 듯 그녀는 어깨를 들썩였다.

“안 되겠군요. 내가 판단하기에 세릴 산드라 보육원장은 이 아이들이 여기에 있었음을 알았던 것 같아요.”

“이젠 누명까지 씌우시는군요. 신녀님.”

“이건 내 개인의 의견일 뿐이니까요. 그러니 감사를 하도록 하죠. 그 전까지 보육원에서 세릴 산드라 보육원장님은 잠시 물러나 있도록 하세요.”

그 말에 원장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는지 그녀는 나와 쌍둥이 그리고 멜로디아 신녀를 번갈아 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역시나 그녀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 모습에 도리어 멜로디아 신녀가 놀란 듯했다.

“생각보다 쉽게 물러나네요.”

“보육원은 신전의 도움 없이는 운영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니 무언가 마뜩지 않다 생각하신다면 당연히 보시는 게 맞겠죠.”

말은 참 잘하네.

저래 놓고 뒤에서 다른 신녀들에게 뇌물을 쑤셔 넣을 거면서.

“그래요. 그렇다면 그리하도록 하죠. 조사를 위해 아이들은 우리가 데려가도록 하죠. 아이들을 데려오도록 해요.”

그 말에 성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들은 더욱더 몸을 굳힐 뿐이었다.

“괜찮아. 너희들을 보호해 주려는 것뿐이야.”

그때 주변을 살피던 아이들이 내 쪽으로 호다닥 뛰어왔다.

“나는 언니야랑 있을 거야! 다른 사람은…… 싫어!”

라리즈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뛰어와서는 품에 안겼다. 그러더니 작은 머리통을 내 가슴팍에 부비적거렸다. 고작 한 살 차이이기는 하나, 열 살 이하의 아이들은 몇 개월 차이가 꽤 크다.

그 때문에 라리즈는 더 아이같이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못마땅하게 나를 바라보던 로헨까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얘들아……?”

멜로디아는 그런 상황에 퍽 놀란 듯한 눈을 했다.

이때를 기다린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으며 신녀를 바라봤다.

“신녀님! 저와 함께 있도록 해주세요! 아무래도…… 어른은 무서운가 봐요!”

“그런 걸까…….”

신녀가 찬찬히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그녀는 허름한 옷차림에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뱉었다.

“제발요…….”

못마땅한 거 같기도 하고, 또 안타까워하는 거 같기도 하고.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던 신녀는 한참 끝에야 한숨과 함께 나를 바라봤다.

“오늘따라 아이샤가 참으로 이상한 날이네요.”

“얘들이 이렇게나 원하잖아요…… 부탁드릴게요.”

“…….”

“네? 꼭 그렇게 해주세요.”

“하지만 아이샤. 어디서 온 아이들인지도 모르는데…….”

“당분간만이라도요.”

발을 콩콩 굴러 가며 간절함을 토로했다.

그 간절함을 느낀 건지, 아니면 내게 딱 달라붙어서 물러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아이들을 느낀 건지 멜로디아 신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별수 없구나. 아이들이 너를 따르는 거 같으니, 네가 당분간 돌봐 주려무나. 아이샤.”

“네!”

“대신 이후로도 아이들에 대한 조사를 위해 방문할 거란다. 알았지?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 괜찮아지면 데려갈 거야.”

혹시나 지금 당장 아이들을 빼앗길까 봐 난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아이샤라면 믿고 맡겨도 되겠지.”

별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멜로디아 신녀의 얼굴은 조금 어두웠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정말 믿고 맡겨도 되는 건가 하는 그런 의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신녀가 생각하기에도 별다른 방도가 없다 느끼는 건지 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가끔은 해결하기 힘든 일의 해결책이 아이들이 되곤 하죠.”

“멜로디아 신녀님, 설마.”

두 명의 성기사는 앞다투어 불편감을 토로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멜로디아 신녀에게 물든 건지 그들은 아이들에게로 다가왔다.

“이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대로 두고 간다고요?”

흥분하는 성기사들을 보며 멜로디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싫다는 아이들을 데려가 봤자,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아이샤가 잘 돌보기로 했고…… 당분간 신전에서 이쪽으로 파견을 나와 아이들을 살핀다면, 다른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멜로디아 신녀는 성기사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도리어 우리가 데려갔다가 상처를 받고 입을 꾹 다물면요.”

“……그렇긴 하지만.”

“그러니 내 명을 따르도록 해요. 이 모든 건 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까.”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쉰 성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멜로디아 신녀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분위기는 급격히 변했다. 보육원장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 건지 말없이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난 멜로디아 신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신녀님.”

“응? 왜 그러니.”

“저…… 혼나는 거 아니죠?”

아이처럼 해맑게 입술을 삐죽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잘못했다고 혼나는 거…… 아니죠? 친구들을 데려왔을 뿐인데…….”

그러고는 천천히 신발로 바닥을 긁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처럼.

걱정이 많아 바들바들 떠는 것처럼 나름의 연기를 해 보였다.

완벽하지 않은 어설픔이 아이답다는 걸 알기에, 우물거리다 신녀를 바라봤다.

내 걱정의 이유를 금세 알았다는 듯 그녀는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이샤. 아이샤가 잘못한 건 없단다. 그러니 걱정 마.”

“정말요……?”

“신녀인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 본 적 있니?”

“아니요!”

“내 말이 맞단다. 그러니 걱정 마.”

하지만 난 여기서 끝나지 않고 멜로디아 신녀 뒤에 있는 보육원장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원장님!”

“…….”

“원장님! 저 잘한 거래요! 저 그럼 안 혼나는 거죠?”

“아이샤. 그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널 매번 혼내는 줄 알겠다?”

성질을 애써 죽이고 있는 원장의 이마에서 빠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답답했던 속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과 함께 짓지 않으려고 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설마요! 원장님이 얼마나 저희를 아껴 주시는데요! 화도 안 내시고 잘해 주시는걸요. 그래도 아까 표정이 굳어 계셔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화는 안 내지만 다른 짓을 하긴 했으니까.

혼은 안 내지만 아이들의 자존심을 갉아먹는 소릴 아무렇지 않게 하곤 하지.

‘사람의 자존심을 어떻게 갉아먹을 수 있는지 비법이라도 아는 것처럼 말이야.’

그동안의 일만 생각하면 이가 아득바득 갈린다.

“네가 그러니까 부모가 버린 거다.”

“여기서 나가면 네까짓 게 어디서 빌붙어 살 수라도 있을 거 같냐.”

“쓸모없는 것들.”

“필요도 없는 것들이 식량만 축낸다.”

우릴 향해 뱉어지던 수많은 말들.

여러 말은 보육원장의 입에서 일상적인 언어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지내 왔으면서 이제 와서는 착한 사람인 척하다니. 하지만 보육원장이 이제껏 벌인 일들을 심판하는 날은 지금이 아니다.

그 때문에 난 환하게 웃었다.

“얼굴 굳은 거 아냐. 그냥 놀란 것뿐.”

“그러면 저 잘한 거예요? 신녀님이 잘한 거라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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