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멜로디아 신녀와 둘이 가면 좋았으련만, 예상대로 보육원장은 우리 뒤를 졸래졸래 따라왔다. 심지어 나를 향해 계속해서 압박을 가했다.
‘신녀님 돌아가면 가만 안 두겠네.’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난 그냥 이 시간이 즐거운 아이처럼 헤벌쭉 웃었다.
“네에~.”
모든 일의 원흉. 못돼 처먹은 인간의 표본.
역시나 그녀는 내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이를 아득 갈며 나를 노려봤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만 아이샤. 떼를 쓰면 안 된단다.”
“네! 원장님!”
해맑은 아이처럼 환하게 목소리를 높인 난 멜로디아 신녀의 손을 더욱더 강하게 이끌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걷고 또 걸었다.
조금 다리가 아파 올 때쯤, 멜로디아 신녀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걸까요. 보육원 뒷길인가요?”
그리고 불편하게 우리를 바라보던 보육원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도 그쯤이었다. 보육원 건물에서 벗어나 산에 가까운 뒤쪽 길로 걸어가다 보면 있는 거라곤 쌍둥이들이 갇혀 있는 그 건물뿐이니까.
“자, 잠깐. 잠깐!”
원장은 내 어깨를 잡고 급히 멈춰 세웠다. 어른의 힘을 이겨 낼 재간은 없기에 내 몸은 타의에 의해 멈췄고, 그게 신녀님의 심기를 거슬렀다.
“왜 그러시죠. 세릴 산드라 보육원장님?”
“이,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니요?”
“아무것도 없어요. 아이샤. 신녀님 고생시키지 말고 돌아가자꾸나.”
당장이라도 손찌검을 할 듯, 보육원장의 얼굴은 흉흉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에요! 저기에 있어요.”
“있다니?”
“저기에서 분명 봤어요! 아이들을요! 분명 저기에 있어요!”
때마침 우리 눈앞에는 창고 건물이 보였고, 내 말을 듣던 멜로디아 신녀의 얼굴도 차갑게 굳어졌다.
“아이가 있다니.”
“아닙니다. 아무래도 아이샤가 무언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아녜요. 신녀님! 제 말을 들어 주세요! 진짜로 저기서 아이들을 봤어요!!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정말 만났어요!”
“네가 요새 잠을 잘 못 자서 헛것이라도 본 모양이구나. 아이샤. 최근에 그리 몸이 마른 것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어. 당장 돌아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자꾸나.”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육원장은 날 선 얼굴로 당장 나를 안아 들려는 듯 움직였다. 그 행동이 너무 명확하게 보여서 난 살짝 뒷걸음쳤고, 그제야 신녀님이 내 앞을 살짝 막아섰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으신 모양입니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게 아니라면 우선은 아이의 말을 들어 봄이 맞겠죠.”
“아닙니다. 저기는 버려진 창고예요. 가면 온통 쓰레기뿐입니다.”
“진짜예요! 아이들이 있었어요!!”
내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 창고 안에서 무언가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을 기대하며 쌍둥이들에게 혹시나 밖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거든 크게 소리치라 했었다. 다행히 내 말을 잘 알아듣는 듯 둘은 두꺼운 철문을 계속 두들겼다.
보내지 않으려는 보육원장과 어떻게 해서든 가보자고 하는 내 사이에서 아주 잠시 갈피를 잃었던 신녀는 그 소리에 놀란 듯 급히 창고로 뛰어갔다.
“세상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죠? 분명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아이샤의 말이 맞았어요!”
“아, 아닙니다. 잘못 들으신 거예요.”
“……지금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 하는 건가요? 방금 그 소리, 나만 들은 건가요?”
뒤에 따라오던 성기사들은 고개를 강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저도 들었습니다. 멜로디아 신녀님.”
“저도입니다.”
“아무래도 그 소리를 못 들은 건 원장님 한 분뿐인 것 같군요.”
원장의 얼굴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 갔다.
“드, 들짐승들이 이 주변을 어슬렁거려서 그 소리를 잘못 들은…….”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들어가 보도록 하죠.”
“아니욧! 저기는 아무것도 없다니까 그러네요. 고작 어린아이의 말만 듣고 이곳에 오는 것부터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보육원장은 어느 때보다 성질을 내며 내 팔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당장이라도 때릴 듯 흉흉한 기세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돌아가면 흠씬 맞을 게 뻔하다. 그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신녀님 앞에서 팔을 이렇게 잡아당길 줄이야.
어른의 키에 맞게 위로 내 팔은 빠지게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파요, 원장님…….”
“조용히 하거라. 아이샤. 너는 똘똘한 아이라 계속 봐줬더니 아주 기어오르는구나.”
“……죄, 죄송해요. 하지만…… 목소리가 들린걸요.”
너무 아픈데, 위로 들린 힘이 강해서 팔을 뺄 수도 없다. 아니, 팔을 빼려고 움직이면 더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아픔을 이겨 내고 겨우겨우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내게 먼저 말했어야지.”
“하지만…… 하지만…… 믿어 주지 않으실까 봐…….”
최대한 아이처럼 우물거렸다. 내 그런 모습에 신녀님은 급히 원장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그녀는 내 팔을 잡고 있는 손을 풀었다.
“그만하세요. 세릴 산드라 보육원장님. 애가 겁을 먹는 것 같네요. 거기에 그렇게 아이를 들면 아이가 아파하잖아요. 평소에도 이러셨습니까? 그러기에 이런 행동들이 자연스러운 겁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평소에는 사랑으로 보살핀답니다.”
“그걸 믿을 수 없네요. 하지만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우선 저기 가서 문을 열도록 해요.”
“자, 잠시만요. 저긴 냄새만 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미 성기사들은 그곳으로 간 후였다.
그들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굵은 쇠사슬과 자물쇠를 발로 부쉈다. 방금 전까지 날 잡고 있던 보육원장이 사색이 되어 그들에게로 뛰어갔지만, 성기사들의 행동에는 주저 따윈 없었다.
“아아……! 자, 잠시만요!”
그러는 사이 멜로디아 신녀는 활짝 열린 창고로 달려가 버린 후였다. 그리고 더럽고 인간이 살 만한 곳이 아닌 곳에서 나오는 쌍둥이들을 보며, 그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사색이 된 얼굴을 했다.
믿기지 않는 듯 입을 틀어막은 그녀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저, 정말 아이들이 있었어…….”
나도 그녀를 따라 빠른 보폭으로 따라갔다. 불안감을 잔뜩 가진 아이처럼, 혹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주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먼저 간 멜로디아 신녀를 따라 이미 앞서간 보육원장이 날 볼 리는 없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역시나 창고 안에서 나오긴 했지만, 아이들은 문앞에 서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신녀는 우물거리다가 아이들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그녀의 심성상 바로 아이들을 안거나 하지 않을까 했지만, 어쩐 일로 그녀는 그런 과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가까워진 거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뿐.
“너희들은…… 너희들은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된 거니……?”
하지만 내가 미리 시킨 대로 아이들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과하게 음식을 먹으려고 하다가는 체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너무 모든 걸 지금 밝히려고 하지 않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다.
‘도리어 지금 다 밝히려고 해봤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뒷배도 없는 아이들일 뿐이다. 솔직히 어딘가 버려 두고 와도 아무도 찾지 않을 그런 아이들. 이번에 쌍둥이들이 발견됨으로 인해 분명 보육원에 대한 조사는 할 테지만 그게 다다.
아무리 신녀들이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안타까이 여기긴 하지만, 그녀들 또한 사람이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일 테지. 거기에 보육원에 대해 온 맘 다해 신경을 쓰는 건 멜로디아 신녀 하나뿐이다.
모두에게 자비로워야 한다는 신에 뜻에 맞춰 보육원을 하고 있으나, 그들은 보육원을 돈도 안 되는 귀찮은 일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꽤 많은 신녀들이 왔었지만, 지금은 멜로디아 신녀나 그녀의 후임 신녀들만이 보육원에 올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보육원장이 쌍둥이를 학대한 것까지 밝혀 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게 없다.
‘멜로디아 신녀는 이 일에 대해 걸고넘어지려 하겠지만, 다른 신녀들은 대충 넘어가자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세릴 산드라 보육원장은 남들이 보기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그녀는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딱 그런 인간의 표본이다.
얼마나 주변 인간들에게 열심히 손을 써놨으면, 어지간한 사고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다.
그 때문에 지금 당장 보육원장이 우릴 학대했어요, 말해 봤자다.
‘그러니 이걸로 만족해야겠지.’
그러는 사이 참지 못한 신녀가 다시금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손까지 흔들어 가면서.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란다. 신녀님이야.”
“…….”
“…….”
그런 그녀의 말에도 쌍둥이들은 눈만 이리저리 굴릴 뿐이다.
그걸 보며 신녀는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이런 아이들은 처음 본 듯 그녀는 계속해서 놀라워할 따름이었다.
“세상에…… 무슨 일을 당했길래 말도 못 하는 거니. 응?”
내가 본 사람들 중 제일 선한 사람이다.
그저 풍겨 오는 이미지만으로도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겉으로 착해 보인다고 해서 쌍둥이들이 쉽게 마음을 열 리 없었다.
대답 없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던 신녀의 타깃은 원장이 되었다.
“하…… 도대체, 도대체 어떤 취급을 당했길래…… 이렇게까지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거죠?”